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Mad Demon RAW novel - Chapter 395
395화. 화산행.
마차 바깥을 오래 쳐다봤다.
마차를 타 본 경험이 그리 많지는 않다.
풍경이 계속 바뀌는 것을 지켜보는 재미가 있었다.
사실 이렇게 마차를 타고 가면 화산까지 며칠이 걸릴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서두를 필요가 없어서 평화로운 풍경을 눈에 가득 담았다.
교주는 마차를 타고 다니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무리 바깥을 쳐다보고 있어도 적수를 찾기 어려웠을 것이다. 무공이 특출나게 강하다는 것은 내가 예상하는 대로 외로운 일이려나? 어쩌면 무공 이외의 삶을 모르기 때문에 외로운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교주는 아는 게 별로 없는 놈이다.
죽고 죽이는 삶 이외에는 살아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음식 만드는 솜씨가 부족한 사람인데.
교주는 음식 만들어본 적이 없는 인간이다.
사람이 어찌 음식을 만들어본 적이 없을 수가 있을까.
물론 나도 마교에서의 삶이 대충 어떤 것인지는 안다.
꺾기 힘들었던 상대를 끝내 넘어섰을 때의 성취감과 본능에서 기인한 희열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게 전부여선 안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여태 맏형이나 나를 살려둔 행보를 보면…….
교주의 가장 큰 적은 교주 자신이라는 뜻이다.
내가 전생에 천옥을 훔치지 않았더라면…….
천옥은 누가 먹었을까.
내 예상대로 교주가 먹었을까?
어쩌면 만장애를 급하게 따라왔었던 색마가 먹었을 수도 있겠다. 아니면 교주의 폐관수련을 틈타서 대공자가 먹었을 수도 있겠다.
색마나 대공자가 천옥을 취했다고 가정하더라도.
어차피 교주에게 죽었을 것이다.
따분함에 진절머리가 나서 직접 대적자를 만들려는 게 아니었을까.
만약 그렇다면 교주에게 보기 드문 유희가 됐을 것이다. 그러다가 본인이 당해도, 원통할 이유도 없다. 어차피 좌사였던 색마나 대공자에게 교를 넘기는 것이었을 테니까.
생각해보니까 색마가 천옥을 취했더라면.
그것도 나름 강호인들에겐 지옥이었을 것이다.
역사에 전무후무한 아방궁을 건설했다가 이른 나이에 뒤졌을 것이다.
어쨌거나 마차에 탄 채로 상념을 거듭하자, 생각의 흐름이 이상한 곳에 자주 닿았다.
화산에서의 싸움은 또다시 교의 후계자 다툼이 아닐까.
말 안 듣는 수하들도 싸잡아서 죽이고.
외부의 후계자 후보도 죽이고.
교주로서는 나쁠 게 없다.
나를 다시 과거로 돌려보낸 존재도 결국엔 벌어지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다.
물론 나도 알 수가 없었다.
오랫동안 창밖을 바라보고 있을 때 삼복의 목소리가 들렸다.
“문주님.”
“왜.”
삼복이 다짜고짜 물었다.
“문주님은 지는 싸움을 안 하시지 않습니까.”
“그런 편이지.”
“교주님과 어느 정도의 격차가 있는 겁니까?”
“세월의 차이, 내공의 높고 낮음.”
“그것뿐입니까?”
“나머지는 직접 붙어봐야 알지. 내가 아는 것을 교주가 모두 알 수 없고. 교주가 아는 수법을 내가 모두 알긴 어렵다.”
“다른 고민도 있으십니까?”
“다른 고민? 예를 들면.”
“예를 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서 결국 교주님을 쓰러트리게 되었을 때……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요.”
“그것은 내가 고민하지 않아도 돼.”
“그럼 누가 합니까?”
“맏형이 해야지.”
삼복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나름 중요한 것을 내게 질문했다.
“문주님, 어차피 복귀한 다음에 보고는 제가 하게 되었습니다. 화산에서 수련할 시간을 충분히 드리고 싶습니다. 일 년까진 무리겠지만 제가 최대한 늦게 보고하면…….”
“삼복아.”
“예.”
“잔머리로 충성하지 마라. 교에 있을 때는 교에 충실해. 교의 뜻과 다르다고 생각하면 그때는 미련 없이 떠나는 거야.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사람처럼 행동하면 교주에게 십중팔구 죽는다.”
“음.”
“어차피 교주도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 손에 죽을 자들을 긁어모아서 올 시간이 필요해. 누군가를 부르면 도착할 시간도 필요하겠지. 그 정도면 나도 충분하다.”
“알겠습니다.”
“싸움이 늦춰지면 내 말을 더럽게 안 듣는 자들이 화산에 하나둘씩 모일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정마대전이나 다름이 없어. 그것을 하지 않으려고 하는 싸움인데……그럴 수는 없지.”
나는 창밖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객잔이 보이면 멈추라고 해라. 밥이나 먹자.”
“알겠습니다.”
“그리고 밥 먹으면서 마부들에게 전해. 되도록 산적이나 마적들이 자주 출몰하는 이동 경로로 움직이자고. 크고, 작은 흑도가 지배하는 지역, 탁발부 놈들이나 대나라 잔당이 있는 곳도 상관없다. 다 박살 내면서 이동해야겠다.”
문득 삼복을 쳐다보니, 이놈이 웃고 있었다.
“왜 웃어?”
삼복이 뒷머리를 긁으면서 대답했다.
“아니요. 조금 신이 나서. 그렇게 하겠습니다.”
생각해보니까 삼복이가 삼 공자를 대하던 모습이 꽤 눈치가 없었다는 게 떠올랐다. 그러니까 애는 착한데 좀 눈치가 없는 유형이랄까. 나는 삼복이에게 조용한 어조로 물었다.
“신나냐?”
삼복이가 살짝 움찔하더니 바로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마적 떼는 보통 일백 명이 넘어.”
“그렇죠.”
“신나게 싸우다가 하늘나라 가지 말고.”
“예.”
“어쨌든 마차 두 대라서 좋은 먹잇감이라고 생각하겠지. 배도 든든하게 채워놔. 갈 길이 멀다. 그리고 마차가 너무 시커멓다. 이따가 봐서 들꽃이라도 좀 꽂아놔라. 병신처럼 보이게.”
삼복이 이번에도 히죽 웃었다.
“알겠습니다.”
* * *
모용백은 환자가 복귀했다는 소식을 듣고 기다리다가 직접 왕진에 나섰다.
대체 이 환자 놈은 뭐가 그렇게 바쁜 것일까?
보통 복귀했다가 하루 이틀이면 의가에 어슬렁어슬렁 나타나서 헛소리를 떠들곤 했는데, 오늘은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돼지통뼈나 오랜만에 먹을 생각으로 서둘러서 자하객잔 앞에 도착해보니 평소와 다를 바가 없었다.
마침 자하객잔 앞에 요란이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로 앉아 있다가 모용백과 눈을 마주쳤다.
“선생님.”
“요란아, 사부님은?”
“어제 이른 새벽에 떠나셨어요.”
모용백은 의자 앞에 가서 요란이와 눈을 마주쳤다.
“떠나셨다고? 벌써? 네 분 모두?”
“아니요. 둘째 사부님은 안 오셨었고. 세 분이 떠나셨어요. 시커먼 마차 두 대에 나눠타고요.”
“그렇구나. 어디로 가신다더냐?”
“화산이요.”
모용백이 깜짝 놀라면서 말했다.
“화산? 화산에? 적이 그곳에 있다고?”
“아니요. 교주님과 그곳에서 붙기로 하셨대요.”
오늘따라 모용백은 자꾸만 자신이 내뱉은 말을 한 번씩 반복했다.
“교주? 마교 교주?”
“예.”
객잔에서 앞치마를 두른 장득수가 걸어 나오면서 말했다.
“모용 선생.”
“예.”
“요란이 말 그대로야. 교주님과 붙기로 했어. 화산에서.”
“아니, 벌써…….”
왜 말리지 않았냐는 말을 하려다가 삼켰다. 대체로 환자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많아서 장득수에게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화산에서 마교와 하오문이 붙는답니까?”
“그건 아닌 것 같아. 몇 명이 모여서 겨루는 것 같던데.”
“아니, 무공을 몇 해 익혔다고 벌써 교주에게 도전한답니까. 정신이 나갔나?”
“정신이야 예전에 좀 나갔지.”
장득수가 갑자기 미간을 좁히더니 요란이 쪽을 향해 눈빛을 보냈다. 제자 앞에서 말조심하라는 것 같아서 모용백은 그제야 실수를 깨달았다.
“아, 하여간 알겠습니다.”
모용백이 돌아서자, 장득수가 물었다.
“설마 화산에 갈 생각은 아니겠지? 아마 당대의 최고수들이 전부 모일 거야. 자중해. 자네에게 알리지 않은 것은 오지 말란 뜻이야.”
모용백이 돌아서더니 장득수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당대의 최고수들이 싸우면.”
“…….”
“환자도 많이 생기겠네요. 알겠습니다.”
“이봐, 선생.”
모용백은 서둘러서 의가로 복귀했다. 모용백을 바라보던 장득수가 한숨을 내쉬었다.
“저놈도 더럽게 말을 안 들어. 저거 가겠다는 이야기 아니야?”
요란이가 말했다.
“저도 가고 싶어요.”
장득수가 고개를 내저었다.
“안 돼. 불가능해. 어림없다. 못 보내. 만에 하나라도 모용 선생 따라갈 생각은 하지 마라. 들어가자. 네 사부만이 아니라 교주님도 화를 낼 거다. 실력자만 모이라는 뜻이야.”
“선생님도 실력자는 아니잖아요.”
“그렇긴 하지만 올 때마다 분위기가 바뀌어서 선생도 평범한 사람은 아니다.”
“어떻게 그렇게 잘 아세요?”
장득수는 요란이와 눈을 마주치면서 말했다.
“객잔하다 보면 손님들 수준이 훤히 보여. 별거 아니야.”
“저는 어때요?”
장득수가 웃었다.
“천하제일이지. 물론 지금은 아니다.”
장득수는 벌써 말을 안 듣는 조짐이 훤히 보이는 요란이를 번쩍 안았다.
“요란아, 제발 셋째 사부는 안 닮았으면 좋겠다.”
“왜요?”
“말을 너무 안 들어.”
“누구 말을요?”
“전부.”
장득수는 요란이의 표정을 보다가 불길함을 느낀 채로 물었다.
“왜 웃어?”
요란이가 대답했다.
“속으로 웃었는데요?”
“전혀 그렇지 않은데?”
“더 연습할게요.”
장득수의 한숨이 이어졌다. 사부에게 무공만 배우는 게 아니었음을 장득수는 이제야 깨달았다. 장득수는 사부가 없었기 때문에 미리 알아차릴 수 없는 일이었다.
* * *
모용백은 의가에 돌아와서 약재와 독을 챙긴 다음에 봇짐에 쑤셔 넣었다. 어차피 말을 구해서 쫓아야 했기 때문에 돈도 두둑하게 챙겼다. 자신이 없어도 의가가 돌아가게끔 준비했었기 때문에 별다른 걱정은 되지 않았다. 오히려 모용백 자신이 걱정이었다.
쫓아가는 게 맞나?
그것도 결정하지 못한 상태에서 무작정 떠날 준비를 마친 다음에 의녀들을 불러모았다.
모용백은 의녀들이 전부 모이는 사이에 서랍에서 하얀 띠를 꺼내서 이마에 둘렀다. 머리카락을 정리하는 와중에도 호흡이 불안정했다. 결국에 의녀들이 전부 모이자, 궁금하게 여긴 백소아가 물었다.
“선생님, 어디 가세요?”
모용백이 고개를 끄덕인 다음에 의녀들을 둘러봤다.
“왕진, 다녀오마.”
“멀리 가세요?”
“화산이라서 조금 멀다.”
흑소령이 놀란 표정으로 대답했다.
“거기까지 왕진을 하러 가세요?”
모용백이 숨을 크게 들이마신 다음에 말했다.
“오랫동안 내가 돌아오지 않으면 흑백소소는 의녀들을 데리고 무림맹에 한 번 방문해라. 너희처럼 일 잘하는 의녀도 강호에서 드물 거야. 거긴 의녀가 무척 부족하겠지. 하오문주 소개로 왔다고 말씀드린 다음에 일자리를 달라고 하면 외면하지 않을 것이다.”
의녀들은 단체로 눈이 동그랗게 커진 채로 모용백을 바라봤다. 백소아가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
“……죽으러 가세요?”
황당한 물음에 실소가 터진 모용백이 웃으면서 대답했다.
“거, 무슨 황당한 질문이냐? 왕진하러 간다니까.”
“그런데 표정이 너무 불안해 보이세요.”
모용백이 고개를 끄덕인 다음에 조금 더 상세히 설명했다.
“문주와 교주가 맞붙는다는구나. 강호에 대해 조금 아는 흑백소소는 교주가 어떤 사람인지 들어봤겠지?”
“예.”
“싸우러 가는 게 아니다. 화산에 가서 적과 아군을 가리지 않고 치료할 생각이다. 최대한 살려보겠다. 이런 날을 위해서 의술을 익혔는데, 동네에 편히 드러누워 있으면 밤에 잠도 안 올 것이야.”
다른 의녀가 물었다.
“아군을 치료하는 것은 당연한데 적까지 치료하신다고요?”
모용백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일어났다.
“환자 놈들인데 적과 아군이 어디 있어. 일단 치료해야지. 그리고 적도 살려놓아야 눈치를 봐서 아군도 살릴 수 있다. 설명하자면 길어. 바로 떠나마. 문주 놈 때문에 화산에 가게 생겼네. 이런 제기랄……. 나오지 마라.”
나오지 말라는 데도 의녀들이 전부 따라 나와서 모용백을 배웅했다.
모용백이 뒤도 안 돌아보고 걷는데, 뒤에서 의녀들의 응원이 이어졌다.
“선생님, 무사히 돌아오세요!”
모용백은 손을 한 번 흔드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 * *
임소백은 공손월이 가져온 하오문주의 서찰을 읽은 다음에 공손월을 쳐다봤다. 공손월이 조심스러운 어조로 물었다.
“저도 읽어봐도 될까요?”
공손월도 서찰을 읽은 다음에 말없이 맹주를 바라봤다. 두 사람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로 침묵에 잠겼다.
임소백이 다시 손을 내밀었다.
“줘봐라.”
임소백은 서찰의 내용이 바뀔 리 없건만 또 읽었다. 세 번째 반복해서 읽다가 서찰을 책상에 내려놓은 다음에 군사에게 질문했다.
“공손 군사, 내가 어떻게 해야 하나?”
공손월은 대답할 말이 궁색해서 책상 위에 있는 서찰을 붙잡은 다음에 또 읽었다.
공손월이 말했다.
“일단은…….”
“일단은 뭐.”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문주님, 검마, 육합선생, 몽 공자까지 힘을 합치면 교주 한 명을 상대로 어렵겠습니까?”
“밀리진 않을 것 같은데, 문제는 교주가 혼자 움직일 리가 없다. 이걸 알면서도 왜 내 화산행을 극구 반대하는 것인가?”
물론 공손월이 반대하는 게 아니라, 서찰에 적힌 내용에 대한 반문이었다.
공손월이 말했다.
“꽤 전략적인 분이신데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
“문주가 화산에서 동귀어진해서 강호가 평화를 얻으면 그게 의미가 있단 말이냐?”
“그렇진 않습니다.”
임소백이 순간 열이 올라서 돌변한 표정으로 말했다.
“공손 군사.”
“예, 맹주님.”
“간부들 빠짐없이 불러 모아라.”
“전면전입니까?”
“아니다. 지긋지긋해서 이제 맹주 노릇 그만해야겠다. 토론하든, 저희끼리 처 싸워서 정하든 간에 후임 맹주를 임명할 테니 그리 알고 모이라고 해. 바깥에 있는 자들도 물러 모으고.”
공손월도 열 받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화산에 가시려고 맹주 자리를 하루아침에 내놓는 맹주가 어디에 있습니까? 맹주님, 냉정해지세요.”
“싸움은 저희끼리 할 테니 맹은 전력보존하라는 뜻을 내가 어떻게 받아들인단 말이냐.”
공손월이 최대한 침착한 어조로 말했다.
“이해합니다. 생각해보니까 전력 외 고수가 한 분 있었네요. 제가 연락하겠습니다.”
“누구?”
“전 총군사요. 가실지 안 가실지 저도 모릅니다. 문주님이 강조한대로 맹주님은 맹을 지키시고. 전 총군사가 가시면 분명 도움이 될 겁니다.”
“은퇴한 사람을?”
“예. 거절하면 그때 맹주님이 뜻대로 하십시오.”
임소백은 속이 답답해서 다시 서찰을 붙잡았다. 성질이 뻗치는 와중에 의식의 흐름대로 튀어나오는 말을 입에 담았다.
“……화산에 꽃이 드무냐?”
“저도 안 가봐서 모르겠습니다.”
임소백은 서찰을 거듭해서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