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Mad Demon RAW novel - Chapter 302
302화. 어두우면 곤란하다.
사도제일인이 손가락으로 날 가리켰다.
“화가 나는 게냐? 네가 죽으면 임소백의 마음 한구석이 또 무너지겠지. 내가 원하는 바다. 그러게 왜 사도맹을 돕지 않았을까. 인과응보라는 것이겠지.”
사도제일인이 얄밉게 웃자 삐뚤빼뚤한 이빨이 보였다.
저 병신 같은 얼굴을 볼 때마다 내 분노도 갈 길을 잃었다.
오성도 신체의 완성도도 그리 좋아 보이지 않는 사내였는데 저 정도 실력을 갖춘 것에 오히려 경외감이 들 정도였다.
병신(病身)이 아니라, 진정한 의미의 병신(病神)이랄까.
어쨌든 병신이다.
대체 얼마나 삐뚤어진 마음으로 살아왔던 것일까.
나는 덤덤한 어조로 대답했다.
“결국에 그거 때문에 사람들을 괴롭혔나?”
“다른 이유가 있겠느냐?”
이런 놈에게 줄 것은 내 경멸의 마음밖에 없었다. 나는 사도제일인과 마주 보면서 허탈한 웃음을 짓다가 놈의 얼굴을 향해 침을 뱉었다.
“퉤!”
깜짝 놀란 사도 놈이 황당한 낯빛으로 물러나더니 살짝 넋이 나간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뭐 하는 짓이냐? 예의 없이.”
“네게 줄 게 그것밖에 없다. 놀란 개처럼 피하는군. 하하하…….”
사도제일인의 표정이 점점 굳어갔다.
나는 손을 살짝 내저었다.
“됐다. 이제 병신 같은 놈의 도전을 받아주마. 뭐 말이 통해야 말을 하지. 너 같은 놈과 대화를 하느니 동네 개한테 말을 가르치는 게 낫다. 왜? 표정이 왜 그래?”
“…….”
사도 놈은 자하신공을 펼칠 수 있을 정도로 화가 나는 모양이었다.
“산적과 수적을 사주한 죄. 민가를 불태운 죄, 인질극을 벌이고 흑향을 운영한 죄에 대한 벌로…….”
나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사도 놈과 다시 눈을 마주쳤다.
“내 경멸을 받아라.”
흥분한 사도제일인이 달려들자마자, 나는 후퇴하는 제운종을 수련하듯이 멀찍이 떨어졌다. 등과 겨드랑이에서 식은땀이 한 방울 뚝 떨어졌다.
사도가 내게 걸어오면서 말했다.
“제자로 받겠다는 것은 철회하마.”
“오히려 좋아. 너처럼 늙을 수는 없지.”
“이놈!”
나는 검을 뽑지 않은 채로 일단 도망치면서 일단 몸을 최대한 가볍게 만들었다. 부족한 잠이 내 몸을 무겁게 만들고 있었기 때문에 달리는 와중에 잠도 달아날 필요가 있었다.
사도는 아마 도검불침에 가까울 것이다.
어떻게 된 일인지는 나도 모른다. 자세히 알려고 했다간 내가 죽을 수도 있어서 관심을 끊었다.
“언제까지 도망칠 수 있나 보자꾸나.”
다행인 것은 도검불침과 경공은 다른 영역이어서 나를 압도할 정도로 빠르진 않았다.
나는 간발의 차이로 움직이다가 검을 뽑으면서 돌아섰다.
그제야 나는 검마가 왜 그렇게 기운 없이 싸웠는지 깨달았다. 도검불침임을 파악했을 테니 과도하게 공격할 필요가 없었던 셈이다. 사도는 검을 몸으로 받아내면서 내 멱살을 향해 손을 뻗었다.
나는 물러나면서 검풍을 쏟아냈다.
귀마가 땅을 긁듯이 검을 휘둘러서 돌이 섞인 검풍을 일으킨 것을 그대로 따라 했다. 순식간에 돌무더기가 섞인 검풍을 처맞은 사도의 잿빛 장삼이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찢어졌다.
사도제일인이 냉소를 머금더니 장삼을 벗어 던졌다. 이제 하의는 잠옷이고, 상체는 맨살이라서 미친 늙은이가 따로 없었다.
“더 해보아라.”
검은 머리와 흰 머리가 뒤섞인 인상 고약한 노인장이 나를 죽이겠다고 쫓아오는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보통 무서운 게 아니었다.
사도는 나를 붙잡으려고 애를 썼다.
나는 목검이 사도의 손에 붙잡히는 순간 부러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검을 휘두르는 것도 점점 불편해졌다.
‘염병할…… 이상하게 강적이네.’
저 예술미 없는 공격이 나는 더 불편했다.
예측이 어렵기 때문이다.
나도 그렇지만 사도 역시 처음부터 끝까지 나를 기만하고 있었다. 슬슬 공방전이 익숙하다고 여겼는지 사도가 웃으면서 손을 휘둘렀다.
“도망만 칠 게냐? 다른 놈들부터 죽여도 도망칠 수 있을까?”
문득 추격을 멈춘 사도가 주변을 둘러보면서 귀마와 색마를 찾았다. 두 사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상태였다.
나는 호흡을 가다듬으면서 짤막한 휴식을 즐겼다.
말을 하는 것도 아까운 시간이었다.
사도가 내게 물었다.
“……이것들은 어디로 간 게냐?”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어차피 멍청한 놈들이 아니라서 숨는 것 자체가 심리전일 터였다.
나는 정신을 집중해서 목검에 냉기를 주입한 다음에 사도를 공격했다. 내가 갑자기 공세로 전환하자, 사도제일인은 신이 난 모양인지 멱살을 잡으려거나 할퀴는 동작으로 대응했다. 나는 사도제일인의 목, 얼굴, 가슴을 스치듯이 베고, 한두 차례는 눈을 노리면서 찔렀다.
하지만 길쭉한 검이 눈에 닿지 않았다.
근접 거리에서 사도가 쌍장으로 장력을 내뿜고.
나는 검을 수직으로 내려서 장력을 겨우 막았다.
콰아아아아아앙!
장력을 검으로 막았는데 어찌 뒷골이 땅기는 것일까. 공중에 뜬 채로 밀려나는 와중에 순식간에 접근한 사도가 손날로 내 몸을 내려쳤다.
나는 공중에서 목검으로 손날을 쳐냈다가, 방향을 바꿔서 날아갔다. 왼손으로 바닥을 쳐서 공중으로 솟구치는데 이번에는 사도의 손에서 빛살이 날아왔다.
공중에서 애써 몸을 움직여서 피했다가, 두 번째 빛살은 목검으로 쳐냈다.
퍼억!
일순간 하늘과 땅의 위치가 뒤바뀌었다. 서너 차례, 천지(天地)를 헤매다가 땅에 내려서서 목검을 도로 집어넣었다. 땅에 내려서자마자 피를 뱉어내어야 할 것 같은 거북함이 밀려들었다. 먹은 것이 부실해도 체내에 충격이 가해지면 쓴 물이 올라오기 마련이다.
어쨌든 검법은 별 의미가 없었다.
사도가 껄껄 웃으면서 다가왔다.
“장법으로 하자는 게냐? 좋다.”
나는 저 병신 같은 문답이 우스워서 또 웃었다.
사도가 말했다.
“문주, 웃지 말도록. 그만 웃어라.”
“왜? 나는 본래 잘 웃어.”
“비웃지 말란 뜻이다. 선배에 대한 예의가 아니야.”
“선배는…… 지랄.”
문득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죽음을 각오하지 않으면 이런 상대에게 이길 수 없을 것이라고.
도망가는 것도 답이 아니고.
검으로 찌르는 것도 소용없다.
죽음을 각오하면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사도가 내게 다가왔을 때 나는 처음으로 제운종으로 일보를 전진해서 쌍장에 힘을 보탰다.
퍼억!
변수를 차단하기 위해서 월영무정공과 금구소요공의 장력을 쏟아내면서 기파까지 내보냈다. 상대가 시종일관 비겁한 인생을 살았기 때문에 나는 정면에서 위기를 맞이했다. 나는 장력을 겨루자마자, 이 늙은이의 나이가 내 예상보다 훨씬 많을 것이라 예상했다. 그만큼 내공이 깊었다.
사도의 입이 벌어졌다.
“목숨을 이렇게 내던지다니.”
“…….”
“얼마나 버틸 수 있을 것 같으냐?”
나는 웃으면서 공력을 쏟아냈다.
“한 시진?”
사도가 고개를 흔들면서 대답했다.
“반 시진이다. 그 안에 내공을 전부 태워주마.”
나는 진지한 마음가짐으로 내공을 겨뤘다. 설령 내 내공이 바닥나더라도 다음 상대인 색마와 귀마가 한참 수월하게 싸울 수 있을 터였다.
순간, 눈치 빠른 사도가 손을 떼어내기 위해서 장력을 쏟아내는 것 같아서 나는 공력을 더욱 끌어올렸다.
“왜? 어디 가려고. 날 죽여야만 손을 뗄 수 있다.”
“…….”
일단 내 오른손은 만월의 냉기 때문에 허옇게 얼어붙은 상태. 그 냉기가 사도의 손까지 붙잡고 있었다. 왼손으로는 초계(超鷄)의 장력을 구사했다. 사도가 다른 수법을 쓸 위험이 있었기 때문에 전신을 백전십단공의 뇌기로 휘감았다.
동호제일검을 죽였을 때…….
세 가지의 신공을 동시에 펼쳤던 것을 몸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무공은 어쨌든 체내에서 시작되는 것이라서 학문적으로 접근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나는 원리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로 세 가지의 무공을 동시에 펼치고 있었다.
슬슬 사도의 내공이 점점 깊어지더니, 사방팔방에서 벽이 좁혀지는 압박감이 느껴지고 호흡도 점점 불편해졌다.
하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이것이 옳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마음에 안 드는 놈을 죽이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 수 있는 사내, 그것이 애초에 나다.
나는 끊임없이 내 내공을 사도에게 선물했다.
무언가를 느낀 사도의 미간이 잔뜩 좁혀졌을 때…….
“……!”
나는 공력을 폭발하듯이 끌어올려서 사도를 붙들었다. 어느새 공중에서 날아온 색마가 우장으로 사도의 등을 찍고, 그보다 살짝 늦게 도착한 귀마가 좌장으로 사도의 등을 강타했다.
퍽! 퍽! 소리에 이어서 잠시 정적이 흘렀다.
사도의 쭈글쭈글한 얼굴이 물결처럼 요동쳤다가 눈썹이 위로 솟구쳤다. 이 지독한 늙은이는 장력을 두 대나 정통으로 맞았는데도 피 한 방울을 내뱉지 않았다.
오히려 고개를 움직여서 색마와 귀마를 노려봤다. 도저히 고개가 안 돌아갈 것 같은데도 뱀 같은 목이 돌아가서 살기 어린 눈빛을 보냈다.
사도가 말했다.
“……이제 좀 균형이 맞는구나. 각자 애를 써보아라. 누구의 내공이 먼저 바닥을 칠지. 하나하나 팔다리를 분질러주마.”
워낙 비겁한 놈이라서 그런 것일까. 우리한테 비겁하다는 말도 하지 않는 인격자가 되어 있었다.
사도가 등에 달라붙은 거머리를 떼어내려는 것처럼 제자리를 빠르게 돌자, 어쩔 수 없이 우리 셋도 함께 돌 수밖에 없었다. 어쩐지 손을 떼면 애써 두 손으로 들고 있었던 육중한 바위에 깔려 죽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색마에게 얻어맞은 사도의 어깨 부위가 하얗게 얼어붙었다가 본래의 색을 되찾는 것을 반복하고 있었다. 사도가 내공으로 빙공을 밀어내는 모습이 눈으로 보이는 상태.
나는 다소 힘겹게 주둥아리를 열었다.
“사도.”
“…….”
“곧 검마가 나온다.”
허세 섞인 말만 내뱉었는데도 사도의 표정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실은 나도 검마가 언제 마검혼전장에서 나올 것인지 예상할 수 없다.
그냥 거짓말을 하고 싶었을 뿐이다.
때로는 거짓말이 그저 거짓말이 아니었으면 하고 바랄 때도 있는데 지금이 그렇다.
나는 힘겹게 쌓아뒀던 내공을 한 조각씩 야무지게 태워가면서 버텼다.
인생은 새삼스럽게 버티는 시간의 연속이다.
아무런 연관이 없는데도, 객잔에서 탁자를 닦던 기억이 떠올랐다. 탁자를 닦고, 걸레를 빨고, 그릇을 닦고, 의자에 잠시 앉아 내 지루한 인생을 버텨내던 기억이 스쳤다.
그때도 별다른 희망이 없었고.
지금도 별다른 기약이 없다.
하지만 버틴다는 것은 애초에 내 독문 무공이나 다름이 없어서 내공을 계속 두레박으로 끌어올려서 사도에게 아낌없이 퍼부었다. 이것이 바닥나면 내 생명력이라도 태워서 사도를 적실 생각이었다.
순간, 무언가가 와장창 깨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귀곡성(鬼哭聲)이 하늘로 치솟았다.
나는 공중을 쳐다봤다.
광명검이 솟구치고 있었다.
사도가 황당한 낯빛으로 고개를 들더니 공중을 날고 있는 광명검을 쳐다봤다.
“…….”
이어서 사도가 나를 바라봤다. 공중에서 선회하던 광명검이 귀곡성을 뿌리면서 주인에게 돌아가더니 무너지고 있는 마검혼전장에서 검마가 등장했다.
나는 검마를 보자마자 침을 좀 삼켰다.
‘아이고.’
나오긴 나왔는데, 문제가 있어 보였다. 평소와 다르게 전신에 시커먼 혼령이 들러붙은 상황이었는데 눈깔마저 새카맣게 되어서 눈빛이 보이지 않았다.
색마가 긴장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사부님? 접니다. 몽랑이에요.”
어느새 우리에게 다가오기 시작한 검마가 시커먼 눈으로 고개를 조금씩 움직이더니 상황을 살폈다. 원래 평소에도 근엄하고 진지한 성격이라 어려운 면이 있었는데, 눈깔이 시커멓게 뒤집힌 것을 보니까 오늘따라 농담이 더 안 통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
나는 내적 갈등을 겪다가 검마에게 물었다.
“맏형, 뭐가 좀 보여?”
“……!”
“어두우면 곤란한데. 사람은 밝게 살아야 해.”
색마와 귀마가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으나 놀랍게도 사도 놈마저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사실 여기서 검마가 광명검을 마구잡이로 휘두르면 피를 뿌리는 것은 우리다. 사도 놈은 어쨌든 간에 도검불침이기 때문이다. 이놈은 검마가 등장하자 내심 긴장한 모양인지 숨소리도 내지 않고 있었다.
검마가 주화입마를 온몸에 덕지덕지 달고 온 느낌이라서 이래저래 전부 곤란한 상황이었다.
“…….”
이래서 평소에 친구를 잘 사귀어야 하는데.
어른들 말은 꼭 이럴 때 생각난다.
검마가 입을 열자 시커먼 입김이 흘러나왔다. 딱 봐도 마검혼전장에서 무척 곤란했었다는 게 느껴졌다. 상태를 보아하니, 오히려 문제를 빨리 해결한 다음에 무조건 튀어나온 것처럼 보였다.
내가 검마의 마음을 어찌 알겠는가?
뛰어난 검객(劍客)이 되고 싶었던 마귀(魔鬼)가 우리 옆에 서 있었다.
나는 오늘따라 슬프게 느껴지는 검마의 시커먼 눈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맏형, 어떻게 좀 해봐. 요란이 보러 가야지.”
검마는 실제로 주화입마 때문에 눈이 보이지 않는 모양인지, 한 손을 뻗어서 장력을 겨루고 있는 우리를 더듬었다. 이놈 저놈을 만져보더니 사도의 얼굴을 더듬었다.
검마는 혼령을 뒤집은 쓴 상태라서 내 말도 잘 듣지 못하는 것 같았으나, 나는 검마에게 말했다.
“그놈이 죽일 놈이야. 지금 만지고 있는 놈.”
“…….”
“사대악인의 적이다.”
검마가 광명검을 치켜들더니 손잡이 끝으로 사도의 정수리를 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