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Mad Demon RAW novel - Chapter 160
160화. 황야를 건너는 올바른 방법은
“황 방주, 수하 중에 고수가 많아?”
“고수라면 어느 정도를 말씀하십니까.”
나는 황 방주를 바라봤다.
“그대와 비슷한 수준의 고수 혹은 조금 못 미치더라도 어느 정도 수준이 비슷한 수하가 있느냐 말이야.”
황 방주가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격차가 좀 있습니다.”
“그래? 그럼 황 방주가 예상하기에 대오방을 데리고 오면 죽거나 다치는 피해 인원을 최소로 잡으면 몇 명일 것 같아. 단순하게 계산해서 마적은 백 명 정도라 치고. 마적 대 대오방이 황야에서 대판 붙었다고 쳐보자.”
황 방주가 셈을 하다가 말했다.
“이삼십 명은 다치고.”
“또.”
“십여 명 이상은 죽지 않을까요.”
“최소한으로 잡은 거야?”
황 방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나는 황 방주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물었다.
“그럼 그 친구들은 무슨 죄가 있어? 황야에서 생을 마감해야 하는 놈들이야?”
“예?”
“황 방주, 잘 들어봐라. 대오방이 있는 너희 연고지에 마적이 습격하면 대오방이 전부 나서서 칼을 쥐고 싸우는 게 옳다. 그러다 죽거나 다치면 운이 없는 거지. 그래도 연고지를 지키기 위해서 용감하게 싸웠다는 의미는 남아. 거기에 있는 약자들을 대신해서 싸운 것일 테니까.”
“예.”
“네 수하들을 여기까지 불러서 개죽음을 당하게 만드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어? 그대가 나한테 갈굼을 당하고 몇 대 맞아서? 네 자존심을 지키겠다고 수하들을 불러서 죽게 만들겠다고? 복수도 아니고, 무언가를 지키겠다는 대의도 없잖아. 그저 네가 남자답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수하들이 죽음을 감수해야 한다니 이런 개 같은 경우가 있나.”
이놈은 원래 오랜 세월을 못난 놈으로 지낸 터라, 마음을 갑자기 고쳐보겠다고 해서 나랑 갑자기 말이 잘 통할 수는 없다.
황 방주가 대답했다.
“제가 잘못 생각했습니다.”
나는 처음으로 황 방주의 빈 잔에 술을 따라줬다. 마부에게도 술을 따라주면서 말했다.
“대오방으로 갈 필요 없으니 편히 드시고.”
마부가 술을 받았다.
“예, 문주님.”
술을 한 잔씩 나눠 마신 다음에 내가 말했다.
“황 방주, 뭔가를 증명하고 싶다는 마음은 존중해주마.”
“예.”
“하지만 수하들을 황야에서 허망한 시체로 만들지 말고. 당당하게 직접 나서는 게 어때.”
황 방주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직접 나서는 것이라면…….”
“왜 갑자기 또 모르는 척이야. 마적 말이야. 백 명인지 이백 명인지는 모르겠다만 쳐들어가서 자문홍귀의 목을 베면 수하들에게는 물론이고 강호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과연 황가오다. 과연 대오방주다. 이런 말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그걸 보여주겠다는 거 아니야?”
황 방주가 대답했다.
“그냥 저 혼자 황야에 가서 죽으라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무리야?”
“예. 제가 절대고수도 아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갑자기 사람이 바뀐 척 행동하지 마라. 기만이다.”
황 방주가 웃으면서 대꾸했다.
“기만이요?”
“기망(欺罔)인가? 하여간.”
황 방주가 웃는 듯 마는 듯한 묘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다가 내게 말했다.
“문주님, 내일 저랑 둘이 가시죠. 황야로.”
말을 해놓고 황 방주가 입을 굳게 다물자, 어금니 부분이 툭 튀어나왔다. 흥분한 모양이었다.
나는 웃으면서 대꾸했다.
“나랑? 자신 있어?”
황 방주가 나를 보면서 말했다.
“자신 있는 정도는 아닙니다. 문주님 옆에서 싸우다가 도망가지 않고 죽는 모습까지는 보여드리지요.”
황 방주가 주변을 둘러보면서 말했다.
“마침 이곳에 있는 강호의 형제들이 문주님과 제 대화를 다 들었습니다. 저는 내뱉은 말을 지키겠습니다. 어떠십니까?”
황 방주의 말대로 주변에 있는 자들이 전부 우리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나는 손가락으로 뺨을 긁다가 황 방주의 요청에 응답했다.
“좋다. 가자. 둘이 가서, 마적들이 전부 뒤질 것인지 우리 둘이 죽을 것인지 확인해 보자고.”
황 방주가 나를 노려보면서 물었다.
“제가 도망가지 않으면. 싸우다 죽든, 싸우다 살아남든 간에 인정해주십니까?”
나는 술을 따르면서 대답했다.
“싸우는 거 봐야지.”
“알겠습니다.”
나는 일행에게 말했다.
“마시고 일어나자고. 내일 종일 싸울 수도 있으니. 쉬어야지.”
모용백이 내게 무슨 말을 할 것처럼 보여서 나는 눈빛을 보냈다.
‘이따 얘기하자.’
모용백이 입을 다문 채로 고개만 살짝 끄덕였다. 일행들과 함께 숙소를 알아보기 위해 일어나는데 손님들 틈바구니에서 누군가 물었다.
“젊은 문주께서는 어느 문파이십니까?”
모용백이 내 표정을 확인했다가 대신 대답했다.
“하오문주십니다.”
걸어가는 와중에 뒤에서 여러 가지 말이 들렸다. 들어봤다는 말도 있었고, 그게 어떤 문파냐는 말도 있었다. 또한, 겨우 두 명이 마적을 치러 간다는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 말도 귀에 박히는 것처럼 아주 잘 들렸다.
대꾸할 만한 가치가 없는 말들이어서 그대로 자리를 떴다.
* * *
옆방에서 넘어온 모용백이 아까 하려던 말을 꺼냈다.
“문주님, 정말 둘이 가십니까? 저는요.”
“셋이 가면 안 돼.”
“둘보다는 셋이 낫지 않겠습니까.”
나는 모용백을 바라보면서 덤덤한 어조로 말했다.
“그러면 내가 황 방주와 똑같은 놈이 되잖아. 문주와 방주, 둘이 가서 해결할 테니 이번에는 나서지 마.”
모용백이 말했다.
“사실 문주님은 걱정이 되지 않는데 황 방주는 십중팔구 죽지 않겠습니까?”
“선생 말대로 황 방주가 죽을 수도 있고. 안 죽을 수도 있고. 나도 모를 일이다. 정말 실력이 허접하다면 내가 싸우는 도중에 몇 차례 살려줘도 어쩔 수 없이 죽게 되겠지. 마적이 적어도 백 명은 넘을 테니까.”
“예.”
“하지만 저딴 식으로 살아가는 것보다는 죽음을 각오한 채로 싸우는 게 낫지 않겠어? 자그마한 방파의 못난 수장이지만, 사내가 결정한 일이니 둘이 가서 해결하마.”
“음, 그렇습니까?”
“내일 보자고.”
“편히 쉬십시오.”
모용백은 자신의 의견을 밀어붙이지 않은 채로 물러났다. 나는 침상에 가부좌를 튼 채로 눈을 감았다. 나는 운기조식에 돌입하기 전에 이런 생각을 잠시 했다.
마적이나 마교나 별반 다를 바 없다고.
세력이 크냐, 작으냐. 그 차이만 있을 뿐이라고 말이다.
운기조식에 돌입했다.
* * *
나는 아침을 간단하게 먹은 후에 황 방주와 사거리를 벗어나서 황야로 이동했다.
황 방주는 아침을 먹을 때까지도 안색이 좋지 않았는데 막상 황야에 도착해서 말없이 걷기 시작하자 긴장이 조금 풀린 모양이었다.
나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은 채로 황야를 걸었다.
바람이 솔솔 부는 날씨인 데다가, 햇볕도 따갑지 않아서 싸우기엔 적당한 날이었다. 모용백이 내 손에 익은 흑묘아를 주겠다고 했으나 내가 거절했다.
문득 나는 황 방주의 허리에 있는 검을 확인한 다음에 물었다.
“황 방주, 무슨 검법을 익혔어?”
“무정검법(無情劍法)을 익혔습니다.”
“뭐?”
“무정…… 검법이요.”
나는 멈춰 서서 황 방주를 바라봤다.
그대와 너무 어울리지 않는 검법 이름이 아니냐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가 내려갔다. 황가오는 오늘 황야에서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에 여기까지 와서 갈구는 것은 적절하지 않았다.
“몇 수(手)야?”
“십칠수(十七手)입니다.”
“누구한테 배웠나?”
“전대 대오방주님이 사부셨습니다.”
“독문무공인가?”
“그렇습니다.”
“독문무공이라서 남 앞에서 펼치는 게 꺼려지겠지만, 그대가 오늘 승천할 수도 있으니 지금 내 앞에서 내공 없이 펼쳐봐라. 구경해봐야겠다.”
“예.”
황 방주가 거리를 조금 벌리더니 검을 뽑아서 수직으로 세웠다. 이어서 십칠수로 이뤄진 무정검법을 펼치기 시작했다.
나는 무정검법의 형(形)과 식(式)을 살펴보고, 황 방주의 자세와 수련의 깊이를 가늠해봤다. 낯선 검법이어서 한눈에 들어오진 않았다. 황 방주가 십칠수를 전부 펼쳤을 때, 다시 요구했다.
“한 번만 더 보자.”
“예.”
황 방주가 이번에는 약간 천천히 무정검법을 처음부터 끝까지 펼쳤다. 시범이 끝나자마자, 나는 목검을 쥔 채로 무정검법의 여덟 번째 초식을 비슷하게 따라면서 물었다.
“이 동작은 왜 이렇게 구성이 된 거야? 뭔가를 쳐내는 식(式)인가?”
“전대 방주님이 유성낭인들과 자주 싸우다가 만드신 검법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반적으로 쇠사슬을 쳐내고 찌르는 동작들이 초식에 섞여 있습니다.”
그제야 조금 무정검법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군. 하지만 이런 검법을 다수와 싸울 때 펼치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아. 일대일에서나 사용하고. 다수와 싸울 때는 회피, 보법 그리고 삼재검법(三才劍法)만 사용하도록 해. 군부의 장군들이 실력이 부족해서 병사들에게 삼재검법만 강조하는 것은 아니야. 어차피 전장에서 다수의 병력이 부딪칠 때는 그게 가장 효과적이기 때문이지. 실력이 뛰어난 적장은 어차피 장군들이 상대할 테니까.”
“예.”
“살아남으면 십칠수에서 특정 병장기를 상대하기 위해 만들어진 초식은 전부 날려버리도록 해. 십삼수(十三手) 정도로 줄여. 유성추와 같은 병장기는 오히려 기본적인 것을 더 극한으로 수련하고 상황에 알맞게 임기응변으로 대처해야지. 초식으로 대처하다가 수법이 빤히 읽히면 암기와 같은 변수에 당할 수 있다.”
“참고하겠습니다.”
“가자고.”
나는 다시 황 방주와 황야를 거닐었다. 제법 걸었더니 이제 사거리도 보이지 않았고, 사람이 사는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사방팔방이 온통 황야였다.
옆에서 걷고 있는 황 방주가 걱정스럽다는 어조로 내게 물었다.
“문주님, 죄송한 질문이나…….”
“뭐.”
“목검으로 괜찮으시겠습니까.”
“빨리도 물어본다. 검 바꿀까?”
“아닙니다.”
“안 바꿀 거면 왜 물어봤어.”
황 방주가 난처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제가 실력이 부족하니 진검을 쓰겠습니다. 그냥 왜 목검을 가져오셨나 해서 궁금해서 여쭤본 겁니다.”
“내가 바보도 아니고 이런 곳에 목검을 가져왔겠어?”
문득 황 방주가 눈을 크게 뜬 채로 전방을 주시했다. 십여 명의 마적단이 꽤 떨어진 곳에서 이동하고 있었다.
“문주님.”
“보고 있다.”
나는 멀리 떨어진 마적 무리에서 누군가가 우리 쪽을 쳐다보자마자, 황 방주의 어깨를 잡아끌면서 반대 방향으로 돌아섰다.
“도망가자.”
“예?”
“도망가자고. 이 새끼야.”
나는 황 방주와 함께 방향을 바꾼 다음에 걷는 속도를 높였다. 황 방주가 다급한 어조로 말했다.
“아니, 왜 갑자기 도망을…….”
나는 적당한 속도로 달리기 시작하면서 말했다.
“도망을 쳐야 적들이 쫓아오지. 너무 멀잖아. 말 타고 있는 놈들이 알아서 쫓아오겠지.”
“……그렇겠네요.”
황야를 건너는 올바른 방법은 약자 행세를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이곳이 비정한 곳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다.
“황 방주.”
“예.”
“저런 놈들은 약자를 발견하면 피가 솟구칠 거야. 죽이고, 뺏고, 배고프면 시체라도 구워 먹을 놈들이다.”
“맞습니다.”
“인원이 적은 것을 보면 수시로 황야를 오가면서 정찰하는 척후병이다.”
도망가는 와중에 말발굽 소리가 점점 크게 들렸다. 나는 서서히 속도를 줄이다가 아예 멈춰 서서 다가오는 마적 무리를 바라봤다. 전방에서 양쪽으로 갈라진 마적들이 우리를 살피면서 지나가더니 금세 말머리를 돌려서 원형으로 포위하는 진형을 갖췄다.
나는 마적들의 차림새도 구경하고, 황 방주의 표정도 구경하다가 혼자 웃었다.
한차례 마적들을 둘러본 다음에 말했다.
“형제들 안녕하신가? 황야를 건너는 중인데 통행세를 내야 하나?”
내가 친근한 어조로 묻자, 마적들이 저희끼리 바라보다가 웃음을 터트렸다. 여인의 장신구를 목에 잔뜩 두른 놈이 말했다.
“똑똑한 친구네. 돈이 되는 것은 전부 내려놓고 검도 이쪽으로 던져.”
“통행세만 주고 넘어가면 안 되겠나? 그리고 검은 줄 수가 없네.”
놈의 행색을 살펴보니, 여인들에게서 뺏은 분까지 얼굴에 바른 모양인지 드러나는 팔과 다리는 까무잡잡한데 얼굴만 유난히 하얀 상태였다.
이놈이 씨익 웃으면서 칼을 뽑았다.
“개소리 적당히 하고. 검부터 던져라. 쳐 죽이기 전에.”
나는 화장을 한 마적 놈을 바라보면서 웃었다.
“굳이 이래야겠어?”
마적이 나를 향해 칼을 겨누면서 대답했다.
“웃지 마라. 입을 찢어…….”
나는 허 장로가 선물한 목검을 뽑자마자 검기를 주입해서 얼굴에 분을 처바른 마적의 목을 쳐냈다. 푸악― 하는 소리와 함께 핏물과 머리통이 동시에 솟구쳤다.
마적들의 시선이 일제히 목 없는 시체로 향했다. 말 위에서 목 없는 시체 한 구가 바닥에 떨어지는 와중에 나는 어깨를 들썩이면서 웃었다.
“황 방주.”
“예.”
“죽이자.”
나는 황 방주와 함께 마적들에게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