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s Life After Retirement RAW novel - Chapter 276
276화 판데모니움(2)
두 사람은 반대 방향으로 흩어졌다.
“애 찾아서 잘 숨어 있어. 두 시간 후에 데리러 갈 테니까.”
“···알겠습니다.”
죽을상이 된 필립이 구불구불한 길목을 돌아 사라지는 것을 확인한 후, 대인은 고개를 돌려 정면을 바라봤다.
‘그래도 절반 정도까지는 조용히 잠입하는 데 성공했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개미굴처럼 복잡하게 만들어진 이 미궁은 안으로 들어갈수록 더 복잡해진다.
이 안에 있는 판데모니움의 간부들도 각자 맡은 지역만 알지, 내부를 완전하게 아는 이는 없을 정도였다.
‘오히려 간부들이 더 길을 모른다고 했지.’
조직의 간부들은 소울이터의 소환 마법에 의해 오가는 경우가 더 많다. 때문에 필립처럼 외부와 본부 내부를 자주 오가는 중간 관리직이 길을 더 잘 아는 형편이었다.
그렇다고 길을 찾을 방법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어차피 끝까지 안 들키고 갈 거라곤 기대도 안 했으니까.”
대인은 단숨에 마력을 끌어 올려 그물처럼 최대한 넓게 펼쳤다.
푸화아아아아악!
이건 도발이나 마찬가지였다.
대인이 마력을 끌어 올리는 순간, 일정 수준 이상의 강자들은 그의 존재를 눈치채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게 대인이 원하는 바였다.
‘건드리면 반응하겠지.’
아니나 다를까.
잠시 후, 미궁 곳곳에서 강력한 마력들이 반응했다.
‘이 정도면 간부들일 테고···.’
대인은 조금 더 마력을 끌어 올려 더욱 먼 곳까지 퍼트렸다.
더 넓게, 더 깊게.
아직 반응하지 않은 거대한 마력 반응을 기다리며···.
찌릿!
순간 감전된 것처럼 몸을 움찔한 대인은 마력을 천천히 거둬들였다.
방금 전, 섬뜩할 정도로 사악한 에너지와 신성한 에너지가 동시에 느껴졌다.
“찾았다.”
예상대로, 아르만의 보석은 소울이터가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때,
쿠구구궁···!
미궁 전체가 진동하기 시작하면서, 곳곳에서 느껴졌던 기들이 소울이터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대인이 눈을 빛냈다.
“새끼. 반응 하나는 빠르네.”
침입자의 존재를 느낀 순간, 소울이터는 병력을 자기 주변으로 소환하고 있었다.
“이제부터는 속도전이지.”
그 순간, 대인의 신형이 폭발적으로 튀어나갔다.
그리고 미궁을 닥치는 대로 때려 부수며 전진하기 시작했다.
***
소울이터.
그것은 가이아 대륙이 아닌 다른 차원에서 온 존재였다.
차원의 틈을 강제로 비집고 넘어온 어느 이계의 종족.
차원을 넘으며 강대했던 육체를 잃었고, 그 영혼 또한 큰 상처를 입고 오랫동안 잠들어 있었다.
소울이터가 차원을 넘어온 자리에는 운석이 떨어진 듯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 흔적을 신이 남긴 것이라고 생각한 한 미개한 부족이 산 제물을 바치기 시작했다.
-······.
소울이터는 그 제물들 덕분에 긴 잠에서 깨어났고, 미개한 인간들에게 자신의 의지를 전달했다.
-더 많은 영혼을 바쳐라.
“시, 신께서 응답하셨다!”
미개한 부족은 신을 기쁘게 하기 위해 주변 부족과 전쟁을 일으켰고, 소울이터는 그들에게 약간의 힘을 내려주는 것으로 그들을 인근에서 최강의 부족으로 만들었다.
곧 더 많은 산 제물이 바쳐졌고, 소울이터는 점점 많은 힘을 회복했다.
인간들은 그를 신이라고 불렀고, 그 역시 스스로를 신이라고 여기게 되었다.
-나는 신이다.
“오오오! 신이시여···.”
“저희에게 승리를 안겨주소서!”
미개한 부족은 일대를 통일한 대부족이 되었고, 전쟁에 나가 족족 승리했다. 그 대가로 소울이터는 싱싱한 영혼을 잔뜩 먹을 수 있었다.
그러나 달콤한 시간은 길지 않았다.
“미개한 부족이 더 이상 설치도록 내버려 두지 마라!”
기사와 마법사로 무장한 군대가 미개했던 대부족을 쓸어버렸다.
그들은 10분의 1도 안 되는 숫자로 대부족을 쓸어버렸고, 대부족이 신으로 모시던 소울이터의 제단까지 쳐들어왔다.
“왠지 모르게 불쾌하군. 전부 불태워라!”
소울이터는 자신의 제단이 사라지는 것을 조용히 지켜보며 고민했다.
오랜 시간 고민했다.
-인간들은 약하다. 하지만 종종 놀랍도록 강한 인간도 있다.
-이 세계에는 인간 외에 다른 종족도 많다. 그중에도 무시 못 할 만큼 강한 존재들이 있다.
-내 힘으로는 아직 그들을 당해낼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신이다.
-신은 만물을 지배하고 다스리고 그 영혼을 먹는 존재다. 내가 약한 건, 영혼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나는 더 많은 영혼을 먹어야 한다.
어린아이가 세상에 대해서 하나씩 학습해 나가듯 소울이터는 학습해 나갔다. 정해진 수명이 없기에 그는 오랜 시간 인내했다.
여러 번의 실패를 거듭했고,
때로는 소멸당할 뻔했던 위기의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소울이터는 인내했고, 자신의 사도를 늘려나갔으며, 암중에서 세계를 조금씩 잠식해 나갔다.
그렇게 판데모니움이라는 조직이 만들어졌다.
그의 사도들은 소울이터를 마신으로 모셨고, 소울이터는 그것을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소울이터는 무척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나를 담을 그릇이 필요하다.
신에게도 육체가 필요하다는 것.
그의 영혼은 더 이상 성장이 불가능할 정도로 비대해졌으나, 그 힘을 제대로 다루기 위해서는 아주 강대한 육체가 필요했다.
신에게 걸맞는 육체.
허나 그런 육체를 쉽게 구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인간의 육체는 너무 쉽게 찢어졌다. 엘프나 드워프도 마찬가지였고, 질기기로 유명한 오거나 트롤도 소용없었다.
아주 어렵게 소드마스터나 대마법사를 납치해 온 적도 있었지만, 불과 며칠을 버틸 뿐이었다.
-더 튼튼한 육체를 가져와라!
“하, 하지만 이 이상은···.”
그랜드 소드마스터나 대마도사는 납치가 불가능한 자들이었다. 개인의 능력도 능력이지만, 대부분은 제국이나 왕국의 주요 인물이었다.
게다가 그 정도 수준의 육체로도 마신 소울이터의 영혼을 감당하긴 어려울 것 같다는 것이 사도들의 의견이었다.
-드래곤의 육체라면···.
저 강대하다는 드래곤이라면 소울이터를 감당할 수 있을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그건 그랜드 소드마스터를 열 명 납치하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즉, 불가능했다.
-육체가 필요하다!
육체를 갖고 싶었던 신은 실망했고 분노했다. 그의 분노에 대륙에 원인을 알 수 없는 재앙이 연달아 일어났고, 그를 모시는 사도들도 큰 곤란을 겪었다.
그때, 그의 사도 중 누군가가 말했다.
“마신이시여. 찾을 수 없다면···. 직접 만들면 어떻겠습니까?
오랜 실험과 연구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어른을 개조하는 것보다 아이 때부터 약물과 수술을 적용시켜 강화하는 것이 낫다는 결론이 나왔다.
전 대륙을 뒤져 아이들을 납치하고, 세상의 모든 흑마법과 연금술, 금지된 수술과 악마 소환의식을 동원했다.
그 과정에서 판데모니움은 더욱 조직화했으며, 음지에서 세력을 뻗어 나가며 거대한 힘을 갖추게 되었다.
그리고 몇 년 전,
신의 영혼을 품을 만한 그릇이 완성되었다.
***
콰콰콰쾅!
대인은 미궁을 때려 부수며 전진했다.
길을 모르니 길을 만들면서 갈 수밖에 없었다.
그가 검을 휘두를 때마다 새파란 검강이 수 미터씩 늘어나 벽을 부쉈다. 대인은 벽 하나를 뚫는 데 웬만해서 두 번 이상 검을 휘두르지 않았다.
“죽여라!”
“크아아아아!”
가끔씩 판데모니움의 조직원들과 키메라로 개조당한 병사들이 대인에게 덤벼들 때도 있었다.
그러나 대인은 그들에게 시선도 주지 않았다.
“알아서 처리해.”
[명을 받들겠습니다.]대인의 그림자 속에서 반투명한 마녀의 악령이 튀어나왔다.
그것은 한때는 소울이터의 사도였으나, 대인에 의해 강제로 사역당한 마녀였다.
[끼야아아아앗!]악령의 괴성에 조직원들이 귀를 틀어막으며 주저앉았다. 키메라들도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비틀거렸다.
[감히 주인님께 이빨을 들이밀다니! 갈기갈기 찢어주마!]촤악! 촤아악!
무형의 칼날이 적들을 난도질했다. 상대는 옛 동료들이었지만, 마녀 악령의 손속에는 자비가 없었다.
덕분에 대인의 속도는 거의 느려지지 않았다.
대인은 기감을 펼쳐 목적지를 다시 확인했다.
‘소울이터는 계속 그 자리에 있군. 놈의 주변으로 간부급 기들이 모이는 걸로 봐서는···.’
“한번 붙어보자 이거지?”
이쪽으로서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적들이 대비를 다 갖출 때까지 기다려줄 이유는 없었기에, 대인은 속도를 더 높였다.
“놈을 막아라!”
“어떻게든 시간을 끌어!”
안으로 들어갈수록 대인을 막아서는 적의 숫자도 많아지고 강해졌다.
그들은 고성을 지르며 대인에게 덤벼들었다.
그 숫자가 점점 많아지자, 대인의 속도도 점점 느려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잠시 후, 대인은 제자리에 멈춰 섰다.
“후우···. 많이도 모였네.”
미궁에 들어온 후로 처음 보는 넓은 공동에, 수백에 달하는 인간과 키메라가 모여 있었다.
하나하나가 무시 못 할 수준의 강자들.
그들이 흉흉한 살기를 뿌리며 대인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뒤로, 실루엣으로 이루어진 흐릿한 존재가 수많은 인간과 이종족에게 경배받는 그림이 새겨진 거대한 문이 보였다.
“저 안이 보스 방인가 보네.”
대인은 그 철문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리고 문 앞을 막아선 수많은 적을 쭉 둘러보며 말했다.
“중간중간 가면 쓴 놈들도 보이는 걸 보니까 소울이터도 꽤 똥줄이 탔나 봐?”
“이놈! 건방을 떠는 것도 여기까지다!”
염소 가면을 쓴 사내가 지팡이를 흔들며 앞으로 걸어 나왔다.
“오만이 하늘을 찌르는구나. 감히 이곳이 어디라고 혼자 쳐들어올 생각을 한단 말이냐.”
염소 가면이 신생아의 두개골로 만든 지팡이를 허공에 휘젓자, 지팡이에서 잿빛 마력이 흘러나와 허공에 마법진이 그려졌다.
“너는 절대 그분의 존안을 뵙지 못할 것이다. 이곳이 네놈의 무덤이 될 테니!”
대인은 그 말을 비웃었다.
“존안 같은 소리 하네. 그 새끼 얼굴 없는 거 다 아는데.”
“이놈이-!”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덤빌 거면 빨리 덤벼.”
“죽여라!”
열 명이 넘는 판데모니움의 간부들을 비롯해, 수백의 정예가 대인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나 대인은 태연했다. 그는 검조차 집어넣었다.
“여기서 문제 하나. 내가 정말 혼자 왔을까? 적진 한복판에 지원도 없이?”
대인은 검 대신, 왼손의 시계를 조작했다.
“초월의 별 활성화.”
[초월의 별이 활성화(2단계)됩니다.] [사용자의 편의에 맞춰 다양한 기능이 제공됩니다.] [아직 일부 기능의 사용이 제한됩니다.]“권속 기능 활성화. 권속 소환.”
[권속 기능이 활성화됩니다.] [현재 소환 가능한 권속의 목록이 표시됩니다.]대인은 눈앞에 떠오른 목록에서 몇 개의 이름을 클릭했다.
잠시 후 그의 주변에서 아공간이 열리고 그의 권속들이 걸어 나왔다.
“처음부터 얘들을 부르면, 너희가 다 도망갈 것 같았거든.”
스르르륵.
괴물 지네가 수백 개의 다리로 바닥을 쓸며 나타나 대인을 보호했고,
캬아아아아!
괴물 도마뱀이 석화 광선을 뿜어내 달려오던 적들을 돌로 만들었다.
“무, 무슨!”
“조심해라! 놈이 괴물을 소환한다!”
괴수들의 등장에 당황한 적들이 우왕좌왕했다.
그러나 그들의 시련은 이제 시작에 불과했다.
저벅저벅.
아공간에서 걸어 나온 마지막 존재를 본 순간, 염소 가면의 눈은 경악으로 부릅떠졌다.
“오거 킹! 네가 왜 거기에···!”
[주인님의 부름을 받아 왔습니다.]쿵!
대인 앞에 무릎을 꿇은 자는, 소울이터가 가장 아끼는 사도 중 하나인 오거 킹이었다.
그 모습에 대인은 미간을 찌푸렸다.
“폼 잡을 시간이 쟤들이나 정리해.”
[···명을 받듭니다.]일어서서 대검을 뽑아 든 오거 킹에게, 염소 가면이 바락바락 소리쳤다.
“이놈! 주인을 배신한 것도 모자라 적의 개가 됐단 말이냐!”
[······.]오거 킹은 대답 대신 대검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그 일격에 달려들던 키메라 다섯이 반으로 갈라졌다.
악령 마녀, 괴물 지네, 괴물 도마뱀, 오거 킹.
한때 소울이터의 사도였던 존재들이 과거의 동료들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대인은 그 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니들 스스로 자초한 일이야.”
그들은 지구에서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대가로 헬게이트 소환진을 만들었고, 중간에 방해를 받자 그 에너지를 흡수해 스스로 괴물이 되었다.
하나하나가 국가 규모의 재앙급 괴수.
그러나 지금은 대인의 명령을 거부하지 못하는 권속에 불과했다.
“끄아아악!”
“말도 안 돼! 어떻게 동료를···!”
“이 저주받을 놈들!”
네 괴수에 의해 판데모니움의 본거지가 멸망하고 있었다.
대인은 시체들로 만들어진 길을 걸어, 거대한 문으로 향했다.
“그러게 왜 가만히 있는 사람을 건드려?”
오늘, 대인은 판데모니움을 세상에서 지워버릴 작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