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s Life After Retirement RAW novel - Chapter 350
350화 (외전) 재직자 특별 전형
시스템의 공식 발표와 동시에, 릴리는 친구들을 양쪽에 껴안고 폴짝폴짝 뛰었다.
“이겼다아-!”
“악! 어지럽다니까!”
“이겨서 좋긴 한데···. 팀 이름 저거 뭐야? 릴리와 귀요미들?”
“미션 시작하기 전에 혼자 뭘 몰래 적어서 내더니···.”
“아하하하! 아무튼 이겼으니깐 축하 파티 하자!”
처음에는 툴툴대던 웬디와 안나도 어느새 릴리의 페이스에 휩쓸려 마구 웃고 떠들었다.
“그럼 바비큐를 준비하겠습니다.”
한쪽에서는 게롤드가 이미 고기를 구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다들 완전히 마음을 놓았다.
[현 시각 이후의 행동은 포인트에 반영되지 않습니다.] [24시간 후, 모든 응시생은 미션 구역 밖으로 전송됩니다.] [최종 승리 팀은 결과가 발표될 때까지 휴식을 취해 주시기 바랍니다.]그들은 최종 미션에서 다른 팀들과 경쟁해 당당히 승리했다.
남은 것은 입학시험 결과가 발표되길 기다리는 것뿐.
그리고 그들이 여기까지 오면서 보여준 결과를 생각하면, 입학시험에서 탈락한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다.
“이제 우리 앞으로 맨날 학교에서 만날 수 있어!”
하지만 그 완벽한 승리에도, 마냥 기뻐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다.
짝짝짝···.
소신한은 다른 일행에게서 애매한 거리를 두고 어색하게 박수를 쳤다.
마치 그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이 있는 것처럼.
대인이 그의 옆으로 다가와 무언가를 건넸다.
“자, 마셔요.”
“···아. 감사합니다.”
소신한은 대인이 건넨 캔커피를 받았다.
두 손으로 캔을 감싸 쥐자 온기가 느껴졌다.
덕분에 아까부터 떨림이 멈추지 않던 손도 조금은 진정이 되는 것 같았다.
“후우···.”
자신의 손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쉰 소신한은, 이내 아무렇지 않은 듯 억지웃음을 지으며 대인에게 말했다.
“그나저나 정말 놀랐어요. 사장님이 WHA에서 초빙한 자원봉사자라니···.”
“은퇴한 초인한테는 가끔 이런 일거리가 들어오거든. 응시생들한테 문제 생길 것 같으면 지켜보다가 구조도 해주고 뭐 그런 일.”
“그럼 아까 그 남자애도 다쳐서···?”
“어. 응급실에 잘 데려다 놨어.”
대인은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했다.
WHA가 돌아가는 사정을 잘 모르는 소신한은 그런가 보다 하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지금 소신한의 상태였다.
“하하. 그렇군요···.”
힘없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소신한의 모습에, 대인이 미간을 가볍게 찌푸렸다.
“왜 이렇게 기가 죽었어? 시험도 잘 치러놓고.”
“···그러게요. 잘 모르겠어요.”
소신한은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힘없이 웃었다. 그의 두 눈에 초점이 없고 흐릿했다.
‘쯧. 하나뿐인 직원이 이 꼴이라니···.’
대인은 손가락으로 턱을 긁적였다.
이 소심한 친구가 왜 이러는지, 대충은 짐작이 되었다.
극한의 상황에 투입된 신입들이 종종 겪는 후유증.
일종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정신없이 전투를 치를 때는 느끼지 못했던 수많은 감정이, 상황이 정리된 후 비로소 한 번에 밀려드는 것이다.
덜덜덜···.
소신한의 손이 떨리는 것을 본 대인이 말했다.
“잠깐 저기서 얘기 좀 할까?”
“···네.”
잠시 후, 두 사람은 공원 벤치에 나란히 앉았다.
안개가 사라진 도시는 저녁노을로 붉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폐허가 된 도시인 것은 여전했지만, 절망과 죽음뿐이었던 도시에는 그전과는 조금 다른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신한 씨. 저기 사람들 보여?”
“···네.”
대인이 턱짓으로 가리킨 곳에는 생존자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임시 천막에서 음식을 나누어 먹는 중이었다.
‘내가 더 강했다면···.’
소신한은 그들을 보는 것이 괴로워서 고개를 푹 숙였다.
그때 그의 귓가로 대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 들고 다시 똑바로 봐.”
그 목소리에는 거역할 수 없는 힘이 담겨 있었다. 소신한은 번쩍 고개를 들었다.
“네, 네!”
“똑바로.”
‘똑바로라니 뭘···.’
지금 소신한의 눈에는 사람들의 부상, 가족과 친구를 잃고 하염없이 슬퍼하는 사람들만 보였다.
하지만 대인은 그에게 다른 걸 보라고 말했다.
“저 사람들. 당신이 구한 거야.”
“···!!”
그 순간, 소신한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는 눈앞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지금보다 더 강했다면, 더 많은 사람들을 더 살릴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때문에 최종 미션이 끝난 후에도, 소신한은 계속 무력했던 자신을 탓하기만 했다.
‘내가 약해서 사람들이···.’
그렇게 자책만 하고 있던 그에게, 대인은 죽은 사람들이 아니라 살린 사람들을 보라고 말한 것이다.
“내가 구한 사람들···.”
“저 사람들이 신한 씨를 원망하던가?”
“아니요···.”
소신한은 멍하니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비로소 풍경이 조금씩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자신을 비난하는 것 같아서 마주치지조차 못했던 사람들의 시선이, 이제야 감사의 인사였음을 깨달았다.
그 순간 왈칵,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이 쏟아졌다.
“크흑, 크흐흑···.”
소신한은 한참 동안 눈물을 흘리며 자신이 구한 사람들을 바라봤다.
그러다 겨우 고개를 돌려, 빨개진 눈으로 대인에게 말했다.
“···감사합니다. 사장님 말씀 덕분에 기분이 많이 나아졌어요.”
“응시생 멘탈 관리도 자원봉사자의 일 중 하나거든.”
대인은 뻔뻔하게 거짓말을 하며 소신한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하여튼 대책 없이 착한 녀석들은 일이 터지면 전부 자기 탓으로 돌리는 게 문제라니까.’
소신한의 반응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저기 있는 꼬맹이들이야 이미 수많은 실전경험이 있었고, 숱한 죽음을 두 눈으로 직접 보았다. 마찬가지로 게롤드도 실전 경험이 풍부한 기사였다.
하지만 소신한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냥 평범한 시민에 불과했다.
‘그런 녀석이 하루아침에 이런 데 떨어졌는데 이 정도면 양호한 편이지.’
그때 소신한이 머뭇거리며 물었다.
“사장님 혹시···.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셨어요?”
“처음부터는 아니고 대충 중간부터? 왜요?”
“사장님이 보시기에 저···. 어땠나요?”
은퇴한 초인으로서 봤을 때, 자신의 실력을 평가해 달라는 의미의 질문.
대인은 솔직하게 말했다.
“형편없던데.”
“······.”
“전투는 어설프고, 상황 판단력도 떨어져. 냉정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행동하는 것도 마이너스야. 실전이었으면 죽기 딱 좋은 타입이지.”
“하지만 그건 릴리도···.”
소신한은 소심하게 반박하려다, 대인의 싸늘한 눈빛에 입을 다물었다.
“꼬맹이는 그걸 감당할 능력이 돼. 하지만 신한 씨는? 꼬맹이랑 같이 다니더니 자기가 같은 급인 줄 아는 거야?”
“······.”
대인은 심하다 싶을 정도로 냉정하게 말했다.
쓸데없는 우울의 수렁에서 그를 끌어낸 것과 이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자기 주제를 모르고 설치다가 죽기 딱 좋은 성격이야.’
정의. 신념.
다 좋다.
하지만 그것도 실력이 받쳐줄 때의 이야기였다.
대인은 소신한을 똑바로 쳐다보며 냉정하게 말했다.
“솔직히 꼬맹이랑 같은 팀이 아니었으면 최종 시험까지 오지도 못했을 거라는 건, 본인 스스로가 가장 잘 알 거야.”
“······.”
“더 얘기해 줄까?”
소신한은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더 부탁드릴게요.”
“일단 미션이 처음 시작됐을 때···.”
대인에게 냉혹한 평가를 듣는 동안, 소신한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분한 듯 이를 꽉 악물기도 하고, 부끄러운 듯 귀가 붉어지기도 하고, 한숨을 푹 내쉬기도, 눈을 질끈 감기도 했다.
“···여기까지.”
난도질과도 같았던 대인의 평가가 끝났다.
창백한 얼굴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소신한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
그 한숨에는 어느 정도의 체념도 섞여 있었다.
그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대인에게 물었다.
“역시 제 실력으로 입학은 무리겠죠?”
대인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이곳에 오기 전, 백창수에게 들은 이야기가 있었다.
-저 소신한이라는 친구. 인성이나 태도는 마음에 드는데···. 개인 기량이 아무래도 많이 부족하군.
WHA의 입학시험을 치르는 동안, 소신한은 놀라울 만큼 강해졌다.
특성 의 두 번째 형태까지 개화했으니, 그로서는 한계를 뛰어넘었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냉정하게 말해서, 지금 이 녀석 실력은 전체 응시생의 평균에도 미치지 못해.’
웨어울프?
강력한 능력이긴 하지만, 소신한은 아직 그걸 제대로 소화조차 못 하고 있었다.
곁에 있는 엄청난 동료들이 아니었다면, 소신한은 결코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다.
소신한 스스로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저 친구를 위해서라도 탈락시키는 게 좋을 것 같군. 다른 학생들을 따라가려다 오히려 좌절만 겪을 수도 있고···. 자네 생각은 어떤가?
대인은 백창수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게이트를 넘었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소신한과 마주하며 대답하고 있었다.
“신한 씨는 이 팀에서 유일하게 입학시험에서 떨어지게 될 거야. 아무리 팀 평가가 좋아도, 개인 평가 점수에서 미달이거든.”
“···역시 그렇군요.”
대인의 말에 소신한은 씁쓸하게 웃었다.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그는 자조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하긴 온 우주에서 천재들이 모여들었는데, 저 같은 놈이 이 자리에 끼는 것부터 말도 안 되는 일이었어요.”
그 말에 대인은 미간을 찌푸렸다.
“신한 씨. 그렇다고 그런 식으로 자기를 비하하는 건···.”
“하지만 상관없습니다.”
“응?”
“사장님 말씀을 듣고 나서 후련해졌거든요.”
소신한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의 눈빛은 더 이상 불안에 떨거나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맺혔다.
“정답이 이곳에만 있는 건 아니니까요.”
입학식 시작부터 방금 전까지 겪은 일을 하나하나 다시 떠올리자, 마치 몇 달은 전장에서 구른 것 같았다.
하지만 고작 일주일밖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일주일은, 소신한의 가치관을 바꿔 놓기에 충분했다.
소신한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다시 도전할 겁니다. WHA가 아니어도 좋아요. 초인 길드, 용병단. 어디든 좋아요. 바닥에서부터 시작하더라도 상관없어요. 저는···.”
소신한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덜덜···. 손이 다시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전처럼 두려움 때문이 아니었다.
미래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었다.
“더 강해지고 싶어요.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을 지켜주고 싶어요.”
“······.”
꽈악.
주먹을 움켜쥔 소신한이 대인에게 꾸벅 고개를 숙였다.
“사장님. 이런 기회를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정말 평생 갚아도 모자랄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만해.”
“네?”
대인이 오만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오글거리니까 그만 좀 하라고! 뭔 소년 만화 주인공도 아니고···.”
대인이 팔에 난 닭살을 벅벅 긁어대자, 소신한이 하하 웃었다.
“하하. 제가 임대인 님의 영향을 많이 받았거든요. 그분이야말로 진짜 소년 만화의 주인공 같은 분이죠. 남기신 명언만 해도···.”
“으악! 제발 그만하라고! 누가 이 자식 좀 데려가!”
“···왜 사장님이 부끄러워하세요?”
“너 이 자식 다 알면서 일부러 그러는 거···. 일 리는 없고 젠장!”
대인은 무슨 징그러운 생명체 보듯 소신한을 바라보다 작게 한숨을 쉬었다.
“하아. 정 그렇게 하고 싶으면···.”
“아저씨드으을-!”
저편에서 릴리가 두 손을 입에 모으고 두 사람을 부르고 있었다.
“고기 다 익었으니깐 빨리 와!”
“···저건 뭔 얘기할 틈을 안 줘요.”
대인은 툴툴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 사람은 함께 바비큐장으로 걸어갔다.
잠시 걸어가던 중에, 대인이 갑자기 멈춰 섰다.
“신한 씨 먼저 가. 난 잠깐 통화할 사람이 있어서.”
“빨리 오세요. 늦으면 릴리가 전부 먹어버릴걸요.”
대인은 소신한을 먼저 보낸 후, 그 뒷모습을 빤히 바라봤다.
확실히 실력은 많이 부족하다.
다른 응시생들에 비해 재능도 그리 특출나지 않다.
지금 실력으론 WHA의 수업을 따라가기조차 벅찰 것이다.
···하지만 뭐.
누군 천재라서 불멸의 영웅 소리를 듣고 있는 줄 아나.
‘저 성격에 길드나 용병단 같은 데 들어갔다간 객사하기 십상이고···.’
그럼 식당 직원도 새로 뽑아야 하는데, 그것도 꽤 귀찮고 번거로운 일이다.
대충 생각을 정리한 대인은 머리를 벅벅 긁으며 중얼거렸다.
“까짓것 앞으로 마나 영양식 두 배로 먹이고 따로 단련 좀 시켜 주면 되지.”
결정을 내린 대인은 초월의 별을 톡톡 두드렸다.
그러자 그 위로 대인만 볼 수 있는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버튼을 몇 번 클릭하자 곧 상대방과 통신이 연결되었다.
“대표님.”
홀로그램 위로 나타난 사람은 백창수였다.
-왜 그러나? 지금 첩자 취조하느라 바쁜데.
“한 명 정도는 특별 전형으로 넣을 수 있죠?
-···그런 거 하지 말라고 한 게 자네 아니었나?
황당하다는 듯 바라보는 백창수에게, 대인은 사회생활이 다 그런 거 아니냐며 말했다.
“없어요? 그럼 이참에 하나 만들죠. 재직자 특별 전형으로.”
-···어련하겠나.
며칠 후, WHA의 입학시험 결과가 발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