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s Life After Retirement RAW novel - Chapter 203
203화 마왕성의 새 주인(3)
대인에게 다가온 마왕성의 메인코어가, 옅은 녹색 빛을 발하며 진동했다.
우우우웅!
크리스탈 형태의 메인코어가 빛을 발하자, 그 빛이 여러 각도로 부서지며 대전 안을 가득 채웠다.
놀랍고도 신비로운 광경.
하지만 대인은 눈을 가늘게 뜨고 그 모습을 바라봤다. 그는 허리춤에 있는 천마검에 가볍게 손을 올렸다.
“또 무슨 개수작을 부리려는 건 아니겠지?”
거짓말과 뒤통수는 마족 놈들 종족특성.
때문에 대인은 의심을 놓지 않고 메인코어를 노려봤다.
부르르르!
마치 억울하다는 듯 메인코어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뭐라는 거야?”
대인의 질문에, 둘 사이에서 통역 역할을 맡은 릴리가 대답했다.
“계약하려면 아저씨 피가 필요하다는데?”
쑤욱···.
크리스탈의 한 부분이 가시처럼 뾰족하게 튀어나왔다. 그 가시에 대인의 피를 묻혀달라는 의미 같았다.
“흐음···.”
대인은 가시를 바라보며 잠시 고민했다.
‘피’가 마법에 있어서 어떤 의미인지 잘 아는 까닭이었다.
생명의 근원이자 증명.
뛰어난 마법사들은 상대방의 피 몇 방울만 있으면 그 대상을 조종하거나 병에 걸리게 할 수 있었다.
특히 흑마법 계열에 있어서는 거의 필수로 필요한 재료 중 하나가 ‘대상의 피’였다.
만약 마족이 피를 달라고 했다면, 대인은 일단 그 녀석의 뚝배기부터 깨고 봤을 것이다.
‘하지만 마왕성은 스스로 마법을 사용하지는 못하지.’
마왕성은 마왕이 오랜 시간 머무르며 영성을 갖추게 된 마물이지만, 혼자서 마법을 사용하지는 못했다.
즉, 주인이 없는 상황에서 마왕성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좋아. 주지.”
대인은 메인코어가 내민 가시에 손가락을 내밀었다. 그러나 혹시나 모를 상황에 대비해 긴장을 놓지 않았다.
꾸욱···.
손가락에 찔린 가시를 타고 피가 흘러내렸다.
처음에는 몇 방울이었다.
스스슷.
흘러내린 피는 가시에 스며들더니, 이내 메인 코어 안으로 완전히 흡수됐다.
우우우웅!
대인의 피를 흡수한 메인코어의 색이, 크리스탈의 위쪽에서부터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다.
녹색에서 붉은색으로.
여전히 가시 위에 손가락을 올린 채로, 대인이 릴리에게 물었다.
“꼬맹이. 이거 지금 어떤 상황이야?”
릴리가 대인 옆에서 열심히 통역을 했다.
“아저씨의 피랑, 그리고 마력이 있어야 원래 주인이었던 마왕의 흔적을 지우고 새로운 주인을 모실 수 있대.”
대인은 릴리의 말을 들으며, 메인코어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틀린 말 같지는 않네.”
대인은 기묘한 감각을 느꼈다.
손끝으로 닿아있는 메인코어와, 자신의 심장이 공명하는 느낌.
‘이게 피로 연결됐다는 건가.’
이 느낌이 아니었다면, 진작 피를 빨아먹는 녀석의 가시에서 손을 떼었을 것이다.
“내 마력을 달라고?”
“응. 이왕이면 많이! 아, 정말? 배 많이 고팠구나···. 나도 아저씨가 요즘 밥 못 먹게 해서 배고파.”
대인은 갑자기 메인코어와 대화를 나누는 릴리를 황당하다는 듯 바라봤다.
“누가 들으면 내가 너 굶기는지 알겠다.”
치킨과 간식만 금지했을 뿐이다.
하긴, 그거면 이 꼬맹이 식사량의 절반이긴 하지만.
“어쨌든 내 마력이 필요하다 이거지?”
대인은 천마신공을 끌어 올렸다. 단전의 내공과 천마기가 그의 손끝에 닿은 가시를 통해, 메인코어에게로 전해졌다.
콰콰콰콰콰콰!
천마신공의 맹렬한 기운이 메인코어로 스며들었다. 그와 동시에, 메인코어의 변화가 더욱 빨라졌다.
우우우우웅!
붉은색으로 물들어가던 크리스탈 위로, 이번에는 검은색이 섞였다.
츠츠츠츳···.
녹색 -> 붉은색 -> 검붉은 색으로 변해가는 메인코어를 바라보며, 대인은 미간을 살짝 모았다.
‘어지간히 많이 처먹네.’
벌써 단전의 내공과 마기가 3분의 1이나 빠져나갔다. 그런데도 메인코어의 식탐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꿀럭꿀럭.
녀석은 며칠 굶은 짐승처럼 대인의 피와 마력을 빨아들였다.
“뭐? 그게 정말이야?!”
메인코어에게서 무슨 말을 들었는지, 릴리가 대인을 돌아보며 꼴깍 침을 삼켰다.
대인도 덩달아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아저씨 피랑 마력 엄청 맛있대···. 자기가 먹어본 것 중에 최고래···. 츄릅···.”
따악!
“아얏! 또 왜 때려!”
“사람을 치킨 보듯 쳐다보니까 그렇지.”
릴리의 정수리에 혹을 만들어준 대인은 메인코어를 바라봤다.
츠츠츠츳···!
이제 원래의 녹색은 거의 끝까지 밀려났고, 대부분 검붉은 색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단전 안의 내공과 마기는 절반 가까이 빠져나간 상황.
‘내공이랑 마기야 어차피 회복되는 거니까 상관은 없지만···.’
츠츠츠츳···!
시간이 지날수록, 대인은 이 메인코어라는 존재가 자연스럽게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무척 신기한 경험이었다.
이 녀석이 왜 이렇게 탐욕스럽게 자신의 피와 마력을 빨아들이는지도 알 것 같았다.
‘급하게 지구로 소환되느라 원래 가진 힘을 대부분 잃었어. 게다가···. 전 주인이 저런 변변찮은 놈이었으니.’
대인은 유리병 안에 갇힌 발람을 바라봤다.
마왕과 마왕성은 상호보완적인 존재다.
평소에는 마왕이 남아도는 강대한 마력을 마왕성에게 흡수시킨다.
마왕성은 그 마력을 자양분 삼아 성장한다. 그리고 전쟁 등 비상상황이 발생하면, 그때까지 쌓아둔 힘으로 마왕을 보호하는 것이다.
다르게 말하면, 마왕성은 마왕이 자신의 힘을 비축해두는 창고나 다름없었다.
“근데 네 전 주인은 너를 여기로 불러내는 멍청한 짓을 했지. 마기도 없는 세계에, 소환 마법도 완전하지 않은 상태로.”
우우우우웅!
대인이 말을 걸자, 메인코어가 부르르 떨면서 공명했다.
둘 사이에는 더 이상 릴리의 통역이 필요치 않았다.
말로 하지 않아도, 서로의 의지가 연결되었으니까.
크리스탈의 녹색 기운은 이제 완전히 사라지고, 메인코어는 은은한 검붉은 광택을 빛냈다.
하지만 대인은 이 녀석이 아직도 배고파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아직 부족하다고?”
우우우우웅!
메인코어는 격렬하게 진동했다.
그 순간, 대인은 이 녀석이 완전히 자신에게 복종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냐. 배부르게 먹여주마.”
찌익. 대인은 손가락 끝에 상처를 스스로 더 벌렸다.
동시에 전력을 다해서 천마신공을 끌어 올렸다.
콰콰콰콰콰콰콰콰!
대인의 피와 천마신공의 기운이 메인코어로 거세게 밀려 들어갔다.
대인의 ‘피’에는 어마어마한 양의 영약이 녹아들어 있었다. 그의 피는 이미 자체로 영약이나 다름이 없었다.
또한 대인이 끌어 올린 ‘천마기’는, 아귀가 가지고 있던 순수한 어둠 속성을 천마신공으로 가공한 것이었다.
전투에 최적화된, 농도 짙은 마기.
마왕 발람이 공급하던 마기에도 전혀 부족함이 없는 영양식이었다.
울컥울컥.
해일처럼 밀려드는 영양분에 메인코어가 점점 강한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후우···.”
대인의 관자놀이에 힘줄이 돋아나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하지만 대인은 계속해서 피와 천마기를 메인코어에 불어넣었다.
“흐으읍···!”
한 번에 많은 양의 피가 빠져나가자 시야가 어지럽고, 내공이 뭉텅이로 빠져나가자 몸에 무력감이 찾아왔다.
하지만 대인은 멈추지 않았다.
‘아직도 부족해.’
메인코어와 피로 연결돼 있었기에, 대인은 본능적으로 메인코어의 상태를 알 수 있었다.
―현재 이 녀석은 크게 약화된 상태다.
마왕성이 본래의 힘과 규모를 되찾으려면,
그리고 그보다 더 업그레이드시키려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재료’와 ‘영양분’이 필요했다.
‘업그레이드에 필요한 재료는 밖에서 구해오면 돼. 하지만 영양분은 마력을 불어넣는 수밖에 없어.’
하지만 필요한 마력의 양은 대인조차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게다가 아무리 마력을 불어넣어도, ‘결정적인’ 뭔가가 부족한 느낌.
‘내 능력으로는 여기까진가···.’
대인은 아쉬움에 낮은 한숨을 쉬었다. 출혈은 거의 한계였고, 단전도 텅텅 비어가고 있었다.
대인이 메인코어에서 그만 손을 떼려고 할 때였다.
“아저씨. 내가 도와줄게.”
대인의 손이 닿은 곳보다 아래쪽에, 작은 손바닥이 닿았다.
“꼬맹이?”
대인이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자, 릴리가 혀를 베에- 내밀며 대인을 돌아봤다.
“대신 반성문 더 깎아줘야 돼.”
릴리는 메인코어에 불꽃의 힘을 불어넣었다.
화르르르륵!
그리고 잠시 후, 생각지도 못한 화학작용이 발생했다.
푸화아아아아악!
메인코어가 폭발적으로 부풀어 오른 것이다. 깜짝 놀란 대인이 릴리를 안고 뒤로 물러났다.
쩌적, 쩌저적···!
크리스탈로 이루어진 코어가 팽창하며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금이 간 아래에, 기존의 크리스탈보다 훨씬 더 영롱한 보석이 속살을 내비쳤다.
대인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멍하니 중얼거렸다.
“···환골탈태?”
인간으로 비유하면 대충 맞는 비유였다.
환골탈태한 마왕성의 메인코어는, 기존의 메인코어에 비하면 절반도 안 되는 크기였다.
그러나 그 안에서 느껴지는 힘은 전의 두 배 그 이상이었다.
그리고 그 영롱한 검붉은 크리스탈의 표면 위로,
치이이익···!
샛노란 불꽃무늬가 새겨지고 있었다.
대인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결정적인’ 무언가.
두 사람은 그 모습을 넋을 놓고 바라봤다.
“이건···.”
“예쁘다···.”
대인은 알 수 있었다.
―저건 완벽한 형태의 메인코어다.
아니, 그 이상이다.
‘예전에 자료로 본 게 맞다면···.’
마계에 존재하는 수십 명의 마왕.
그들 중에서도, 이렇게 마왕성의 메인코어에 자신의 ‘표식’을 새긴 마왕은 다섯도 되지 않았다.
즉, 상위의 마왕이나 가질 법한 강력한 마왕성의 코어를 얻었다는 것이다.
“이제 강화할 재료만 충분히 모으면···.”
말 그대로 뭐든지 만들 수 있다.
만화나 공상과학영화에 나오는, 그 어떤 형태로도 마왕성을 변화시킬 수 있었다.
‘그걸 더 이상 마왕성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대인의 머릿속에는 이미 수많은 형태가 떠오르고 있었다. 장영신이 만든 로봇을 봤을 때 이상으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대인은 이 기적을 만들어낸 존재를 바라봤다.
“꼬맹이. 도대체 너 무슨 짓을 한 거야?”
“어? 난 그냥 아저씨가 힘들어 보여서···.”
최근에 지은 죄가 있는 탓에, 릴리는 혹시 또 자신이 잘못했나 불안한 표정이었다.
“···내가 또 잘못했어?”
대인이 피식 웃으며 릴리의 머리를 흐트러뜨렸다.
“아냐. 이번엔 잘했어. 치킨 금지 한 달로 줄여줄게.”
“진짜아?!”
릴리가 깜짝 놀란 표정으로 대인을 올려봤다.
‘그까짓 치킨 금지가 문제겠냐.’
이 앞에 있는 마왕성의 메인코어의 가치는, 국가 몇 개를 갖다준다고 해도 바꾸지 않을 정도인데 말이다.
우우우우웅!
메인코어가 진동하자, 그 힘이 대인과 릴리에게 전해졌다.
대인은 단전의 내공이 빠르게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체력도 순식간에 회복되었다.
“근데 이거···.”
대인은 메인코어와 릴리를 번갈아 바라봤다.
두 사람의 마력이 메인코어에 함께 깃들면서, 릴리와도 뭔가 더 긴밀한 유대감이 생긴 기분이었다.
“우리 둘 공동명의로 된 모양인데?”
이제는 가 없어도, 마음만 먹으면 릴리가 어디 있는지 쉽게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공동명의가 뭐야?”
“몰라도 돼. 너랑 나랑 이 문제를 법적 분쟁으로 끌고 갈 일이 생기지 않는 이상.”
“전에 아저씨가 어려운 말로 설명하는 사람은 사기꾼이랬는데···.”
“······.”
대인은 의심스럽게 쳐다보는 릴리의 시선을 피해, 손등 위에 새겨진 불꽃 모양의 표식을 바라봤다.
‘계약의 인장.’
그가 마왕성의 새로운 주인이 되었다는 증거였다. 옆을 보니 릴리의 손등에도 같은 것이 나타나고 있었다.
파아앗···.
표식은 잠깐 빛나더니 이내 투명해졌다.
아예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몸 안으로 스며드는 것이었다.
마왕성과 계약을 맺음으로써, 대인은 마계의 왕들과 같은 격을 갖추게 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대인이 내내 가져왔던 궁금증을 해소할 첫 열쇠이기도 했다.
“뭐야? 이건 또 왜 이래?”
대인은 놀라서 자신의 왼쪽 손목을 바라봤다.
가 은은한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가이아 대륙에 다녀온 이후로, 아무리 많은 마정석을 먹여도 그 이상의 변화를 보여주지 않던 시계였다.
아브락사스조차 그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유일한 물건.
파아아앗···!
티히탈의 시계가 스스로 빛을 내더니, 이내 대인 눈앞에 어지러운 문자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ĦŁØIJŦŊđðßœłĸijÐÆħºʼnŊÞºº/] [ŦŊđßIJŦŊđðßœłĸijÐÆħºʼnŊÞºÐÆħºº] [đßIJĸijÐÆŦŊđðßœłĸħºʼnŊÞºÆħœł]···
“이게 다 무슨···.”
수많은 차원의 문자를 알고 있는-읽은 줄은 몰라도-대인조차 처음 보는 낯선 체계의 문자.
대인이 당황하며 그 문자들을 지켜볼 때, 그 낯선 문자들은 이내 익숙한 글자들로 바뀌기 시작했다.
[···사용자에 맞게 언어가 수정됩니다.] [사용자가 ‘최소 자격 요건’을 획득하였습니다. 초월의 별이 활성화됩니다.] [사용자의 수준이 아직 낮습니다. 일부 기능만 사용 해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