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10th Circle mage RAW novel - Chapter 40
40
24.금의환향(2)
서울시 종로구에 위치한 대동타운.
10년 전, 대동그룹 본사가 외국계 투자회사로부터 건물을 매입해 이름을 바꾼 빌딩이 바로 이 대동타운이었다. 30층으로 이루어진 빌딩은 1층을 제외한 전층이 대동그룹의 각 계열사들이 사용하고 있었다.
이곳 대동타운에서도 제일 꼭대기 층인 회장실은, 모든 사무실을 통틀어 가장 큰 100평 규모의 드넓은 장소였다.
천 명 이상 수용이 가능한 그곳에, 오늘 그룹의 부자(父子)가 단둘이서 은밀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진광아. 아리는 어떻게 됐냐?”
대동그룹의 회장 유필준은 60대 중반의 얼굴에, 검버섯이 가득한 노인이었다. 옅은 눈썹에 쨉쨉이 눈을 한 가자미 상이 맞은편에 앉은 한 청년에게로 향했다.
회장실 중앙에 놓인 회의용 탁자에는 그의 첫째 아들 유진광이 앉아 있었다.
장남 유진광.
그는 아버지를 빼다 박은 것처럼 똑같이 생긴 얼굴에, 30대 중반으로 젊어 보이는 남자였다.
유진광은 아버지의 물음에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변명하듯 둘러댔다.
“저, 그게······. 웬 제비 같은 놈이 아리에게 들러붙어서 기둥서방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뭐야?”
유필준은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이던 도중, 아들의 보고에 사납게 눈을 부릅떴다.
“내가 그년을 내 앞으로 데려오라고 했어, 안 했어?”
“예, 했지요.”
“그런데, 그년한테 꼬이는 날파리 새끼 하나 제거 못 해서 지금 나한테 변명을 하는 거냐?”
“아버지. 그놈이 보통내기가 아닙니다.”
“보통내기가 아니면? 어디 재벌 집 아들이냐? 어떤 새끼야, 그 새끼.”
“그냥 거지새끼입니다. 학벌도, 직업도 모두 변변찮은 놈이에요.”
“근데 그런 새끼 하나 해치우지 못해서, 지금 그러고 있냐?”
“놈에겐 이상한 힘이 있습니다. 그 녀석하고 악수를 하다가 그만 감전을 당했습니다. 놈은 분명 이상한 마법을 부리는 게 틀림없습니다.”
쒜액, 퍼억!
“으악!”
유진광은, 아버지가 집어던진 유리 재떨이를 머리에 얻어맞고 바당을 뒹굴었다.
“등신 같은 새끼. 뭐? 이상한 힘? 마법?”
“······.”
“악수하다 감전이 돼?”
“······.”
“야이, 등신 새끼야! 그 새끼가 손에 전기충격기를 끼어 놓고 너를 놀린 거 아니야, 병신 새끼야!”
“······.”
“슈퍼에서 백 원 넣고 뽑기 돌리면 나오는 그거에 놀라서 바지에 오줌 지리고 온 거냐?”
“···아버지.”
유진광은 억울했다.
분명 정체 모를 압도적인 힘에 손이 감전되어 의식을 잃었다. 멸치 같은 놈의 손아귀를 악력으로 쥐어지르고, 아리 앞에서 힘자랑 좀 해보려 했는데, 오히려 자신만 게거품을 물고 개쪽을 당하고 말았다.
원래 유진광은 아버지에게 특명을 받았다.
부모님의 결혼 기념물을 고르기 위해 아버지와 함께 들린 아리 주얼리샵.
아버지는 그곳에서 첫눈에 아리에게 반하고 말았다. 서구적인 몸매와 이지적인 얼굴, 그리고 그 안에 서린 동양적인 기품까지.
아버지뿐만 아니라, 유진광 또한 아리에게 홀딱 반하고 말았다. 아버지는 그날 이후로 자주 아리 주얼리샵에 들러서 아리에게 추근댔지만, 늘 실패했다.
아리는 스폰서 제의 같은 건 칼같이 거절했고, 유필준이 세컨드 마누라나 비밀 연애를 하자고 해도 모조리 거부했다. 그녀는 유부남과는 교제하지 않는다는 핑계로, 유필준의 온갖 애정공세와 기약 없는 약조를 싸그리 무시했다. 애초에 아리는 남자로서 유필준에게 호감이 없었다.
하지만 유필준은 달랐다.
유필준은 당장이라도 본처와 이혼하고, 아리를 정식으로 데려오고 싶어 했다. 하지만 본처가 다른 유명 그룹의 딸이었고, 철저한 정략 관계로 결혼했기 때문에 함부로 이혼하지도 못했다.
그랬다간, 그룹이 절반으로 쪼개지며 그동안 피땀 흘려 일구어왔던 재산이 순식간에 반토막이 날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유필준은 생각을 바꿨다.
돈으로 회유해도 안 넘어온다면, 억지로라도 끌고 오기로. 일단 아들에게 최대한 온순하게 아리를 꼬셔오도록 유도했다. 하지만 유진광은 아버지에게 아리를 넘기기 전에 자신이 먼저 한 번 해보려고 아리에게 추근대서 그녀에게 더더욱 비호감만 샀다.
결국 이준혁 앞에서 씻을 수 없는 치욕만 얻고, 아리 주얼리 샵에는 얼씬도 하지 못했다.
바닥에 엎어진 유진광이 얻어맞은 재떨이를 얌전히 주워와 갖다 바치자, 유필준이 신경질적으로 담배를 비벼 끄며 외쳤다.
“그년 언제 귀국한다고 했지?”
“오늘입니다.”
“확실해?”
“공항 편 확인했습니다.”
“당장 그년을 내 앞으로 끌고 와. 오늘 이곳에서 화끈하게 한 번 놀아 볼라니까. 으하하하ㅡ!”
“예, 아버지. 제가 그년 머리끄댕이를 잡아채서라도 끌고 오겠습니다.”
유진광은 아버지의 양복 바지 중앙이 불룩 솟아오른 걸 쳐다보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아마 아버지는 지금 상상속으로 아리를 자신의 무릎 앞에 꿇린 채, 그녀와 야한 놀이를 하는 상상을 하며 홍콩에 가 있을지도 몰랐다.
유진광은 아버지의 그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이를 악물며 회장실을 나갔다. 그동안 자신이 일처리가 많이 부족하고, 그룹을 이끌어갈 능력이 떨어진다고 아버지와 동생이 대놓고 무시했었다. 동생인 유백현에게 아버지의 신임이 많이 넘어갔던 것이다.
하지만, 이 기회에 아리를 갖다 바치고 아버지를 잘 구워삶는다면 어쩌면 자신에게도 그룹 승계권의 기회가 올지도 몰랐다.
*
“회항하라고, 이것들아.”
아리와 함께 나란히 숙면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귀에 거슬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거 놔!”
“뭐지?”
나는 눈을 번쩍 뜬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소란은 맨 뒷좌석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고객님, 진정하시고······.”
퍼억!
“꺄악ㅡ!”
정신이 혼미해 보이는 파마머리의 청년이, 자신을 말리던 승무원의 배떼지를 세게 걷어찼다.
철푸덕.
“으으윽······.”
승무원은 배를 붙잡고 쓰러졌고, 기내엔 난리가 났다. 파마머리 청년은 곧바로 기내에서 받은 땅콩을 한 움큼 쥐어 들더니 승객들을 향해 그것을 집어 던지기 시작했다.
“꺄아악!”
“뭐야, 씨!”
사람들은 귀국 도중 어이없는 횡액을 당하자, 깜짝 놀라서 뒤를 돌아보았다.
“회항하라고, 이 잡것들아!”
파마머리는 사람들이 놀라든 말든, 계속해서 땅콩을 집어 던졌다.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놈이 던지는 땅콩의 중력계수를 올려서 멀리 날아가지 못하게 했다.
“어, 이거 왜 멀리 안 날아가?”
녀석은 땅콩이 담긴 쟁반째로 사람들에게 집어 던졌으나, 쟁반은 그의 발치 앞으로 떨어져 발등을 찍었다.
“으악!!! 뭐야, 이거?”
저벅, 저벅.
나는 당황한 녀석에게 똑바로 걸어가 마주 섰다.
“아, 존나 시끄럽네. 너 갑자기 뭔데 난동이냐?”
“뭐?”
녀석은 얼굴이 시뻘개진 채로 나에게 달려와 멱살을 붙잡았다.
“다시 한 번 말해봐, 이 잡놈아!”
기내에 있던 승객들은 이 광경을 어이없이 쳐다보다가, 갑자기 스마트폰을 들어 촬영하기 시작했다.
“찍지 마! 이것들아, 퉤! 퉤! 이 잡것들!”
녀석은 정신이 혼미한 와중에도 주변을 신경 쓰며 히드라처럼 사방으로 침을 뱉었다.
나는 놈이 어떤 녀석인지 궁금해, 마인드 리딩으로 녀석의 기억을 읽어나갔다.
-으아아, 약에 취한다. 씨.
-어, 근데 이 새끼들이 왜 날 찍고 있는 거지?
-눈앞에 이 멀대 같은 놈은 뭔데 끼어들고 난리야? 감히 내가 누군지 모르나?
나는 녀석의 기억을 대강 읽어내곤, 피식 웃었다. 녀석은 내 멱살을 잡은 채였지만, 놈의 손가락은 힘이 빠져서 곧 그것을 풀어버렸다. 나는 마법으로 구긴 자국을 말끔히 편 채 녀석을 노려보았다.
“지금 사람들이 실시간으로 촬영 중이니까, 니 상태가 어떤지 사람들에게 피력해봐. 그럼 감형이 될지도 모르니까. 검사나 판사한테 돈 좀 찔러주고, 구워삶으면 정신 미약으로 감형받을지도 모르잖아?”
“뭐?”
-텔 미 더 트루스.
나는 녀석에게 최후통첩을 날린 후, 곧바로 언령 마법을 시전했다.
“너 마약했지?”
“어··· 어. 그래 약했다! 어쩔래?”
“대단한 놈이네. 아까 전 입국 심사할 때 어떻게 공항에서 안 걸렸냐?”
“그게, 몰래 뒤로 필로폰을 넣어서 왔거든. 그래서 마약 탐지견들도 못 맡았··· 으아아악! 그만 물어봐 이 미X 놈아!”
놈은 눈을 히번덕거리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미 사방엔 자신을 찍는 카메라들로 가득했다. 모든 포커스가 파마머리의 얼굴에 집중되었다.
“찍지마! 찍지 말라고!”
놈은 카메라를 들고 찍어대는 사람들에게 다가가며 위협적으로 주먹을 휘두르려고 했다.
하지만.
-스턴!
내 마법에 녀석은 꼼짝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차렷 자세가 됐다. 사람들은 뒤로 물러서면서도 촬영을 멈추지 않았다.
“어서 이 녀석을 묶으세요. 그래도 자신의 입으로 죄를 실토하는 걸 보면 마지막 양심은 남아 있나 보네요. 입은 좀 걸레 같아도.”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저 멀리서 경호원들이 달려왔다. 기내에서 상시 대기하다가, 급작스러운 상황에 놀라 객실로 뛰어들어온 것이다.
근데.
“어, 이 사람이 난동부린 사람이 맞나요?”
차렷 자세로 눈알이 시뻘개진 파마머리를 쳐다보며 경호원들이 내게 물었다.
“예, 맞습니다. 방금 전까지 땅콩을 집어 던지고 난리였는데, 제가 한마디 하니까 갑자기 얌전해졌네요. 그 전까진 승무원들을 폭행하고 그랬습니다.”
“당장 묶어야겠군요.”
“예, 그래야죠.”
경호원들은 볼 것도 없다는 듯, 파마머리에게 달려들어 두 손과 두 발을 결박했다.
“이거 놔, 이 잡것들아! 퉤, 퉤, 퉤!”
녀석은 스턴마법으로 온몸이 정지된 상태에서 입만 나불거리며 경호원들에게 사정없이 침을 내뱉었다.
하지만.
“으아악!”
얼굴에 침을 얻어맞은 경호원이 화가 났던지, 파마머리의 두 팔을 사정없이 뒤로 꺾어, 수갑을 채우듯 바닥에 엎어 뜨렷다.
“항공기 안전운항 저해 폭행죄에 의거해, 지금부터 당신을 출국할 때까지···.”
“야이 퉤, 퉤!”
녀석은 경호원의 경고 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침을 뱉어댔다. 놈의 행동에서 버릇없이 자란 게 고스란히 티가 났다.
‘부모가 얼마나 오냐오냐하면서 키웠으면, 저런 망나니가 다 되었을까?’
돈 많은 부모를 만나서 20대에 최고급 퍼스트 클래스를 이용하고, 남들은 평생 벌어도 못 살 슈퍼카와 예쁜 미녀들을 끼고 다니며 마약이나 빠는 재벌3세. 딱 그 사이즈였다.
‘멍청한 놈. 마약 한 거까지 실토했으니, 어떻게 되나 한번 두고 보자.’
녀석의 집안이 얼마나 부자인지는 몰라도, 대한민국에서 마약에 대한 형량은 매우 센 편이었다. 알콜로 인한 폭행이면 심신미약 상태라고 오히려 감형을 때려주는 미친 나라지만, 마약은 또 달랐다. 최소 집행 유예는 안 뜨겠지. 아니, 뜰 수도 있나?
나는 놈에 대해 그냥 신경을 꺼버리기로 결심했다. 잠깐의 난동이 끝난 후, 자리로 돌아오자 아리가 깨어 있었다.
“준혁 씨! 위험하게 먼저 나서면 어떡해요?”
아리는 쓰고 있던 토끼 안대마저 벗어서 내던져 버린 채, 잔뜩 화가 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가만히 앉아서 땅콩 얻어맞는 것보다는 낫잖아요?”
“네?”
“남자가 쪼잔하게 찌그러져 있는 거보다는, 먼저 나서서 제압하는 게 낫죠.”
“그래도 위험한데······.”
“안 위험해요. 위험한 건 저놈이지. 진짜 맨정신으로 제대로 싸워도 제가 이겨요.”
“휴······.”
나의 싸움 자랑에 아리는 괜스레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숙였다. 나는 그런 그녀가 안쓰러워서 그녀의 어깨를 토닥여줬다.
“미안해요. 다음부턴 안 나설게요.”
“진짜죠?”
“생각 좀 해보고······.”
“우이씨!”
아리는 피식 웃으며 내 가슴을 툭, 쳤다. 보고만 있어도 행복해지는 그녀 덕분에 내면에서 솟아올랐던 화가 씻은 듯이 풀렸다. 히드라처럼 침을 찍찍 뱉던 녀석은 경호원들에 의해 청테이프로 입이 동봉된 채, 한국에 도착할 때까지 좌석에 꽁꽁 묶여서 갔다.
*
기내의 난동사건은 SNS에 의해 빠르게 퍼져나갔다. 트에터, 페이드북, 무튜브 등등···.
퍼스트 클래스를 이용하던 승객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촬영 영상을 퍼다 날라서,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까지 올랐다.
얼마 안 있어, 마약을 하고 난동을 피운 녀석의 신상에 대해 올라왔는데 모 중소기업의 장남인 것으로 밝혀져 큰 논란이 되었다.
이미 김포 공항엔 무수히 많은 기자들이 카메라를 들이밀곤 촬영에 한창이었다.
“아리 씨, 이쪽으로 와요.”
나는 아리의 손을 꼭 붙잡고, 광왜곡 마법을 사용했다. 그러자 공항 내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우리를 없는 사람처럼 못 보고 지나갔다. 이번에 같은 항공을 이용했던 모든 승객들은 기자들에게 붙들려 인터뷰를 해야만 했다.
나와 아리는 그 틈새로 투명인간처럼 지나가, 공항의 택시 정류장까지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었다.
“휴. 기자에게 붙들렸으면 두세 시간은 날릴 뻔했네요.”
“이 선글라스 덕분에 기자들이 함부로 접근하지 못했을지도 모르지요.”
나와 아리는 어느새 검은색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있었다. 보석 경매에 참가하기 위해, 해외로 출국하기 전 아리가 골라줬던 검은색 커플 선글라스였다.
“일종의 아우라라고나 할까요. 아무튼 빨리 집으로 가죠.”
“네, 저도 최근에 너무 많은 일들을 겪어서 저도 좀 피곤하네요.”
아리가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녀의 어깨를 감싸고 나란히 택시 정류장으로 걸어갔다.
“성북동으로 가주세요.”
“예에~”
50대 중반의 체크무늬 셔츠를 입은 택시기사가 중저음의 목소리로 대답하며 엑셀을 밟았다.`
부우웅~
아리는 어느새 내게 기대어 잠이 들었고, 나는 창문을 내려 바깥 풍경을 쳐다보았다.
16억8천400만 달러.
우리돈으로 약 1조7천억 정도 되는 돈이, 그것도 현금으로 내 계좌에 꽂혀 있었다. 조세회피처 계좌라 세금도 거의 안 냈다.
고스란히 내 돈이었다.
‘4억으로 시작한 돈이 어느새 많이 불었군······.’
생각하면 할수록, 정말 꿈만 같았던 시간이다. 이계로 넘어가 100년 동안 뒹굴고, 죽을 고생을 하며 마왕들과 싸우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잠까지 줄여가며 방법을 강구했다.
결국 집으로 귀환하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10서클의 경지에 올랐고, 귀환 후 가족들과 돈 걱정 없이 살기 위해 많은 보석들을 싸 들고 돌아왔다.
그리고 지금,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이 이루어졌다.
아무리 써도 다 못 쓸 돈이 내 손안에 들어왔고, 지금 내 옆엔 이렇게 사랑스럽고 예쁜 여자가 내 어깨에 기대어 잠들어있었다.
‘아리······.’
이젠, 아리의 얼굴을 쳐다볼 때 아르젠의 얼굴은 잘 떠오르지 않았다. 아리 그 자체. 아르젠과는 또 다른 성격의 그녀가 사랑스러웠다.
그렇게 상념에 빠져 바깥 풍경을 쳐다보고 있는데, 택시가 좀 이상했다.
“아저씨, 성북동으로 안 가고 지금 어디 가시는 거예요?”
“예?”
체크무늬 택시기사는 음악을 듣는 척, 딴청을 피우며 내게 되물었다. 공항에서 탄 택시가 동쪽의 서울로 안 가고, 북쪽인 김포 쪽으로 방향을 튼 채 직진하고 있었다.
주변은 도로만 덩그러니 있는 허허벌판이었다.
나는 네비게이션을 쳐다보며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짓는데,
부아아아앙!
택시 주변으로 5대의 검은색 에쿠스들이 바짝 따라붙었다.
총 5대의 에쿠스가 우리가 탄 택시를 빙 둘러싼 채 바짝 다가오고 있었다.
“어이, 멸치 자식!”
조수석으로 바짝 다가온 에쿠스 한 대에서 창문을 열리더니, 30대 중반의 가자미 얼굴이 튀어나왔다.
“누군가 했더니, 그때 그 망나니 놈인가?”
나는 몇 주 전, 아리 주얼리샵에서 만났던 양아치 녀석을 떠올리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때 악수를 하면서, 아주 쥐어짜듯이 힘을 주길래 잠깐 놀려줬었는데,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이렇게 쫓아오다니.
나는 품속에서 담배 하나를 꺼내 입에 물며 불을 붙였다.
“지금 어디로 가는 거냐?”
그리고 택시 기사를 향해 반말조로 물었다.
“저승길.”
택시기사는 뒤도 안 돌아보고 짤막하게 대답한 후, 휘파람을 불며 핸들을 꺾었다.
끼이익.
그러자 택시가 급작스럽게 멈춰섰고, 주변을 따라오던 에쿠스들도 동시에 따라서 멈춰섰다.
“주··· 준혁 씨!”
아리는 택시기사의 갑작스러운 급정거에 깜짝 놀라 잠에서 깼다. 그녀가 부딪히지 않도록, 나는 그녀의 몸을 마법으로 꽉 붙들어 맸다. 그리고 평온한 목소리로 그녀를 타일렀다.
“잠깐 주무시고 나면, 다 끝나 있을 거예요.”
“준혁 씨···. 위험······.”
아리는 곧바로 잠에 빠지며, 스르륵 내 가슴에 얼굴을 기댔다. 나는 아리를 좌석에 안전하게 눕힌 후, 차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어째 조용히 귀국하나 했는데, 세상이 날 가만두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