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set Life of Regression Police RAW novel - Chapter (991)
새벽을 달리는 차 안,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검사장이 창밖을 바라본다.
들을수록 믿을 수 없었던 이야기.
하지만 진실인 이야기.
지이잉! 지이잉!
“어, 최 치안감. 나? 나야 잘 들어가고…… 저기서 좌회전해 주십시오. 나야 집에 거의 도착했지. 쯧. 몇 번을 말하게 하는 거지? 그래. 경찰에서 넘기는 사건들, 웬만해선 반려하지 않을게. 됐지? 그래그래. 최 치안감도 잘 들어가고, 다음에 또 이런 자릴 만들자고. 그래.”
통화를 종료한 검사장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는다.
“되바라진 놈. 현몽준 의원이 대통령이 되지만 않았어도…….”
“도착했습니다.”
“아, 수고했습니다.”
차에서 내려 키를 받아 든 검사장이 담배를 꺼내 문다.
찰칵! 치이익!
“후우우.”
12월, 눈이 섞인 겨울 연말의 싸늘한 밤공기에 잠시 술을 깨려는 듯한 모습을 보이던 검사장이 멀어지는 대리기사를 무심히 바라본다.
‘이제부터 하는 행동, 말 한 마디 조심하라고 했지.’
놈들 회사에게서 감시가 붙었을 수 있다고 말이다.
그리고 그 누구도 믿지 말라고 했다.
‘혹시…… 저 대리기사도 회사의 사원일까?’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다.
그런 의심이 드니 헛웃음이 터져 나온다.
벌써부터 숨이 턱 하고 막히는 듯한 기분.
“후우.”
‘최 치안감은 이 짓을 무려 십수 년을 동안 했단 말이지…….’
주위의 모든 사람을 의심하고, 또 검증하고, 한 말 안 할 말을 가려 가며 무려 십수 년 동안 놈들을 쫓은 종혁.
그 정의롭던 청년이 십수 년 동안 정체불명의 단체를 쫓고, 또 결과를 냈다.
대단하단 생각밖에 안 들었다.
‘부끄럽군.’
뭐가 검사고, 고검장이란 말인가.
검사장은 고작 이 정도 직위 따위에 만족한 채 우물 안 개구리로 살았던 자신의 모습에 환멸마저 느끼고 있었다.
툭!
담배를 던진 검사장은 이를 악물며 돌아섰다.
그의 눈빛이 형형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한편 도로로 나온 대리기사가 마침 도착한 차량에 몸을 싣는다.
“어땠어?”
“쉿! 예, 박 대리입니다. 경찰의 사건 이관 문제를 언급한 것을 보면 별일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출발하라는 대리기사의 손짓에 운전석에 앉은 이가 차량을 출발시켰다.
* * *
“끄으!”
다음 날 아침, 몸을 일으킨 종혁이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다 한숨을 내뱉는다.
“……지랄이네, 진짜.”
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진실일까.
“에이.”
머리를 벅벅 긁은 종혁이 몸을 일으키며 방을 빠져나간다.
아침 루틴을 시작해야 했다.
달그락 달그락!
순철과 순희가 없어서 그런지 더 적막한 식탁.
“오랜만에 일찍 움직였더라?”
“응?”
“운동 말이야, 운동.”
“아…….”
종혁이 피식 웃는다.
생각해 보니 올해엔 이리저리 바쁘고 피곤하다 보니 아침 운동을 자주 빼먹었는데, 자신도 인식하지 못하는 걸 어머니 고정숙이 신경 쓰고 있었다는 것에 종혁이 작게 감동한다.
“이제 바쁜 일도 없으니 다시 운동해야죠. 안 그러면 살 쪄요.”
“하긴 요새 좀 쪘더라.”
“어? 진짜?”
종혁이 놀란 얼굴로 몸 이곳저곳을 살핀다.
그렇지 않아도 오랜만에 운동을 해서 그런지 몸 여기저기가 잘 움직여지지 않았다.
그래서 나이가 들었나 싶었는데, 그게 아니라 단순한 운동 부족으로 인해 살이 찐 것 같다.
“쯧. 이제 빡세게 해야 하나…….”
“그러든가. 운동선수가 운동 관두면 살찌는 거 금방이라더라.”
그동안 몸을 유지한 종혁의 의지가 대단한 것이었다.
“나중에 식장에 들어갈 때 배는 나오지 말아야지.”
“하, 팩트라 뭐라 할 말이 없네.”
솔직히 요새 몸이 좀 무겁다 느끼던 참이긴 했다.
“뭐?”
“아닙니다……. 아, 맞아. 저 오늘 안 들어와요.”
“여자친구 때문에?”
“아니요. 다른 약속이요.”
“알았어. 안 그래도 엄마도 저녁에 이모들이랑 약속 있어.”
“어제 눈 왔으니까 조심하시고요. 사고 조심하시고요.”
“내가 너니?”
“아니, 그게 언제 적 이야긴데…… 그리고 그거 내가 당한 건데…….”
“흥!”
코웃음을 친 고정숙은 식사를 다 한 듯 식기를 챙겨 몸을 일으켰고, 종혁은 그런 어머니를 보며 억울해했다.
“쥐어뜯어 버리기 전에 입술 집어넣고. 나가기 전에 빨래나 돌려 놔.”
“뉘에…….”
짜아악!
“아악!”
“엄마는 먼저 출근한다.”
결국 얻어맞은 등짝을 긁으려 애쓰지만 손이 닿지 않아 더 미쳐 하던 종혁은 언젠가 꼭 복수하겠다는 눈빛으로 고정숙을 배웅했다.
그리고 현관문이 닫히자 미소를 지었다.
“빨리 털어 내셨네.”
순철과 순희가 없는 빈자리를.
다시 예전으로 돌아온 것 같은 아침 식탁의 모습에 흐뭇이 웃은 종혁은 마지막 한 숟가락을 입에 넣으며 기지개를 켰다.
“끄흐으으으!”
뿌드득!
“흣차! 예, 차장님. 전데요. 사람 하나 좀 따 보고 싶어서요. 그런데 그 사람이 좀 꺼림칙한 인물입니다. 문민정부 시절 민정수석이었던 양반인데…… 윽! 아니, 의심이 가서 그렇죠……. 예, 놈들과 연관된 것 같아서요.”
검사장이 언급한 존재인 민정수석비서관.
‘검사장의 말이 진실인지 아닌지, 아니면 함정인지 아닌지는 교차 검증을 해 보면 될 일이지.’
“예, 헨리. CIA가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게 문민정부 시절부터였다고 했나요?”
종혁은 방으로 향하며 나탈리아에게도 연락을 했다.
* * *
휘이잉!
“아, 씁.”
광주광역시 상무 지구의 어느 번화가.
칼날을 품은 바람이 온몸을 스치자 멋들어진 코트를 입은 장년인이 슬쩍 몸을 움츠린다.
그러자 그의 곁에 서 있던 2명 중 한 명이 침통한 표정으로 입을 연다.
“이만 차에 오르시지라, 회장님. 이러다 감기 걸리십니다.”
“……불.”
부하 직원의 걱정에 대답 대신 담배를 무는 중년인.
한숨을 푹 내쉰 부하 직원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그 담배에 불을 붙여 준다.
“스읍! 하아아.”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은 중년인, 태흥그룹의 회장 이태흥이 주변을 둘러보며 재밌다는 듯 웃는다.
그의 눈이 아련한 추억으로 젖어 든다.
“성광아.”
“예, 회장님.”
“기억나냐? 예전에 멋모르고 상무에 놀러 왔다가 밥숟갈 놓을 뻔한 거?”
움찔!
“……저도 한 대 피우겠습니다.”
딱히 허락을 구한 건 아니라는 듯 바로 담배를 문 부하 직원이 이태흥처럼 아련한 눈으로 주변을 둘러본다.
술집이나 카페보다 모텔이 더 많은 한적한 거리.
그의 시선이 옆으로, 고작 대로 하나의 차이지만 모텔보다 술집과 카페들이 가득한 메인 번화가로 향한다.
“기억나지라……. 어찌 잊어 버린다요. 내 손꾸락이 요로코롬 돼 버린 곳인디.”
굽히려고 노력해도 굽혀지지 않는 새끼손가락에 부하 직원의 눈빛이 서늘해진다.
바로 저곳이었다. 상무나이트가 있는 저곳.
지금으로부터 대략 15년 전 이맘때였을 것이다.
당시 목포의 일각을 차지하며 무서울 게 없어졌던 태흥파. 자축을 하기 위해 간부들만 모여 저곳 상무나이트를 찾았었다.
그러다 상무나이트, 아니 상무 지구를 쥐락펴락하고 있던 조직에게 걸려 버리고 말았다.
IMF, 전 국민이 예민하던 시절이라, 때문에 경찰과 검찰도 한 놈만 걸려라 눈에 불을 켜고 있던 시절이라 싸움은 일어나지 않았다.
대신 대표로 한 명의 손가락 하나를 내놓아야 한다고 했고, 부하 직원은 이태흥을 대신해 스스로 손가락을 찍었다.
그런데 그건 별로 아프지 않았다.
피를 보는 건 흉하다고 그냥 재떨이로 찍고 끝내자던 놈들의 그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선이, 그 좆같은 시선들이 영혼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그래, 덕분에 내 손가락이 멀쩡할 수 있었다. 그건 여전히 고맙다고 생각한다. 그때 말하지 않았지만, 솔직히 나 많이 쫄았었다.”
“회, 회장님!”
혹여 누가 들을까 주변을 살피는 부하 직원의 모습에 피식 웃은 이태흥이 부하 직원이 바라보던 번화가를 본다.
담배 연기가 다시 흩어진다.
“그랬던 우리가, 그랬던 병신들이 이제 저 상무를, 아니 광주를 먹었다.”
어디 광주뿐일까. 전라도 전체를 먹었다.
전라남북도 통틀어 딱 하나 있는 폭력 조직이 된 것이다.
“그 작은 목포에서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더 먹어 보겠다고 아옹다옹하며 겨우 목포서장, 광주지검 목포지청장에게 아양이나 떨던 핫바지가 이젠 광주시장, 전라남북도지사와 3천만 원짜리 와인을 마시면서 국책 사업을 따내고 있어.”
어디 그뿐일까. 전라도에서 시행되는 건설 하청 중 60퍼센트는 태흥그룹의 차지다.
눈을 감았다 뜨는 이 순간에도 돈이 불어나고 있었다.
“회, 회장님…….”
“이만하면 깡패로서 성공한 인생 아니냐?”
“예. 그렇지라…….”
이를 악문 부하 직원과 주위 부하들의 눈시울이 붉어진다.
“참말로 성공한 인생이지라…….”
이태흥은 흔들리는 목소리에 숨어 있는 작은 망설임에 피식 웃었다.
“왜? 서울로 진출하지 못한 게 아쉽냐?”
“아, 아니어라! 그런 생각은 꿈도 꾸지 않았당께요.”
이태흥은 담배 연기를 길게 뿜었다.
“서울, 욕심내지 마라. 거긴…….”
‘범, 아니 괴물의 아가리 속이야.’
“역시 밤이 좋나 봅니다.”
흠칫!
갑자기 들려오는 낯선 음성에 부하들의 눈이 도끼날을 품는다.
“깡패 새끼들도 감상에 젖는 걸 보면?”
‘그래, 저 괴물의 아가리.’
“아니, 이젠 기업가라 해 드릴까요?”
뚜벅, 뚜벅, 뚜벅!
귀를 가르는 칼바람 사이를 뚫다 못해 후비고 들어오는 묵직한 구둣발 소리와 눈을 한가득 채우는 거구의 사내.
“응? 이 회장님.”
종혁의 등장에 이태흥이 정중히 고개를 숙인다.
“오셨습니까. 이번에 치안감으로 진급하신다는 소식은 전해 들었습니다. 연락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나도 말을 함부로 해서 미안합니다, 회장님.”
이태흥은 종혁의 사과에 깜짝 놀라는 부하 직원들에게 잠시 물러나라며 손짓을 했고, 그들이 빠르게 물러나자 마른침을 삼킨다.
“제, 제 체면을 생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치안감님.”
고개를 드는 얼굴에서 감정이 사라져 있는 종혁.
심장이 쿵쾅쿵쾅 뛰기 시작한다.
종혁은 하얗게 질리는 이태흥을 가만히 응시하다가 푸근히 웃었다.
“뭘요. 나도 이 회장님이 자리를 지켜야 편하니까 이러는 거죠. 우리 상부상조하는 사이잖아요. 이번처럼 말이에요. 그쵸?”
“예, 예. 사, 상부상조. 하하.”
종혁은 겁에 질린 그의 모습에 피식 웃었다.
‘그래, 너희 깡패 새끼들은 언제나 그런 모습이어야 해. 언제나.’
기업을 이뤘다고 해서 근본이 어디 갈까.
이놈들은 그냥 깡패다. 여전히 깡패다.
경찰이 까라고 하면 까고, 기라고 하면 기어야 하는 깡패. 이놈들에겐 인권이나 존중 따윈 너무도 아까운 단어였다.
종혁은 담배를 물었다.
찰칵! 치이익!
“후우우. 이 동네에 있는 놈들이라고?”
“예. 한국 양아치 새끼들이 아니라 베트남 놈들입니다.”
“응? 베트남?”
자신들의 장악력에 문제가 생긴 게 아니라는 필사적인 항변에 종혁이 미간을 좁힌다.
“그놈들이 다시 광주에 기어들어 왔다고?”
이게 가능한 일일까.
종혁이 신안경찰서 서장 시절 쓸어버렸던, 베트남인을 대상으로 한 장기매매 및 인신매매, 마약 유통 베트남계 조직.
그로 인해 광주광역시에 있던 베트남계 조직이 자취를 감추게 됐는데, 그놈들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 거다.
“너희 쪽 묵인이 있어서가 아니고?”
종혁의 눈이 의심으로 물들자 이태흥이 다급히 손을 젓는다.
“절대, 절대 아닙니다. 제 목을 걸 수도 있습니다.”
만약 정말 자신이 그랬다면, 혹여 상무 지구를 관리하는 부하들이 그랬다면 감히 종혁에게 연락할 수나 있었을까.
아니, 연락을 했을 테지만, 그와 동시에 관련자들의 목도 함께 가져왔을 것이다.
그런 이태흥의 항변에 종혁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흐음…… 뭐, 그래요. 이 회장님이 그렇게까지 말하시니 믿어 드려야지.”
아무래도 상무 지구에도 베트남인들이 모여들게 된 것 같다.
“가, 감사합니다.”
고개를 살짝 숙이는 이태흥을 일견한 종혁은 담배를 던졌다.
“어디야? 춥다. 얼른 끝내자.”
“예!”
따아악!
이태흥은 손가락을 튕겼고, 그와 동시에 주변 도로에 세워져 있던 차들에서 검은 양복을 입은 이들이 튀어나와 거리 전체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 * *
“아흐으.”
상무 지구의 외곽, 어느 어두운 골목 안.
패딩에 목도리, 귀마개까지 한 베트남 남성이 발을 동동 구르며 골목 밖을 힐끔거린다.
그 순간 골목 밖에서 한 동남아 남성이 마치 누군가를 찾는 듯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스쳐 지나간다.
그에 눈을 빛낸 베트남 남성이 재빨리 입을 연다.
“여기야, 여기!”
움찔!
골목 안을 보고 눈을 가늘게 떴다가 이내 주춤주춤 안으로 들어오는 남성.
베트남 남성이 푸근히 웃는다.
“사장님 나빠요? 맞아?”
이상한 이름에 눈에서 경계심이 사라진 동남아 남성.
골목 안을 두리번거린 그가 양팔로 몸을 감싸며 얼굴을 일그러트린다.
“왜 여기 있냐. 여기 춥다, 많이. 좋은 곳 많다.”
“말하기 힘들면 우리나라 말로 해.”
“……너 방금 한국어 우리나라라 말한다.”
“아…….”
입맛을 다신 베트남 남성은 머리를 긁적였다.
“뭐, 대충 말 통하니까 그냥 대충 하자.”
“알았다. 물건은?”
“그보다 돈은? 돈 없으면 물건 못 보여 줘. 오케이?”
“……여기.”
동남아 남성이 고무줄에 묶인 만 원짜리 지폐 뭉치를 꺼내자, 씩 웃은 베트남 남성이 주머니를 뒤져 알약과 가루가 든 작은 봉지를 꺼내 든다.
그 순간이었다.
“어이, 동작 그만.”
뚜벅뚜벅!
그들의 긴장된 청력 속으로 들어오는 구둣발 소리들과 골목 입구로 들어서는 검은 양복의 덩치들.
“……씨발!”
뭔가를 직감한 베트남 남성은 그대로 몸을 돌려 골목 안으로, 반대쪽 출구로 몸을 날렸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뚜벅뚜벅!
반대쪽 출입구에서도 모습을 드러내는 검은 양복의 덩치들.
하얗게 질린 베트남 남성은 다급히 다리를 멈추지만 결국 미끄러져 넘어졌고, 선두에 선 대머리의 사내가 꺼내 든 회칼로 머리를 긁적인다.
“허쭈? 감히 우리 나와바리에서 약을 판 것도 모자라 튀어? 일루 와, 씨벌놈아. 확 씹창을 내서 육젓을 담가 버릴랑께.”
‘빌어먹을, 태흥파!’
어떻게 알아차린 것인지 몰라도 광주광역시를 비롯해 전라도 일대를 꽉 잡고 있는 태흥파가 나선 거다.
가로등 불빛에 번뜩이는 회칼의 시퍼런 칼날을 본 베트남 남성은 다급히 외쳤다.
“미, 미안하다! 몰랐다! 다신 안 온다!”
“아따, 이 씨벌놈이 이럴 땐 또 외노자 흉내를 내네. 아까 다 들었어, 씨벌놈아. 아주 우리나라 말이 유창하더만? 네거티브 스치커여, 뭐여?”
“…….”
“왜? 계속 씨불여 보지 왜…….”
빠아악!
갑작스레 박이 터지는 소리에, 방금까지 위협을 하던 조폭의 머리가 앞으로 숙여지다 못해 고꾸라지는 모습에 베트남 남성의 눈이 커진다.
그런 그의 눈에 새롭게 비치는 덩치 큰 사내, 종혁과 이태흥.
“네이티브 스피커다, 이 무식한 새끼야.”
“……끄응. 아따 근다고 대굴빡을 때리고 그런다요.”
“뭐?”
“아, 아닙니다요.”
찔끔하며 물러나는 대머리를 일견한 종혁이 베트남 남성에게 걸어가 그 앞에 쪼그려 앉는다.
그리고 그 턱을 잡아 이리저리 돌려 본다.
“흐음. 뽕쟁이 면상이 아니네? 뽕쟁이 새끼가 또 뽕은 안 했나 보다? 아니, 마약 조직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건가?”
이태흥의 전화를 받고 여기까지 온 이유인 마약.
광주광역시에 마약이 퍼지고 있다는, 그것도 외국인 밀집 지역이 아닌 일반 유흥가에서도 유통되고 있다는 정보에 종혁은 이 먼 광주광역시까지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마약 조직의 조직원답지 않게 낯빛이 꽤 정상인답다.
“하, 한 번만 사, 살려 주세요. 다, 다시는 얼씬도 안 할게요!”
“그건 네 맘대로 하시고요.”
자신이 알고 싶은 건 하나뿐이다.
“네 대가리. 바지사장 말고 여기저기 옮겨 다니느라 수배가 안 되고 있는 네 대가리. 지금…… 어디 있냐?”
“흡……!”
종혁의 눈빛이 살벌해지자 베트남 남성이 다급히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는다.
그에 종혁이 어이없다는 듯 웃는다.
“오, 말 안 해?”
주제에 의리는 있다.
피식 웃은 종혁이 어느새 회칼을 다시 꺼내 든 대머리를 바라보는 순간이었다.
“오케이! 거기까지!”
“뭐여!”
“뭐시여!”
골목을 막은 태흥파 조직원들 뒤에서 들리는 외침과 소란.
이윽고 태흥파 조직원들을 뚫으며 험한 인상들이, 종혁에겐 퍽 익숙한 인상들이 들어온다.
“어허이. 동작 그만하라고 했잖여.”
“비켜, 씁! 안 비켜? 그러다 대굴빡 터져야잉?”
“아따. 이 회장님, 오랜만입니다잉? 그려. 송충이는 솔잎을 주워 먹는 법이제, 글제?”
‘맞네. 하아…….’
서로 익숙해 보이는 모습에 한숨을 푹 내쉰 종혁이 몸을 일으켜 이태흥들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이들에게 다가갔다.
“경찰이십니까?”
“그려, 짭새여. 그러는 넌 처음 보는 면상…… 응?”
종혁의 얼굴을 본 험한 인상들이, 형사들이 눈을 껌뻑인다.
“어…… 충성?”
“예, 충성. 수고하십니다.”
종혁의 씁쓸한 표정에 경악하는 형사들.
“오메, 씨벌! 이, 이건 또 뭐시데요?”
본청의 본부장, 최종혁 경무관이 여기 왜 있는 것일까. 그것도 조폭들과 같이.
“그러게요. 이게 정말 무슨 상황이래요…….”
종혁은 이 꼬여 버린 상황에 어이없다는 듯 웃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