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Mad Demon RAW novel - Chapter 120
120화. 미워하려면 제대로 미워해야지.
색마 놈이 좋은 말로 처자를 뜯어말렸다.
“소저, 보통 미친놈이 아니니 그만두시오.”
처자는 나를 노려보는 와중에 색마에게 대꾸했다.
“너는 빠져 있으라고 했다.”
나는 잠시 좌사 놈의 표정을 구경했다. 그 와중에도 좌사의 눈은 처자의 몸매를 훑고 있었다.
나는 좌사의 정신세계에 살짝 감탄했다.
‘이놈은 진짜다. 진짜 색마다.’
처자가 내게 말했다.
“너 아까 제대로 안 싸웠지.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제대로 실력 발휘를 해라.”
나는 팔짱을 낀 채로 처자의 말에 대꾸했다.
“너는 신분이 제법 높아서 제대로 처맞아본 적이 없는 모양이군. 오늘 내가 새로운 경험을 선사하마.”
내가 딱밤을 때렸다는 것은 대가리를 박살 내지 않고 딱밤에 그쳤다는 뜻이다.
처자가 늘어뜨린 채찍에 기를 불어넣으면 대꾸했다.
“내게 그딴 협박은 통하지 않아.”
처자의 손이 움직이는가 싶더니 곡선을 그리면서 순식간에 도착한 채찍이 내 머리에 떨어졌다.
부앙!
나는 움직이는 것이 귀찮아서 왼손으로 붙잡았다.
탁!
처자가 인상을 찌푸리면서 반대 손으로 채찍을 걷어내자, 삽시간에 채찍이 팽팽해졌다.
나는 염계의 공력을 주입하면서 외공으로 채찍을 잡아당겼다.
처자의 몸이 앞으로 질질 끌려오다가, 갑자기 공중에 뜬 채로 맹렬하게 날아왔다.
“……!”
공중에서 성질 더러운 처자가 좌장을 내밀었다.
나는 투지가 넘치는 처자의 눈빛을 보자마자 염계의 장력으로 맞받아쳤다.
퍼억!
나는 채찍을 붙잡고 있는 왼손으로는 잔월빙공을 쏟아내고, 오른손으로는 염계의 장력을 쏟아내는 와중에 사태를 관망하고 있는 좌사를 힐끔 노려봤다.
좌사가 내게 기습하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오래된 습관이었다.
나는 그제야 눈앞에 있는 처자의 표정을 살폈다.
억울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공력을 끌어올리는 모양인지 얼굴이 점점 붉어졌다.
좌사가 또 오지랖을 부렸다.
“촌뜨기, 죽이지 마라. 소저도 그만하시고. 마지막 경고가 되겠소. 월단화 문제에 대해서는 이미 내 사부와 그대 일행이 밑에서 겨루고 있지 않소.”
나는 처자의 눈이 서서히 붉게 물드는 것을 지켜봤다.
‘음?’
마공을 익힌 모양이다.
의외로 오래된 무공들은 색(色)이 발현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불가를 대표하는 색은 황금(黃金), 도가를 대표하는 색은 태극을 이루는 청(靑)과 적(赤)이나 주로 청이 대표적이다.
반면에 마도 세력은 색이 그야말로 잡다하다.
흑(黑)처럼 어둡거나, 혈(血)처럼 불길한 색이거나, 회(灰)처럼 혼탁하다.
처자의 눈에 깃든 붉은 기운은 그중 혈이었다.
눈빛만이 아니라 처자가 쥐고 있는 채찍도 서서히 붉게 물들고, 내밀고 있는 손도 붉은빛의 장력에 휘감기고 있었다.
나는 냉랭한 눈빛으로 처자를 바라보다가 코웃음을 쳤다.
‘혈마(血魔) 쪽인가.’
그제야 좌사는 어느 세력의 무공인지 알게 되었다는 듯이 다소 놀란 어조로 말했다.
“문주, 적당히 해라. 혈야궁(血夜宮)의 핏줄 같다. 다치게만 해도 전쟁이 일어나. 이자하! 죽이면 안 돼!”
나는 곁눈질로 좌사를 바라봤다.
“닥쳐라.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나는 천옥의 힘을 일월공으로 분리하여 균형을 맞춰봤다. 강맹한 염계의 힘에 비해서 잔월빙공의 수준이 다소 낮았지만 이 시건방진 처자를 괴롭히기엔 충분했다.
붉은빛을 내뿜는 처자의 괴상한 장력은 염계로 불태우듯이 제압하고 채찍을 통해서는 잔월빙공을 끈질기게 주입했다.
순간, 애초에 나보다 공력이 깊지 않았던 처자의 코에서 피가 주루룩 흘러내렸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씨익 웃었다.
그 와중에 한쪽에서 흐르던 코피는 이내 두 줄기가 되었다.
나는 낄낄대면서 말했다.
“코흘리개였군. 콧물 봐라. 끈적끈적, 더러워 죽겠네. 코 풀 시간을 주고 싸울 걸 그랬나. 아니면 봉우리 오르기 전에 코를 팠나?”
“닥쳐라.”
성질머리가 대단한 처자라 그런지 분한 기색으로 나를 노려봤다.
처자가 마도 소속임을 생각하더라도 정신세계를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딱밤을 때렸다는 것은 죽일 수 있음에도 봐줬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봐, 나는 네게 굽신대던 하인 같은 사내가 아니야.”
나는 내공과 외공, 염계와 빙공을 조합해서 처자를 바닥에 짓이기듯이 눌렀다.
처자의 무릎이 바닥을 부술 것처럼 세차게 떨어졌다.
나는 강제로 처자의 무릎을 꿇린 다음에 물었다.
“항복?”
처자가 대꾸했다.
“그럴 리가.”
“좋았어.”
나는 처자의 용맹함에 고개를 한 번 끄덕여준 다음에 양팔을 강제로 교차해서 처자의 균형을 무너뜨린 후, 멱살을 붙잡자마자 공력을 주입해서 봉우리 바깥으로 집어 던졌다.
쐐애앵― 하는 소리와 함께 처자가 허공으로 날아갔다. 처자의 비명이 터지자마자 쾌속으로 추락하는 모양인지 비명도 쭉 늘어졌다.
좌사가 소리를 버럭 내질렀다.
“이 미친 새끼가!”
나는 내공을 담아서 검마와 싸우고 있을 적의여인에게 말했다.
“이봐, 궁주. 네 제자인지 뭔지 하는 처자가 떨어지고 있다.”
이때, 좌사의 신형이 흔들거리더니 이내 절벽으로 몸을 날렸다.
“소저!”
나는 입을 벌린 채로 절벽으로 가서 아래를 내려다봤다.
“와… 저건 무슨 광기(狂氣)냐.”
내게 덤비던 처자 정도의 실력이면 봉우리에서 떨어진다고 죽지는 않는다. 공중에서 장력을 쏟아내도 충격을 완화할 수 있고, 이를 경신법(輕身法)과 조합하면 별다른 타격 없이 착지할 수 있다.
더군다나 밑에서 싸우고 있는 적의여인은 내 목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붉은 신형이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면서 추락하는 처자의 밑으로 달려가고 있고, 공중에서 떨어지는 좌사도 처자를 향해 손을 뻗고 있었다.
저것은 순정일까, 아니면 추후 있을 공략의 전초전에 해당하는 심리전일까.
나는 한 손을 눈썹에 댄 채로 밑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구경했다.
“과연……?”
적의여인이 공중으로 솟구쳐서 처자를 낚아채고, 추락하던 좌사는 공중제비를 돌다가 바닥을 향해 쌍장을 분출하면서 요란하게 착지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검마가 느긋한 발걸음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지더니 좌사, 적의여인, 처자가 동시에 나를 올려다봤다.
“……!”
나는 봉우리에 서서 세 사람에게 말했다.
“죽고 죽일 거 아니면 적당히 하자고.”
“…….”
좌사가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그게 네가 할 말이야! 이 촌뜨기 새끼가!”
적의여인이 처자에게 물었다.
“괜찮으냐?”
“예.”
적의여인이 검마를 보면서 말했다.
“검마, 공격을 멈춰줘서 제자를 받아냈군. 빚을 졌다. 월단화는 잊을 테니 이걸로 셈을 하자고.”
검마가 덤덤한 어조로 대꾸했다.
“그럽시다.”
적의여인이 다시 나를 올려다봤다.
“그런데 저놈은 대체 누구냐?”
“하오문이라는 단체의 문주요.”
“내가 죽여도 되겠느냐?”
검마가 코웃음을 치면서 대꾸했다.
“그럴 필요 없소.”
“이유는?”
“교주의 적이외다. 적의 적은 아군인 셈이니 적당히 하시오. 그리고 문주의 성격상 소궁주에게 먼저 덤비지는 않았을 터.”
적의여인이 처자에게 물었다.
“네가 먼저 덤볐느냐?”
처자가 대답했다.
“예.”
“이마는 왜 그래?”
“딱밤에 맞았어요.”
“혹시 그러고 나서 또 덤빈 게냐?”
“예.”
적의여인은 그제야 사태를 이해했다는 것처럼 한숨을 내쉬었다.
“철이 없다. 철이 없어.”
적의여인이 검마에게 양해를 구하듯이 말했다.
“강호에 내보낸 적이 없어서 세상 물정을 모르니 자네도 이해하게.”
검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별말씀을.”
적의여인이 나를 올려다보면서 말했다.
“죽이진 않을 테니 내려오너라. 소궁주의 이마에 딱밤을 먹인 것은 셈을 하고 떠나야겠으니.”
옆에 있는 검마가 웃으면서 말했다.
“선배.”
“왜?”
“자세히 보시오. 적당히, 라는 것을 모르는 사내가 내려다보고 있지 않소. 어쨌든 오늘은 이 정도에서 끝냅시다. 교주를 상대할 때 어떤 식으로든 도움을 줄 후배이니 그렇게 몰아붙일 필요 없소. 내 제자 놈은 저 녀석과 싸우다가 똥까지 지렸소.”
좌사가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
“사부님?”
검마가 덤덤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아니야?”
“……아닙니다. 독약에 당해서 지리고 나서 싸운 겁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려웠는지 적의여인과 처자가 동시에 크게 당황했다.
검마가 내게 말했다.
“문주, 내려와서 인사나 하게.”
나는 한 발을 허공에 내밀었다가 그대로 수직으로 떨어졌다. 절벽을 스치듯이 내려가다가 땅이 가까워졌을 때, 뒷발로 벽을 때리고 공중에서 회전을 한 다음에 착지했다.
십점 만점에 십점!
나는 뒷짐을 진 채로 다가가서 적의여인에게 말했다.
“나는 하오문주 이자하가 되겠소.”
적의여인이 대꾸했다.
“통성명은, 썩을 놈이.”
적의여인은 문득 좌사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너는?”
좌사가 포권을 취하면서 대꾸했다.
“궁주님, 풍운몽가의 몽연입니다.”
적의여인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백도에 그래도 협의가 남아 있구나. 언제 한 번 너를 도와서 오늘 일을 셈하마.”
좌사가 빙긋 웃으면서 대답했다.
“신경 쓰지 마십시오.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적의여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없었던 일로 하자.”
“…….”
나는 팔짱을 끼다가 대화가 우스워서 낄낄댔다.
좌사가 내게 말했다.
“왜 처웃고 지랄이야?”
나는 정색하는 표정으로 대꾸했다.
“이 새끼가 그런데 똥을 한 번 더 지려야 말투가 얌전해지려나.”
좌사가 대꾸했다.
“똥 얘기 좀 그만하자.”
검마가 중재하듯이 슬쩍 끼어들었다.
“이쪽은 혈야궁주 어소령(於小零) 선배. 젊은 시절 부군(夫君)께서 교주에게 죽었다.”
혈야궁주가 대답했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라.”
“부군과 나도 친했소.”
검마가 코피를 닦고 있는 처자를 바라봤다.
“너는 처음 보는구나.”
처자가 검마에게 고개를 숙이면서 말했다.
“아저씨, 저 교영(巧瑛)입니다.”
검마가 놀란 눈빛으로 바라보다가 대꾸했다.
“아, 그래. 몰라볼 정도로 많이 컸구나.”
잠시 정적이 감돌았다.
사람다운 말이 오고 가자 더 어색했다.
혈야궁주가 검마에게 물었다.
“앞으로 교주와 어찌할 생각인가?”
검마가 대답했다.
“임 맹주와 교주가 맞붙지 않을까 예상하고 있소. 개인끼리 붙으면 방관할 작정이나 세력끼리 붙으면 아무래도 불리해 보이는 맹에 힘을 실어줄 생각이오. 궁주께서는?”
혈야궁주가 대답했다.
“나야 뭐 같은 하늘 아래 살 수 없는 처지이지. 그러나 내가 맹을 도울 수는 없다.”
“그것은 속 좁은 생각이오.”
“어째서.”
“어차피 맹이 먼저 쓰러지면 혈야궁이든 산속에 은거하는 도인들이든 간에 전부 교주에게 죽어 나갈 것이니. 그때는 더 늦었지.”
궁주가 입을 다물자, 검마가 물었다.
“궁이라도 구경하게 해주겠소? 아니면 이대로 헤어지겠소.”
혈야궁주가 대답했다.
“교주 때문에 외부인이 드나드는 것은 금하고 있다. 근처에 가서 밥이나 먹고 헤어지자꾸나.”
“그럽시다.”
새삼스럽게 마도에 속한 자들도 밥은 먹고 산다. 한데 뭉쳐서 이동하다가 나는 생각이 나는 대로 궁주에게 말했다.
“궁주, 사류곡의 살수들을 죽이려고 하는 데 힘 좀 보태시오.”
혈야궁주가 내 말에는 대답하지 않고 검마에게 물었다.
“이거 미친놈이야?”
검마가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잘 모르겠소.”
옆에서 걷던 좌사가 궁주의 물음에 대답했다.
“맞습니다. 제자 분을 봉우리에서 집어 던진 거 보십시오. 완전 미친놈입니다.”
혈야궁주가 좌사에게 물었다.
“그런데 너는 왜 같이 다니느냐?”
“그러게 말입니다.”
나는 솔직하게 내 심정을 이들에게 전달했다.
“내가 가장 정상인 것 같은데 뭔 개소리들을 하는지 모르겠군.”
순식간에 남녀의 목소리가 뒤섞였다.
“닥쳐라.”
“닥쳐.”
“닥쳐라.”
나는 눈을 껌벅이다가 검마를 바라봤다. 검마는 침착한 표정으로 내 시선을 피했다.
혈야궁주가 못마땅한 어조로 말했다.
“그따위 일을 도와서 내게 무슨 이득이 생기겠느냐?”
“이득?”
나는 잠시 걸음을 멈춘 다음에 혈야궁주를 노려보면서 말했다.
“이유는 다르지만 어쨌든 교주에게 원한이 있지 않소? 그런데 무슨 이득 타령을 하고 있어.”
“뭔 개소리냐.”
“나를 포함해서 다들 지금은 교주보다 약한 게 현실이오. 무공만 가지고서 복수하겠다는 건 시건방진 마음가짐이지. 가능성도 크지 않고. 그렇다면 무엇을 겨뤄야 하나? 지속해서 삶의 방식을 겨룰 수밖에. 교주가 약자를 벌레 보듯이 하고 있으니, 나는 약자의 편에 서는 문파를 만들었소. 살수도 죽이고, 흑도도 차근차근 정리하고. 교주가 하지 않은 행동을 내가 하면서 승부를 내는 것이지. 장보도 같은 것으로 강호인을 꾀어 농락하는 일을 하면서 잘도 교주를 상대하겠군. 복수를 하려면 제대로 해야지. 사람을 미워하려면 제대로 미워해야 하는 법. 혈야궁주, 내 말 알아 들겠소?”
나는 냉소를 머금은 채로 혈야궁주를 바라봤다.
“그따위 물렁물렁한 태도로 부군의 복수를 꿈꾸다니 아주 어처구니가 없군. 복수를 하겠다는 거야, 말겠다는 거야.”
나는 개소리로 밀어붙였다.
말의 논리가 살짝 안 맞긴 했으나 내 알 바 아니다.
혈야궁이 날 도와주면…….
어쨌든 내 이득이기 때문이다.
이득을 앞세우는 자를 통렬하게 꾸짖고, 내 이득을 챙기는 사내.
그것이 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