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Mad Demon RAW novel - Chapter 364
364화. 일월광천은 아무것도 아니다.
“문주님, 계십니까?”
객잔에서 이제 막 늦은 아침을 먹기 위해 나가려는데 문 밑에 사람의 발그림자 두 개가 보였다.
“누구냐.”
“제천맹의 안표라 합니다.”
“…….”
목소리가 묘했다. 애써 침착하려는 것처럼 들렸기 때문에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바로 알아차렸다. 문을 열자, 안표라는 사내가 어두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안표가 나를 확인하더니 고개를 살짝 숙였다.
“문주님.”
나는 안표의 표정을 바라보다가 손을 내밀었다.
“갑시다.”
“예.”
나는 안표와 함께 복도를 걷다가 방문을 두드리면서 말했다.
“가자.”
“나간다.”
“가자고.”
“알았다.”
계단을 내려가는 도중에 사대악인이 전부 방에서 빠져나오더니 말없이 나를 뒤따랐다.
바깥에 나와서야 안표가 내게 물었다.
“문주님, 무슨 일인지 안 물어보십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 광명우사, 이 미친놈이 사고를 쳤겠지. 안 무인의 안색이 심히 안 좋을 정도의 사고.”
“그렇습니다.”
나는 잠시 멈춰서 일행을 기다렸다. 검마, 귀마, 색마가 나란히 선 다음에 안표에게 말했다.
“무슨 일인지 들어봅시다.”
안표가 우리를 둘러본 다음에 말했다.
“문주님, 통천방(通天幇)을 아십니까?”
나는 당황함을 느끼면서 반문했다.
“통천방은 당연히 알고 있소.”
일단 흑도가 아니다.
이쪽 지역에 있는 문파도 아닌 것으로 안다. 하지만 강호에서 제법 유명한 방파다. 정보를 사고파는 방파로도 유명하고, 이권 사업도 나름 정상적으로 운영하려고 애를 쓰는 정사지간의 묘한 문파였다. 일단 무엇보다 방(幇)이라는 이름을 붙인 세력 중에서는 상위권 세력이다. 그리고 상위권이라는 뜻은 방에 속한 자들이 많다는 이야기라서 한숨이 나왔다.
안표가 말했다.
“통천방의 본진이 광명우사에게 모조리 당했습니다. 시체와 피가…… 뭐 설명할 필요도 없겠지요.”
“그럼 이미 상황이 끝난 통천문에 같이 가자는 것인가?”
안표가 고개를 저었다.
“상황이 아직 안 끝났습니다. 광명우사가 문주님을 불러오라고 했습니다.”
“음.”
여태 내가 불안하게 여기던 게 그저 상상으로 끝나지 않은 모양이었다. 안표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인질?”
안표가 대답했다.
“예, 전부 여인들과 통천방의 아이들입니다. 사내들과 방주, 무인들은 전부 광명우사에게 죽었습니다.”
“제천맹이 포위했나?”
“포위는 의미가 없습니다. 일부가 도망을 쳐서 지원을 요청했는데 그렇게 해서 다시 도착한 인근의 방파와 흑도 세력까지 모조리 죽었습니다. 일단 저희 맹주님도 통천방으로 향하고 계실 겁니다.”
제천맹주는 멀쩡한 모양이다.
말을 제법 아끼고 있었지만 안표의 말에서 통천방의 학살이 끔찍한 수준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검마가 물었다.
“인질은 어떻게 가두고 있나?”
“넓은 마당에 모여 있습니다. 담벼락은 부서진 상태고. 일부 담벼락과 지붕까지 빨랫줄이라고 해야 할까요? 거미줄 같은 것이 어지럽게 엉켜 있습니다. 인질이 그 밑에 있는 셈입니다. 흑도 쪽에서 한 고수가 진입하려고 하자, 광명우사가 공력을 주입한 줄을 하나 떨어뜨렸다고 하더군요. 밑에 있던 사람들이 급히 피했다고 합니다. 닿으면 웬만한 고수들도 신체가 녹는 모양입니다. 통천방 본 건물의 지붕에서 가부좌를 튼 채로 몰려든 자를 조롱하고 있습니다. 그 붉은 줄이 전부 내려가면 밑에 있는 아이들이 다 죽을 겁니다.”
나는 씁쓸한 어조로 말했다.
“그러고 나서 날 불렀다고?”
“예, 대충 어디까지 쫓아왔는지 파악하고 있더군요. 이쪽을 찾아보라고 했습니다.”
색마가 다시 상황을 파악했다.
“공력을 주입할 수 있는 빨랫줄이 지붕에 닿아 있고, 우사가 그것을 언제든지 한꺼번에 떨어뜨릴 수 있다는 뜻으로 알면 되겠소?”
“몽 공자, 그렇소.”
나는 사대악인을 바라봤다. 사대악인이 내 주변에 모여서 입을 다문 채로 나를 바라봤다.
검마가 내게 물었다.
“방법이 있나?”
나는 뒷머리를 긁었다.
“없어. 일단 가보자. 나한테 할 말이 있겠지.”
우리는 안표와 함께 멸문을 맞이한 통천방으로 향했다. 입에서 쉴 새 없이 한숨이 흘러나왔다.
“진짜 미친놈이 되었네.”
“그러게 말이다.”
“미쳐도 저렇게 미친놈은 되지 말아야 해.”
이제 보니까 광명우사의 의도를 조금 알 것 같다. 혼자 미치기 싫은 모양이다. 그러니까 이놈은 나도 완전히 미치게 할 생각으로 이런 짓을 벌이고 있었다. 한참을 이동하다가 귀마가 물었다.
“셋째야, 방법이 있나?”
오는 내내 고민했던 나는 고개를 저었다.
“없어. 우사가 내게 뭘 바라는지 들어보고.”
이 대화를 끝으로 우리는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로 통천방으로 향했다. 사실 나는 이런 파국을 예상하긴 했다. 실은 이것이 내 약점이기 때문이다.
* * *
통천방에 도착하고 나서야, 안표가 표현을 자중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상상하던 것보다 훨씬 끔찍한 참극이 펼쳐져 있었다. 일단 어떻게 싸웠는지는 모르겠으나 통천방 바깥에도 핏자국과 시체가 많았다.
굳이 통천방에 진입할 필요는 없었다.
이미 담벼락이 곳곳에 무너져서 내부가 훤히 보였다. 그러니까 통천방의 저항도 무척 격렬했던 모양인지 전쟁터의 한가운데를 보는 것 같았다.
군데군데 기둥처럼 솟아 있는 담벼락에는 안표가 말한 빨랫줄이 엿가락처럼 늘어진 채로 솟구쳐서 통천방 본단의 지붕에 닿아 있었다. 그 통천방 건물의 외부는 흑도와 제천맹, 통천방을 돕겠다고 온 정사지간의 세력이 조금 떨어져서 방진을 펼치고 있었다.
이 정도면 혈교와 강호 연합의 전쟁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사태가 커진 상태.
색마가 탄식했다.
“……전쟁터구나.”
어디선가 광명우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문주, 왜 이렇게 늑장을 부렸나? 너 때문에 몇 명이 죽었는지 살펴보도록 해라.”
이 미친놈이 어디서 떠드는 것인가 하고 둘러보는 와중에 광명우사가 지붕 위에 불쑥 등장했다. 지붕에 구멍을 뚫어서 위아래를 오고 가는 모양이었다.
나는 지붕에 있는 광명우사를 바라봤다.
“…….”
광명우사가 나를 바라보면서 웃었다.
“왔는가?”
“왔다.”
나는 그제야 빨랫줄 아래에 있는 여인들과 아이들을 쳐다봤다. 주로 여인들이 아이들을 감싸고 있었다. 우는 것도 지친 것일까. 아니면 우사의 협박이 있었던 것일까. 울고 있는 아이가 한 명도 없었다.
주변에는 수많은 흑도 사내와 통천방을 대신해서 복수를 해주기 위해 온 사내들이 전부 우리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흑도가 왜 이렇게 많은가 했더니 광명우사의 학살극을 쫓아서 온 자들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미 여러 방파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호의적이냐 하면,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이유는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광명우사가 계속 하오문주 때문에 이런 학살극을 벌였다고 떠들었겠지.
광명우사가 주변을 한 차례 둘러보더니 교도들에게 말하는 것처럼 말했다.
“……다들 앉아라. 예외는 없다.”
그러자 안표가 급히 우리를 붙잡더니 바닥에 앉았다.
물론 나도 급히 앉았다.
정말 이럴 수밖에 없는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전부 혈교의 교도가 된 것처럼 차가운 바닥에 앉아서 지붕에 있는 교주를 하염없이 바라봤다.
“…….”
또 일장 연설이 시작되는 것일까?
대체 나는 언제부터 강제로 혈교의 교도가 된 것일까. 오랜만에 광명우사와 재회한 맏형도 뾰족한 수가 없었다. 재회의 말도 나누지 않은 채로 우리와 함께 앉아서 교주를 바라봤다.
우사는 맨살에 길쭉한 장삼을 걸치고 있었는데, 온통 피에 절어 있었다.
아무튼, 아이들을 인질로 삼고 있었기 때문에…….
앉으라면 앉고, 일어서라면 일어서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 와중에도 나는 담벼락에 붙은 빨랫줄의 재질, 길이, 지붕까지 거리, 빨랫줄의 개수, 주변 상황 등을 끊임없이 살폈다. 삼재 세 명이 동시에 지붕으로 날아가면서 기습을 펼쳐도, 광명우사는 손쉽게 빨랫줄을 떨어뜨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니까 방법이 정말 없었다.
나는 다시 어린아이들을 둘러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차라리 너희가 전부 무사히 살아남아서 교도가 됐으면 좋겠다고.
살아남아서 나쁜 짓도 하고, 교주에게 충성도 하다가, 어떤 날 문득 맏형처럼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에 빠져서 혈교를 탈주했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니까 무슨 삶을 살든 간에 나는 이 아이들이 그저 살아있기만을 바란다. 유난히 나를 뚫어질 것처럼 바라보는 아이와 눈을 마주쳤다가 나도 모르게 손을 살짝 흔들면서 중얼거렸다.
“……별일 없을 거다.”
그러자 옆에 있는 여인이 아이를 감싸면서 속삭였다.
“쳐다보지 마.”
아이를 보호하고 있는 여인은 나를 광명우사 바라보듯이 쳐다보고 있었다.
지붕에서 교주가 공력을 담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하오문주가 이 자리에 왔다. 이 학살극의 원흉이자 시작이 도착한 셈이다. 모두 저쪽에 앉아 있는 젊은 하오문주를 보아라.”
어느새 광명우사의 말투와 어조가 예전과는 달라져 있었다. 정말 미친 교주다운 말투랄까.
붙잡혀 있는 여인들, 아이들, 도우러 온 흑도, 방파의 무인들, 제천맹의 무인, 사대악인까지 일제히 나를 바라봤다.
교주가 나를 가리켰다.
“뒤쪽에 있는 사람은 자네를 볼 수 없으니 일어서도록.”
나는 어쩔 수 없이 혼자 일어섰다.
정말 나는 죄가 없는 사람이 맞을까?
나를 바라보는 시선들이 정말 따가웠다. 마치 여러 사람이 이미 눈빛으로 내게 사형선고를 내린 것 같은 기분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증오하고 싫어하는 사람을 쳐다보는 눈빛들을 하고 있었는데, 그것이 전부 나를 향했다.
교주가 말했다.
“하오문주 이자하, 그래도 눈치는 있구나. 피를 좀 본 다음에 얌전해질 줄 알았더니. 그 나불대던 주둥아리가 오늘은 참으로 조용하군. 마음에 드는구나.”
“…….”
“너는 이십여 일 전에 함부로 내 교도를 대거 학살했다. 인정하는가?”
“네 교도?”
“백응지 아래에서 내 수족들이 죽었지. 깊은 구덩이에 함께 묻혔다. 네 절기에 의해 내 수족들도 죽고, 정신 나간 마교의 교도들도 몰살당했지. 네 짓이 아니란 말이냐?”
이것이 심판을 받는 기분인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죽였다.”
옆에서 색마가 검마에게 속삭였다.
“사부님, 집안에도 아이들이 있어요.”
검마가 조용히 고개만 끄덕이자, 광명우사가 색마를 바라봤다.
“몽 공자, 조용히 해라. 미쳤느냐?”
색마가 광명우사를 바라보더니 낮은 어조로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나는 색마의 존댓말을 무척 오랜만에 들었다.
교주가 내게 물었다.
“교도들을 그렇게 허망하게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절기의 이름이 무엇이냐?”
“일월광천.”
광명우사인지 혈교 교주인지 모를 놈이 말했다.
“하오문주는 이 자리에 있는 모든 교도에게 일월광천의 원리와 구결을 설명해라. 함께 듣겠다. 네가 거짓 구결을 읊거나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쓸데없는 소리를 하면 혈사(血絲) 한 줄을 어린 교도들에게 떨굴 것이다. 하오문주가 거짓을 고하면, 교도들이 대신에 벌을 받게 되는 셈이지.”
교주의 말에 혈사 아래에 놓여 있는 몇 명의 여인들이 흐느꼈다. 그러자 교주가 말했다.
“닥쳐라. 하오문주는 어서 고해라.”
나는 교주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이것은 내가 창안해서 습득한 무공이라 따로 구결이 없는데…….”
“문주, 이런 상황에서도 농담이 나오는가?”
“농담이 아니라 사실이 그렇다. 원리는 설명할 수 있어. 하지만 이것도 몸이 먼저 습득한 것이라서 다소 난해하다. 물론 알아들을 수 있는 고수들은 일월광천을 배우는 데 도움이 되겠지. 실력이 높은 고수일수록 내 말이 무슨 뜻인지 더 잘 알 테고. 교주, 구결이 없음을 양해하게. 내가 왜 이런 상황에서 농담을 던지겠나? 미친놈도 아니고.”
교주가 문득 고개를 돌리더니 누군가를 보면서 말했다.
“제천맹주, 어서 와라. 자네도 늦었군.”
제전맹주가 수하들과 함께 등장해서 멈춰 서더니 상황을 살폈다. 안표가 급히 네 발로 움직여서 제천맹주에게 다가갔다.
“맹주님…….”
제천맹주는 손을 들어서 안표의 말을 끊었다. 사정을 대충 알고 있다는 눈치였다.
제천맹주가 지붕 위에 있는 교주에게 말했다.
“우사, 꼭 이렇게 해야 직성이 풀리겠나?”
교주가 자신의 귀에 손을 대더니 나른한 어조로 대답했다.
“……주극, 한 마디만 더 떠들어보게. 자네에게 보여주고 싶은 게 있어. 자네도 젊은 시절에는 하오문주 못지않게 많은 경쟁자를 죽였지. 놀라운 광경은 아닐 것이다.”
제천맹주가 당황하는 사이에 안표가 무엄하게도 맹주의 팔을 붙잡더니 바닥에 앉혔다. 그러자 화들짝 놀란 수하들도 다 함께 앉았다.
제천맹주도 예외는 없다.
이런 맹장 같은 사내도 이 자리에서는 어쩔 수 없이 교도가 되었다.
나는 제천맹주와 그제야 눈을 마주쳤다가 동시에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
인사를 나눌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교주가 그제야 내게 관심을 다시 돌렸다.
“문주는 떠들어보도록. 내가 유심히 듣겠다.”
여태 서 있던 교주가 가부좌를 틀더니 나를 주시하다가 손가락을 들어서 앞쪽에 있는 혈사를 툭 건드렸다. 그러자 거미줄이 핏물을 머금더니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다행히 저것을 떨어뜨리진 않았는데 이렇게 보고 있으려니 혈교 교주의 내공이 엄청나게 깊어졌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나는 주변을 한번 둘러보면서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이제 일월광천을 설명할 시간이다.
그렇다는 것은 이 자리에 있는 모두를 내 제자로 삼는다는 뜻이다. 제천맹주와 맏형, 색마, 귀마까지 예외는 없다. 전부 내 제자다.
그러니까 혈교 교주는 높은 곳에서 우리 전체를 교도로 삼았고.
나는 낮은 곳에서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을 내 제자로 삼았다.
사실, 일월광천은 아무것도 아니다.
내 제자들이 살아남을 수만 있다면, 기꺼이 내 모든 것을 제자들에게 알려줄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