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God-Killing Archmage RAW novel - Chapter 53
52화
쩔그럭, 쩔그럭, 쩔그럭!
현석이 다가가자 알이 미친 듯이 날뛰기 시작했다.
어찌나 힘이 강한지, 알을 감싸고 있는 쇠사슬이 당장이라도 끊어질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넌 내가 뭘 하려고 하는지 아는구나?”
현석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가 성유물을 통해 사용하지도 못할 산군의 힘을 얻은 이유.
바로 천신을 깨우기 위함이었다.
그녀가 깨어남으로써 현석은 다양한 천신의 권능을 얻을 수 있을 것이고.
이는 분명 훗날 있을 아이젠과의 전투에서 유용하게 쓰일 테니까.
그런데.
쩔그럭, 쩔그럭!
알의 모습이 심상치 않았다.
이건 마치….
“밥 기다리는 강아지 같네.”
쩔그럭, 쩔그럭, 쩔그럭, 쩔그럭, 쩔그럭, 쩔그럭, 쩔그럭, 쩔그럭, 쩔그럭, 쩔그럭, 쩔그럭, 쩔그럭!
현석이 짧은 소감을 말하기 무섭게 알이 거칠게 발광했다.
아까와는 확실히 다른 느낌.
일전엔 설레는 마음으로 방방 뛰는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분노한 것 같달까.
‘이거 봐라?’
현석은 괜히 더 골려주고 싶다는 짓궂은 마음이 들었다.
애초에 상대는 자신을 가장 힘들게 했던 천신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한 번쯤은 누가 우위에 있는지 확인시켜줄 필요가 있었다.
안 그러면 하프록스처럼 제대로 된 정보를 알려주지 않을 사태가 일어날 수도 있으니.
“…말도 알아들어? 생각보다 똑똑한데?”
그래서 한 마디 더 거들었는데 반응이 썩 나쁘지 않았다.
알이 제자리에서 파르르 떨었다.
눈은 없지만 이쪽을 죽일 듯이 쳐다보는 듯했다.
그런데 그러면 쓰나.
“밥 먹고 싶으면 착한 모습을 보여야지 않겠어? 스읍, 기다려.”
쩔그럭.
알은 아예 뒷목을 잡고 쓰러지는 사람마냥 쇠사슬에 몸을 기댔다.
그럼에도 살기 가득한 기운은 여전했다.
“생각 잘해. 평생 그 알에서 썩고 싶어?”
현석이 당장이라도 돌아갈 것처럼 몸을 돌렸다.
….
그제야 피부를 뚫을 것만 같은 시선이 사그라들었다.
“옳지. 착하네.”
현석이 알을 가볍게 두드렸다.
천신이 필사적으로 감정을 억누르는 것이 손바닥을 타고 느껴졌다.
“내 살다 살다 이런 끔찍한 꼴을 다 보는군.”
그때, 모든 풍경을 보고 있던 하프록스가 어이없다는 투로 말했다.
“이 정도의 신성모독이면 영혼 말살에 처해도 할 말이 없다.”
“신성모독치고는 당사자가 말을 너무 잘 듣는데?”
“흥! 저 녀석도 똑같다. 신의 품위조차 지키지 못하다니.”
“지는 부활하고 싶어서 원수한테 애걸복걸 빌었으면서.”
“뭐라? 내가 대체 언제 그딴 식으로…!”
“아, 시끄러워.”
현석은 귀찮다는 듯이 손을 휘휘 저었다.
그리곤 다시 알에게 시선을 돌렸다.
“말 잘 들었으니 상을 줘야겠지.”
후우우웅!
현석의 손이 환하게 빛났다.
몸속에 있는 산군의 힘을 알에 주입하는 것이었다.
“알 까고 나왔을 때에도 이렇게 말을 잘 들었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턱. 현석은 그렇게 말하며 손을 알 위에 올렸다.
손과 알이 맞닿은 부분에서 강한 빛이 터져 나왔다.
흡사 소용돌이와 같은 모습.
일전에 태양의 불을 빨아들였을 때처럼, 알은 엄청난 속도로 산군의 힘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콰아아아아!
촤르르르르!
그 힘에 쇠사슬이 마구 흔들렸다.
손에서 시작한 빛은, 어느새 알 전체를 뒤덮고 있었다.
그 찬란한 빛의 파도에, 현석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하지만 그의 입은 웃고 있었다.
지징, 지지잉-!
어느 순간부터 알 표면에 마법진이 연성 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이는 필시 알을 봉인하고 있는 마법진일 터.
그리고 그것이 나타난 의미는 하나였다.
‘슬슬 해제되려나 보군.’
아니나 다를까.
철컥, 철컥!
마법진에 그려진 톱니바퀴와 같은 회로들이 서로 맞물리며 돌아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무언가에 걸린 듯 뻑뻑하기 그지없었으나.
회전하는 속도가 점차 빨라졌다.
마법진을 구성하던 룬어가 이리저리 흩날렸다.
그러다 이내 쇠사슬에 금이 가더니 빠르게 부서져 내렸다.
이제 남은 건 알 하나뿐.
“그래, 그렇게 계속해서 먹어라.”
현석은 기대감 넘치는 얼굴로 알을 응시했다.
많이 소모되긴 했지만, 산군의 힘은 남아있었다.
이만하면 충분히 알을 부활시킬 수….
“이런…?!”
하지만 그 순간.
단번에 다량의 힘이 빠져나감과 동시에 손과 알을 감싸던 빛이 사그라들었다.
“이대로 끝이라고?”
현석이 미간을 좁히며 몇 번이고 기운을 끌어올리려 해봤다.
그러나 그런다고 이미 고갈된 산군의 힘이 돌아올 일은 없었다.
“아,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았는데. …음?”
그가 허탈하다는 듯이 중얼거린 그때였다.
쩌적!
묵직한 균열음이 들려오더니.
정확히 알 중앙에 벼락과 같은 금이 세로로 그어졌다.
이내, 그곳에서 금빛의 기운이 폭사하기 시작했다.
현석은 반사적으로 손을 들어 눈을 가렸다.
익숙한 기운이었다.
천신의 힘인 신성력.
알은 그 이상으로 깨지지 않아, 비록 완전한 부화에는 실패했지만.
천신이 자신의 존재감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는 것이었다.
어느덧 뿜어져 나오는 빛에 익숙해진 현석이 팔을 내렸다.
“그래도 반은 성공이군.”
“실패했으면 큰일 날 뻔했겠어.”
언제 다가왔는지, 하프록스가 곁에서 팔짱을 낀 채 말했다.
“안 그런가? 과거의 너라면 몰라도, 지금 상태로 아이젠 녀석과 싸우는 건 리스크가 있지 않았나?”
“뭐… 그렇긴 하지.”
현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로선 아이젠이 얼마나 강해졌는지 정확하게 파악하기 힘들었다.
그저 ‘아이젠이 강하다’라며 어림짐작으로만 알 수 있을 뿐.
차오린에게 물어봐도, 그녀조차 아이젠과 맞붙어 본 적이 없으니 무어라 설명할 수도 없었다.
그나마 알고 있는 거라고는 딱 하나.
아이젠이 과거에 사용하던 기술들뿐이었다.
아무리 지구로 넘어왔다고 한들, 수십 년 동안 익힌 것들을 버리진 않았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그에 대비하고자 천신을 깨울 생각이었는데.
완전한 성공은 아니었지만, 이 정도면 아이젠과 맞서 싸울 정도는 될 터였다.
다른 누구도 아닌 천신의 신성력이기도 했고.
하지만.
‘이걸로 만족할 순 없어.’
여기서 끝날 순 없었다.
‘리창진? 걔는 생채기에 불과해.’
불과 몇 분 전에 산군이 했던 말.
그녀의 말이 사실이라면, 아이젠을 하나를 잡는 데에 안주해선 안 됐다.
그 너머.
그 이상을 향해 반드시 정진해야 했다.
한낱 생채기에 불과한 아이젠이 아닌.
그보다 훨씬 더 강해졌을 다른 배신자들을 상대하기 위해서.
언제 어디서 갑자기 그들을 만나도 받아칠 수 있는 강자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스스로를 담금질해야 했다.
‘그러기 위한 첫걸음으로….’
현석이 손바닥이 위로 가게끔 손을 들었다.
후우웅.
그 위로 신성력이 모여 오브의 형태를 갖추었다.
천신의 힘의 근원이자, 아이젠의 저주와는 완전히 상극인 힘.
신성력.
천신의 알에 금이 가며, 자연스레 그 힘이 개화한 것이었다.
뒤이어, 현석은 반대쪽 손을 펼쳤다.
화륵!
그곳에 태양의 불이 피어올랐다.
현석은 비슷하면서도 다른 두 힘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내가 지금 사용하는 태양의 불은 아직 완전하지 않아.’
처음 이 힘을 얻었을 때는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쓰면서도 그랬고.
하지만 산군과의 이야기를 통해 깨달을 수 있었다.
‘신격조차 허락되지 않은 내게 태양의 힘이 온전한 힘을 낼 순 없을 테니까.’
자신은, 신의 힘을 사용하기에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는 반드시 극복해야 할 과정이었다.
그리고 그 방법은 간단했다.
‘태초의 불은 천신의 힘인 신성력을 만나 태양의 불이 되었다.’
그렇다면 태양의 불을 한 단계 더 발전시키기 위한 방법도 별반 다르지 않을 터.
하프록스가 인상을 쓰며 입을 연 건 그때였다.
“너 설마….”
“네가 생각하는 거 맞아.”
“미친놈!”
현석의 대꾸에 하프록스의 언성이 높아졌다.
“아무런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두 힘을 합치려 하다니. 다른 것도 아니고 무려 신의 힘이다! 그렇게 무식하게 다룰 게 아니란 말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신의 힘은 저마다의 역사와 함께 강한 존재감을 품고 있었다.
그리고 그 힘은 쉽게 허물어지지 않는다.
태초의 불이 태양의 불로 변한 건 어디까지나 천신의 힘에 ‘반응’했기 때문이지.
지금처럼 강제로 합쳐져서 만들어진 결과물이 아니었다.
물론 성공한다면야 두 개의 설화가 섞인 새로운 힘이 만들어지겠지만.
실패한다면.
“두 힘이 밀어내는 반발력은 네가 오롯이 감당해야 한다. 그게 무슨 말인지 아는 거냐?”
죽음.
필멸자가 두 신의 힘의 충돌을 견뎌낼 순 없을 테니.
설령 운 좋게 살아남는다고 하더라도, 아마 멀쩡하진 않을 것이다.
최소 코마 상태에 빠져 영영 일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석은 입술을 삐죽 내밀며 아무렇지 않다는 듯 대꾸했다.
“어차피 여긴 심상 세계잖아? 터질 몸 따윈 없어.”
“네 영혼은 장식이라고 생각하나?”
“정신력으로 보호하면 그만 아닌가? 어차피 해야 할 일이면 여기서 하는 게 낫지.”
“하!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는군.”
하프록스가 헛웃음을 들이켰다.
“아무리 네놈이 후우우우울륭한 대마도사라 할지라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
“자칫하면 영혼이 통째로 구워질 수도 있는 데다, 신이 아니고서야 버텨낼 수 있을지 미지수….”
“그래? 그럼 잘됐네.”
현석은 하프록스의 말을 끊고 장난 섞인 미소를 지어 보였다.
“너 내가 이거 성공하면 신으로 인정해라.”
“아니 잠깐…!”
하프록스가 말릴 틈도 없었다.
현석은 말을 마치기 무섭게 두 힘을 격돌시켰다.
그러자.
콰아아아아-!!
심상 세계를 정확히 반으로 양분하여, 한쪽에는 불, 다른 한쪽에는 신성력이 마구 휘몰아쳤다.
하프록스의 말대로 두 힘이 저항하는 힘은 보통이 아니었다.
마치 거대한 두 자석이 서로 밀어내려는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현석은 이를 악물고 필사적으로 두 힘의 거리를 좁히려 애썼다.
콰르르르르!
쿠구구구궁!
그가 힘을 쓸 때마다 심상 세계가 거세게 흔들렸다.
지반이 갈라지고, 그 사이에서 용암이 마구 솟구쳤다.
하늘은 어느새 뿌연 연기에 뒤덮여, 쉴 새 없이 벼락이 떨어졌다.
“크억!”
얼마 있지 않아 하프록스조차 그 반발력을 버텨내지 못하고 뒤로 밀려나고 말았다.
‘확실히 장난이 아니네.’
주륵-
현석의 코와 입에서 피가 흘렀다.
그의 혈관은 당장이라도 터질 것처럼 폭주하는 중이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이질적인 두 힘은 한 치의 양보도 없었다.
서로가 서로의 먹잇감이 되지 않으려는 듯, 현석만큼이나 거칠게 반항했다.
픽! 삐이이이-!
“으윽!”
순간 몸 내부에서 무언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이명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뇌를 헤집는 통증에 현석이 눈을 질끈 감았다.
다시 떴을 때 그의 눈동자는 붉게 물들어 있었다.
‘죽을 듯이 괴롭지만….’
버텨야 했다.
아직 현석이 받아들이기엔 준비되지 않은 힘.
그것의 저항을 오롯이 견뎌야만 제대로 된 신의 힘을 얻어, 벽을 넘을 수 있었다.
‘분명 방법이 있을 거야.’
현석이 시뻘건 눈으로 손아귀에 들린 두 힘을 바라봤다.
붉은빛과 황금빛.
육안으로 봐도 확연히 다른 힘이었지만.
분명 접점이 있을 것이다.
태양의 불이나 신성력이나 둘 모두 ‘신의 힘’이라는 동일한 본질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때.
콰콰콰콰-!
“…!”
현석은 서로 죽일 듯이 충돌하는 힘 사이에서 미세한 변화를 감지할 수 있었다.
고통스러운 와중에도 현석은 눈으로 마나를 끌어올렸다.
순간 눈을 주먹으로 후려친 듯한 통증이 일었다.
주변에서 보이는 거대한 마나의 흐름에 일순간 과부하가 온 것이었다.
하지만 현석은 억지로 눈을 뜨며 신의 힘을 바라봤다.
잘못 본 게 아니었다.
정신없이 휘몰아치는 마나 속에서.
반발력을 이기지 못하고 부서지는 부분이 보였다.
‘찾았다!’
두 힘을 합칠 방법을.
그 순간 현석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혈관이 터지고 피가 흘러 마치 호러나 다름없는 웃음이었다.
신을 죽인 대마도사의 귀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