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God-Killing Archmage RAW novel - Chapter 52
51화
“표정을 보니 너도 아는 것 같긴 한가 보네.”
산군은 그렇게 말하며 곰방대 하나를 소환했다.
퍼엉!
연기와 함께 곰방대가 허공에서 산군의 손으로 툭 떨어졌다.
그녀는 가부좌를 풀고 한쪽 다리를 세운 채 곰방대를 빨아들였다.
후우.
이내 숨을 내쉬자 짙은 연기가 흘러나와 계곡 전체에 퍼졌다.
실로 신비로운 광경이었지만.
현석은 깊은 생각에 빠진 후였다.
‘…산군의 말대로야.’
가만히 생각해보면 틀린 말 하나 없었다.
하프록스는 [포식] 따위가 신격을 얻을 순 없다고 했지만.
권능인 [포식]은 상대의 ‘모든’ 힘을 앗아오는 효과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신의 힘은 되면서 신격은 안 된다?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왜 이 사실을 이제야 알았을까.
현석은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그럼 [포식]이 신격을 흡수하지 못한 이유라도 있는 건가? 가령 감당하지 못할 힘을 거부하는 식으로.”
“아하! 그 초능을 포식이라 하는구나.”
산군이 옳다구나 곰방대로 현석을 가리키며 외쳤다.
“됐고 말이나 해봐. 내 추측이 맞나?”
“글쎄? 아까도 말했지만 내가 전부를 다 아는 건 아니라서 말이야.”
스윽.
그렇게 말한 산군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현석이 있는 쪽으로 훌쩍 뛰었다.
고양이처럼 가볍게 현석의 앞에 착지한 그녀는 팔짱을 낀 채 입을 열었다.
“그래도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흥, 정말 그렇다면 정말 예상치도 못한 일이군.”
[포식]은 현석에게 모든 것을 가져다준 권능이었다.덕분에 인간을 초월해 신에게 도전할 수 있었고.
신을 죽이는 결과를 가져다주었으며.
그 이상을 넘볼 수 있는, 즉 무한한 잠재력을 품게 해줬으니까.
당장 부활 이후만 보더라도 [포식] 덕분에 빠르게 회복할 수 있었으니.
[포식]이 없는 삶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였다.그런데.
신이 되지 못했던 것이 그토록 믿었던 [포식] 때문일 수 있다니.
그동안 함께했던 포식에 대한 믿음에 다소 금이 가는 것 같았다.
“너도 알겠지만, 넌 천재야. 타의 추종은 불허할 만큼 똑똑하기까지 해.”
후우.
산군이 다시금 곰방대를 빨았다 내쉬었다.
“그런데 그게 문제야.”
그녀의 입에서 나온 연기가 손가락처럼 현석의 머리를 툭툭 건드렸다.
“뭔….”
현석은 인상을 와락 찌푸리며 손을 휘휘 저었다.
“이상한 짓 하지 말고 어서 말하기나 하지?”
“사람은 살아가며 스스로를 돌이켜봐야 해. 사람이기에 실수를 하고, 사람은 완벽하기보단 완벽해지려고 노력하는 동물이니까.”
“하지만 나는 타고난 게 커서 그러지를 않았다?”
“맞아. 원래 너 정도 자리에 오르려면 영겁에 가까운 고뇌를 거쳐야 하는 게 일반적이니까. 하지만 넌 그러지 못했지.”
산군이 곰방대로 제 어깨를 두들기며 잠시 현석을 응시했다.
무언가 고민에 빠진 모습.
그러기를 잠시. 그녀가 중얼거리듯 작게 툭 뱉었다.
“그래서는 그곳에 올라 봐야 금방 죽을 거야.”
“…그곳은 또 뭐야?”
아까 ‘세계선의 주인’이라는 알 수 없는 말까지 하더니.
“…너는 내가 왜 사념을 남겨 놨다고 생각하지? 리창진 때문에? 천만에.”
산군은 그렇게 말하며 또다시 곰방대를 빨곤 연기를 뿜었다.
하지만 이전과는 조금 달랐다.
후우우우-
짙은 연기가 단숨에 모든 것을 감쌌다.
어느 순간부터 물소리와 새소리가 끊겼다.
계곡과 나무는 연기에 묻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대신.
스윽.
산군이 곰방대를 이용해 그녀와 현석 사이를 긋자.
촤아아아아!
둘 사이가 멀어지더니 그 중간에 거대한 강이 나타났다.
“저 강이 역사다. 그리고.”
따악.
그녀가 손가락을 튕겼다.
공중에 나타난 조약돌 하나가 강 위로 떨어졌다.
작은 물결이 강 위에 일어났지만, 이내 사라지고 말았다.
“방금 그 돌이 리창진이지.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겠지?”
현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즉, 리창진은 거대한 세계선의 흐름에서 봤을 때 조약돌만 한 작은 ‘생채기’에 불과할 뿐.
천기를 읽는 산군에겐 아무것도 아니라는 뜻이었다.
“내가 고작 생채기 따위를 위해 이런 수고를 들일 이유는 없지.”
“그럼 그 이상의 것을 전달하기 위해 지금 이 자리를 만들었다는 거군.”
“맞아. 나조차도 감당할 수 없는 무언가가 오고 있지.”
“그리고 그건 네가 죽어야만 해결될 만큼 급하고.”
“역시 눈치가 빨라서 좋아.”
산군이 싱긋하고 웃었다.
“여기까지 했으면 이제 그게 뭔지 대충 알 것 같지 않아?”
“….”
현석은 빠르게 흐르는 강을 보며 생각했다.
리창진, 아니, 아이젠보다 훨씬 더 위험한 존재.
그 답은 어렵지 않게 유추해낼 수 있었다.
애당초 아이젠보다 강한 존재는 지구에서 몇 없었으니까.
바로 어디 숨어 있을지 모를 또 다른 배신자들.
아카르덴에서 넘어온 이들인 만큼, 지구에선 그들을 뛰어넘는 존재가 있을 순 없었다.
그리고 거기까지 생각이 닿기 무섭게.
“젠장.”
현석이 욕지거리를 뱉었다.
당장 배신자 중에서 가장 약한 아이젠은 상대할 수 있는 상황.
하지만 그 이상의 적들은 아직 확신할 수 없었다.
그 정도로 힘이 회복된 상태는 아니었으니까.
그렇기에 지금도 성유물을 구하기 위해 굳이 용궁까지 찾아온 것이 아니던가?
그런데.
그런 아이젠이 고작 ‘생채기’에 불과하다고?
그럼 대체 다른 녀석들은 얼마만큼 강해졌다는 거지?
마냥 자신의 심장 조각을 이용해 강해졌다고 추측하긴 했는데.
…아무래도 생각 이상으로 강해진 모양이었다.
불쾌했다.
내 뒷통수를 후려친 작자들이.
내 힘을 강탈한 쓰레기들이.
감히 나를 한참이나 앞서가다니.
과거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는데.
더욱이 짜증 나는 건.
산군의 말대로라면 현재의 상태론 녀석들을 쓰러뜨릴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까득.
현석이 자신도 모르게 이를 깨물었다.
“그럼 녀석들은 어디에 있는 거지?”
지금은 이길 수 없겠지만, 이것만큼은 알아야겠다 싶었다.
그래야 녀석들을 천천히 지켜보다가.
때가 됐을 때 언제든지 똑같이 뒤통수를 깨부술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현석이 기대했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미안하지만 그건 말해줄 수 있는 게 아니야.”
대신….
“그럼 뭔데. 어서 말해.”
“승천제를 해라.”
“뭐?”
…정말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말이 들려왔다.
산군이 곰방대를 크게 휘둘렀다.
화악!
그러자 순식간에 사방을 감싸던 연기가, 그녀의 곰방대로 빨려 들어갔다.
그러면서 일전의 풍경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현석과 산군의 거리마저도 처음으로 돌아왔다.
눈 깜빡할 사이에 자신의 앞으로 다가온 산군.
그녀가 곰방대 끝으로 현석의 심장을 찔렀다.
“네겐 신의 자격이 충분해. 네 권능은 아무런 이상이 없어. 단지 네가 그 신격을 꺼낼 ‘방법’을 모를 뿐.”
“뭐?”
그 말에 현석이 미간을 좁혔다.
산군의 말은….
지금껏 신격이 없기에 그것을 단계적으로 쌓아야 했던 하프록스의 말과 정반대의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누구의 말이 맞는 거지?’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의외로 답은 금방 내릴 수 있었다.
‘보나마나 산군의 말이 맞겠지.’
정령과 용신.
애초에 비교할 거리도 아니었다.
정령은 본디 거짓을 말하지 않는 생명체인 반면.
하프록스의 경우 이미 현석에게 원한이 있어 얼마든지 거짓을 말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만 녀석이 굳이 거짓말을 한 이유는 쉽게 유추할 수 없었다.
그래도 시련이 도움이 된 건 사실인지라….
여하튼.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만약 산군의 말대로 자신에게 신격이 존재하고, 그것을 꺼낼 수만 있다면.
아이젠과의 전투 이후 상대하게 될 배신자들 또한 큰 걱정이 없었다.
“그럼 그 방법이란 게 뭐지?”
현석의 물음에 산군이 얼굴을 들이밀며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러니 승천제를 해라. 그리고 네가 신이 되어라.”
“…너 미쳤냐?”
가만히 얘기를 듣던 현석의 눈썹이 크게 꿈틀거렸다.
‘승천제를 해라’. 이 말인즉슨 이화영을 죽이라는 말과 다를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승천제를 위해선 수호신의 희생이 불가피했으니.
하지만.
싱긋.
그런 현석의 태도에서 산군은 그저 미소 지을 뿐이었다.
이에 현석은 짐짓 짜증난다는 투로 말했다.
“하여간 예언가 놈들. 말을 빙빙 돌릴 줄이나 알지, 한 번에 제대로 말하는 게 없어.”
산군의 행동은 곧 자신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말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하긴, 산군이 제 입으로 이화영을 죽이라 하진 않겠지.’
분명 저 말에 또 다른 숨은 뜻이 있었을 터였다.
“알려주진 않을 거지?”
“다 말해주면 천기누설이라.”
“개소리. 지금까지 말한 거랑 대체 무슨 차이인데?”
“그래도 이건 말해줄 수 있지. 일단은 기다려라.”
“기다리라고?”
“때가 되어 ‘그곳’을 오르게 된다면 알게 될 테니.”
후욱!
순간 그녀가 연기와 함께 사라졌다.
어느새 그녀는 처음부터 누워있던 바위에 서 있었다.
“네가 궁금해하는 모든 것을 알 수 있을 것이야. ‘그곳’도 ‘세계선의 주인’도.”
현석의 몸이 천천히 떠오르기 시작한 것은 그때였다.
“내가 할 말은 여기까지다. 그리고 네가 필요한 힘은 넘겨주도록 하지. 더 할 말은 없나?”
“없어. 어차피 말해주지도 않을 텐데 뭐.”
현석이 허리에 손을 올린 채 체념한 듯 말했다.
“내가 묻지. 네가 남길 말은 없나?”
“나? 이미 죽은 몸….”
“나 말고. 주위 사람들한테. 이화영한테 얘기 들어보니까 마지막 인사도 제대로 못 했더만.”
“…생각보다 친절한데?”
의외라는 듯, 산군이 눈을 크게 뜨며 대꾸했다.
“그건 한국에서도 좀 유명해.”
“개소리 말고.”
“뭐?”
“보자….”
이내 다시 은근한 미소를 지은 그녀는 곰방대를 허공에 던져 없애며 말을 이었다.
“용왕이한테 궂은일 다 떠넘기고 가서 미안하다고 전해줘. 그리고….”
화아아아-
그 순간 산군의 심상 세계가 다시금 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머무를 시간이 끝에 다다른 것이었다.
“탕수육은 부먹이라는 것까지. 걔는 뭘 먹을 줄 모르는 게 탕수육은 원래 소스가 부어서 나오는 음식….”
산군이 급하게 와다다 말을 뱉어냈다.
감동적인 얘길 하나 싶었더니 한다는 말이 탕수육 얘기일 줄이야.
현석은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어째 수호신들이 하나 같이 이 모양….’
바로 그때.
현석은 볼 수 있었다.
슬픔으로 가득 차 있는 산군의 눈을.
여전히 어울리지 않게 탕수육 얘기를 하고 있지만.
저것이… 그녀 나름대로 슬픔을 이겨내는 방법이었던 것이다.
현석은 잠시 그녀의 얘기를 더 들어주다 툭 뱉었다.
“편히 눈 감아라.”
“…!”
그 말에 산군의 목소리가 끊겼다.
어느덧 공간은 처음 그랬던 것처럼 빛으로 물들었다.
모든 소음이 차단되고, 주변의 모든 것들이 사라졌다.
시야 또한 점차 빠르게 줄어들었다.
그리고 눈이 감기는 마지막 순간.
산군의 입이 움직였다.
고마워.
* * *
빛이 사그라들며, 현석의 눈에 주변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콰르르르-!
용암이 울컥거리는 화산지대. 하프록스의 심상 세계였다.
현석은 곧장 제 몸을 확인했다.
성유물의 힘을 제대로 얻은 건지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눈을 감고 체내의 마나를 회전시키자, 자신의 힘과 융화되지 못하고 홀로 고고하게 떠다니는 힘이 느껴졌다.
“음… 잘 받았군.”
현석은 그제야 안심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이젠을 상대하기 위한 준비, 그 첫걸음이 무사히 완료됐다.
다음은….
“신격의 파편이라.”
현석이 어딘가로 향하려던 찰나.
하프록스가 거만한 표정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유황 가스를 뚫고 다가온 그는 현석을 위아래로 훑었다.
그리곤 언짢다는 듯 팔짱을 낀 채 입을 열었다.
“설마 네가 이걸 얻을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군.”
“뭐, 어쩌다 보니?”
현석은 개의치 않은 듯 어깨를 으쓱였다.
겉으로 티는 내지 않아도, 하프록스는 정말로 당황하긴 당황한 모습이었다.
평소라면 보자마자 시비를 걸었을 텐데, 저런 진중한 표정을 짓고 있다니.
현석은 그 사실을 눈치채곤 툭 물었다.
“그런데 그게 무슨 문제라도 있나?”
“당연히 있지. 너에게 그 힘은 아직 이르다.”
“그 말은 내게 신격에 대해 정확히 알려주지 않았다고 시인하는 거라고 받아들여도 되겠지?”
현석은 다소 날카로운 눈빛으로 하프록스를 쏘아봤다.
아닌 게 아니라, 산군이 아니었다면 자신에게 신격이 있다는 사실조차 완전히 모르고 있었을 테니까.
“어쩔 수 없었다. 너 같은 멍청이들은 힘이라면 무식하게 취하고 보려 할 테니까.”
“아, 나를 위해서였다?”
“당연하지!”
콰아아앙-!
하프록스의 외침과 함께 심상 세계의 화산들이 폭발했다.
사방에서 용암이 흐르고 연기가 더욱 자욱해졌다.
“자칫하면 네 몸이 그대로 폭사할 수 있다. 내가 시련을 언급한 것도 그 때문이고.”
한 마디로 무리해서 신격을 받아들이려 하다간 죽을 수도 있으니.
자신이 시련을 통해 도와주려 했다는 것이었다.
“너도 알 텐데? 지금조차 그 힘은 너에게 완전히 흡수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
틀린 말은 아니었다.
처음에도 느꼈지만, 산군의 힘은 자신의 몸에 조금도 융화되지 않고 있었다.
“지금은 괜찮을지 모르나, 그건 시한폭탄이나 다름없다.”
하프록스가 무거운 표정으로 다가왔다.
“어차피 지금 상태론 사용할 수도 없으니, 내 말 듣고 일단 그 힘은….”
“근데 그거 내가 쓸 거 아닌데?”
“…뭐?”
“내가 쓰려고 얻은 거 아니라고. 내가 언제 그런 말 한 적 있어?”
현석이 장난 섞인 미소와 함께 대꾸했다.
“아니 그럼 쓸데없이 그 힘을 대체 왜….”
“아둔한 도마뱀이 뭘 알겠냐.”
현석은 그렇게만 말하곤 하프록스를 지나쳤다.
뒤에서 분노하는 하프록스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했다.
그렇게 그가 향한 곳은 다름 아닌 천신의 알이 자리하고 있는 곳이었다.
신을 죽인 대마도사의 귀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