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Mad Demon RAW novel - Chapter 303
303화. 왼손에 검마, 오른손에 검객.
사도가 머리를 가격당하는 순간에 속으로 내심 놀랐다.
“…….”
타격이 별로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놀란 점은 거대한 벽처럼 느껴지던 사도의 내공이 잠시 끊긴 것이었다.
사도와 내공을 겨루고 있었기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렇다면 애초에 사도도 내공을 신체로 보내야 도검불침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이제껏 사도는 짐짓 허술한 몸짓과 행동으로 검마의 검을 받아내는 연기를 했던 셈이다. 행동거지는 사도였으나 정작 무공의 근간은 정순한 내공이었던 셈이랄까. 물론 이놈이 올바른 방식으로 내공을 쌓은 것 같지는 않다.
검마가 또다시 광명검의 손잡이로 사도의 정수리를 찍었다.
퍽!
왜 이렇게 웃음이 나오려는 것일까.
사대악인이 달라붙었더니, 사도의 약점이 드러났다.
이것은 그저 운일까?
아니면 여러 가지 사연이 겹쳐서 만들어낸 결과일까.
내공만 겨뤘더라면 알아차릴 수 없었던 사실이고, 검이나 장법으로만 싸웠더라도 알아내기 힘든 비밀이었다.
이 싸움의 본질은 우리보다 내공이 훨씬 깊었던 사도가 내공으로 찍어누른 것에 지나지 않는다.
명확하게, 완벽한 도검불침은 아니다.
또다시 간략한 음악이 터졌다.
퍼억!
나는 검마가 광명검으로 사도의 정수리를 찍어댈 때마다 북 치는 음악을 듣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검마가 사도의 정수리를 찍는 틈을 타서 내공 싸움을 완벽하게 공세로 전환했다.
이렇게 완벽한 합공이 있었을까?
본래 넷이 하나를 상대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지만 어차피 우리 넷은 사대성인(四大聖人)이 아니라서 그딴 거를 신경 쓰지 않는다.
사도도 집중력과 정신이 흐트러진 모양인지, 서서히 색마의 빙공이 사도의 어깨를 하얗게 물들였다.
더군다나 내가 처음부터 지금까지 사도의 팔을 붙잡고 있었기 때문에 풀어줄 마음도 전혀 없었다.
나는 금구소요공을 거둔 다음에 불난 집에 부채질하듯이 한겨울에 빙공을 더했다.
퍽! 퍽!
검마는 장작을 패는 믿음직한 나무꾼처럼 광명검을 도끼처럼 내려쳤다.
‘좋다.’
검마에게 응원과 걱정의 말을 잔뜩 쏟아내고 싶었지만, 공세를 이어나가야 했기 때문에 잠시 참았다.
어쨌든 사도는 사대악인에게 붙들렸다.
이놈은 곧 죽을 것이다.
만약 내가 전생처럼 성질대로 혼자서 백사도에 왔더라면, 아마 사도와 싸우다가 강으로 뛰어들어서 군선의 추격을 받았을 것이다. 희한하게도 네 사람 중에서 한 사람이 부족했더라면 우리는 이겨도 중상을 입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사도를 내공으로 붙잡은 채로 일방적인 폭행을 행사했다.
퍽! 퍽! 퍽! 퍽! 퍼억……!
이제야 사도의 입에서 핏물이 흘러나오고, 두 눈은 시뻘겋게 충혈됐으며 빙공이 밀려들고 있는 한쪽 팔과 어깨는 완전히 얼어붙게 되었다.
사도가 이런 와중에도 멋쩍은 웃음을 짓더니 내게 말했다.
“문주.”
“왜.”
“살려주게. 알려줄 게 많아. 무공도 그렇고.”
대화가 잘 들리지 않는 모양인지, 검마가 미간을 좁히더니 고개를 살짝씩 움직이면서 동작을 멈췄다.
나는 사도에게 말했다.
“고생 많았다. 이제 수하들 만나러 가라.”
“다시 한번.”
“경매장에서 발견한 소녀의 부모는 네 수하에게 당했다. 살려줄 수 없어.”
“그 부모가 자네랑 대체 무슨 상관인가?”
“아이를 사대악인의 제자로 삼았다. 수하 단속 잘했어야지. 맏형, 계속 머리를 박살 내자고.”
검마가 시커먼 눈동자로 사도를 쳐다보더니 낮게 깔린 어조로 말했다.
“……내가 첫째 사부다.”
이어서 광명검의 손잡이가 사도의 정수리에 떨어졌다.
퍽!
나는 웃음이 절로 나왔다.
“옳다.”
나는 귀마의 표정이 감정적으로 변하는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봤다. 사도의 내공은 이제 온전하게 나 혼자서 감당할 수 있는 상태였고, 이를 귀마도 알아차렸기 때문에 귀마도 오른손으로 사도의 머리통을 후려갈겼다.
퍽!
“내가 둘째 사부다.”
검마의 공격을 막느라 내공이 분산되었고, 그 틈에 나는 빙공을 밀어 넣었다.
나는 사도의 내공을 집요하게 흩트려 놓는 중이어서 어쩔 수 없이 색마를 쳐다봤다. 눈을 마주친 색마가 사도의 뒤통수에 일장을 날렸다.
파악!
“넷째 사부의 복수다. 한 대 더 맞아라.”
퍽!
색마가 내 몫까지 때렸다. 나는 웃음꽃이 피었다. 검마의 상태만 회복되면 이 싸움은 대승이다. 이어서 검마가 광명검을 치켜들더니 시커먼 혼령에 휩싸인 손잡이로 사도의 머리통을 찍었다.
뻑―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사도의 머리통이 갑자기 박살 나면서 우리 넷은 핏물을 뒤집어썼다.
순간, 내 장력이 사도의 몸을 들쑤시면서 들어간 모양인지 사도의 단전 부위도 수박처럼 깨지면서 바닥에 허물어졌다.
우리는 동시에 숨을 길게 토해내면서 손을 거뒀다.
싸움은 쉽지 않았으나 결과는 이렇게 항상 단순하다.
이것이 죽음이기 때문이다.
검마가 우리에게 물었다.
“죽었나?”
색마가 대답했다.
“예, 사부님.”
검마가 낮게 깔린 한숨을 내뱉더니 지친 기색으로 주저앉아서 가부좌를 틀었다. 천천히 눈을 감자, 보기 불편했던 시커먼 눈동자도 눈꺼풀에 뒤덮였다.
나는 검마에게 말했다.
“운기조식을 해야지.”
검마가 고개를 젓더니 반쯤 벌린 입에서 시커먼 연기를 내뱉었다. 나는 한 발자국도 떨어지지 않은 채로 주저앉아서 검마를 바라봤다.
“음.”
귀마와 색마도 질척이는 핏물에 그대로 앉아서 검마를 쳐다봤다.
문득 검마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자신의 귀를 양손으로 매만지면서 물었다.
“제자야.”
“예.”
“귀곡성이 들리고 있나?”
색마가 대답했다.
“저희는 들리지 않습니다. 사부님.”
검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검마는 무엇을 보고, 어떤 소리를 듣고 있을까. 홀로 지옥에 빠진 사람처럼 보였다. 그 지옥에서 우리와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이 유일한 희망처럼 보였다. 원체 앓는 소리를 하거나 약한 모습을 내보이는 사내가 아니라서 상상만으로는 검마의 상태를 예상할 수가 없었다.
문득 검마가 고개를 뒤로 젖혔다가 내리자, 코피와 피눈물이 동시에 쏟아졌다.
검마가 심호흡을 한 다음에 말했다.
“광명검은 흔한 말로 귀신이 달라붙은 검이다. 세상에 있을 필요가 없는 검이지. 나는 옛 총본산의 전대 검마에게 관심을 받아서 강제로 결속했다. 당시 광명검을 받을 자격이 있는 자들의 생사결에서 내가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결속을 해제하는 방법은 처음부터 없었거나 내가 죽어야 끝이 나겠지. 그도 죽을 때가 되어서야 광명검을 내게 넘겼다. 나는 그 모습을 기억해. 훨씬 전에 죽었어야 할 사람이었지. 광명검을 내게 넘기자마자 급격하게 늙었었다. 내가 지금 어떤 상태냐?”
색마가 대답했다.
“사부님, 변함없으십니다.”
“광명검으로 혼령을 흡수하고, 그 혼령검기를 다시 마문(魔文)으로 육체에 새기면 나도 사도처럼 도검불침에 이르게 된다.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겠지. 그 부작용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다만 그렇게 해서 강해지는 게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은 일이야.”
나는 검마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지금 달라붙은 혼령을 받아들일지 말지 고민하는 말처럼 들렸다. 실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태처럼 보였다.
혼령이 들러붙은 채로 어떻게 살아가겠는가?
저 상태가 유지된다면 살아도 사는 게 아닐 터였다. 우리가 듣지 못하는 귀곡성을 듣고 있었으니 말이다.
나는 검마의 상태를 내 몸의 상태처럼 고민하고 걱정하다가 말했다.
“마공도 본성을 이기진 못 해.”
검마가 눈을 감은 채로 대답했다.
“그게 무슨 뜻이냐.”
나는 그간 검마라는 사내를 보면서 느꼈던 바를 두서없이 읊었다.
“맏형은 좋은 집안이나 세가, 명문의 제자였다면 지금쯤 장문인이나 백도의 고수가 되었을 거야. 마공이 맏형의 점잖은 성격과 본성까지는 바꾸지는 못했어. 차라리 혼령을 받아들여. 가능하면…….”
“…….”
“팔 하나에 마문을 새기거나 가둬둘 수 있겠어?”
내가 내뱉은 말이지만 참 말이 안 되는 조언이었다.
검마가 내게 물었다.
“검을 잡는 손을 말하는 것이냐?”
나는 덤덤한 어조로 대답했다.
“그쪽은 검객(劍客)이라서 안 돼.”
“…….”
“반대 손, 할 수 있겠어?”
검마가 왼손을 든 채로 잠시 가만히 있다가 물었다.
“……이 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왼손에 검마(劍魔), 오른손에 검객(劍客). 왼손에 혼령을 거두고, 오른손으로 검을 쥐고.”
이게 말이 되는 소리인지 나는 모른다.
애초에 마공에 대해서도 잘 알진 못하기 때문이다. 모르는 것에 대해 조언을 하고 있으니 결과도 모를 일이다.
다만 강호인에게 손은 단전 다음으로 중요한 신체이고, 그렇기에 가장 능숙하게 다뤄야 할 신체 부위이기도 하다.
무공 중에서 그래서 장법이 많다.
손바닥은 내공을 전달하는 가장 효율적인 중간 매개체이고, 우리가 아는 것보다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신체 부위다. 무공을 익히지 않은 사람도 배앓이를 할 때 손을 배에 대는 것은 본능에 가깝다. 내공이 없어도 손바닥이 가장 효율적으로 열기(熱氣)를 전달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혼령들이 검마의 정신이나 신체 전체를 잠식하는 것보다 왼팔에 갇히는 게 더 나아 보였다. 이것은 내가 마공을 잘 알아서 조언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직관이었다.
검마가 왼손을 든 채로 생각에 잠겨 있자, 색마가 사도의 처참한 시체를 보면서 말했다.
“사도 말입니다. 압도적인 내공으로 특정 부위를 도검불침 상태로 만드는 무공을 익힌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순간적으로 장력을 휘감아서 검을 쳐내는 수법을, 전신으로 펼칠 수 있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말장난 같지만 실제로는 도검불침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내공의 흐름이 노골적으로 변하더군요.”
검마가 제자의 말에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러니까 색마는 사도의 수법을 받아들여서 왼팔에 혼령을 묶을 수는 없겠느냐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검마는 문제의 왼손으로 얼굴에서 흘러내리고 있는 피를 닦았다. 마치 불온한 종교를 설파하는 제사장이 붉은 피부터 바치는 그릇된 행위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미 검마는 교를 떠났고, 그릇된 길에 들어선 상태에서도 밝은 쪽으로 걸으려는 사내다.
검마가 지친 표정으로 손을 쥐었다가 펴면서 중얼거렸다.
“……내 팔을 가져가라. 마지막 통보다.”
검마의 왼손에 시커먼 기운이 외기가 발현한 장력처럼 뭉치기 시작했다. 시커먼 빛무리가 실타래로 풀리면서 검마의 왼손을 잠식하기 시작하더니 핏줄에 먹물이 스며들 듯이 색이 점점 짙어졌다.
손바닥에서부터 출발한 검은 기운이 거미줄처럼 뻗어 나가더니 검마의 왼팔로 진격했다.
반면에 검마의 군데군데 들러붙어 있었던 죽음의 기운이 희미해지고, 균형을 맞추려는 것처럼 왼팔의 색은 점점 어두워졌다.
검마가 어느새 시커먼 눈동자를 뜬 채로 왼팔을 바라봤다.
눈동자의 색이 점점 사람의 것으로 돌아왔을 때 왼팔에 새겨진 혼령들의 흔적은 마문처럼 퍼졌다가 검마의 목덜미까지 자문으로 새겨졌다.
숨을 참았던 사람이 본래의 혈색으로 돌아오는 것처럼 검마의 안색도 점점 밝아졌다.
대체 어떻게 해낸 것일까?
우리는 아무 말 없이 검마를 바라봤다.
여전히 무표정한 터라 검객을 보는 것인지 마귀를 보는 것인지 구분할 수가 없었다.
쥐었다 펴던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검마가 왼쪽 목덜미를 만지면서 말했다.
“……더 퍼지면 왼팔을 잘라야겠어.”
왼팔을 자르겠다는 무시무시한 말에 우리 셋은 웃었다. 나는 맏형에게 말했다.
“혼령에 잠식된 마귀보다는 외팔이 검객이 훨씬 멋있어. 오히려 좋아. 내가 잘라줘?”
내 말을 듣던 검마가 씨익 웃었다.
“지금은 아니다.”
색마가 물었다.
“사부님, 괜찮으십니까?”
검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광명검의 강도(剛度)를 절반 정도 가져온 느낌이다. 불편하긴 하나, 이 정도면 됐다.”
귀마가 우리 셋에게 말했다.
“우리 좀 씻으러 가자. 피 냄새가 진동하는군.”
서로를 바라보니 새삼스럽게 피투성이였다. 색마가 먼저 일어나서 검마를 일으켰다. 혼령은 일단 해결했으나 검마는 불구덩이에서 빠져나온 사람처럼 지친 상태였다.
우리는 검마의 느린 걸음에 맞춰서 시체들을 넘어서 호수로 향했다. 백사도는 당분간 사람이 살 수 없을 정도로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큰 문제는 없어 보였다.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부는 동안에 제 모습을 되찾을 테니까 말이다.
우리 넷은 호수에 몸을 담갔다.
붉은 피가 씻겨나갔다.
나는 핏물을 씻어내는 와중에 눈이 반쯤 감겼다. 주변을 둘러보니 팔이 잘린 시체 한 구가 물가에 엎어져 있었다. 배를 타고 도망을 치려다가 죽은 모양새였다.
새삼스럽게 멀쩡한 배를 구경하고 있으려니 전리품이 상당히 많아 보였다.
먼저 백사도로 도망쳤던 고공들을 다시 뱃사공으로 삼아서 동호를 돌아다니면 사도가 쌓아뒀던 재산도 회수할 수 있을 터였다. 이것까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시간도 오래 걸리고 귀찮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뒤처리에 관한 생각을 잊은 다음에 일단 물 위에 드러누웠다.
잠이 쏟아져서 도저히 버틸 수가 없었다.
이대로 잠이 들면 수마에 빠질 것 같아서 겨우 뭍으로 이동한 다음에 대자로 뻗었다.
나는 눈을 감은 채로 사대악인에게 말했다.
“나 잠시 잔다.”
귀마, 색마, 검마의 목소리가 차례대로 이어졌다.
“눈 좀 붙여라.”
“자라.”
“누워 있어라. 근처에 모닥불을 피워줄 테니.”
모닥불이라니…….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온기가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