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s Life After Retirement RAW novel - Chapter 287
287화 묵시록의 붉은 용(5)
회심의 공격이 빗나간 순간, 아스타로트는 의문에 휩싸였다.
‘어째서!’
절대 실패할 리 없는 일격이었다.
비네와 스토라스가 온몸으로 붉은 용의 공격을 막고, 몰렉과 푸르손이 붉은 용의 움직임을 묶었다. 그 틈에 아스타로트가 회심의 일격을 준비했다.
죽이진 못해도 치명상이 될 거라 확신한 일격이었다.
하지만,
촤아악!
아스타로트의 손톱은 붉은 용의 심장 대신 어깨를 찢었다.
‘피할 수 없는 공격이었는데!’
그 의문을 길게 가져갈 시간이 없었다.
방금 전 공격에 분노한 붉은 용이 포효하며 그를 씹어 먹으려고 들었다.
-그아아아아아!
아스타로트는 황급하게 몸을 뒤로 물렸다. 붉은 용의 이빨이 아슬아슬하게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쿠르르르릉!
붉은 용은 하늘에서 거대한 불벼락을 소환했다. 마왕들이 사방으로 흩어졌으나, 갈래갈래 뻗어 나간 벼락이 마왕들을 추격해 감전시켰다.
[크아아아악!] [꺼허어억!]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허공에서 휘청대는 마왕들. 붉은 용은 그중 아스타로트를 향해 힘껏 날갯짓했다.
-후우웅!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붉은 용이 입을 쩍 벌렸다. 그 안에서 끓어오르는 홍염이 그대로 직선으로 분사됐다.
[아, 안 돼···!]아스타로트의 시야에 홍염이 가득 찬 순간, 갑자기 강풍이 불어와 그의 몸을 옆으로 밀어냈다.
-콰콰콰쾅!
브레스가 수십 km 밖의 산을 소멸시키고, 대지에 끔찍한 흔적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아스타로트는 팔 하나를 잃는 것으로 끝났다.
엄청나게 ‘운’이 좋았다고밖에 말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순간, 붉은 용은 아까 아스타로트가 느꼈던 것과 똑같은 의문을 느꼈다.
‘피할 수 없었을 텐데?’
마왕 하나를 끝장낼 절호의 기회였다. 때문에 브레스를 아끼지 않고 사용했으나, 마왕은 간발의 차로 피해냈다.
그러나 붉은 용 또한 그 의문을 오래 가져갈 수 없었다. 전투 중이었다. 뭔가를 깊이 생각하기엔 마왕들은 너무 강했다.
[이제 한동안 브레스는 쏘지 못할 거다!] [도마뱀! 찢어발겨 주마!]마왕들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붉은 용에게 달라붙었다. 붉은 용은 천지가 뒤흔들리도록 포효했다.
-그아아아아! 몇 번이라도 죽여주마!
붉은 용은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한때 위대한 존재라 불렸으나 지금의 그는 반쯤 미쳐 있었고, 모든 살아있는 것을 증오하는 죽음의 화신이었다.
-쿠르르르릉!
-콰콰콰콰쾅!
천지가 뒤집히는 싸움이 계속됐다. 붉은 용의 선혈이 지상을 적셨고, 찢겨나간 마왕의 살점이 허공에 비산했다.
전투의 여파는 지상에 남은 마계의 군대에도 미쳤다.
차원 연합군은 모두 탈출용 게이트를 타고 퇴각한 상황이었으나, 마계의 군대는 지상에 그대로 남았다.
붉은 용과 마왕들이 격돌할 때마다, 수천의 괴수와 악마들이 쓸려나갔다.
[우, 우리도 다시 마계로 돌아가자!]마왕군의 고위 악마들은 다시 헬게이트를 통해 마계로 돌아가고자 했다.
차원 연합군 병력도 모두 사라졌고, 이런 감당할 수 없는 재앙 앞에서라면 바알도 용서해주리라 믿었다.
그러나 마계와 연결된 헬게이트는 이미 소멸한 뒤였다.
[게, 게이트가 사라졌다!] [어째서···!] [그럼 우린 어쩌란 거야!]퀘벡 지역에 마왕 둘이 더 강림하면서, 과부화된 그 지역의 헬게이트가 모두 소멸했다.
즉, 마왕군은 도망칠 곳이 없다는 이야기였다.
[날아서 다른 대륙으로 가면···!]비행능력을 지닌 일부 악마와 괴수들은 마지막 희망을 가지고 도주를 시도했으나,
-퍼엉! 퍼버버벙!
하늘 위에는 이미 차원 연합군에서 보낸 전투용 드론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뿔뿔이 흩어져 도망치는 마왕군은 그 두터운 포위망을 뚫지 못하고 추락했다.
[끄아아악!] [이렇게 아무것도 못 해보고···.] [마왕이시여!]수십만에 달하는 마왕군 병력이 전멸하기까지, 채 몇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뒤가 없기는 마왕들도 마찬가지였다.
마경을 통해 전장을 지켜보고 있던 바알이 거센 분노를 토해냈다.
회의장에 다시 불려온 바사고는 퉁명스레 대꾸했다.
[내가 분명히 경고하지 않았나. 임대인이 뭔가 수작을 부릴지 모른다고. 분명 위험 부담이 있을 거라고···. 흠. 그 규모가 내가 생각했던 것을 한참 넘어서긴 했지만.] [바사고! 너는 저 드래곤이 난입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나?] [네노오오오옴!]이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리는 바알과 당장이라도 덤벼들 기세인 아가레스에게, 바사고는 킬킬대며 웃었다.
[내가 임대인도 아니고, 미래를 정확히 알고 계획을 짰겠나?] [바사고!] [이제 와서 내 탓을 하는 건가? 나는 위험 부담이 있다는 말도 했고, 그러니 내 파벌에서 두 명을 보내겠다고 했다. 내 계획을 멋대로 바꿔서 욕심을 낸 것은 너희가 아닌가?]전부 맞는 말이었다.
바알과 아가레스는 숨만 씩씩댈 뿐, 더 이상 화를 내지 못했다.
[뭐,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저기 있는 마왕들이 이기길 바라는 수밖에.]권좌에 등을 기댄 바사고는 느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물론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으리라는 걸, 바사고는 이미 알고 있었다.
***
붉은 용과 마왕들의 싸움은 몇 시간이나 계속됐다.
-그아아아아아아!
[빌어먹을 도마뱀!]누구보다 강대한 육체를 지닌 붉은 용과 다섯 마왕들의 몸이 너덜너덜해지고, 끊이지 않던 마력은 점점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전히 서로 간에 치명상을 입히지 못했다.
항상 결정적인 순간에 운이 좋거나, 실수가 생겼다.
서로에게 끊임없이 상처를 입혔지만, 승부를 결정지을 만한 순간은 단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다.
‘왜 이번에도 빗나가는 거냐!’
‘이렇게나 공격을 했는데···!’
지루한 소모전이었다. 처절한 싸움은 서로의 체력과 마력, 정신력을 갉아먹을 뿐이었다.
-콰콰콰콰쾅!
처음에 비하면 충돌의 여파도 확연히 작아졌다. 여전히 세상을 멸망시킬 듯 흉험한 전투였지만, 확실히 힘이 빠져 있었다.
‘뭔가 이상하다.’
‘마치 누군가가 이 상황을 유도한 듯한···.’
붉은 용과 마왕들이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건, 이미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늦어버린 이후였다.
“슬슬 정리해도 되겠는데.”
허공에서 들려온 작은 목소리를 시작으로, 전황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
아스타로트는 절박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그러나 다른 마왕들도 그를 도와줄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어, 어째서!]마왕은 몇 시간 전과 똑같은 의문을 떠올렸다. 그러나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랐다.
평범한 공격이었다.
물론 붉은 용쯤 되는 괴물의 공격이 ‘평범’할 리는 없지만, 마왕인 자신이 신경 써야 할 정도로 위협적인 공격은 아니었다.
충분히 피할 수 있었고, 피했어야 했다.
그때까지 아스타로트를 몇 번이나 위기에서 구해주었던 ‘행운’이 ‘불행’으로 바뀌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갑자기 밀어닥친 어떤 힘에 아스타로트의 몸이 자석에 끌리듯 움직였고, 붉은 용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 결과,
지금 아스타로트는 붉은 용의 이빨 사이에 끼어 있었다.
[크아악! 놔라! 놓으란 말이다!]아스타로트는 모든 힘을 다해 붉은 용의 입을 벌리려 했지만, 붉은 용은 이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듯 힘주어 턱을 씹었다.
으적으적으적···.
[끄아아아아아!]고통스러운 비명도 잠시였다.
꿀꺽.
붉은 용은 한때 마왕이었던 고깃덩어리를 한입에 삼켜버렸다.
[이런 미친···!] [찢어죽일 도마뱀!]분노한 마왕들이 일제히 붉은 용에게 덤벼들었다.
그러나 다섯에서 하나가 줄어든 공백은 확실히 컸다. 붉은 용은 한층 수월하게 마왕들은 공격을 피하고, 반격하고, 확실하게 숫자를 줄여나갔다.
-콰앙! 콰앙! 쾅쾅쾅!
앞발에 연달아 짓밟힌 스토라스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곤죽이 되었고,
-콰아아앙!
꼬리에 얻어맞은 비네가 바닥에 깊숙이 처박혔다. 붉은 용은 유성처럼 그 위에 내리꽂혔다.
남은 것은 둘.
[자, 잠깐만! 멈춰라!] [이렇게 계속 싸워 봤자 연합군 놈들에게만 좋은 일이다! 차라리 잠시 손을 잡는 게···.]상황이 급격히 불리해지자, 푸르손과 몰렉은 뒤로 물러나며 붉은 용과 대화를 시도했다.
아무 소용없는 짓이었다.
광기에 집어삼켜진 붉은 용에게는 더 이상 이성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아아아아아아!
포효를 터트린 붉은 용이 남아있는 마왕들에게 덤벼들었다. 한 번의 날갯짓으로 폭풍을 일으키고, 쩍 벌린 입에서 뿜어져 나온 화염이 하늘을 불살랐다.
악에 받친 마왕들 또한 죽기 살기로 달려들었다.
그들은 차원 연합군이 이 싸움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이성이나 논리가 통하지 않는 괴물을 상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최선을 다해서 괴물을 죽이고 살아남는 수밖에.
다행히 이번에는 마왕들 쪽에 ‘운’이 따라 주었다.
-푸우우욱!
-푸우우욱!
푸르손과 몰렉의 공격이 붉은 용의 목과 가슴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퍼버버버벙!
그 대가로 브레스를 정면에서 뒤집어쓴 몰렉이 잿더미로 변했다.
최후의 마왕. 푸르손은 고통스럽게 울부짖는 붉은 용의 가슴에 매달렸다.
-촤악! 촤아악!
날카롭게 솟아난 손톱이 붉은 용의 가슴에 난 상처를 마구 난도질했다.
붉은 용이 미친 듯이 몸을 흔들었으나, 그 목에 매달린 푸르손은 투우 소에 매달린 투우사처럼 필사적으로 매달리고 가슴을 헤집었다.
[됐다! 이대로 이 괴물을 심장을 찔러버리면···!]푸르손의 두 눈이 샛노랗게 빛났다.
마왕이 희열에 찬 목소리로 승리를 예감한 순간,
“심장은 안 돼. 그건 따로 쓸 데가 있거든.”
속삭이듯 옆에서 들려온 작은 목소리에, 푸르손은 눈을 부릅뜨고 옆을 돌아봤다.
[너는···!]수백 미터에 달하는 붉은 용이나, 수십 미터에 달하는 마왕들에 비하면 정말 하찮고 작은 인간.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면 그 존재조차 몰랐을 정도로 존재감조차 희미했다.
하지만 그 인간의 얼굴을 본 순간, 푸르손은 이 모든 상황을 그가 꾸민 것임을 알 수 있었다.
푸르손이 분노와 함께 남은 힘을 모두 폭주시키는 순간, 대인은 을 사용해 주변의 마력을 움직였다.
그것은 지금까지 마왕들과 붉은 용이 느낀 ‘행운’과 ‘불행’의 실체였다.
주변의 마력을 조작해 물리력을 행사하고, 그 힘으로 공격을 ‘아주 약간’ 빗나가게 하거나 움직임을 둔하게 만들 수 있었다.
바로 지금처럼.
미끌.
푸르손의 손이 붉은 용의 몸에서 살짝 떨어진 순간, 붉은 용은 여지없이 마왕을 몸에서 떨쳐내고 꼬리 공격으로 지상에 처박았다.
-콰콰콰콰콰쾅!
바닥에 처박힌 푸르손의 몸 위로 화염이 쏟아졌다.
화르르르륵!
쌓인 분노를 모두 토해내듯, 붉은 용은 지상이 시커멓게 변할 때까지 화염을 토해냈다.
그렇게 처절했던 싸움이 끝났다.
-쿠웅!
추락하듯 지상에 내려선 붉은 용이 잠시 비틀거렸다. 그러나 곧 고개를 치켜들고 세상이 떠나가라 포효했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아!
날개는 대부분 찢어지고, 온몸의 상처에서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대부분의 뿔이 잘려나가거나 부러진 모습이었다.
-크르르르르르···.
붉은 용이 힘겹게 숨을 몰아쉬었다.
마왕들은 최악의 상대였고, 마지막까지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싸움이었다.
하지만 결국 승리했다.
다섯 마왕을 모두 죽였고, 이제 이 세계를 멸망시킬 것이다.
하지만 그 전에,
-나와라!
붉은 용은 으르렁거리며 허공의 한 지점을 노려보았다.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 하지만 붉은 용은 그곳에 누군가가 있다고 확신했다.
그리고 그건 사실이었다.
스르륵···.
을 풀고 붉은 용 앞에 모습을 드러낸 대인이 뺨을 긁적였다.
“아까 알아챘나?”
-그전부터 눈치는 채고 있었다. 그리고 네놈이 나를 유인해 마왕들과 상잔시키려 한 것도 안다.
붉은 용은 ‘반쯤’ 미쳤지만, 완전히 미친 것은 아니었다.
마왕들과 싸우면서, 대인이 자신을 이곳으로 유인해 양패구상을 계획했다는 사실을 눈치채는 것은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내가 왜 순순히 네놈 뜻대로 마왕들과 싸운 줄 아는가?
“글쎄?”
-아무래도 상관없기 때문이다.
붉은 용의 입가에 가학적인 미소가 맺힌 순간, 그 거체에서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마력이 터져 나왔다.
‘아직도 저 정도 힘이 남아있다니···.’
대인의 표정이 굳어가는 가운데, 묵시록의 붉은 용이 온몸에서 피를 뚝뚝 흘리며 말했다.
-어차피 나는 더 이상 살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긴 잠에 빠져들어 영원히 깨어나지 않을 생각이었지. 그런데 네가 내 안식을 방해했다.
붉은 용은 광기에 찬 눈빛으로 대인을 노려봤다.
-나를 이용하기 위해 잠에서 깨운 오만한 인간이여. 똑똑히 지켜보아라. 네 오만의 대가는 네가 아는 모든 생명의 죽음이요, 이 세계의 종말이다.
붉은 용은 대인에게 자신을 깨운 것을 후회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미래를 알고 있는 대인은 코웃음만 나올 뿐이었다.
“뭐? 영원한 안식? 지랄하네. 몇 년 자고 일어나서 여기저기 쳐들어가 깽판이나 부리고 다녔을 거면서. 똥폼 잡지 마 징그러운 도마뱀 새끼야.”
그 신랄한 말에 붉은 용의 얼굴이 무참히 일그러졌다.
-···너는 당장 죽이지 않으마. 장난감처럼 데리고 다니며, 이 세계를 멸망시키는 과정을 전부 보여준 후 천천히 죽일 것이다.
“할 말 다 했어? 그럼 시작하자고. 마침 이쪽도 방금 준비가 다 끝났거든.”
딱!
대인이 손가락을 튕기자, 그의 뒤편으로 수십 개의 게이트가 생성되었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지이이잉!
지이이잉! 지이이잉! 지이이잉!
지이이잉! 지이이잉! 지이이잉!
전원 디바인 슈츠를 착용한 차원 연합군의 최정예가 게이트에서 걸어 나왔다.
“클클. 드디어 우리 차례로구나.”
“팀장님!”
“아저씨!”
“아빠!”
대인의 뒤에 일렬로 도열하는 사람들.
그들은 붉은 용과 마왕들이 싸우는 동안 충분히 체력을 회복하고, 장비를 수리했다. 그리고 붉은 용의 전투 패턴을 영상으로 분석했다.
그들이 내뿜는 기세에 붉은 용도 몸을 긴장시킬 수밖에 없었다.
-크르르르르르···.
대인은 손가락으로 붉은 용의 가슴을 가리켰다.
“저거. 심장 좀 뽑아 와요.”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차원 연합군의 최정예가 붉은 용에게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