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10th Circle mage RAW novel - Chapter 60
60
36.마법 아티펙트
“더 이상 가르칠 게 없네요.”
아니, 애초에 가르칠 필요가 없었네요.
아리는 그렇게 말하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녀가 준비해온 역대 10년 치 모의고사, 수능, 주요 문제출제지 등을 내가 한 문제도 빠짐없이 다 맞혀버렸다.
게다가, 그녀가 수험생 시절 쓰던 오답 노트와, 수능 노하우 비결 노트도 펼칠 새가 없었다.
시험을 보는 족족 다 맞혀버리니, 과외 하러 온 아리가 되려 할 게 없어서 뻘쭘해진 상황이었다.
“오답노트랑 노하우 비결 노트 한 번 줘보세요.”
나는 아리에게서 그녀의 수험생 시절 노트를 받아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살포시 펴보았다.
거기엔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글씨체로 빼곡히 적어나간, 그녀의 수험생 시절의 생각들이 가득히 적혀있었다.
‘재미있군······’
풋풋한 19살, 고3 수험생 시절 아리를 머릿속으로 떠올려보며, 나는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아직 젖살도 안 빠지고, 지금보다 더 어렸겠지. 지금도 많이 동안이지만, 그땐 더 어려 보였을 것이다.
“뭘 그렇게 웃어요? 제 노트가 재밌나요?”
“네. 저는 한 번도 수험생활을 해본 적이 없어서, 이런 건 처음이거든요.”
“처음인데 되게 잘 푸시네요.”
“잘 푸는 거랑, 이거랑은 또 다르죠. 타고나는 거랄까?”
“치, 못됐어.”
아리는 삐친 척을 하며 팔짱을 끼고 고개를 돌렸다. 나는 피식 웃으며, 그녀의 팔을 잡았다.
“오늘 와줘서 고마워요. 많이 도움 됐어요.”
“글쎄요. 사실 딱히 가르칠 게 없긴 해요······”
아리는 내 손에 이끌려 가까이 오더니, 우물쭈물한 표정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사실 오늘 나를 위해 과외해 주겠다고 고딩 시절 책가방까지 들고 와 이것저것 바리바리 싸 왔다.
하지만, 그녀의 말대로 나는 더 이상 배울 게 없었다. 이젠 의학 관련 공부도 전부 뗀 상태고, 머릿속 분할 상념으로 수천만 번의 실전 시뮬레이션까지 모두 끝마쳤다.
지금 당장 수능을 만점 받고, 거기다 암 환자까지 수술해도 완벽한 결과가 나올 것이다.
‘애초에 나는 다른 사람과 많이 다르니까······’
평소에는 그냥 사람들과 장난을 치며 지내니 잘 몰랐는데, 이렇게 능력을 발휘할 때가 되면, ‘내가 다른 사람과 많이 차이가 많이 나는구나’ 하는 걸 느꼈다.
‘규격 외’라고나 할까.
심지어 한국대를 나온 최고의 엘리트, 아리조차 내 앞에서 작아지는 모습을 보였다.
나는 그녀를 끌어당겨 내 무릎에 앉혔다.
그리고 팔로 그녀의 몸을 감싸며 등에 얼굴을 파묻었다. 등까지 내려온 그녀의 긴 생머리에서 좋은 냄새가 났다. 그 냄새가 되게 풋풋하고 좋았다.
“공부는 이쯤하고, 우리 이제 사업 얘기나 하죠.”
“어, 음······”
아리는 내 돌발적인 행동에 얼굴을 붉히면서, 손 부채질을 했다. 많이 덥나 보다.
내가 얼음 마법으로 식혀줄까?
“아리 씨. 제가 수능 공부하다가 갑자기 생각난 게 있는데요.”
“무슨 생각이요?”
아리는 내가 화제를 전환하자, 옳다구나 하며 그것을 받았다.
“제가 수능 공부를 하다 보니까, 수능 관련 아이템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수험생활에 많이 도움 될 거 같기도 하고.”
“수능 아이템이라면 어떤?”
“음······, 예를 들면 집중력을 도와주는 팔찌라던가, 공부효율을 100배까지 끌어 올려주는 목걸이라던가, 기억력을 쏙쏙 올려주는 반지라던가······”
“푸하핫. 그게 뭐예요.”
“왜요, 이상해요?”
“그런 건 이미 시중에도 많이 있잖아요. 그런데 우리가 거기에 가세해서 무슨 이득이 남겠어요?”
역시 그녀는 비즈니스 걸답게, 내가 제시안 사업 아이템이 얼토당토않다는 걸 바로 캐치했다.
확실히 이런 상황에서도 냉철한 이성을 유지하는 게 실로 놀라웠다.
“그래도 몇 개 만들어보죠. 안 팔리면 제가 다 쓰면 되는 거고요.”
“준혁 씨를 위해 제가 맞춤으로 손수 제작해드릴게요.”
“아뇨, 그런 거 말고.”
나는 내 무릎에 올라탄 아리의 어깨를 잡고, 그녀의 몸을 돌려 나를 마주 보게 했다.
‘와, 예쁘긴 진짜 겁나 예쁘구나······’
정면으로 가까이 보고 있으니, 정말 할 말이 없게 만드는 얼굴이었다. 작은 얼굴에 큰 눈망울, 핑크빛 볼과 약간 불그스름한 입술은 남자의 가슴을 심하게 방망이질 치기에 충분했다.
“왜요?”
아리는 내가 빤히 자신을 바라보자, 뻘쭘했던지 시선을 위로 돌리며 고개를 갸웃했다.
“음, 이번에 대동그룹에서 투자받는 100억 있잖아요.”
“네.”
“그걸로 이번 수능 아이템을 만들어보는 거죠. 어차피 우리 돈으로 만드는 것도 아닌데 망해도 상관없잖아요?”
“그쪽에서 정말 100억 원을 투자해 준대요?”
“잠시만요.”
나는 아리의 물음에 곧바로 스마트폰을 꺼내 유필준에게 직통으로 전화를 걸었다.
“네, 필준 씨. 제가 저번에 말했던 아리 주얼리샵 투자 건 말인데요. 그거 오늘 바로 가능합니까? 예. 100억 원이요. 가능하다고요? 네, 그럼 잠시만요. 아리 주얼리샵 사장님 바꿔드리겠습니다.”
내가 아리에게 폭탄을 토스하자, 그녀는 질겁을 하며 양손을 내저었지만 이미 늦었다.
“여… 여보세요······”
아리가 개미만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자.
“아리 씨. 저번엔 제가 정말 죄송했습니다. 사죄드리겠습니다.”
유필준은 바로 사과부터 했다. 저번에 내게 된통 당한 이유가 아리에 대한 자신의 욕구 때문인 것을 깨닫고는, 그 일을 땅을 치고 후회했던 것이다.
유필준는 자신의 중간다리를 잘못 놀린 것에 대해, 아마 죽을 때까지 후회할지도 몰랐다.
“아··· 아니에요······”
아리는 괜시리 내게 눈을 흘기며, 폭탄 토스에 대한 질책을 퍼부었다. 나는 그런 아리의 시선을 즐기며 휘파람을 불다가 그녀의 허리를 꽉 껴안았다.
“꺄악~”
“······”
아리의 갑작스러운 신음에, 수화기 너머에서 약간 헐떡거리는 숨소리가 들려왔다. 아마, 내가 아리와 단둘이 무슨 짓을 하는지 머릿속으로 오지게 짱구를 굴리는 거 같았다.
나는 유필준의 상상력을 마구 자극하기 위해, 아리의 몸을 간지럽히기도 하고, 일부러 웃긴 표정을 짓기도 했다.
*
“응, 응······”
“…”
유필준은 이를 악물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아리의 신음은 너무나도 자극적이었다. 그동안 기생충에게 당한 스트레스 때문에 죽어 있던 물건이 벌떡 서버릴 만큼.
“아무튼, 그럼 저녁에 뵐까효오오~?”
“···네.”
아리는 연신 콧소리를 내며, 미약한 신음을 냈다. 유필준은 아리가 그 멸치새끼랑 무슨 음X한 짓을 하고 있을지 궁금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당장이라도 두 놈팽이들에게 찾아가서, 그것을 구경이라도 하고 싶었다.
“네에에. 알겠어요오오. 그럼 이따, 으흐흥······ 아잉!”
“······”
씨발······
유필준은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아리의 비음 소리 때문에 흥분해서 안절부절하지 못했다.
“네, 그럼 저녁에 저희가게로오 오세~ 아잇, 준혁 씨 그만 해욧!”
“···네, 그럼 제가 저녁에 아리 주얼리 샵으로 가겠습니다.”
“네, 그러엄, 끊을게요오~ 흐아아아앙~”
뚝.
그렇게 아리의 단말마의 신음을 끝으로, 전화가 뚝하고 끊켰다.
“야이, 씨바알ㅡ!”
퍼석!
유필준은 너무나도 화가난 나머지, 들고 있던 스마트폰을 땅바닥에 내팽개치고 말았다.
“헉, 헉, 허억······”
결국 자신이 그렇게도 원했던 아리는 다른 놈팽이에게로 넘어가고, 자신은 그동안 아리에게 해왔던 입발린 립서비스를 그대로 실천할 때가 온 것이다.
-네가 나에게 시집온다면, 그룹 전체를 주겠다.
-얼마를 원하냐? 월 10억? 연간 100억 씩 통장에 꽂아줄게.
-내가 뭐가 부족한데? 돈이면 돈, 명예면 명예. 없는 게 없는 나야. 그깟 나이 때문에? 의외로 젊은 놈들은 말빨만 번지르르하지 실속은 1도 없어. 나 같은 중후하고 돈 많은 중년 남자가 대세라고.
아리를 꼬시기 위해 해왔던 허언들을, 이제 지켜야 할 때가 왔다. 물론 그녀와 결혼하는 건 물 건너갔지만, 다른 건 다 지켜야 했다.
연간 100억씩 꽂아주기로 했던 약속, 그리고 그룹 전체를 주겠다는 약속.
다, 아리를 한 번 따먹어 보기 위해 했던 립서비스였다. 하지만, 결국 그것이 족쇄가 되고, 현실이 되어버렸다.
유필준은 그 족쇄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느꼈다.
“이런, 씨바아아아알ㅡ!”
그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고함을 내지르며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얼마 남지 않은 머리카락이 그의 손에 의해 쥐어 뜯겼다.
이상한 마법에 감염된 후, 60년 동안 빠진 머리가 일주일 만에 다 빠져버렸다.
‘그놈의 성욕 때문에······’
아리를 먹고자 하는 마음, 아리를 더럽히고자 하는 마음, 아리에게 배덕감을 안겨주고 싶은 마음 등등······
유필준은 그런 욕망에 사로잡혀, 꽃사슴 같은 아리에게 접근했고, 숲에 살던 호랑이에게 덥석 물린 신세가 되어버렸다.
그는 호랑이 이빨에 단단히 물려, 호랑이 굴에 끌려 들어왔으며 사지가 다 물어 뜯겨 벗어날 수 없는 신세가 되었다.
‘결국 생각이 문제였어······’
마인드 컨트롤을 잘했어야 했는데······
유필준은 과거 아버지가 했던 유언을 떠올리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자신과 다르게, 아버지는 매우 성실하고 청렴결백한 노동자셨다.
항상 부당한 대우에도 늘 웃고, 항상 성실함과 친절함을 버리지 않았던 아버지.
그의 아버지는 유필준에게 항상 이렇게 말했었다.
-사람의 생각이 곧 말이 되고, 행동이 되고,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다. 나쁜 생각을 하면, 나쁜 말을 하게 되고, 나쁜 행동을 하게 되고, 나쁜 결과를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생각.
그것은 내면에 감출 수 있는, 비밀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세상에 영원한 비밀이 없듯이, 그 생각을 욕망으로 피웠다가 이 모양 이 꼬라지가 나고 말았다.
“으아아아악ㅡ! 아버지이ㅡㅡㅡ!”
유필준은 성실하셨던 아버지를 떠올리며, 그룹 회장실에 꿇어앉은 채 단말마의 비명을 내질렀다.
*
“에잇, 준혁 씨 정말 못 됐어!”
아리는 통화를 끝내자마자, 내 가슴을 툭치며 눈을 흘겼다. 이미 얼굴은 홍시처럼 빨갛게 달아오른 상태였다. 이마엔 얕게나마 땀이 흥건했다.
나의 고문을 견디면서, 그동안 기피했던 유필준과 몇 분간 통화했으니 아마 고역이었으리라.
1분 1초가 10년처럼 더디게 느껴질 만큼. 하지만, 나는 여전히 이런 미인 앞에선 장난꾸러기였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다.
“미안해요, 아리 씨.”
“괜찮아요.···”
내 사과에 아리는 금세 밝은 표정으로 생긋 웃었다. 그녀와 이렇게 몸을 밀착하고 있으니, 참으로 머릿속이 하얘지고 심장이 두근거렸다.
이계에서 아르젠과 함께 있을 땐, 일부러 그녀에게 늘 무뚝뚝하게 대했었다.
나는 언젠가 지구로 돌아갈 사람이고, 그녀는 이계에 남아 있어야 될 사람이었다.
우리 두 사람 다, 그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처음엔 오히려 더 티격태격했다.
마치, 생면부지의 적수를 만난 것처럼.
하지만, 그렇게 티격태격하다 보니, 어느새 이상한 감정이 싹텄다. 나도 아르젠에게 목숨을 구원받고, 아르젠도 나에게 목숨을 구원받고.
그렇게 몇 번을 하다 보니, 동료애를 넘어선 이상야릇한 감정을 느끼게 되었다. 그녀의 경계심이 차츰차츰 풀어지며 차가웠던 모습 대신 나를 향한 순애보의 마음이 느껴졌다.
나는 그것을 느낄 때마다, 일부러 외면했고 그래서 늘 마음이 괴로웠다. 무거운 바위를 가슴에 얹은 사람처럼.
일부러 무뚝뚝하게 굴고, 그녀에게 상처를 주었다. 특히나 마지막에 헤어질 때는 더더욱.
그래서 나는 누군가를 쉽게 사랑하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럼 이만 갈까요?”
나는 살포시 껴안고 있던 아리의 허리에서 손을 풀며 그렇게 말했다.
“어딜요?”
“100억 뜯으러.”
나는 외식이라도 하는 것마냥 쾌활하게 대답했다.
원래 남의 돈 뜯어 먹는 게, 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