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God-Killing Archmage RAW novel - Chapter 91
90화
홀로 남은 차오린.
순간 그녀는 ‘다 때려치우고 도망이나 칠까?’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됐다 됐어. 사서 고생할 일 있냐.”
이내 고개를 저으며 생각을 털어냈다.
도망쳐봤자 현석의 손바닥 안일뿐더러, 현석이 말한 기간을 채우지 못한다면 이보다 더한 지옥을 맛볼 수 있을 테니까.
그나마 시간이 있을 때 조금이라도 수련을 더 해야 했다.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며 마나석을 쥐었다.
하지만.
우우우웅!
아무리 발악해도 마나석은 부서지지 않았다.
원소와 마나의 분리야 이제 어느 정도 적응이 됐지만….
팔찌 탓에 마나석에 주입되는 마나의 양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들어 폭발하지 않는 것이었다.
물론 속도가 느려도 쉴새 없이 마나를 주입한다면 가능하긴 하나.
문제는 역시나 ‘보름’이라는 제한 시간이었다.
지금 속도라면 그 안에 마나석은 절대 부수지 못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출력을 높여야 하는데….”
후우우우웅!
차오린은 그렇게 생각하며 이를 악물고 마나의 회전 속도를 높였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픽!
코피가 쏟아지며 시야가 빙글빙글 돌았다.
억지로 힘을 쥐어 짠 탓에 현기증이 온 것이었다.
“아… 빌어먹을….”
차오린은 가까스로 중심을 잡으며 이마를 짚었다.
그리고 손에 들린 마나석이 눈에 들어온 순간.
알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렇다고 그것을 던지거나 하진 않았다.
지금은 분노할 시간도 없었으니까.
“에이씨!”
결국 그녀는 욕지거리를 뱉은 뒤 다시금 수련에 돌입했다.
* * *
정확히 차오린의 수련이 시작된 지 보름이 되던 날.
현석의 방.
“…이게 진짜 되는군요?”
“당연히 되지. 내가 설마 안 될 걸 시키겠냐?”
이화영은 차오린을 비추고 있는 TV를 보며 감탄을 흘렸다.
이유는 간단했다.
어느덧 차오린은 손목에 구속구를 3개나 차고도 마나석을 부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퍼엉, 퍼엉, 퍼엉!
물론 당장 죽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모습이긴 했지만.
처음과 비교하면 비약적으로 마나석을 터뜨리는 속도가 증가한 상태였다.
5분에 하나꼴로 마나석을 깨뜨리는 중이었으니.
“심지어 이젠 마나 플레어에서 불의 기운은 조금도 찾아볼 수가 없네요.”
이화영의 말대로였다.
초반만 하더라도 차오린이 만들어낸 마나 플레어엔 흐릿하지만 붉은 기운이 가미돼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지극히 순수한 마나 그 자체.
이젠… 완벽히 속성의 힘과 마나를 분리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이건 내가 봐도 놀랍군. 아카르덴에서조차 이런 재능은 찾아볼 수 없었다.
채 보름도 안 돼 이뤄낸 성과.
이는 에단조차 혀를 내두르게 할 정도였다.
-너만 아니라면 가장 뛰어난 재능이 아닐까 싶군.
“공감이야. 나도 설마 보름만에 해낼 줄은 몰랐는데.”
-음? 정확하게 알고 보름이란 기한을 준 거 아닌가?
“전혀.”
현석이 고개를 저었다.
“원래는 한 달을 줄까 생각했는데, 그러면 사람이 좀 나태해질 수도 있잖아? 그래서 그냥 절반으로 줄인 것뿐이야.”
“정말이지 악질이네요.”
그 말을 들은 이화영이 입술을 삐죽이며 말했다.
현석이 어깨를 으쓱였다.
“악질이라니. 이렇게 올바른 길로 인도해주는 진정한 교육자가 세상에 어디 있다고.”
현석이 말을 마치자, 에단과 이화영이 서로 눈을 마주쳤다.
…이번엔 전음으로 무슨 얘길 나누는 건지.
현석이 계속해서 둘의 전음을 알아 듣자.
어느 순간부터인가 에단과 이화영은 현석이 알 수 없는 방법으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뭐, 그것마저도 해독하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을 테지만.’
이화영이 다시 입을 연 건 그때였다.
“그나저나, 차오린 씨를 보면 현석 님께서 말씀하신 단계까진 도달한 거 같은데. 다음은 뭔가요?”
“다음이라….”
현석이 말끝을 흐리며 TV에 시선을 고정했다.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마나석을 던지며 기뻐하는 차오린의 모습이 보였다.
자신을 향해 욕지거리를 뱉어내는 입 모양도 함께.
“그동안 고생하면서 꽤나 열받은 모양인데, 이제 슬슬 당근을 줘야지.”
채찍만 주면 도망친다고.
현석은 그렇게 덧붙이며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오싹!
이화영은 그 모습을 보고는 순간적으로 소름이 확 돋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차오린의 고생이 끝나지 않은 것만 같은 직감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저… 당근의 의미는 아시죠?”
“…넌 뭘 그런 걸 물어보냐. 당연히 알지.”
“아뇨. 왠지 저와 다르게 알고 있으신 것 같아서요.”
“무슨 말이지….”
현석은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에단과 함께 나갈 채비를 했다.
“그럼 간다.”
“조심히 다녀오세요.”
쿵!
문이 닫히며 현석이 자리를 떴다.
* * *
“됐지?”
현석이 계곡에 도착하자.
차오린은 기다렸다는 듯 부서진 마나석들을 보이며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말했다.
“훌륭하네.”
현석은 인정한다는 듯 박수를 쳤다.
예상치 못한 칭찬에, 일순간 차오린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동시에 왠지 모를 불길함이 엄습해 왔다.
평소 현석의 모습을 생각하면….
그는 결코 자신을 칭찬하는 법이 없었으니까.
그래서일까.
그녀는 다소 날 선 말투로 물었다.
“너 좀 이상하다?”
“왜?”
현석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순진무구한 얼굴로 되물었다.
“아니, 뭔가 순수하게 나를 칭찬하는 게 아닌 것 같아서 말이야. 대체 뭐가 그리 좋아서 웃는 거지?”
“이래서 눈치 빠른 제자는 싫다니까.”
“…뭐?”
“내가 왜 기뻐하겠냐. 이제 다음 수련으로 넘어갈 수 있으니까 기쁜 거지.”
현석이 말은 그렇게 했지만, 차오린에게 그 말은 전혀 다르게 들렸다.
‘다른 방식으로 널 굴려주겠다’라고.
그리고 그녀는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자신의 생각이 맞다는 것을.
“다음 수련이 또 있어?”
그녀가 다급한 투로 말했다.
“기존 속성 버리는 데 성공했으니 새로운 속성은 아무거나 내 몸에 흘리면 되는 거 아니야? 아니면 속성 마법진에서 명상을 하거나.”
“아니야, 아니야.”
현석이 고개를 저었다.
“그런 쉬운 방식으로 속성을 받으면, 넌 평생 반쪽짜리밖에 안 되는 거야.”
‘…젠장.’
차오린이 속으로 욕지거릴 뱉었다.
이왕이면 그냥 넘어갔으면 좋겠건만.
이미 현석의 머릿속엔 모든 계획이 자리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무슨 말을 해도 결코 흔들리지 않을 계획.
아마 이 이상 말을 해도 달라지는 건 없을 테지만….
차오린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입을 열었다.
“던전도 없어진 마당에 반쪽짜리도 괜찮지 않을까? 난 그렇게 확신하는데.”
“하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걸?”
현석이 단호하게 즉답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직접 수련시킨 사람이 반쪽짜리다? 죽어도 안 되지.”
현석의 입꼬리가 쭉 말려 올라갔다.
그는 차오린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안 돼. 절대 안 돼. 차라리 내가 죽는 한이 있어도 너만큼은 최고로 만들어준다.”
그게 참스승이고 참교육이지 않겠어?
이어진 현석의 말에 차오린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참스승이니 참교육이니, 하나 같이 현석과 어울리는 말이 아니었으니까.
…돈도 제대로 주지 않고 대학원생 굴리는 교수면 모를까.
‘…아 그 대학원생이 나인가?’
차오린의 머릿속에 그런 생각이 든 순간이었다.
현석이 차오린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대충 무슨 생각하는지 알겠는데. 내가 사랑의 매를 들게 만들면 좋을 게 하나 없을 거야.”
“무슨 생각은. 내가 얼마나 고마워하고 있는데.”
이에, 차오린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태연하게 대꾸했다.
“좋은 대답이야. 그럼 다음 강의로 넘어갈까? 따라와.”
그는 그렇게 말하며 차오린을 어디론가 데려갔다.
어느 한 절벽에 자리한 폭포수였다.
현석은 차오린과 함께 까마득히 먼 아래를 내려다보며 입을 뗐다.
“이제 기존 속성을 버렸으니 네게 맞는 속성이 뭔지 알아야겠지?”
“그거야 당연한 말인데… 왜 절벽 아래를 보고 말하는 거지?”
차오린은 괜히 불길한 기분이 물씬 들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현석이 절벽 아래를 바라보는 이유가 자신과 관련이 있는 것 같았으니까.
그래서일까.
그녀는 떨리는 감정을 최대한 숨긴 채 입을 뗐다.
“내게 맞는 속성을 찾으려면 다양한 속성을 접하면 되는 거 아닌가?그리고 지금까지 나한테 맞는 속성이 뭔지 알고 있던 거 아니야?”
“넌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그걸 알면 마법사가 아니라 예언가를 하고 있었지. 안 그래?”
현석이 어이없다는 듯 피식하고 웃음을 흘렸다.
누군가에게 맞는 원소는, 직접 해당 원소를 경험하기 전까진 아무도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누군가의 관상만 보고 직업을 정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그리고. 속성을 접하다니. 그게 대체 무슨 말이야.”
현석이 미간을 좁히며 차오린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몸을 타고 흐르는 불안함에,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속성은… 직접 깨우치는 거야. 알겠어?”
덥썩!
말을 마친 현석은 대뜸 차오린을 들어 올렸다.
“이, 이 미친놈이! 지금 뭐 하는 거야! 안 내려놔?”
차오린이 현석의 머리 위에서 발버둥 쳤다.
마음 같아선 마법이라도 써 도망치고 싶었지만.
무려 세 개의 구속구가 채워진 상황.
아무리 마나석을 터뜨릴 정도로 마나 출력이 강해지긴 했지만.
겨우 그 정도로 현석의 손을 뿌리칠 수 있을 리는 만무했다.
현석이 짜증 어린 목소리로 말한 것은 그때였다.
“가만히 있어. 확 절벽 아래로 던져버리기 전에.”
“…던질 거 아니었어?”
그 말에 차오린이 버둥거리기를 멈췄다.
현석의 행동은 누가 봐도 자신을 절벽 아래로 던질 기세였으니까.
“그럼 왜 날….”
“던지려고.”
“뭐? 이런 미친…!”
태연히 답하는 현석의 말에, 차오린이 얼굴을 와락 찌푸렸다.
그녀는 필사적으로 현석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오려 했지만….
차마 그럴 수 없었다.
어느새 현석은 절벽 바로 앞에 도달해 있었으니까.
여기서 삐끗하면 떨어지는 건 자신이었다.
“자, 잠깐 나 좀 내려놓고….”
“잘 들어.”
차오린은 대화로 지금 상황을 무마하려 했다.
하지만 현석은 듣는 척도 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속성은 차치하고, 기본적으로 마법사에겐 냉철함이 필수 소양이다. 지금처럼 패닉에 빠지는 건… 최악이라고 할 수 있지.”
꿀꺽.
차오린의 흔들리는 동공이 현석에게 고정됐다.
그리고 그와 눈이 마주하는 순간.
“이번 기회에 냉철함을 함양할 수 있으면 좋겠군. 아, 당연히 속성도 마찬가지고.”
현석은 해맑게 웃으며 인사했다.
“그럼 다녀와.”
“이 씹…!”
말을 마치기 무섭게.
현석은 아무런 망설임 없이 차오린을 절벽 아래로 던졌다.
바람 속성이든 물 속성이든, 둘 중 하나 중엔 맞는 속성이 있겠지.
없으면 비슷한 방법으로 다른 속성을 경험하면 되는 일이고.
그가 그렇게 생각하는 그때였다.
-그런데 이만한 높이면 좀 위험하지 않나?
“뭘. 일반인도 아니고 S급인데.”
아무리 마법사라 할지라도, 제 몸 보호할 수단쯤이야 있을 것이었다.
애당초 헌터와 일반인의 몸은 천지 차이로 다르기도 하고.
바로 그때.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이 에단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런데, 차오린 구속구 차고 있지 않나?
“아.”
그제야 그 사실이 떠올랐는지, 현석의 발걸음이 멈췄다.
차오린이 마나를 아예 못 쓰지는 않을 테지만 이만한 높이라면….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현석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이었다.
“에이 됐어. 대부분의 걱정은 일어나지도 않아. 어차피 아래엔 물도 있고.”
그 말을 끝으로.
현석은 유유자적하게 걸으며 절벽 아래로 이동했다.
신을 죽인 대마도사의 귀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