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s Life After Retirement RAW novel - Chapter 216
216화 신주쿠 레인저(2)
“한국이라고요? 정말 멀리서 오신 분들이셨군요.”
레드는 놀란 목소리로 대인 일행을 바라봤다.
어른 남자 둘에 어린 소녀 둘.
그 조합만으로도 독특한데, 그들의 옷차림도 범상치 않았다.
정장을 쫙 빼입은 주상욱은 물론이고 하늘하늘한 원피스를 입은 릴리와 신은 인형처럼 예뻤다.
하지만 일행 중에서 레드의 시선을 사로잡는 사람은 단연코 대인이었다.
‘옛날 사무라이 복장에 나막신이라니···. 게다가 삼검류. 뭘 좀 아는 친구군.’
씨익. 헬멧 속에 가려진 레드의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맺혔다. 대인은 왠지 찝찝한 기분이 들어서 미간을 찌푸렸다.
“그렇습니다. 저희는 일본 정부와 만나기 위해 이곳까지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트라이브 오로치에서와 달리, 주상욱은 신주쿠 레인저에게 일행의 정체와 목적을 제대로 설명했다.
바로 그들의 가슴에 새겨진 신주쿠구 로고 때문이었다.
‘이렇게 빨리 일본 정부 소속 초인들을 만나다니. 운이 좋았어.’
신주쿠 레인저-레드, 블루, 옐로우-세 사람은 일본 정부에 소속된 몇 안 되는 초인이었다.
그들은 치안유지 목적으로 신주쿠구를 순찰하던 중, 약탈자 무리를 발견하고 달려온 것이었다.
레드가 자신의 가슴을 탕탕 치며 말했다.
“이제부터는 저희가 도쿄도청까지 모셔 드릴 테니 안심하십시오. 신주쿠 레인저! 요인 호위 포메이션으로 산개!”
성우처럼 또랑또랑한 레드의 목소리에, 블루와 옐로우가 바이크를 타고 차량의 좌우로 이동했다.
“이동 중에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이걸 가지고 계시기 바랍니다.”
레드는 주상욱에게 무전기를 건네주고 차량 앞쪽으로 이동했다.
잠시 후, 무전기 너머에서 레드의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안전거리를 유지하면서 따라오시길.]부아아앙!
레드가 탄 바이크가 출발했다. 얼떨결에 주상욱도 차를 출발시켰다.
“뭔가 정신없이 빠르게 진행되는군요.”
“목적지까지 편하게 가게 됐으니 잘됐죠, 뭐.”
대인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레드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신주쿠 레인저? 레드?’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저렇게 특이한 모습과 목소리라면 웬만해서는 모를 리가 없을 텐데, 아무리 기억을 떠올려 봐도 없었다.
그 말은 즉···.
‘얼마 못 가서 죽었단 뜻이겠지.’
아마도 그게 진실일 것이다. 그들이 보유한 마력도 객관적으로 상당히 적은 수준이었으니까.
‘잘해봐야 D급. 아마도 그 이하.’
대인은 고개를 돌려 뒷좌석에 앉은 신에게 물었다.
“저 사람들 여기서 유명해?”
신은 자신도 처음 본다며 고개를 저었다.
“이름도 처음 들어요. 하지만 제가 신주쿠에 있었던 건 1년도 더 전 일이라···.”
“그럼 그사이에 각성한 초인이란 말이네.”
‘대충 견적이 나오는군.’
각성한 지 얼마 안 된 애송이 초인들.
영웅 심리에 코스튬을 차려입고 히어로 놀이를 하다가, 얼마 못 버티고 죽어버리는 바보들.
‘흔해 빠진 이야기지.’
그때 무전기에서 레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기 죄송합니다만···.]“무슨 문제라고 생겼습니까?”
[그게 아니라, 평소 저희의 순찰로를 경유해서 가도 되겠습니까? 저희가 하루라도 모습을 안 보이면 시민들이 불안해해서요.]주상욱은 별다른 고민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저희가 도움받는 입장인데요.”
[하하.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조금 지체되겠지만 최대한 서두르겠습니다.]시간적인 여유가 생긴 김에, 주상욱은 레드와 대화를 나눠보기로 했다.
“그런데 초인님. 성함이···.”
[레드라고 부르시면 됩니다.]“그게 진짜 이름은 아니시겠지요?”
그러자 무전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씁쓸하게 변했다.
목소리만으로 연기를 할 수 있다면, 레드는 오스카상 감이었다.
“······.”
결국 주상욱은 레드와 대화를 포기했다. 그는 대신 조수석에 앉은 대인을 슥 바라봤다.
대인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왜 절 보시죠?”
“아무래도 부대표님이 저보다는 ‘이런 쪽’의 대화에 능하실 것 같습니다.”
“···이런 쪽이라는 말이 상당히 불쾌합니다만?”
주상욱은 대인이 입은 사무라이 옷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도 비슷한 코스프레를 하시는 입장에서···.”
“이건 그냥 관광용으로 입고 온 거예요. 어쨌든 그거 줘보세요.”
마침 궁금한 것이 있었기에, 대인은 주상욱에게서 무전기를 건네받았다.
“레드 레인저. 궁금한 거 몇 개만 물어봐도 됩니까?”
앞서 가던 레드가 고개를 돌려 대인을 바라봤다. 왠지 모르게 씩 웃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뭘 좀 아는 분이시군요. 무엇이든 편하게 물어보십시오.]“역시!”
“역시는 뭔 역시야.”
옆에서 감탄하는 주상욱을 째려본 대인이 레드에게 질문을 던졌다.
“우선 일본 정부는 지금 어떤 상황입니까. 우리가 오면서 보기로는, 별로 좋지 않아 보이던데요.”
[처음부터 정곡을 찌르시는군요! 맞습니다. 저희는 지금 무척 힘겨운 시기를 겪고 있습니다.]이어지는 레드 레인저의 이야기는 대인 일행이 직접 보고 듣고 겪은 것과 비슷했다.
퍼스트 게이트 당시 붕괴된 중앙정부.
자체적으로 혼란을 수습하며, 이제는 제어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해진 트라이브라는 세력들.
다른 일본 정부의 관계자였다면 더 조심스럽게 이야기했을 테지만, 레드 레인저는 가감 없이 자신들이 처한 현실을 이야기했다. 그것은 그의 성격이었다.
그리고 주어진 현실에 절망하지 않는 것도 그의 성격이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결국은 정의가 승리할 테니까요!]‘대책 없이 긍정적인 녀석이네.’
그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신주쿠 레인저는 대인 일행의 차량을 호위하며 평소대로 구역을 순찰했다.
신주쿠구의 안쪽으로 들어오자 멀쩡한 건물들이 늘어났고, 눈에 띄는 사람들의 숫자도 점점 많아졌다.
슬럼가로 변한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쯧. 저것들은 또 저러고 다니네.”
“하여튼 창피한 줄도 모르지.”
“우우! 꺼져라!”
신주쿠 레인저를 발견한 시민들이 그들을 비웃고 조롱했다. 큰 소리로 꺼지라고 욕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아무리 겉모습이 우스꽝스러워도 그렇지,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순찰을 도는 초인들에게 너무하는군요.”
주상욱이 못마땅한 얼굴로 그 모습을 지켜볼 때였다.
“하하하! 여러분!”
레드가 달리는 바이크에서 상체를 일으키더니 이내 완전히 일어섰다.
마치 서커스의 묘기와 같은 모습.
레드가 왼손으로 경례를 붙이며 말했다.
“오늘도 피스! 신주쿠는 신주쿠 레인저가 지킵니다!”
일부러 우스꽝스럽게 낸 목소리와 장난스러운 경례가 합쳐지자, 순간 코미디의 한 장면 같은 모습이 연출됐다.
“푸하하하!”
“멍청아! 경례는 오른손으로 하는 거야!”
사납기만 하던 사람들의 얼굴에 실소가 터져 나왔다. 레드는 당황한 듯 급하게 손을 바꿔 경례했다.
“아차! 다시 피스! 신주쿠의 평화는···. 아까 어디까지 했죠?”
“푸하하하하!”
도시에 웃음소리가 퍼져나갔다. 레드는 머리를 긁적이며 다시 바이크에 앉았다. 그를 향해 썩은 음식이며 돌 같은 것이 날아왔지만, 악의는 담겨 있지 않았다.
“···상당히 인상적인 모습이군요.”
“···그러게요.”
대인과 주상욱은 묘한 표정으로 레드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혹시 저 쫄쫄이도 사람들을 웃기려고 일부러 입은 건가?’
신주쿠 레인저는 순찰을 계속했다.
그러나 그것은 순찰이라기보다는 서커스 공연에 가까웠다.
“오늘도 피스! 신주쿠는 신주쿠 레인저가 지킵니다!”
레드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장소에 도착할 때마다 바이크 묘기를 보여주며 우스꽝스러운 목소리로 구호를 외쳤고,
블루는 그 옆에서 말없이 색색의 고무공을 꺼내 저글링을 했고,
휙휙휙!
레인저 옐로우는 목에 훌라후프를 걸고 엄청난 속도로 돌렸다.
“푸하하하하!”
“멍청이들!”
“초능력이 아깝다!”
이쯤 되면 신주쿠 레인저가 아니라 신주쿠 서커스단이었다. 그들이 가는 곳마다 폭소가 터져 나왔다.
“아하하하! 엄청 웃겨!”
릴리도 배를 잡고 웃었다. 시니컬한 신의 얼굴에도 약간이지만 미소가 맺혔다.
대인도 피식 웃으면서 신주쿠 레인저가 보여주는 괴상한 서커스를 구경했다.
세상엔 정말 별의별 인간이 다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시간에 사냥을 하고, 단련을 했으면 안 죽고 살아남았을 수도 있었을 텐데.’
대인이 보기에는 멍청하고 이상한 행동이었지만, 그렇다고 저렇게 사는 사람들한테 뭐라고 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다 지들 책임이고 팔자지 뭐.”
혼잣말을 중얼거린 대인은 시트에 등을 기대며 느긋하게 서커스를 구경했다. 잠시 후 무전기로 레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죄송합니다. 평소보다 호응이 좋아서 순찰이 조금 길어지네요.]“괜찮습니다. 저희도 재밌게 보고 있으니까요.”
[하하. 그렇다니 다행입니다!]그때 뒷좌석에 앉은 신이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저런 사람. 내가 여기 있을 땐 없었는데.”
그 순간, 대인의 머릿속에 어떤 아이디어가 반짝이듯 떠올랐다.
그러나 그 아이디어는 곧바로 구체화되지는 않았다.
그 전에 이변이 발생한 것이다.
휙!
대인과 릴리가 동시에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말했다.
“게이트다.”
“게이트야!”
잠시 후, 하늘 위에 잿빛 게이트가 열렸다. 그들이 있는 곳으로부터 멀지 않은 곳이었다.
지이이잉-!
그 광경을 목격한 레드 레인저가 주변 사람들을 향해 소리쳤다.
“게이트 출현! 모두 대피하십시오!”
사람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도망치기 시작했다. 레드는 대인 일행에게도 무전으로 말했다.
“여기서 기다리고 계시면 금방 처리하고 오겠습니다.”
[도와드릴까요? 저희 일행에도 초인이 있습니다.]주상욱의 제안에 레드는 고개를 저었다. 그는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손님들에게 방 청소를 시킬 수는 없죠.”
그리고 동료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신주쿠 레인저! 전투 포메이션 B로 간다!”
레드, 블루, 옐로우 삼색의 바이크가 세 줄기의 선이 되어 거리를 질주했다.
그 모습을 지켜본 주상욱이 대인에게 물었다.
“가서 구경이나 할까요?”
“그러죠. 여기 있어 봤자 할 것도 없는데.”
주상욱이 경쾌하게 액셀을 밟았다. 일행을 태운 지프가 게이트가 열린 장소를 향해 달렸다.
***
컹컹컹!
게이트를 열고 나온 몬스터는 붉은 점박 들개 무리였다.
현장에 도착한 대인은 반가운 마음마저 들 정도였다.
‘회귀하고 나서 처음 싸운 녀석들이었지.’
그때도 대인 혼자서 무난히 십여 마리를 상대했을 정도로, 붉은 점박 들개는 사냥이 어렵지 않은 몬스터였다.
주상욱도 적의 정체를 확인하고 안도하는 표정이었다.
“숫자가 좀 많기는 하지만, 저희까지 나설 필요는 없을 것 같군요.”
그러나 예상외로 신주쿠 레인저의 전투는 치열하게 전개됐다.
검을 빼 들고 선두로 나선 레드가 동료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나는 왼쪽을! 블루는 오른쪽을 맡아! 옐로우는 엄호해!”
딱히 지시랄 것도 없는 말이었다. 레드는 기합을 넣으며 들개 무리 사이로 돌진했다.
“하아압!”
이어진 것은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레드는 열심히 검을 휘둘렀다. 위에서 아래로, 좌에서 우로, 대각선으로···.
깨갱! 깽!
근본 없는 검술에 운이 없는 들개들이 맞아나갔다. 동시에 레드의 타이즈에도 물린 자국이 늘어났다.
“크윽! 이놈들 보통이 아니야! 다들 조심해!”
‘보통은 아니지. 몬스터 생태계의 밑바닥에 있는 놈들이니까.’
대인은 예의상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후웁! 후웁!”
블루는 그나마 리더보다 실력이 조금 나았다. 그가 호흡을 짧게 내쉴 때마다, 그의 창끝에 서리가 맺혔다.
쩌저적!
‘얼음 능력자로군. 그런데···.’
대인은 자기도 모르게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저런 수준으론 콜라도 시원하게 못 만들겠네.”
다행히도 싸움에 정신이 팔린 블루 레인저는 그 말을 듣지 못했다. 들었다면 꽤 큰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
휘익- 푹!
그때 화살 한 자루가 날아가 들개 한 마리의 엉덩이에 꽂혔다.
컹컹컹!
잔뜩 화가 난 붉은 점박 들개가 자신에게 화살을 쏜 옐로우 레인저에게 달려들었다.
“맞아라! 좀 맞아 줘!”
옐로우 레인저는 들개의 머리를 노리고 계속 화살을 쐈다. 그러나 대부분 빗나가거나 운이 좋아야 하나 몸통에 맞았다.
“이익! 어떻게든 죽이기만 하면 되는 거 아냐?”
악에 받친 옐로우 레인저가 화살을 직접 손에 들고 들개의 얼굴을 찍었다.
전투가 벌어진 현장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받아라! 붉은 섬광!”
“훕! 훕!”
“맞으라고 좀!”
고작 붉은 점박 들개 스무 마리가량을 상대로, 신주쿠 레인저는 진정한 개싸움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었다.
대인은 그들의 싸움을 지켜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왜 일찍 죽었는지 알겠네.’
동시에 다른 생각도 들었다.
‘쟤네가 딱이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