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God-Killing Archmage RAW novel - Chapter 137
136화
“이렇게 빨리 보게 될 줄은 몰랐는데.”
늘 그랬듯.
심상 세계에 도착하니 가장 먼저 하프록스가 현석을 반겼다.
녀석은 용암 중심에 툭 튀어나와 있는 넓은 바위에 누워있었다.
“싫어?”
“그럴 리가 있나. 여기서 네가 뭘 준비했는지 계속 지켜봤는데.”
하프록스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현석의 손으로 시선을 옮겼다.
현석의 양손엔 마신의 뿔이 각각 하나씩 들려있었다.
“지금 몹시 기대가 된다. 과연 저 박쥐 녀석이 어떤 얼굴을 할지.”
하프록스가 자리에서 일어나 날개를 펼쳤다.
그리곤 현석의 옆으로 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당연히 그냥 줄 생각은 아니겠지?”
“내가 미쳤다고 그러겠냐?”
“좋다! 아주 좋아!”
일전에 살레우스와 설전을 한 번 벌여서 그런지.
하프록스는 지금 순간만을 꽤나 기다렸던 모양이었다.
저렇게 행복한 얼굴을 하는 걸 보면.
지금까지 봤던 표정 중 가장 밝았다.
현석이 살레우스가 있는 마탑으로 향했다.
“하여간 징 한 놈.”
현석은 그것을 보고는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다시 봐도 마탑의 결계는 살벌했다.
어둠의 탑처럼 마탑 또한 마기를 풍기는 중이었는데.
그 모든 힘이 오직 현석이 들어오지 못하는 데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주변을 감싸고 있는 수십 겹의 결게는 뭐 말할 것도 없고.
하지만 이젠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녀석이 목숨만큼이나 애지중지하는 뿔을 들고 왔는데 가만히 있을 리가 있나.
“살레우스 이제 슬슬 나오지? 너도 봤을 거 아니야, 네 뿔 되찾는 거.”
묵묵부답이었다.
그래. 어차피 처음부터 나올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꼴에 자존심 하나는 상당한 녀석인지라.
“안 나와?”
따악, 따악, 따악, 따악!
현석은 두 뿔을 부딪히며 소릴 내기 시작했다.
안 들리나?
그렇다면 조금 더 세계….
철컹!
마탑에서 무언가 열리는 소리가 들리며 결계가 사라진 것은 그때였다.
“여전히 기본이 안 돼 있구나.”
동시에 살레우스가 천천히 문을 열고 모습을 드러냈다.
“용건이 있을 때는 문을 두드리는 것이다.”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턱과 이마에 솟은 핏줄이 그가 현재 분노를 억누르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었다.
“거 빨리, 빨리 나오지. 사람 이렇게 기다리게 하면 되겠어?”
“….”
툭, 툭!
현석은 괜히 두 뿔을 서로 부딪히며 말했다.
“우리가 뭐 완전히 남도 아니고 말이야.”
“….”
“적어도 내 심상 세계에 자리 잡고 있으면 좀 바로바로 나오지?”
북북북북!
현석은 그렇게 말하며 뿔로 제 등을 긁었다.
이거 좀 시원하네.
끝이 살짝 위로 말리고 뾰족해서 그런가.
등 긁을 때 딱이었다.
그 모습을 본 살레우스의 눈 밑이 꿈틀거렸다.
그가 무슨 말을 하려 했지만….
“아니… 저기….”
“그리고 말이야.”
현석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시련을 주지 않았다는 사실에 대한 분풀이를 하는 것이었다.
사실상 타샤와의 전투에서 마기가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니.
만약 처음부터 마신의 권능이 있다면 어렵지 않게 끝낼 수 있는 전투였다.
“사람이 불렀으면 앞에 와서 얘기해야 하는 거 아니야?”
북북북북!
“그….”
“어디 건방지게 남의 심상 세계에 살면서 주인이 왔는데 멀찍이 떨어져서 얘기를 하려고 해.”
“일단 그 짓거리부터….”
“뭐라고? 할 말 있으면 와서 해.”
후욱!
살레우스가 연기가 되어 사라진 건 그때였다.
곧바로 녀석이 현석의 코앞에 나타났다.
눈을 부릅뜨고 이를 악문 게 적지 않게 화난 모습.
“스읍 표정 안 풀어?”
“….”
“웃어. 들고 있는 네 뿔 용암에 던져버리기 전에.”
현석의 말에 살레우스이 입꼬리가 파르르 떨리며 올라갔다.
“쯧, 진작 그래야지.”
현석이 안마봉처럼 뿔로 제 어깨를 두들기며 등을 돌렸다.
‘쳐 죽일 녀석….’
살레우스는 속으로 울분을 삼켰다.
그런 그의 시선이 현석이 들고 있는 뿔로 향했다.
‘설마 저걸 다 손에 넣을 줄이야.’
현석이 처음 한쪽 뿔을 얻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만 해도 큰 감흥이 없었다.
양쪽 다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의 뿔은 있으나 마나였기 때문이었다.
두 개가 다 있어야 비로소 의미가 생기는 것이니까.
하지만 마침내 현석이 모든 뿔을 얻었을 때.
‘이럴 줄은 몰랐는데….’
살레우스의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현석이 뿔을 구한 이유는 명백한 상황에서 그가 자신에게 요구할 바는 뻔했으니까.
‘뿔을 줄 테니 시련을 달라’.
물론 그냥 주지도 않을 것이었다.
당장 지금도 보라!
북북북북!
자신의 소중한 뿔을 마구 두들긴 것도 모자라 제 등을 긁는데 쓰는 모습을.
저러다가 뿔에 흠집이라도 나면 어쩌려고 저러는 건지.
때문에 살레우스는 현석의 부름에 침묵으로 일괄할 생각이었다.
어차피 더는 뿔이 필요도 없는 것은 물론, 차마 현석에게 치욕을 당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정말이지….
현석이 자신의 탑 앞에서 뿔끼리 부딪혀 소리를 냈을 땐.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만 같았다.
일말의 흠집도 용납할 수 없어, 생전에 그토록 뿔 관리를 했건만.
자신을 죽인 원수에게 뿔이 훼손되게 생겼으니.
살레우스로서는 현석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죽을 듯이 비통하지만 말이다.
“이제 그만 멈춰주지?”
살레우스가 여전히 미소 지은 채 말했다.
“음 뭐? 등 긁는 거?”
“그래. 이 미개한 것아. 내 뿔은 결코 그런 물건이….”
“근데 왜 반말이야.”
“뭐라?”
“이걸 확!”
“…죄송합니다.”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말이지만, 이번만큼은 어쩔 수 없었다.
현석이 그렇게 물으며 당장이라도 뿔을 던져버릴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기에.
살레우스의 주먹이 파르르 떨렸다.
하지만 다른 것보다 더 화나는 건….
현석의 뒤에서 미친 듯이 웃고 있는 하프록스였다.
뭐가 그렇게 기쁜지 보는 이마저 통쾌하다고 느낄 표정이었다.
정말 마음 같아선 전부 엎어버리고 싶지만.
‘내 뿔….’
목숨과 함께 잃었던 자신의 권위와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제 뿔을 절대 포기할 수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사이.
“…야 너 듣고 있냐?”
“뭐라? 아니 그… 잘못 들었습니다?”
현석의 말에 살레우스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뿔 줄 테니까 시련 달라고.”
“아….”
그리고 단숨에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드디어 본론이구나.
“당연히 시련은 한 번이 아니라 계속 주는 거고.”
“물론이다. 아니, 물론입니다.”
그렇게 두 사람 간에 의견이 조율되자, 하프록스가 양팔을 들어 올리며 자리를 떴다.
재밌는 구경 다 했다며.
살레우스는 그런 하프록스를 가만히 노려봤다.
“뭐해 빨리 시련 준비해. 시간 없으니까.”
“아 예.”
살레우스는 건성으로 대답하며 기운을 끌어올렸다.
우웅!
그러자 어딘가로 향햐는 포탈이 생겨났다. 일전에 하프록스 때와 똑같았다.
“시련을 극복할 키워드는?”
“이겨내는 것.”
“여전히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 뿔은 다녀오고 줄 테니까 기다리고 있어.”
현석은 그 말만을 남기고 시련을 받기 위해 훌쩍 떠났다.
현석이 사라진 자리.
“후우… 이런 빌어먹을….”
살레우스가 한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분노를 삼켰다.
너무나도 자존심이 상했다.
마치 두 번 죽는 기분이랄까.
원수에게 존대를 하고 놈이 원하는 대로 상황이 흘러가니 기분이 상당히 좋지 않았다.
애초에 그래서 처음부터 탑에서 나오지 않으려고 한 것이거늘….
참을 수 없는 분노 탓에 몸이 덜덜 떨려 왔다.
하지만 그러기를 잠시.
“흐흐….”
뜬금없이 살레우스의 입에서 웃음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흐흐흐흐흐…!”
그는 현석이 들어간 포탈을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시련? 주지… 하지만 그것에 대한 고통은 오롯이 네놈이 감내해야 할 것이다…!”
하하하하!
끝내 마신이 파안대소를 터뜨렸다.
현재의 그로서 할 수 있는 가장 최고의 복수.
시련에서 현석이 정신적, 육체적으로 괴로워하는 것.
물론 현석이 어떤 시련을 겪게 될지는 전혀 알 수 없지만 현석이 괴로워할 것을 생각하니 절로 웃음이 나온 것이었다.
순순히 시련을 준 것도 사실 그런 이유도 있었다.
현석을 괴롭히는 것은 물론 뿔마저 되찾을 수 있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쯧쯔….”
그리고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하프록스가 고개를 저으며 혀를 찼다.
“저러다 한 번 호되게 당해야 정신을 차리지.”
뭐, 그것도 그거대로 볼 만 하겠지만.
그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용암 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 * *
현석이 천천히 눈을 떴다.
주변에 안개가 자욱했다.
그나마 보이는 거라곤 저 멀리 있는 산 하나였다.
그마저도 안개에 뒤덮여 뿌옇게 보이긴 했지만 말이다.
화륵!
현석은 주변에 화염구를 날려 보았다.
그럼에도 주변은 조금도 밝아지지 않았다.
“이거 보통 안개가 아니네. 에단.”
-왜 불렀나 현석.
“날아서 주변 좀 확인해 줘.”
-그러지.
에단은 고개를 끄덕이곤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그러기를 잠시.
“어때?”
-이거 위험하군.
돌아온 에단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 자칫하면 영원히 길을 헤맬 수도 있겠어.
“길을 헤맨다고?”
-그래. 어느 정도 높이 올라가면 안개가 끝날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다.
안개는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다.
하물며 높이 올라갈수록 안개마저 짙어져 어느 순간부터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단순히 위로 올라가서 망정이지.
만약 길을 찾아보겠다고 위가 다른 곳으로 갔다면 금방 방향감각을 잃고 길을 잃을 뻔했다.
뭐, 현석과 에단은 서로의 위치를 본능적으로 알 수 있어, 적어도 두 사람이 떨어질 일은 없지만 말이다.
“결국 일단은 저 산으로 갈 수밖에 없는 건가?”
-그래 보이는군.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그나마 보이는 건 산밖에 없었으니.
그렇게 현석과 에단은 산으로 향했다.
그리고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둘은 산 바로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멀리서 본대로 안개에 뒤덮여 있는 거대한 산.
“이겨내는 것이라….”
현석은 안개에 가려 보이지 않는 상 정상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시련에 들어오기 전에 살레우스가 알려줬던 극복 키워드.
일단은 산까지 오긴 했지만, 여전히 키워드의 의미를 완전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생각은 길지 않았다.
“일단은 올라가자.”
가보면 무슨 일이라도 일어나겠지.
현재로선 할 수 있는 일이 너무 한정적인 탓이었다.
터벅, 터벅.
현석은 말없이 산을 올랐다.
산 내부는 늦가을과도 같았다.
수많은 나무의 나뭇잎은 전부 떨어져 바닥에 쌓인 상태였으니까.
바스락, 바스락.
한 2시간을 걸었을까.
산엔 딱히 특별하다고 할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보이는 것이라고는 안개, 나무, 나뭇잎이 전부일 뿐.
에단 또한 계속해서 주변을 두리번거리고는 있었지만, 그 또한 여전히 무언갈 발견하진 못한 상태였다.
“이거 너무 이상한데.”
-내 말이 그 말이다. 너무 조용하고 또 공허하군.
하지만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고 했던가.
흠칫.
그렇게 말하는 순간 정체를 알 수 없는 마나가 감지됐다.
인기척이 느껴진 것도 그때였다.
“…누구지?”
자연스레 현석의 시선이 그곳으로 향했다.
휑한 두 나무의 사이.
짙은 안개 속에서 누군가의 인영이 보였다.
아무런 미동도 없었다. 그렇다고 적개심이 느껴지지도 않았고.
바스락!
현석의 발걸음이 그곳으로 향했다.
거리가 좁혀질수록, 안개 속 인영이 점점 선명해졌다.
그리고 어느 정도 거리가 가까워졌을 때.
“…!”
현석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곳엔….
“오랜만이네. 크롬헬….”
자신이 봉인했던 아이젠이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