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God-Killing Archmage RAW novel - Chapter 77
76화
사실, 이화영에게 별다른 설명이 필요하진 않았다.
보이는 대로 ‘현석이 곽성운을 때려 눕혔다.’라고 받아들이기만 하면 될 뿐.
문제가 있다면.
“아니 대체 무슨 생각으로 곽성운 헌터를 때려눕힌 거예요?”
자칫 조금 전의 풍경을 전 세계에서 봤을 수도 있었다는 것이었다.
판옥선엔 물방울이 씌워져 있어 상관이 없었지만.
현석이 판옥선을 벗어난 순간 위성 따위에 노출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현석이 나서는 순간 급하게 현석에게만 물방울을 씌우긴 했지만, 곽성운에게는 차마 그러지 못했으니….
“뭐 어때?”
“어떻긴. 상대가 누구든 간에 랭킹 1위 헌터가 졌다는 소문이 퍼지면 얼마나 피곤해지는지 알아요?!”
S급 헌터는 국력과 직결되는 존재.
그렇다 보니 국가 대부분은 타국의 S급들을 자국으로 빼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곤 했다.
그런데 그런 일반 S급도 아니고 랭킹 1위가 졌다?
당연히 주변국 입장에서는 랭킹 1위를 쓰러뜨린 헌터에 대한 관심이 폭발할 수밖에 없었다.
“평소에도 그런 놈들 쳐내느라 죽겠는데, 여기서 더 늘어나면…! 어후.”
혈압이 올랐는지, 이화영이 말을 하다 말고 뒷목을 붙잡았다.
“내가 그런 걸 알 리 있나.”
그러거나 말거나.
현석은 그게 뭐 대수냐는 듯이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그래도 내 존재는 숨겼으니 된 거 아니야?”
“말씀하시는 게 꼭 도심에 폭탄 터트려 놓고 죽은 사람 없으면 괜찮은 거 아니냐고 묻는 거 같네요.”
이화영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오히려 현석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 더 크게 작용할 수도 있었으니.
그건 그렇고.
“아니, 그래서 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제가 보고 받기론 곽성운과 현석 님과의 접점은 전혀 없는 걸로 아는데.”
심지어 다른 S급들이 사고를 칠 때까지도.
곽성운은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 보니, 이화영으로서는 더욱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도통 두 사람이 싸우는 이유를 모르겠으니까.
하지만.
“아 그거?”
현석의 입에서 나온 말은 가관이었다.
“몰라.”
“…네?”
“모른다고.”
일은 일대로 벌였으면서 모르쇠로 일관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이화영의 말문이 막혔다.
혈압이 올라 시야가 뿌예지는 것만 같았다.
세상에 누가 아무런 이유 없이 이런 난리를 친단 말인가?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요?”
“모르는 걸 어떡해.”
“….”
그녀는 즉답하는 현석의 표정을 보고 알 수 있었다.
자신이 무슨 짓을 해도, 현석의 입에서 곽성운과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나올 일은 없다고.
-그런데 이렇게 해도 괜찮겠나 현석?
하지만 현석으로선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전음으로 들려온 에단의 물음에 현석이 답했다.
‘뭐 어쩔 수 없지. 그렇다고 쟤랑 나랑 전생에 원한이 있다고 말할 수는 없잖아?’
-하긴. 사실을 말해도 믿어줄지가 의문이군.
이화영이 이마를 짚으며 다시금 입을 연 건 그때였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알려줄 순 없는 거예요? 대충 상황 보니까 이걸로 끝날 것 같지는 않은데.”
그녀의 시선이 곽성운에게 향했다.
눈꺼풀이 조금씩 흔들리는 게 곧 깨어날 것 같았다.
“차오린 씨나 저처럼 뭐 약점 같은 거 잡아서 두고두고 쓸 생각이신 거 아니에요?”
“…이래서 눈치 빠른 정령은 싫다니까.”
현석이 툴툴거리며 말했다.
이화영은 순간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만 같았다.
“그럼 뭐라도 알려주셔야 제가 다른 사람들에게 할 말이라도 생기지 않겠어요?”
현석과 함께 다니게 되면 분명 그에게 잡혀 사는 모습이 그대로 노출될 터.
다른 사람도 아닌 랭킹 1위가 그런 모습을 보이면 누구라도 그것에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고.
그러한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여러 음모론 따위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국가를 안정시키는 게 최우선인 정부의 입장에선 여러모로 곤란한 상황.
“그렇다고 사실을 말할 수도 없잖아요.”
“뭐….”
“거기다 현석 님은 정체까지 숨기고 있는데 눈에 띄면 어쩌려고요.”
“그냥 비밀 임무 같은 거 한다고 대충 둘러대면 되지.”
“아니….”
그리고 그때.
“어….”
기절했던 곽성운이 깨어나 몸을 일으켰다.
머리에 충격이 컸는지 잠시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
현석은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곽성운의 뒤통수를 후려치며 쏘아대듯 말했다.
“뭘 멍하니 있어 있기는. 슬슬 이동해야 하니까 정신 차렸으면 일어나기나 해.”
* * *
곽성운이 정신을 차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현석은 이화영이 부른 벤을 타고 곧장 국정원으로 향했다.
오르비스와 차오린, 그리고 메이린은 국정원 쪽에서 관리하는 병원으로 따로 보낸 상태였다.
아무리 메이린의 구음절맥이 치료됐다고 한들,
갑작스레 강한 힘을 얻은 만큼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지켜봐야 한다는 오르비스의 말 때문이었다.
“….”
“….”
“….”
차 안에서 누구 하나 입을 여는 사람은 없었다.
현석은 태평한 얼굴로 멍하니 창밖을 바라봤고.
이화영은 불안한 듯, 손톱을 물어뜯으며 깊은 고민에 빠진 모습이었다.
곽성운은 무슨 생각인지 가만히 눈을 감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기를 잠시.
우우웅!
이화영의 휴대폰이 울리며 적막을 깨뜨렸다. 본부에서의 연락이었다.
“무슨 일이야.”
그녀는 전화를 받자마자 낮은 음성으로 물었다.
그리고 잠시 수화기 너머의 얘기를 듣더니, 이내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분위기를 눈치챈 현석의 시선이 자연스레 그녀에게 향했다.
“뭐? 그게 진짜야? …알았어. 빨리 가지.”
뚝.
그녀는 전화를 끊고는 운전 중인 요원에게 말했다.
“서둘러.”
“알겠습니다.”
부우우웅!
요원이 악셀을 밟자 배기음과 함께 차가 빠르게 앞으로 나아갔다.
현석이 입이 열린 건 그때였다.
“무슨 일이야?”
“아무래도 항구에서의 일이 들킨 모양이에요.”
내심 아무도 못 봤기를 바랐는데.
이화영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마른세수를 해댔다.
“그것도 하필 소련의 위성으로요.”
“저런.”
현석이 안타깝다는 듯이 혀를 찼다.
소련은 던전 브레이크와 함께 사라진 국가였지만.
당시 미국과 함께 우주를 개척한 유일한 국가이기도 했다.
하지만 소련이 멸망 후, 그들이 남긴 위성은 여러 국가의 공공자원으로써 사용되고 있었는데.
“그 말은 개나 소나 다 알게 됐다는 거네?”
소련의 위성에 감지됐다는 건, 전 세계에서 앞선 일을 인지했다는 뜻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었다.
이건… 현석에게도 썩 좋지 않은 소식이었다.
지금껏 현석은 국정원의 도움으로 필사적으로 자신의 정체를 외부에 숨기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전 세계에서 눈에 불을 켜고 현석을 찾는데, 과연 계속해서 숨길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그래도 예전보다 나은 상황은 아닌가 현석?
‘뭐, 그렇긴 하지.’
에단의 전음에 현석이 답했다.
‘그래도 지금은 신격들을 완전히 얻은 상태니까.’
지금껏 정체를 숨긴 건 어디까지나 배신자들이 자신을 죽일지 모른다는 위험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 힘을 회복한 지금이라면 마냥 당하지만은 않을 터.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완전히 안심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곽성운… 엘리아스를 잡긴 했지만, 다른 놈들이 얼마나 강한지는 아직 알 수 없었으니.
-그래도 엘리아스가 좀 알지 않을까?
‘그렇기야 하겠지.’
현석은 그렇게 말하며 곽성운을 슬쩍 바라봤다.
여전히 가만히 있는 모습.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러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나중에 둘이 있을 때 제대로 물어봐야지.’
녀석이 묵비권을 행사하려고 한들, 인장이 새겨진 이상 언제까지고 입을 다물고 있을 순 없었으니까.
그건 그렇고.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지?”
현석이 이화영에게 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답했다.
“저도 지금은 잘 모르겠네요. 일단은 국정원에 가서 다시 얘기해야 할 것 같아요.”
* * *
한편.
한국 정부는 때아닌 난리가 난 상태였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그쪽 구역에 얼마를 투자했는데 던전이 사라져? 헌터들이 뭐 잘못 건드린 거 아니야?”
“아니라고? 던전이 헌터들만 뱉어내고 사라지다니. 잘못 건드린 거 맞잖아!”
“여보세요? 이번엔 또 뭐야?”
“뭐? 한국에 있는 던전이 사라져? 그건 또 무슨….”
“한국만이 아니라고? 그럼 지금 전 세계가….”
현대 산업은 던전으로 시작해 던전으로 끝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던전이 중요한데….
그런 던전이 하루아침에 사라져버렸으니 난리가 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건 비단 한국뿐만이 아니었다.
미국, 일본, 중국 등등.
세계 각국 또한 갑작스레 사라진 던전에 혼란스럽긴 매한가지였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제 말이 그 말입니다. 당장 던전의 부산물로 나라가 돌아가는데 던전이 사라지다니요!”
“그렇게 없어지라 기도할 땐 안 없어지더니 왜 자리 다잡은 이제서야….”
각 부서의 장관들은 난감하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던전이 나타나 위기였던 세상이.
도리어 던전이 없어져 위기가 온 아이러니한 세상.
지금껏 던전이 사라질 것이라는 상상은 전혀 하지 않아서일까.
그들은 작금의 사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도통 감이 잡히지 않았다.
“후우… 이걸 대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리고 그건 대통령인 박준현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는 이마를 짚은 채 장관들에게 물었다.
“일단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부터 봅시다. 각 도시가 보유하고 있는 자원으론 얼마나 버틸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아무리 길어봐야 한 달입니다. 조금 보수적으로 잡는다면 보름 정도고요.”
“그렇다면….”
“그 안에 해결 방안을 찾지 못한다면 국가 부도가 올 게 분명합니다.”
그것이 장기화가 되면 전 세계가 위험했다.
얘기하면 할수록 암울한 현실에, 그들은 각자 한숨을 내뱉었다.
누구는 머리를 쥐어뜯었고.
누구는 아예 책상에 머리를 처박은 채 일어나질 못했다.
“그런데 남해 부근에 나타났다는 그 탑은 대체 뭡니까? 인공위성에도 제대로 안 잡히던데.”
박준현이 처음보다 10년은 더 늙은 얼굴로 물은 건 그때였다.
그의 말대로 탑은 안개 같은 정체불명의 기운에 가려 위성에도 찍히지 않는 중이었다.
“아 그건….”
“아직도 제대로 알아낸 것이 없는 상태입니다.”
“그래도 일단 헌터 몇을 차출해 보냈으니, 금방 정보를 들고 올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행일 텐데 말입니다.”
박준현이 깊은 숨을 내쉬며 말했다.
하지만 다른 것보다 가장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저 대통령님.”
“무슨 일입니까?”
“지금 미국에서 공식적으로 한국에 책임을 묻겠다는….”
“…예?”
보좌관의 말에 박준현이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이 되물었다.
“미국뿐만이 아니라 일본에서도 연락이 왔습니다.”
“중국도….”
“유럽 쪽에서도 책임을 묻겠다고….”
이어지는 보고에, 박준현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게 대체 무슨 개소리입니까. 그걸 대체 왜 우리에게….”
“그게….”
보좌관은 박준현의 눈치를 보며 휴대폰을 건네더니, 영상 하나를 재생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곽성운이 보이지 않는 누군가에게 처맞고 있었다.
그러기를 잠시.
치직!
어떤 연유에서인지, 영상은 갑작스레 끊겼다.
보좌관의 설명이 이어졌다.
“소련 위성에 찍힌 것입니다.”
“이게 이번 사태와 관련이 있습니까?”
“그렇게 보입니다. 영상 속 위치가 탑과 가장 가까운 항구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탑이 나타남과 동시에 곽성운 헌터가 저곳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허어….”
박준현은 허탈한 얼굴로 의자에 몸을 기댔다.
이것만으로 100% 한국의 잘못이라 할 순 없지만.
타국에서 꼬투리를 잡기엔 충분하지 않은가?
어찌 됐건 곽성운이 이 일과 연관이 있는 건 사실이었으니까.
“그래서인지 지금 전 세계에서 회담 요청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회담?”
“그뿐만이 아니라, 세계 헌터 협회로부터는 현재 일어난 상황에 대한 제대로 된 설명이 없을시, 한국 헌터의 제명 및 잠재적인 적으로 간주….”
콰앙!
참다못한 박준현이 책상을 있는 힘껏 내려쳤다.
가뜩이나 던전 사태로 골치가 아픈데 미국이고 협회고 지랄을 해대니 분노하지 않을 수 없던 것이었다.
“이런 미친 작자들이….”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아니지. 이럴 때가 아니야.”
그는 심호흡하며 스스로를 진정시켰다.
지금은 분노하는 것보다 상황을 파악하는 게 우선이었다.
자칫하면 전 세계를 적으로 돌릴 수 있는 상황이었으니.
그러기 위해선….
“지금 당장 곽성운과 국정원장을 이곳으로 불러주십시오. 최대한 빨리.”
…영상 속 당사자인 곽성운은 물론, 정부 쪽 인사 중에서 가장 유능한 이화영과 대화를 해야 했다.
“알겠습니다.”
비서는 그렇게 말하곤 어디론가 서둘러 사라졌다.
신을 죽인 대마도사의 귀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