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God-Killing Archmage RAW novel - Chapter 51
50화
현석은 가만히 지팡이를 바라봤다.
지팡이는 아무런 존재감도 내비치지 않고 있었지만.
어째서인지 현석은 지팡이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신기하네. 가장 말이 많아야 할 녀석이 침묵을 지키고 있다라….”
주인의 의지가 깃드는 만큼, 보통 성유물은 주인의 성격을 따라가게 되는데.
산군 생전의 성격이 어땠는지 대충 유추가 됐다.
굉장히 과묵하고 진중한….
“죄송하지만 산군은 그런 성격이 아니에요.”
이화영이 못마땅한 투로 말했다.
“과묵하긴커녕 누구보다 쓸데없는 소릴 많이 하던 정령이거든요.”
지금껏 들었던 그녀의 목소리 톤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웬만하면 말에 부정적인 감정이 잘 안 실렸었는데.
“너 뭐 산군한테 감정 있었냐?”
“말도 마세요. 같은 수호신이라 그나마 이렇게까지 지낸 거니까.”
“대체 무슨 말을 했길래?”
“아니, 여름휴가는 당연히 바다 아닌가요? 산속의 계곡은 무슨, 말이 되는 소릴 해야….”
그 뒤로도 이화영은 그동안 쌓였던 불만을 토해냈다.
산군이 탕수육에 소스를 부어 먹고, 짜장 라면은 물 없이 최대한 건조한 상태로 먹는 등.
하나 같이 들을 필요 없는 얘기들뿐이었다.
“….”
현석은 눈을 감고 생각하기를 멈췄다.
무슨 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 자신이 멍청했다.
설마 단순히 취향이 갈린 문제였을 줄이야.
물론 탕수육에 소스를 붓는 건 선을 한참 넘긴 했지만.
아무튼.
“민트 초코로 싸우는 거랑 비스무리 하네.”
“민초요? 그건 그냥 논쟁거리가 아니지 않나요? 치약을 왜 먹는담?”
이화영은 인상을 와락 찌푸리며 말했다.
그리곤 이어진 현석의 말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맛있던데?”
“…치약이요?”
“아니 민초가.”
“그게 치약이잖아요. 그럼 설마 현석 님은 초콜릿 먹고 이 닦으면 입안에 든 거 다 삼키시나요?”
그녀는 진심으로 궁금한 얼굴이었다.
정말 그런 끔찍한 것을 목구멍으로 넘기냐는 눈빛.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그대로 해주는군.
지금껏 가만히 있던 에단이 반응한 건 그때였다.
“어머, 에단 님도 역시 고귀하셔서 잘 아시는군요.”
-그럼 당연하지. 주인 놈 치약 먹을 때마다 얼마나 속이 울렁거리던지.
뭐가 그리 좋은지 이화영과 에단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주고받았다.
하나 같이 민트 초코를 먹는 현석을 돌려 까는 내용이었다.
“깃털 다 뽑고 용궁 엎어줄까?”
살벌한 경고가 있고 나서야 두 정령은 입을 다물었다.
하여간.
현석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지팡이 쪽으로 다가갔다.
안쪽으로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다른 성유물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시끄러워.”
후웅!
현석은 기운을 터뜨려 소리를 차단했다.
머릿속을 울리던 소음이 단숨에 사라졌다.
이제야 좀 살 것 같네.
현석이 지팡이를 바라봤다.
성유물의 힘을 감당할 수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는 방법은 간단했다.
성유물과 직접 접촉하면 그 다음 일은 알아서 진행될 터였다.
“그럼 바로 가지.”
현석의 말에 이화영이 다소 긴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그가 지팡이를 움켜쥔 바로 그 순간.
화아아악-!
강한 빛무리가 수장고 내부를 감쌌다.
그리고 빛이 사라졌을 땐.
“…현석 님?”
-현석?
현석과 지팡이는 완전히 자취를 감춘 후였다.
* * *
쪼르르르-
솨아아아-
심신을 안정시키는 물소리가 들리고 기분 좋은 바람이 피부를 간질였다.
현석이 천천히 눈을 뜨자, 보기만 해도 시원해지는 계곡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흡사 동양화에서나 볼 것만 같은 아름다운 풍경.
시선을 내리자 물가를 헤엄치는 물고기들이 보였다.
반대로 고개를 들어보니 새들이 나뭇가지에 걸터앉아 지저귀고 있었다.
하지만 다른 것보다 현석의 눈을 사로잡은 건.
“어서 와.”
계곡의 가장 꼭대기.
넓고 납작한 바위를 침대 삼아 옆으로 누워있는 한 여인이었다.
“내 심상 세계는 처음이지?”
한복을 대충 풀어헤쳐 입고.
짧게 친 금발에 인상적인 금안을 가진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눈웃음쳤다.
현석은 단번에 그녀가 누군지 눈치챌 수 있었다.
‘산군.’
분명 죽었다고 알려진 그녀였지만.
이곳에 멀쩡히 존재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바로 사념의 일부가 성유물에 남아있었기 때문.
일종의 안배와도 같은 것이었다.
애초에 성유물을 만진다고 심상 세계로 들어오는 일이 없기도 했고.
별다른 감정 변화 없이 가만히 서 있는 현석이 신기했는지.
산군이 입가에 호선을 그리며 물었다.
“생각보다 안 놀라네?”
“이미 어느 정도 예상했으니까?”
“예상했다고? 어떻게?”
“그런 오묘한 예언만 남겨놓고 죽을 날을 기다린다는 게 말이 안 되잖아.”
산군 또한 수호신인 만큼 한반도를 지키는 데 진심이었을 터였다.
그런 그녀가 죽음으로써 거름이 되기를 자처했는데.
아무것도 남겨놓지 않을 리가 있나.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서.
혹은.
성공적으로 자신의 계획이 이행되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무슨 조치를 취했을 것이라 생각했고.
그런 결론을 내린 것이었다.
“하핫! 맞네, 맞아. 나름 깜작 서프라이즈를 준비한다고 했는데 들켜버렸네?”
산군이 호탕하게 웃었다.
그리곤 몸을 일으켜 바위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서프라이즈가 안 돼서 아쉽긴 한데, 어떻게 보면 다행이네.”
“뭐가 다행이라는 거지?”
“예언의 당사자가 멍청이는 아니라서? 다르게 말하면 상황을 전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눈치나 생각 정도는 있다는 거 아니겠어?”
그녀 나름대로의 칭찬이었지만, 현석의 표정은 썩 좋지 않았다.
“음? 내가 무슨 말실수라도 했나?”
“누가 날 평가하는 걸 별로 즐기는 편이 아니라서 말이야.”
이건 아카르덴에서부터 그랬다.
누군가 자신을 분석하고 파헤쳐 결론을 내리는 것.
그건 마치 우리 속 짐승이 되는 기분이기도 했지만.
평가하는 대상이 마치 위에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느낌이 지독히도 싫었다.
감히 누가 누굴 내려다본단 말인가?
하지만 의외로 산군의 시선은 불쾌하지 않았다.
‘천업이라 그런가.’
평소 같았으면 몸이 먼저 반응했을 텐데.
지금은 단지 묘한 기분이 드는 정도에서 그쳤다.
“아아! 미안, 미안.”
산군은 이내 멋쩍은 미소와 함께, 미안하다는 듯이 손바닥을 펼쳐 보였다.
“내가 차마 그건 생각하지 못했네. 칭찬이면 마냥 다 좋은 소린 줄 알아서 말이야.”
그리곤 그녀는 제 눈을 옆을 톡톡 두들기며 말을 이었다.
“이거, 이거. 보는 게 내 사명 같은 거라서 말이야. 한 번만 봐주라. 어떻게 보면 예언으로 이어진 사이 아니냐.”
하긴.
이해하지 못할 건 아니었다.
평생을 천기를 읽으며 살아왔는데, 뭐든 그렇게 안 보일까.
‘그건 그렇고….’
이화영의 말이 맞네.
처음에 예상했던 것과 달리 산군의 성격은 확실히 달랐다.
말이 많은 건 아직 모르겠지만, 과묵하지 않은 건 명백했다.
“그런데 너….”
산군이 눈을 빛내며 입을 뗀 것은 그때였다.
“신기하게 다른 세상이 겹쳐 보이네.”
“…뭐가 보이지?”
“두 개의 달이 교차하는 땅.”
“오.”
그녀의 말에 현석이 작게 감탄을 내뱉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카르덴의 달은 두 개였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자면 권능으로 현석의 전생마저 봤다는 뜻.
“야매는 아닌가 보네.”
“상처 될 수 있는 말을 함부로 하네. 나야 어차피 죽었으니 상관없는데 용왕이한텐 자제해줘. 의외로 여린 친구라.”
“용왕이라니, 그렇게 들으니 또 어색하군.”
현석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안 그래도 아줌마라 했다가 죽을 뻔했어.”
“뭐어?”
산군이 두 눈을 크게 뜨더니 이내 박수를 치며 파안대소를 터뜨렸다.
“하하하하! 아, 그래. 걔 신분 숨길 때 그런 모습으로 변하지? 웃긴 건 그러면서도 아줌마 소리 듣긴 싫어한단 말이야.”
“너한테도 그랬나?”
“말도 마. 은근히 나이 든 척, 고상한 척은 다 하면서 하는 짓 보면 애 같다니까. 귀여워 죽겠어 아주.”
어찌나 웃었는지, 산군은 손가락으로 눈가를 훔쳤다.
그리곤 호흡을 가다듬으며 스스로를 진정시켰다.
“그럼 이제 본론으로 들어갈까? 생각보다 잡담이 길어졌네.”
“그러지.”
“내가 이렇게 널 보려고 한 이유는 간단해. 너한테 전해줘야 할 말이 있거든.”
“그것도 천기에 나오는 건가?”
“맞아. 이유는 나도 몰라. 나는 그저 그렇게 해야 한반도가 안전해진다는 사실만 알고 있을 뿐.”
말을 마친 산군의 분위기가 삽시간에 바뀌었다.
여전히 입가에 그려진 호선은 여전했지만.
주변의 공기가 무겁게 내려앉은 듯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입이 열렸다.
고목에 벼락이 떨어지니.
바다가 숨을 뱉어 하늘의 눈을 가리고.
온 밤을 속이는 순간 천지가 땅을 구른다.
세계선의 끝까지 닿는 천음은 우주를 불러오고.
수면에 숨어있던 달은 그를 인도하니.
반짝이는 달빛이 하늘 높이 날아오르면.
불이 붙은 고목은 기뻐하며 갈라질 터이다.
그 말을 들은 현석의 고개가 절로 갸웃거려졌다.
“…그게 무슨 말이지?”
“내가 본 예언이다. 고목은 ‘나’고 달빛은 ‘너’다.”
“?”
“한 마디로 내 죽음으로 네 일이 술술 풀리는 것은 물론, 그로 인해 나 또한 웃게 된다는 뜻이지.”
아. 그제야 현석이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화영이 들었던 얘기가 이거였던 모양이다.
“유감이야. 네가 죽어야 일이 잘 풀리다니.”
“뭘, 이쯤 되면 어차피 삶엔 큰 미련이 안 남아.”
“그럴 수도 있긴 하겠네.”
정말 특별한 일이 없지 않은 이상, 정령들은 수백 년을 살 정도로 엄청난 수명을 자랑하니.
하지만 이미 알고 있던 얘기를 들어서일까.
산군의 이야기는 아직까지 현석의 큰 관심을 끌지 못했다.
“….”
산군은 그런 현석의 태도를 바라보다 한마디 툭 뱉었다.
그리고 그것만큼 현석의 귀를 거슬리게 하는 건 없었다.
“네가 그래서 신이 될 수 없던 거야.”
“…뭐?”
[포식]으로 신의 힘을 취했음에도 신이 될 수 없었던 현석의 처지를 정확하게 꿰뚫는 말.괜히 정곡을 찔려서일까.
현석이 다소 예민한 투로 되물었다.
“뭘 알고 말하는 거냐?”
“구체적인 사연을 묻는 거면, 아니.”
“….”
“내가 세계선의 주인도 아니고 모든 것을 알 순 없어. 그저 보이는 것만 말할 뿐이지.”
산군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세계선의 주인은 또 뭐야?’
순간 그런 의문이 들었지만….
일단 현석은 잠자코 산군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하프록스에게 ‘신격’과 관련된 얘기를 들었을 때처럼, 기다리면 알게 될 터였다.
“대신 그건 알지.”
산군의 눈이 현석에게 고정됐다.
“너는 같은 신조차 감히 넘볼 수 없는 힘을 손에 넣었으나, 그것에 취해 현실을 바라보지 못한다는 것. 만취한 인간은 금수만도 못한 존재라지?”
그래서 네가 신이 되지 못하는 거야.
산군이 그렇게 말을 덧붙였다.
“….”
달리 말하자면, 가지고 있는 것에 휘둘려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도통 이해할 수 없는 말이군.”
현석이 헛웃음을 들이키며 고개를 저었다.
자신은 태어났을 때부터 대륙을 들썩인 천재였으며.
그만큼 자기 자신에 대한 제어 능력이 누구보다 뛰어나다 자부했던 그였으니까.
다른 사람들이라면 살면서 응당 겪어야 하는 일을 단 한 번도 겪어본 적이 없었다.
길을 돌아가지도 않았을뿐더러 딱히 헤매지도 않았다.
오직 정도(正道)만 걸을 뿐.
그의 인생에 오답은 없었다.
그리고 신이 되지 못했던 건. 용신이나 마신이 자신에게 ‘신격’이란 개념을 숨겼기 때문이지 않은가?
그런 현석을 바라보던 산군이 슬며시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보자… 지금쯤이면 신이 되지 못한 이유를 자신이 아닌 타인 때문이란 생각에 도달했겠지?”
“….”
“사실상 그것을 진실로 받아들이고 있고.”
“천기만 읽을 줄 알았는데 독심술까지 하는 거냐? 조금 불쾌한데?”
현석이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지금까지 상대의 생각을 유추하기만 했지, 직접 당한 적은 없다 보니 기분이 영 별로였다.
하지만 산군은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우리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고.”
그저 미소를 머금은 채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너에게 신의 힘을 탈취할 정도의 초능이 있어. 그런데 그게 신의 자격, 즉 신격을 탈취해오지 못한다?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
산군의 말에, 처음으로 현석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신을 죽인 대마도사의 귀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