Regressor’s Life After Retirement RAW novel - Chapter 146
146화 마즈다의 화신(2)
“마즈다시여.”
릴리는 귓가에 들리는 여자의 조심스러운 목소리에 깨어났다.
“우웅···.”
소녀가 눈을 뜨자, 천마신교의 무녀가 황송하다는 듯 뒤로 물러나며 허리를 숙였다.
“아침이에요?”
릴리는 손등으로 눈을 비비며 몸을 일으켰다. 무림의 침대는 엄청 컸다. 뒹굴뒹굴 몇 바퀴를 굴러도 될 정도였다.
하지만 릴리는 버릇없게 침대 위를 굴러다니지 않았다.
여긴 지구에 있는 자신의 방이 아니니까. 말썽을 부리면 안 된다. 이곳에는 친절하고 착한 어른이 많지만, 그래도 화가 나면 자신을 쫓아낼지도 모른다.
“굿모닝!”
릴리가 활짝 웃으며 아침 인사를 건네자, 무녀는 어색하게 웃으며 그 말을 따라 했다.
“국···모···니?”
안타깝게도 두 사람은 말이 통하지 않았다.
릴리가 무림으로 넘어올 때 발생한 이상 현상으로, 가지고 있던 통역용 아티팩트가 고장 난 탓이었다.
‘아스가 옆에 있었으면 통역마법을 걸어줬을 텐데···.’
하지만 무림에 넘어온 지도 벌써 사흘.
릴리는 손짓 발짓을 이용해서 어떻게든 의사소통을 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라고 믿는 중이었다.
“혹시 ‘아스’는 찾았어요?”
“!”
순간 무녀의 표정이 굳었다.
무녀는 황급히 뒤로 몇 걸음 물러나더니, 바닥에 오체투지하며 릴리의 드래곤 친구 이름을 외쳤다.
“야스! 야스-!”
무녀가 왜 저러는지, 릴리는 처음에는 몰라서 깜짝 놀랐지만, 이제는 알고 있었다.
‘무림은 인사법이 정말 이상해.’
소녀는 침대 위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설날에 어른들에게 세배하듯, 작은 몸을 새우처럼 웅크리며 무림식(?)으로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이에요. 어제도 재워주셔서 감사합니다.”
“히익! 마즈다시여!”
무녀는 졸도할 것 같았다. 신의 화신께서 자신에게 맞절이라니. 처음 겪은 일은 아니지만, 이러실 때마다 천벌이라도 받은 것 같아 심장이 벌렁벌렁했다.
무녀는 신의 뜻을 감히 추측해 볼 수밖에 없었다.
‘마, 마즈다께서 미천한 종을 시험하시는구나. 보다 겸손하게 고개를 숙이라고···.’
꾸욱…
이마로 바닥에 자국을 남길 기세로 무녀는 고개를 숙였다. 그녀는 릴리가 먼저 고개를 들 때까지 그 자세를 유지했다.
잠시 후, 이마가 시뻘겋게 변한 무녀가 말했다.
“마즈다시여. 식사시간입니다.”
동시에 무녀는 손으로 무언가를 먹는 시늉을 해 보였다.
“밥이요?”
여전히 통역은 되지 않았지만, 이 부분만큼은 놀라울 정도로 눈치가 빠른 릴리였다.
“예. 식사가 준비되었습니다.”
마즈다의 화신께서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옆으로 손을 뻗었다.
“말랑아. 밥 먹으러 가자.”
캬아아?
그러자 옆에서 똬리를 틀고 잠들어 있던 신성한 뱀이 대가리를 치켜들었다. 졸린 듯 눈이 반쯤 풀린 모습이었다.
“이리와.”
릴리는 말랑이를 덥석 안더니 목도리처럼 목에 둘둘 둘렀다. 말랑이가 입을 쩌억 벌리려 하품을 했다.
“밥 먹으러 가자!”
“···따라오시지요.”
무녀는 마즈다의 화신과 신성한 뱀을 교주전으로 안내하며 생각했다.
‘마즈다의 화신께서는···.’
지난 사흘 동안, 영광스럽게도 신을 모시면서 무녀는 한 가지만큼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고 자부했다.
‘음식을 정말 좋아하시는구나.’
***
긴 식탁 위에는 온갖 종류의 산해진미가 올라와 있었다.
휙! 휙휙!
그리고 작은 손 하나가 식탁 위에 놓인 접시들을 종횡무진 누비고 다녔다.
볼이 빵빵해지도록 아침 식사를 해치우던 릴리는, 문득 자신을 바라보는 수많은 시선을 느끼곤 손을 멈췄다.
“······.”
릴리는 큰 눈을 깜빡거리며 자신을 바라보는 어른들을 바라봤다. 볼이 빵빵해져서 뭉개진 발음으로 말했다.
“왜 안드세혀?”
“크흠.”
“크흠흠!”
그제야 홀린 듯이 릴리를 바라보던 마교의 수뇌들이 자신들의 실수를 깨닫고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끼리 저 놀라운 소녀에 대해서 수군거리는 것만큼은 참을 수 없었다.
‘저 작은 몸에 어찌 저리 많은 음식이 들어가는지···.’
‘눈으로 보지 않았으면 믿지 못했을 겁니다.’
‘역시 신의 화신이시니 인간과는 다르시겠지요.’
그들은 천마신교의 장로들이었다.
단 한 명이라도 무림에 나간다면 정파 무림을 공포로 몰아넣을 고수들. 그러나 지금은 작은 소녀 앞에서 쩔쩔매는 형편이었다.
“마즈다시여. 저희는 신경 쓰지 마시고 성찬을 즐겨 주십시오.”
백발이 성성한 대장로가 인자하게 웃으며 젓가락으로 먹는 시늉을 해 보였다. 무림에서 그는 독혈마제라 불렸다.
그러나 릴리의 눈에는 착한 할아버지로 보일 뿐이었다. 릴리가 방긋 웃더니 나물 요리를 독혈마제 쪽으로 밀어주었다.
“할아부지도 이거 마니 드세여!”
말은 안 통하지만 뜻은 대충 통했다.
“아···예···! 감사합니다!”
평소 나물은 거들떠도 안 보이는 독혈마제였지만, 마즈다의 화신이 건넨 나물은 만년설삼이라도 되는 것처럼 꼭꼭 씹어서 맛있게 먹었다.
다른 장로들이 부럽다는 시선으로 대장로가 나물을 먹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부럽다···.’
‘내게도 성찬을 내려주셨으면···.’
장로들은 눈앞의 작은 소녀를 그들이 믿는 유일신, 마즈다의 화신이라고 믿었다.
장로들뿐만이 아니었다. 사흘 전 기적을 경험한 천마신교의 모든 교도들이 그러했다.
성화를 뚫고 하늘에서 나타난 적발적안의 소녀.
그 하얀 피부와 머리 색은, 500년 전 이 땅에 온 그들의 선조들과 똑 닮아 있었다.
‘저토록 선명한 적발은 100년 전 무림을 공격했던 증조부의 초상화에서나 보았던 것이다. 아니, 그보다 더 붉어.’
천마신교의 소교주, 천무진은 릴리를 힐끗거리며 생각했다.
지금이야 피가 섞이며 그 특징이 많이 옅어졌다지만, 대대로 교주를 배출한 천가와 일부 대가문은 여전히 하얀 피부와 적갈색 정도의 머리 색을 지녔다.
하지만 그 누구도 눈앞의 소녀만큼 진한 적발을 가지지는 못했다. 피부와 머리 색만으로도, 소녀는 성골 중의 성골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소교주는 생각을 이어나갔다.
‘저 소녀가 정말 마즈다의 화신일까? 우리의 구원자일까?’
천마신교는 약 500년 전에 이 땅에 터를 잡았다. 그러나 그들의 뿌리는 본래 무림이 아니었다.
경전에 의하면 그들은 원래 낙원에서 살았으나, 신에게 죄를 지어 이 땅으로 추방당했다.
-나를 믿고 경배하라. 그리하면 언젠가 구원자를 보내 너희를 고향으로 데려오게 하리라-
경전에 적힌 오래된 문구.
천마신교의 교도라면 누구나 그것을 읽었고, 언젠가 낙원으로 돌아가기 위해 매일같이 기도를 드리고 신을 경배했다.
‘낙원 같은 건 마즈다를 믿게 하기 위한 협박인줄 알았는데···. 하, 나조차 믿고 싶을 정도라니.’
천마신교의 소교주가 신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다는 사실은, 본인만 아는 비밀이었다.
그때였다.
“마즈다시여.”
릴리의 반대편, 상석에 앉아있던 교주가 입을 열었다.
“저희가 무지하여 낙원의 말을 잊었습니다. 부디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러나···.”
교주 천무한은 참을성이 많은 사내가 아니었다. 사흘이면 많이 참았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신을 믿지 않는 불경한 자들이 저 바깥에 있습니다.”
교주는 아들과 달리 진심으로 마즈다를 믿었다. 그러나 그는 눈앞의 소녀를 신의 화신으로만 경배하지는 않았다.
‘완벽한 명분이 생겼다.’
곧 터질 정마대전을 앞두고 나타난 신의 화신.
소녀는 신이 약속한 승리의 상징이자, 2만에 달하는 신교의 무인들이 목숨을 바쳐 성전을 치를 이유가 될 것이다.
교주는 소녀에게로 걸어가 그 앞에 부복했다.
“무림의 위선자들을 토벌하기 위해 2만의 군사가 준비돼 있나이다. 출병을 허락해 주십시오.”
침착해 보이는 교주의 눈동자 속에서 광기가 일렁였다.
그와 눈빛을 마주한 순간, 릴리는 소름 돋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알았다.
‘이 아저씨는 안 착한 것 같아.’
릴리가 젓가락으로 음식을 깨작거리며 말했다.
“죄송한데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서···. 아스가 오면 말하면 안 될까요?”
“······.”
교주는 침착하게 소녀가 하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경전을 통째로 외우고 있는 그도 화신의 말을 이해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건 아무 상관도 없었다.
‘신의 말씀을 누구도 알아들을 수 없다면, 그 해석은 오로지 나의 몫이다.’
교주는 그것을 자신의 당연한 권리라고 여겼다.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교주가 릴리에게 허리를 숙였다. 그리고 몸을 돌려 장로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방금 화신께서 출병을 허락하셨소. 신의 뜻을 교도들에게 널리 알리고, 지금 당장 전쟁 준비를 시작할 것이오!”
그러자 평소 전쟁 자체에 회의적이었던 이장로가 벌떡 일어났다.
“교주님! 방금 화신께서 하신 말씀을 알아들으셨단 말입니까?”
교주는 당당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내 머릿속으로 그분의 말씀이 이해되어 들어왔소. 불신자들을 토벌하라. 나의 영광을 전 무림에 떨치라!”
교주의 몸에서 마기가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그 강렬한 기세에 이장로는 숨이 턱 막혔으나, 간신히 반론을 펼쳤다.
“···지금 당장 전쟁을 시작하긴 어렵습니다. 적어도 일 년, 아니 여섯 달은 필요합니다.”
“이장로의 말이 맞습니다. 섣부르게 전쟁을 시작했다간 교의 피해가 커질 것입니다.”
“교주님. 100년 전의 실수를 되풀이할 수는 없습니다.”
“아직 천하삼절의 동태도 파악되지 않았습니다.”
전쟁을 반대하는 장로들이 전부 한마디씩 보탰다. 교주는 그들을 지그시 노려보았다.
‘추하게 늙은 겁쟁이들.’
예전 같았으면 교주는 장로들의 말을 쉽게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닥쳐라-!”
콰콰콰콰콰콰!
교주의 일갈과 함께, 대성에 이른 천마신공의 기운이 교주전을 뒤덮었다.
“무림맹도 그리 예상하고 있을 것이다. 전쟁은 빨라도 여섯 달 뒤에나 시작될 거라고. 놈들이 모든 방비를 끝낸 후에 공격하자는 것인가!”
교주의 몸에서는 강렬한 마기가, 두 눈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그는 마즈다의 화신을 등 뒤에 세워 둔 채 일갈했다.
“보아라! 마즈다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신 증거를! 우리는 승리할 것이다! 이번에야말로 무림의 위선자들을 토벌하고, 저 풍요로운 땅에 깃발을 꽂을 것이다! 이 모두가 신의 뜻이다!”
교주의 무시무시한 기세가, 그리고 그의 뒤에 있는 소녀의 존재가 장로들은 침묵시켰다.
그때 대장로는 교주의 상태가 전과 다름을 눈치챘다.
‘교주의 무공수위가 어느새 저리 높아졌지? 비정상적인 속도인데. 설마···?’
그는 불길한 상상을 애써 부정하며, 교주 앞에 무릎을 꿇었다.
쿵!
결국 전쟁은 시작될 터. 지금은 내분을 일으킬 때가 아니다.
“교주님의 명을 받듭니다!”
대장로의 뜻을 읽은 다른 장로들도 하나둘 무릎을 꿇었다.
“교주님의 명을 받듭니다!”
“교주님의 명을 받듭니다!”
“교주님의 명을 받듭니다!”
“······.”
교주는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를 매단 채 고개를 끄덕였다. 등 뒤에서 소녀가 작게 무슨 말인가를 중얼거렸지만, 무시했다.
‘이것으로 되었다.’
신이 허락하신 성전.
전쟁에 회의적이었던 자들도 한마음으로 모일 것이다.
‘그리고 나는 역사상 최초로 무림을 일통한 천마로 기억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신도 이용할 것이다.
주화입마가 더 심해져 미쳐버리기 전에 말이다.
*
*
*
그날 밤.
릴리는 잠든 척하고 있다가 조용히 깨어났다. 그리고 가방에 짐을 싸기 시작했다.
“빨리 도망가야 해.”
착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나쁜 사람이 대장이었다. 릴리는 광기에 차 있던 천마교주의 얼굴을 떠올렸다.
부르르.
몸에 소름이 돋았다. 엄청 나쁜 예감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가방에 말랑이를 집어넣고 어깨에 멨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창문을 열었다.
휘이이잉~
싸늘한 바람이 불어왔다. 다행히 달이 밝지 않아서 도망치기에 좋은 환경이었다.
하지만 도망도 쉽지 않았다.
“어딜 가시려고 하십니까?”
마치 유령처럼, 릴리의 등 뒤에 천마교주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게···. 산책! 산책하려고요!”
어차피 무슨 변명을 해도 알아듣지 못한다.
때문에 교주는 어이없다는 표정 대신, 부드럽게 웃으며 다가와 창문을 닫고 걸쇠를 걸어 잠갔다.
딸깍.
“날이 춥습니다. 교내를 둘러보고 싶으신 거라면, 내일 소교주를 시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부드럽지만 단호한 말투였다. 부탁 같지만 강요나 다름없었다.
“······.”
릴리는 잠시 고민했다. 잠시라도 더 이곳에 있고 싶지 않았으니까.
‘싸울까?’
이성은 맹렬하게 경고를 보냈다. 하지만 본성은 눈앞의 적을 불사르고 떠나라고 속삭였다.
‘여기 붙잡혀 있으면 나쁜 일을 당할지도 몰라.’
자신을 붙잡아두려는 상대의 모습에서, 소녀는 머릿속에 과거의 끔찍한 트라우마를 떠올렸다.
소녀의 눈빛이 조금씩 흉성으로 물들어갈 때였다···.
[싸우면 안 돼.]머릿속으로, 소녀가 세상에서 두 번째로 듣고 싶었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일단 시키는 대로 하자.]깜짝 놀란 릴리가 주위를 둘러보며 소리쳤다.
“아스? 어디 있어?”
“?”
교주가 눈썹을 꿈틀거리며 함께 주위를 둘러봤다. 그러나 아브락사스의 목소리는 릴리에게만 들렸다.
[나 여기 있어.]캬아아!
잠든 채로 가방에 구겨 넣었던 말랑이가 고개를 내밀었다. 그리고 혀로 릴리의 뺨을 핥았다.
“말랑이? 아스가 왜 거기 있어?”
[급하게 몸을 구하려다 보니 여기 밖에 없었어. 좀 웃기긴 하다. 드래곤이 서펜트 몸으로 빙의하게 되다니.]“그럼 말랑이는?! 죽은 거야?”
말랑이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잠깐 빌린 거야. 이 녀석 의식은 저 밑에 잠들어 있어.]릴리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휴···. 다행이다. 난 아스가 멀리 떠난 줄 알았어···.”
[말했잖아. 곁에 있겠다고. 일단 저 인간이 시키는 대로 얌전히 굴자.]“응!”
마음의 안정을 찾은 릴리는 아브락사스가 시키는 대로 했다.
가방을 벗고 침대로 들어가서 다시 눕자, 교주가 잠시 그 모습을 응시하더니 고개를 숙였다.
“편안한 밤 보내시길.”
그리고 스르륵 사라져 버렸다.
릴리는 “흥!”하고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말랑이를 끌어안으며 말했다.
“어디 갔었던 거야?”
[갑자기 영혼이 분리되는 바람에 충격을 좀 받았어. 회복할 시간이 필요했거든. 처음에는 네 몸속에 들어갔다가, 급한 데로 이 녀석한테 들어온 거야.]“정말? 지금까지 내 몸 안에 있었어?”
[응. 덕분에 신기한 것도 봤는데···. 그건 나중에 이야기하자.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니까.]“다행이다···. 나 무서웠어. 아저씨도 없고, 아스도 없고, 말도 안 통하고···.”
아브락사스는 릴리를 다독여 준 후에 말했다.
[그거 알아? 이 녀석들. 너를 신이라고 생각하고 있어.]릴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신? 내가?”
아브락사스는 그동안 릴리의 몸 안에서 모든 것을 지켜보았다.
충격을 받은 영혼을 회복하느라 나서지는 못했지만, 릴리의 시야를 통해 주위를 관찰하고 판단하기에는 충분했다.
[일단 이곳 언어는 다 익혔어. 이제부터 저 녀석들이 하는 말은 내가 통역해줄게.]“아스 최고!”
릴리는 말랑이를 꽉 껴안았다. 적진에 혼자 떨어져 있다가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었다.
말랑이가 캭! 하고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이왕 여기 놈들이 널 신이라고 여기는 거, 신 노릇 한번 제대로 해 보지 않을래?]“신? 어떻게?”
릴리의 머릿속으로 아브락사스의 음흉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예전에도 재미로 많이 해 봤거든. 신을 이용해 자기 욕심 채우려는 인간들 골탕 먹이는 거, 내 전문이야.]“잘은 모르지만 아스한테 맡길게.”
[좋아. 그럼 우선 할 일은···.]두 사람은 앞으로의 계획을 짜며 밤을 새웠다. 릴리가 첫 번째로 의견을 냈다.
“아저씨한테 연락하자!”
다음 날, 릴리는 하늘 위에 불꽃으로 거대한 치킨을 만들어 신호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