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s Life After Retirement RAW novel - Chapter 273
273화 제3차 헬게이트(4)
태평양 상공, 마왕성 본부.
작전 통제실 정면의 스크린에는, 지구 전체의 거대한 지도가 펼쳐져 있었다.
통제실 안에는 각 차원에서 내로라하는 전문가들과 기술자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메인 스크린과 개인 스크린을 통해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여러 가지 수치를 확인하며, 각 작전지역의 상황을 분석했다.
“제1 지역. 게이트 예상 수치 오차범위 3% 이내입니다.”
“제2 지역. 게이트 예상 수치 오차범위 2% 이내입니다.”
“제3 지역. 게이트 예상 수치 오차범위 2% 이내입니다.”
“제5 지역···.”
“제8 지역! 게이트 예상 수치 오차범위를 5% 이상 초과했습니다! 예비 병력의 지원이 필요합니다!”
제3차 헬게이트는 총 12곳에서 동시에 발생했다.
이에 차원 연합군은 12곳 전부에 방어선을 구축했다.
예언자가 본 ‘미래’ 덕분에, 차원 연합군은 한 달 가까운 시간을 온전히 방어선 구축과 전쟁 준비에 쏟을 수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준비를 했어도 연합군은 불안해할 수밖에 없었다.
3차 헬게이트는 그전까지와 차원이 다르기 때문.
그 결정적인 이유가 바로,
“출현! 제8 지역에서 마왕 ‘포라스’가 출현했습니다!!”
-애애애애앵!
그 보고를 시작으로 작전 통제실 전체에 경보음이 울리고 빨간불이 켜졌다. 모두의 손과 눈이 배로 빨라지고, 목소리가 한 톤씩 높아졌다.
“제1 지역에서도 마왕 ‘스토라스’의 출현을 확인했습니다!”
“제3 지역에서 마왕 ‘말파스’가 출현!”
“제7 지역에서 마왕 ‘비네’가 출현 중입니다!”
“제10 지역에서 마왕 ‘하겐티’가 출현했습니다!”
“제12 지역. 마왕 ‘안드라스’가 출현 중···.”
통제실 중앙 스크린에 펼쳐진 지도 위 붉은 점들 중 일부가 깜빡이더니, 서서히 검게 물들었다.
검게 변한 점은 6개.
마왕들이 출현한 특별 지역들을 의미하고 있었다.
‘드디어 마왕들이 강림한 건가···.’
꿀꺽.
주상욱은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중앙의 메인 스크린을 응시했다.
어느새 6개 화면으로 분할될 메인 스크린은 각각의 마왕들이 출현한 지역을 비추고 있었다.
[크하하하하하!]마왕들은 나타나자마자 폭풍을 일으켰다. 웃음을 터트리는 것만으로도 막대한 충격파가 터져 나오고, 가볍게 휘두른 공격에 반경 수백 미터가 초토화됐다. 발을 한번 구르자 땅이 거미줄처럼 갈라지고 수 km에 지진이 발생했다.
마왕들의 형태는 각양각색이었다.
포라스는 흑염이 이글거리는 갑옷을 입은 기사였고, 말파스는 여섯 쌍의 날개 달린 괴조의 형상이었으며, 비네는 사자의 머리를 한 도마뱀을 닮았고, 하겐티는 머리가 셋 달린 켄타우로스를 닮았다.
생긴 것은 천차만별이었지만, 그 힘은 하나같이 등장만으로 전장을 뒤흔들 정도로 강력했다.
-콰콰콰콰콰쾅!
마왕 포라스가 휘두른 일검에 제8 지역의 방어선의 일부가 붕괴됐다.
마계 서열 31위.
지구에 가장 먼저 등장한 마왕이자, 지금까지 출현한 마왕들 중에서 가장 강력한 마왕이었다.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시선은 포라스에게 가장 많이 집중됐다.
놈이 출현한 곳은 제8 지역. 중국 허난성.
그곳은 주상욱이 잘 아는 사람들이 싸우고 있는 전장이기도 했다.
“이놈! 멋대로 날뛰도록 내버려 둘 것 같으냐!”
마왕 파로스의 앞을 백창수와 WH 한국 본부의 정예 초인들이 막아섰다.
서로 간의 소개나 대화 같은 것은 없었다.
포라스는 과묵한 마왕이었고, 말보다는 폭력을 앞세우는 성격이었다.
후우우웅-!
마왕이 휘두른 일검에, 백창수와 그가 이끄는 초인들이 전력으로 부딪쳤다.
“막아라! 놈이 더 이상 방어선을 무너뜨리게 해선 안 된다!”
-콰콰콰콰콰쾅!
힘과 힘이 정면으로 충돌하며 일대에 폭풍이 몰아쳤다. 천지가 뒤집힐 듯 굉음과 지진이 연달아 나왔다.
파로스는 자신의 일격을 힘겹게나마 막아낸 초인들을 바라봤다.
[제법이군.]그리고 전보다 더 강한 두 번째 공격을 준비했다. 그의 대검 위로 흑염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콰콰콰콰콰쾅!
작전 통제실 내부의 인원들은 심각한 표정으로 그 싸움을 지켜보고 있었다.
“대표님···.”
백영희가 초조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공적인 자리였기에, 그녀는 아버지가 아닌 대표님이라는 호칭을 썼다.
그 옆에서 주상욱이 말했다.
“백창수 대표님은 강한 분입니다. 아무리 상대가 마왕이라도 충분히 막아내실 겁니다.”
“당연하죠. 그건 제가 누구보다 더 잘 알아요.”
백영희는 평소와 다름없는 표정으로 돌아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주상욱은 그녀의 손끝이 떨리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지상에 마왕들이 나타난 순간부터, 모니터 위에 나타난 온갖 수치가 날뛰며 경보음을 울렸다.
그 수치를 확인한 전문가들의 표정이 급변했다.
“마왕이 등장한 지역의 마력이 급격히 오염되고 있습니다.”
“마왕의 가호를 받은 몬스터들의 광폭화 상태에 접어듭니다.”
“제8 지역 일대에 마계화가 급속도로 진행 중입니다.”
연이은 보고에 주상욱은 잠시 미간을 모았다.
그러나 걱정은 길지 않았다.
오늘에 대비해, 이미 수많은 시뮬레이션을 하지 않았던가.
주상욱은 긴장한 사람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마왕 여섯. 예상보다 많은 숫자는 아닙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최대한 빨리 전력 분석을 끝내 주십시오.”
““예!””
여기서 겁을 먹는 건,
인류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기로 결심한 한 남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스크린 너머에서는 마왕과 초인들이 연달아 격돌하고 있었다.
-콰콰콰콰콰쾅!
마왕 파로스의 대검과 백창수의 창이 부딪쳤다. 백창수가 뒤로 튕겨나자 왕구호가 그 빈틈을 메웠다. 동시에 WH 길드가 자랑하는 최정예 초인들이 사방에서 공격을 퍼부어 마왕의 신경을 분산시켰다.
여기에 마법사들의 약화마법과 사제들의 신성마법이 거미줄처럼 수십 겹으로 마왕을 옭아맸다.
[꺼져라!]그러나 마왕의 포효에 마법이 깨져나가고 신성력이 흩어진다. 가까이에 있던 초인들의 안색이 새하얗게 질렸다.
“···역시 강하군.”
주상욱은 입술을 꽉 깨물며 중얼거렸다.
제8 지역이 아닌 다른 곳도 상황은 비슷했다.
제1 지역에서는 천마신교의 정예 병력이 ‘스토라스’를 막고 있었고,
제3 지역에서는 천하삼절이 이끄는 무림맹이 ‘말파스’를 상대했다.
제7 지역에서는 가이아 연합군이 ‘비네’를 상대로 겨우 버티고 있었으며,
제10 지역, 12지역도 차원 연합군의 강자들이 마왕을 상대로 분전을 펼치는 중이었다.
‘아무리 마왕들이 강해도, 우리 역시 쉽게 당하지 않는다.’
꽤 아슬아슬하지만, 다들 어떻게든 버텨내고 있었다.
주상욱은 기도하는 심정으로 중얼거렸다.
“조금만, 조금만 더 시간을···.”
그 기도가 닿은 것일까. 전력 분석을 끝낸 전문가들이 외쳤다.
“제8 지역. 전력 분석이 끝났습니다!”
“제1 지역. 전력 분석이 끝났습니다!”
“제7 지역. 전력 분석이 끝났습니다!”
눈을 빛낸 주상욱이 통신병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즉시 모든 지역의 사령부와 통신을 연결하십시오.”
“네!”
주상욱은 통신이 연결되길 기다리며 생각했다.
‘여기까지는 예언대로다.’
대인은 이미 이런 상황을 ‘예언’했다.
“처음에 넘어오는 놈들은 아주 많으면 열, 적으면 다섯 정도로 보입니다. 10좌에 해당하는 강력한 마왕은···. 아직 차원을 넘지 않는 것으로 보이고요.”
미래를 안다는 것은 그만큼 반칙 같은 능력이다.
이미 대인은 그 능력으로 마왕을 둘이나 사냥했다.
또 어떤 함정이 있을지 모르니 마왕들도 전보다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제1 지역 사령부. 통신 상태 양호.] [제2 지역 사령부. 통신 상태 양호.] [제3 지역 사령부···.]마왕성 본부와 열두 지역 사령부의 통신이 전부 연결되었다.
메인 스크린 위로 각 지역의 사령관들의 얼굴이 나타났다.
국가의 대통령들, 다른 차원의 왕들, 거대 조직의 수장들.
그들 모두 본부의 지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쩌다 내가···.’
주상욱은 엄청난 압박감과 책임감에 숨이 막힐 것만 같았다.
김수호 대통령은 전장에 나가 싸우고 있었고, 백창수 대표는 말할 것도 없었다.
결국 주상욱이 마왕성 본부의 책임자가 되었다.
위장이 시큰거릴 정도로 부담감이 어마어마했지만, 지금은 약한 소리를 할 때가 아니었다.
“···헬게이트 전 지역과 마왕들에 대한 전력 분석이 방금 끝났습니다. 지금부터 본격적인 작전을 시작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사령관들은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여러 차원의 전문가들이 괜히 이곳에 모여 있었던 것이 아니다.
그들은 방금 전까지 각 지역에 나타난 마물, 괴수, 악마들의 데이터를 분석했고, 마왕들이 나타난 후에는 그 영향력까지 더해 분석을 마쳤다.
그 결과, 최적의 결과물을 도출해낼 수 있었다.
정비실에서 돌아온 장영신이 이마의 땀을 닦으며 말했다.
“디바인 슈트. 점검 끝냈어요.”
로로우 종족의 키리가 말했다.
“텔레포트 시스템을 사용, 각 전투지역에 최적화된 개량 장비를 전송할 준비가 끝났습니다.”
둘에게 고개를 끄덕인 주상욱이 말했다.
“지금 바로 전송하세요.”
위이이이이잉!
마왕성의 창고 안에 보관돼 있던 박스들이 하얀빛에 휩싸이더니, 필요한 지역으로 전송되었다.
“제8 지역 전송 완료!”
“제3 지역 전송 완료!”
“제1 지역 전송···.”
텔레포트 시스템은 게이트웨이 기술을 개량해 만든 전송 시스템이었다. 마왕성이 하나의 거대한 물류 창고가 되어, 각 사령부에 필요한 장비들을 실시간으로 전송했다.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예언자의 예언을 기반으로 전문가들이 마왕들에 대해 분석한 자료입니다.”
한 달 전, 대인은 ‘미래에서 본’ 마왕들의 정보를 차원 연합군에 전달했다.
하지만 방금 전까지는 전부 이론에 불과한 것들이었다. 그것을 여러 전문가들이 직접 마왕들을 관찰하며 상대의 전투 패턴과 약점을 분석했다.
“방금 완성된 디바인 슈트와 함께, 최종 버전의 공략본을 요격대에 전송하겠습니다.”
잠시 후, 현장에서 마왕들과 싸우고 있는 요격대의 대장들에게서 대답이 들려왔다.
[확인했습니다.] [클클. 확인했다.] [굳이 이런 걸···. 어쨌든 잘 쓰지.]전장의 흐름이 바뀌기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
백창수는 마왕성에서 전송해준 장비를 받자마자 착용했다.
드르르륵!
얇은 판 형태의 금속을 가슴에 갖다 대자, 금속이 전신에 얇게 펼쳐지며 은은한 빛을 뿜어냈다.
디바인 슈트(divine suit).
각각의 마왕을 상대하기 위해 맞춤 설계된 미래의 장비를, 장영신이 겨우 시간에 맞춰 제작한 특수 방어구였다.
설계도가 있어도 오직 장영신만 만들 수 있는 물건이었다.
바로 훗날의 그가 만든 것이었으니까.
그 성능은 마왕을 경악시킬 정도였다.
[어째서 내 흑염이···!]파로스는 자신의 흑염을 뚫고 달려오는 백창수를 바라보며 눈을 부릅떴다.
분명 방금까지만 해도 공격을 피하기에 급급하던 인간이, 갑자기 흑염을 거침없이 베어내며 다가오고 있었다.
촤아아아악!
어느새 마왕의 지척까지 접근한 백창수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자네. 벌써 지친 건 아니지? 나는 이제부터 시작인데 말이야.”
그는 진심으로 즐거워 보였다.
***
차원연합군의 움직임이 변했다.
방어선을 굳건히 하고 쏟아져 나오는 괴물을 막아내는 데 주력하던 군대가, 포위망을 좁히기 시작했다.
-콰콰콰콰쾅!
-콰콰콰콰쾅!
마치 지금까지는 일부러 아껴왔다는 듯, 보지 못했던 병기들이 등장해 적을 쓸어버리며 전진하기 시작했다.
[이것들이 갑자기···!] [내 권능이 왜 통하지 않는 거냐!] [크아아악! 버러지 같은 것들이!]흥분한 마왕들이 마구 날뛰었지만, 그들은 갑자기 강해진 인간들을 상대하는 것만으로도 벅차 보였다.
주상욱은 메인 스크린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며 싸늘하게 웃었다.
“우리가 계속 당하고만 있을 거라고 생각했나?”
방어만 해서는 전쟁에서 우위를 잡을 수 없다.
최선의 방어는 공격.
즉, 이제 연합군이 공격을 시작할 차례다.
‘부대표님이 돌아올 때까지···. 놈들을 최대한 흔들어 놓는다!’
주상욱은 자신의 역할을 되새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