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Mad Demon RAW novel - Chapter 255
255화. 오늘도 내가 이겼다.
묵가는 강대국을 상대로 약소국의 수비를 돕는 제자백가 세력이었다. 정복 전쟁을 반대한다는 것은 그런 의미다. 강호의 논리로 적용하면 마교나 무림맹이 강호 전체를 지배하는 것도 용납하지 않는 자들이 되겠다.
어쨌든 나는 추가로 한 가지를 더 알게 되었다.
이제 서생들이 전부 나를 알고 있는 모양이다. 유명세가 이렇게 무섭다. 더군다나 하오문을 이끄는 처지에서는 서생 전체를 적으로 돌릴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 적으로 돌리는 것은 너무 미련한 짓이다.
애초에 제자백가는 독립적인 자들이니 이들의 다양한 특징을 파악해서 일부는 아군, 일부는 방관, 일부는 때려죽이는 게 더 낫지 않을까?
그런데도 나는 이야기의 방향을 틀었다.
“나한테 실명서생이 어떻게 죽었는지 설명을 듣지 못하면 어쩌시겠소?”
여운벽은 묵가다운 대답을 내놓았다.
“내가 알고 싶은 것은 간단해. 자네가 실명서생을 먼저 공격했을 리는 없지 않은가. 개방 방주를 돕겠다고 합류했다가 실명이 죽었겠지.”
“그것은 맞지.”
여운벽이 나를 바라봤다.
“거짓말이 아니라면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닐 테지. 자네의 계략이 실명의 무공보다 강했나 보군. 개방 방주를 지키려다가 싸운 것이면 우리도 어쩔 수 없네. 다만 백의서생의 말이었기 때문에 그동안은 쉽게 믿을 수가 없었네. 직접 봐야 할 이유가 생겼던 셈이지.”
이 정도면 일부러 용두철방의 대금을 치르지 않아서 문제를 일으킨 것처럼 보였다.
오히려 나는 궁금한 것을 물었다.
“서생 세력도 우두머리가 있소?”
여운벽이 우리를 둘러보면서 말했다.
“자네 세 사람은 부하와 대장으로 나뉘어 있나?”
막내인 색마가 대답했다.
“그럴 리가.”
여운벽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도 마찬가지네. 다만 서로 무엇이 뛰어난지는 알고 있지. 무공은 누가 특별히 뛰어나고, 경공은 누가 뛰어난지, 병장기는 누가 잘 만드는지…….”
나는 왜 이들이 병장기 의뢰를 맡겼는지 이제야 이해했다.
“……병장기는 당신들이 더 잘 만들겠군.”
묵가에 속한 자들은 전부 장인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금 아저씨의 실력이 아직 묵가의 장인들에겐 못 미치는 모양이었다.
여운벽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인정했다.
“우리도 제법 공들이는 편이지. 서생들도 관심 분야가 각기 다르네. 어떤 이는 여전히 권력에 욕심을 내고 있고. 어떤 자는 옛 도가의 사람들처럼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삶을 살고 있네. 사실은 이것이 제자백가의 모습이겠지. 각자 생각대로 사는 것. 다만 어떤 것이든 세월이 흐르면 변질하는 것도 있기 마련이야.”
이 정도면 여운벽이 내게 내부 사정을 많이 이야기한 것이다.
나는 빠르게 여운벽의 말을 정리했다.
무공이 뛰어난 서생은 천악, 혹은 천악과 경쟁할 수 있는 사내까지 포함.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삶을 사는 서생은 도가(道家) 계열.
경공이 뛰어난 사람은 쾌당주.
여전히 권력에 욕심을 내는 사람은 백의서생으로 추정했다.
세월이 흘러서 변질했다는 것은 서생 세력 일부를 말하는 것 같았다. 그 기준으로 말하면 여운벽은 어느 정도 본래 묵가의 방향을 잃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는 서생들에 관한 정보를 받았기 때문에 그제야 답례를 했다.
“문주는 동의하지 않겠지만 실명서생은 거만한 사내였소.”
“그랬나? 어떤 면에서.”
“시력을 잃은 것은 큰 약점인데 본인의 거만함 때문에 인지하지 못하더군. 아마 오랫동안 수련으로 극복했다고 생각했겠지. 그 자부심은 마치, 나는 시력을 잃었어도 다른 서생과 동등하다. 강하다. 이런 느낌이었달까.”
“자네가 그 약점을 파고들었나?”
“약점을 파고드는 것은 싸움의 기본이니까. 처음부터 끝까지 시력 잃은 것을 철저하게 공략했지.”
물론 도망치는 것부터가 시작이었다.
여운벽이 나를 평가했다.
“무섭고 냉정한 사람이군.”
여운벽이 잠시 턱을 쓰다듬더니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어조로 말했다.
“그걸 약점이라 생각했다면…… 오히려 실명의 수하들이 실명을 방해했겠군. 차라리 혼자 싸우는 게 더 강력했을 터. 그 상황까지도 자네가 몰아넣은 것이라면 완벽하게 패배했겠군. 무공만이 강하다는 것의 척도는 아닐 테니까.”
여운벽의 말에 색마와 귀마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는 색마가 술병을 들었다.
“한잔합시다.”
우리는 색마에게서 술을 받았다. 아까와는 분위기가 약간 달라진 술이 또르륵 소리를 내면서 떨어졌다.
술을 받은 여운벽이 내게 말했다.
“듣자 하니 자네는 마교도 주시하고, 서생들도 주시하게 되었네. 앞으로 어떻게 살아남으려고 하는가? 나도 근래 자네처럼 적이 많은 사내는 처음 보네. 아까 운향문에 방문했을 때만 해도 자네는 나까지 적으로 만들뻔했었지.”
나는 몇 잔 들어가지도 않은 술이 확 깼다.
“아, 그랬나? 하지만 내가 적이 많은 것은 어쩔 수 없소. 나는 제자백가가 아니지만 내가 생각하는 삶의 방향 때문에 인지하고 있는 어려움이오.”
여운벽이 술잔을 들었다.
“그것은 내가 술안주로 들을 수 있겠나?”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다가 술을 한잔 더 마셨다. 어느 틈에 점소이가 안주를 놓고 가긴 했으나 아무도 젓가락을 들지 않았다.
서생 중의 한 명에게 내 뜻을 밝혀야 하는 지금 순간은 지난날 제자백가의 우두머리들이 천하를 돌아다니면서 유세(遊說)하는 것과 같았다.
유세는 사실 쉽지 않은 일이다.
나는 손을 내밀어서 여운벽의 세력에 속하는 상인, 행인, 일꾼들을 대중없이 가리켰다.
“내가 적이 많은 것은 저런 사람들의 편에 있어서겠지. 특별한 일은 아니지만 내가 점소이였기 때문에 그렇소. 먹고 사는 게 쉽지 않았지. 일해서 버는 것보다 빼앗기는 게 더 많았어. 무슨 자신감이었을까. 내가 무공을 익히면 나보다 먼저 무공을 익힌 자들을 때려죽일 수 있다고 생각했지. 불특정 다수에 대한 복수는 아니었소. 비슷한 놈들만 때려죽였거든. 예를 들면, 함부로 점소이의 뺨을 후려치는 놈들? 여 문주는 뺨을 맞아봤소?”
여운벽이 고개를 저었다.
“아직 그런 경험은 못 해봤네.”
“상상해보면 어떻소?”
여운벽이 자신의 뺨을 만졌다.
“참을 이유가 없으니 검을 뽑겠지.”
“상대가 댁보다 고수라면?”
“겨룰 테지. 승패는 결과일 뿐이니.”
“죽어도 후회 없소?”
“후회는 없네.”
“늙은 부모가 집에 누워계시면 어떻게 하겠소? 저녁을 챙겨 드리러 가야 하는데.”
여운벽이 당황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렇다면 일단 화를 참아 보겠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 사람들 대부분이 이런 편이어서 많이 당하고 살더군. 내가 적이 많은 이유가 되겠소. 대신 패주는 느낌이랄까.”
나는 이야기를 하다가 색마를 바라봤다.
“대신 패주는 느낌 알지?”
색마가 씨익 웃었다.
“알지. 나쁘지 않아.”
여운벽도 슬쩍 웃었다.
“그래서 용두철방 일 때문에 여기까지 한걸음에 쳐들어왔나?”
“정확하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일이지.”
“그러다가 자네가 감당하지 못하는 고수에게 패배해서 죽으면? 아니지. 같은 질문을 하겠네. 집에 노모가 계시면 지금처럼 행동할 수 있겠나?”
나는 세 사람에게 술을 따라주면서 대답했다.
“미안한 말이지만 나는 지금 가족이 없소. 당분간 만들 생각도 없고. 혼자야. 사실 가끔 내가 막 나가는 이유이기도 하지. 그리고 내가 패배하면? 모르겠군. 그런 일이 발생하면…….”
나는 색마와 귀마를 가리켰다.
“두 사람이 내 일을 이어받을 거야.”
색마가 나를 노려봤다.
“내가 왜?”
나는 다시 귀마만 가리켰다.
“넷째라서 철이 없군. 육합선생이 맡을 거요.”
귀마 놈은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자 여문벽이 귀마에게 물었다.
“그대가 맡겠나? 하오문주의 뜻을.”
귀마가 여운벽을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부탁을 받는다면 내가 맡겠소.”
“후회 없나?”
귀마가 슬쩍 웃으면서 대답했다.
“미안한 말이지만 나도 가족이 없소. 가족이라 여겼던 사부님과 사형제들도 먼저 떠났기 때문에 나도 뜻을 관철하기 위해서는 막 나갈 수 있다는 뜻이지.”
옳다. 그렇게 막 나가다가 탄생한 별호가 전생의 귀마와 광마였다.
물론 이번에는 방향성이 다르다.
여운벽이 내게 물었다.
“지금 들려준 이야기가 하오문이 만들어진 목적인가?”
“그렇소.”
여운벽이 술을 마신 다음에 나를 바라봤다.
“……묵자(墨子)께서 자네와 이야기를 나눴다면 기뻐하셨을 것이네.”
“음.”
무슨 말인가 했더니 여운벽이 내게 할 수 있는 최선의 칭찬이었다. 묵자는 묵가를 만든 옛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를 바라보던 여운벽이 주변을 향해 말했다.
“바쁘지 않은 사람들은 와서 인사하게. 하오문주 이자하. 그의 벗들인 몽연 공자, 육합선생이네.”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몰려오더니 우리를 향해 두 손을 맞잡았다.
“문주님, 몽 공자, 육합선생. 반갑습니다.”
묵가의 일원들과 인사를 나누는 것이라서 우리도 엉거주춤하다가 일어났다. 이 사람들과 검을 휘두르면서 피를 뿌리는 것보다는 손을 맞잡고 인사나 나누는 게 훨씬 쉬운 일이었다. 다소 어색하긴 했으나 주변을 둘러보면서 눈도 마주치고 고개도 끄덕였다. 하나하나 인사하면 끝도 없을 것 같았는데 다행히 단체로 예를 취한 다음에 조용히 물러났다.
우리가 다시 앉자, 여운벽이 말했다.
“……도울 일이 있으면 요청하게. 우리는 본래 수성(守城)하는 사람들. 지켜야 할 가치에 대해서는 목숨을 아끼지 않는다네. 오래전부터 그랬지.”
이것이 본래의 묵가다.
다행히 여운벽은 서생들 중에서도 묵가의 본래 가치를 잃지 않은 사내였다. 만약 내가 서생들은 무조건 적이라고 가정했으면 싸우느라 본래의 가치를 찾아낼 수 없었던 사내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나다.
“요청할 일이 있을지 모르겠소. 반대로 나도 제안하리다. 생각이 다른 서생들에게 핍박을 받거나 마교와 싸우게 된다면 하오문에 도움을 요청하시오. 나는 본래 일하는 사람들을 보호하려는 사내. 여 문주의 일원은 모두 생업에 종사하고 있으니 하오문의 보호를 받을 가치가 충분하오. 나도 큰 세력의 대장은 아니지만, 나라도 오겠소.”
묵가에게 도움을 받느니, 내가 묵가를 돕는 게 낫다. 과거에 대체 어떤 세력이 묵가를 보호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여운벽이 두 손을 맞잡더니 나를 바라봤다.
“그 호의는 마음으로만 받겠네.”
빈말은 아닌데 저렇게 대답하니 나도 할 말이 궁색한 상황. 그냥 넘어갈까 생각하다가, 내 성격대로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여 문주, 도움을 주고 도움도 받아야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소. 그것은 변질이 아니외다.”
이제 보니까 묵가는 정작 자신들이 공격당할 때 수성의 달인이라는 정체성 때문에 타인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이것이 이들의 자존심이기 때문이다. 어떤 면에서는 단체로 검마와 같은 삶을 살아가는 자존심 강한 사내들이었다.
하지만 나한테 걸린 이상 그럴 수는 없다.
고민하던 여운벽이 잠시 후에 대답했다.
“솔직히 말해서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할 일이 있을까 모르겠군. 그러나 거절만 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로군. 대신에 이번 병장기 건에 대한 사과의 의미로 우리가 먼저 묵가검(墨家劍) 한 자루를 만들어서 선물하겠네. 이후에 묵가검이 마음에 든다면 우리가 요청할 때 도와주게. 셋 중 누가 사용하겠나?”
나는 살짝 소름이 돋았다.
나는 이미 목검이 있어서 필요 없고, 색마는 빙공을 기반으로 한 장법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귀마는 애초에 철벽 방어를 펼치는 유형이어서 수성의 달인인 묵가와 수비적인 지론이 맞닿아 있다.
나는 귀마를 바라봤다.
“육합선생은…… 육합문의 마지막 생존자. 복수를 마쳤으나 마음의 응어리는 남아 있소. 여 문주가 묵가검을 한 자루 선물하겠다면 검명(劍名)은 육합검으로 해주시오.”
귀마는 뜻밖의 제안에 놀란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봤다.
“내가? 넷째는?”
색마가 고개를 저었다.
“나는 검을 수련할 시간이 없어. 내 주력이 아니야. 셋째는 이미 검이 있으니 둘째가 받는 게 맞지.”
여운벽이 있는 자리에서 형님들에게 반말을 지껄이는 색마 새끼를 보고 있으려니 기분이 참신했다.
여운벽이 귀마에게 물었다.
“육합검이라는 검명을 각인해도 되겠나?”
사회성이 뒤떨어지는 귀마가 당황한 나머지 아무 말도 못 하자, 색마가 귀마의 두 손을 붙잡더니 애새끼 놀리는 것처럼 포권을 취하게 만들었다.
“……그럽시다. 고맙소.”
색마가 대신 여운벽에게 말했다.
“동의하는 모양이니 그렇게 해주시오.”
그제야 귀마가 스스로 포권을 취하더니 여운벽에게 말했다.
“여 문주, 고맙소. 강호인에게 검이란…….”
나는 귀마의 말을 끊었다.
“닥쳐라.”
“…….”
“그냥 고맙다고 하고 끝내. 강호인에게 검이 소중하지 그럼 안 소중하겠냐. 제일 소중하지. 생명과도 같소, 이런 말 하려고 그랬나?”
귀마가 눈을 감더니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
다시 숨을 길게 내뱉으면서 호흡을 가다듬은 귀마가 눈을 떴다.
“……셋째 때문에 나날이 정신 수양이 깊어지고 있소. 긍정적으로 생각해야지.”
색마가 옆에서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축하해. 수양이 깊어지면 좋지.”
문득 우리 셋은 여운벽을 바라봤다. 이유는 잘 모르겠으나 아까보다 이빨을 조금 강하게 물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혀를 찼다. 사람이 한심한 광경을 보면 그냥 웃으면 될 일인데 그걸 또 참고 있다니, 안타까운 사내였다.
나는 술병을 붙잡았다.
“술이나 마십시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어쨌든 명검 한 자루를 얻어냈으니 오늘도 내가 이겼다고.
나는 세 사람에게 축하주를 따라줬다.
여운벽에겐 나를 적으로 삼지 않은 것에 대한 행운의 축하주.
귀마에겐 제자에게 대대로 물려줄 만한 명검을 얻은 것에 대한 축하주.
색마에겐 꼽사리 축하주.
그리고 내 술잔에도 축하주를 직접 따랐다.
…무턱대고 때려 부수지 않은 것에 대한 아주 자그만 칭찬을 담아서.
또르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