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Mad Demon RAW novel - Chapter 394
394화. 도망치듯이 출발했다.
요란이와 돌아오는 색마의 표정이 자못 심각했다. 더군다나 요란이는 눈물까지 흘린 것 같아서 황당했다.
생각해보니까 색마의 제자이기도 한데다가, 색마의 심각한 표정을 보아하니 잔소리가 안 통할 것 같아서 그냥 내버려 뒀다. 사실 어떤 분위기였을지는 알고 있다.
요란이는 맏형과 나를 보더니 그 와중에 웃었다.
어쩔 수 없이 나도 함께 웃었다.
“왜 웃어?”
“그냥요.”
“요란아, 옆에 앉아라.”
“예.”
“사부들은 새벽에 떠날 생각이다.”
“벌써요?”
“험난한 산에서 싸울 때는 미리 산과 친해져야해. 이기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야 하는데 지형과 공기, 바람과 시야, 환경을 살피는 것도 포함이야.”
“기억하겠습니다. 근데 화산은 여기서 멀어요?”
“꽤 멀지만 사부들한테는 그렇게 멀지 않다.”
“경공 때문에요?”
나는 웃으면서 요란이에게 물었다.
“그래. 사부들 중에서 가장 경공이 빠른 사람은?”
“셋째 사부님이요.”
“나다. 굳이 가장 중요한 무공을 꼽으라면?”
“경공이요.”
“경공이 빨라지려면?”
“매일 걷고, 매일 걷는 곳을 달리고, 달리던 곳을 몸을 무겁게 한 다음에 또 달려야 합니다. 내공이 깊어질 때마다 힘에 적응해야 하기 때문에 계속 반복해야 빨라집니다.”
내가 알려줬던 것을 그대로 읊는 요란이를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적을 만났는데 승산이 없을 때는?”
“경공을 펼치면서 반격을 계획한다. 그 반격은 당장이 아니어도 좋다.”
“너보다 내공이 깊은 상대를 만났을 때는?”
“내공 싸움을 피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병장기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아야 한다.”
사실 더 깊이 들어가는 말은 지금 해줄 필요가 없었다. 병장기로도 내공의 격차를 메꾸지 못할 때도 있는데 지금 가르칠 내용은 아니었다. 어쨌든 요란이는 내가 한 말을 전부 기억하고 있었다.
새삼스럽게 똑똑한 제자랄까?
오히려 내가 무슨 얘기를 해줬었는지가 가물가물했다.
요란이보다 멍청한 사부인 셈이다.
그래서 요란이에게 물었다.
“사부가 가장 중요한 것은 뭐라고 했지?”
요란이가 대답했다.
“살아남는 게 승패보다 더 중요하다고 하셨습니다.”
“맞다.”
나는 하릴없이 또 고개만 끄덕였다.
다 가르쳤네,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내가 가르친 말이 나한테 돌아오는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살아남는 게 승패보다 대부분 중요하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목숨보다 더 중요한 승부가 있다.
우리의 화산행이 그렇다.
나는 요란이를 옆에 둔 채로 끊임없이 사고를 확장하면서 교주와의 대결을 대비했다.
내 본능이 말하길…….
이번 싸움은 마음가짐에서 결판이 난다. 구체적인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저 본래 내가 평소에도 원인과 결과가 모두 마음가짐에서 비롯된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이럴 때 무공은 오히려 보조적인 것이다.
나는 일양현에서 머무는 동안에 교주를 마음가짐에서부터 이기기 위해서 내 마음을 자주 들여다봤다.
색마는 전방을 주시하고 있고, 맏형도 오늘따라 말이 없었다. 이상하게도 오늘따라 일양현의 풍경이 만족스러울 정도로 아름다웠다.
“요란아.”
“예.”
“사부들은 작전 회의 좀 할 테니 먼저 들어가라. 작별은 이것으로 대신하자.”
요란이가 의자에서 일어나더니 우리 앞에 서서 맏형, 나, 색마를 쳐다봤다.
작은 눈이 우리를 기억하려는 것 같아서 신기했다.
세상에는 어려운 일이 많은데 어린 제자 앞에서 의연하고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유지하는 것도 꽤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똑똑한 제자를 보고 있으려니 웃음도 나왔다.
요란이는 반듯하게 서서 말했다.
“대사부님, 셋째 사부님, 넷째 사부님. 무사히 다녀오세요.”
“알았다.”
“무사히 다녀오마.”
“일찍 자라. 자시(子時)에서 묘시(卯時)까지 자야 수련하는 사람의 회복이 가장 빠르다.”
요란이가 들어가자, 색마가 중얼거렸다.
“……어린 제자한테 회복이라니 헛소리를 하고 말았네. 그래서 작전이 뭐야?”
나는 전방을 주시하면서 말했다.
“없어. 무슨 작전이냐?”
“나는 네가 항상 계획이 있는 사내라고 생각했는데.”
“계획은 있지. 수련.”
색마가 맏형에게 물었다.
“사부님, 이게 맞습니까?”
“맞다. 화산에 올라서 수련하자꾸나.”
색마가 나를 보면서 불만이라는 것처럼 중얼거렸다.
“……근래 운기조식도 하지 않고. 그렇다고 검을 수련하는 것도 아니고. 대체 왜 그러는 거야?”
나도 색마를 쳐다봤다.
“오로지 강해지는 것에만 집착하면 교주와 다를 바 없어. 이미 격차는 확인했다. 같은 방법으로 강해지려면 앞으로 몇 년이 더 걸릴지 몰라. 일양현에서는 그냥 사람답게 지내자. 화산에 오를 때부터 수련하는 원숭이라고 생각하면 돼. 그전까진 평범한 사람처럼 살자. 그게 교주와 다른 점이야.”
말을 마치고 나니까 전방에서 마차 두 대가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
하필이면 일전에 봤었던 흑색 마차였다.
교주가 다시 올 리는 없다.
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서 계속 노려보니 자하객잔 앞에 도착한 두 대의 마차가 멈춰서더니 겨우 한 사람이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우리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사내가 고개를 들었을 때.
뜻밖의 인물이어서 놀랄 수밖에 없었다.
“삼복아.”
삼 공자의 호위였던 삼복이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네가 웬일이냐?”
“화산까지 모실 마차 두 대를 준비했습니다. 화산이 넓어 어느 장소를 정하실지 저희는 모릅니다. 제가 장소를 확인한 다음에 복귀하면 이어서 적당한 날에 교주님도 출발하시겠다고 합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철저하네.”
그렇다면 백면공자, 유화곡주, 철섬부인, 우향곡주가 있을 연화봉으로는 갈 수가 없었다. 이번 화산행에서 재회하려고 했는데 마교 사람들과 같이 가면 위치만 노출될 뿐이다.
“삼 공자는 잘 있나?”
삼복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살아 계십니다.”
“음?”
“일전에 문주님에게 맞은 이후로…….”
“내가 때렸었나?”
“예.”
도살자와 싸운 것은 기억이 나는데 삼 공자를 때린 기억은 희미했다. 다행히 삼복이 내 기억 회복을 도왔다.
“이빨이 많이 나가서 먹는 게 좀 불편하시고. 이후에 패배에 대한 상실감 등으로 주화입마를 겪으시다가 지금은 천천히 회복하고 계십니다.”
“너는 어쩌다 안내를 맡았나?”
“연락을 받았는데 문주님이 저를 칭찬하셨다고……. 어쩌다 보니 임무를 맡았습니다.”
삼복이 우리를 둘러보면서 말했다.
“출발은 언제 하시겠습니까? 급하게 갈 필요는 없습니다.”
“내일 새벽에 가자.”
“알겠습니다.”
못 본 사이에 삼복은 십 년 정도가 늙은 것처럼 보여서 나도 신기했다.
“이리와서 쉬어라.”
“예.”
삼복이 마부들에게 말했다.
“너희도 쉬어라.”
다가온 삼복이 먼저 맏형에게 다시 고개를 숙였다.
“……평안하셨습니까?”
맏형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내가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고생 좀 했느냐? 분위기가 달라졌는데.”
“예.”
“들어보자.”
“저희는 이번에 가주님도 실종되셔서 내부도 혼란했습니다.”
가주라는 말에 나는 실종의 원인을 말해줬다.
“가주가 혹시 환귀자라면 나를 습격하다가 죽었다.”
“실은 알고 있습니다. 보고는 그렇게 할 수 없어서 실종으로 했습니다. 다음 가주는 병석에 있으신 삼 공자가 맡으셨고. 공식적으로 교에 보고하여 후계자 다툼에서 물러남과 동시에 세력 전체가 외당에 속하겠다는 협상을 해서 허락을 받았습니다.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삼 공자의 외가가 외당에 속한 것이면 좌천에 가깝다.
그제야 나는 삼복이 수척해진 이유를 알았다.
“혹시 네가 나서서 정리한 것이냐? 교에 보고하고, 오가고 그런 것도.”
“예. 빨리 엎드려야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제가 분주히 움직였습니다. 이번에 공식적인 임무를 처음 받았기 때문에 가문에서는 이제야 안도하는 분위기입니다. 삼 공자께서도 잘됐다고 하셨습니다.”
굉장히 덤덤한 이야기였으나 내심 놀라는 중이었다.
그러니까 삼복은 혼자 동분서주해서 가문 전체를 살린 모양이다. 맏형도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하자마자 삼복에게 말했다.
“고생이 많았다.”
“예.”
삼복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내게 물었다.
“문주님.”
“응?”
“그런데 어쩌다가 교주님에게 도전을 하시게 되었습니까?”
“도전하면 안 되는 사람이냐?”
“예.”
“내 생각은 다르다. 도전하는 사람이 없어서 그간 심심했을 테지.”
“음. 화산으로 가면서 어떻게 하면 살아남을 수 있을지 계속 고민해 보십시오. 멀리 도망가는 것도 방법이고요.”
“네가 왜 내 걱정을 해.”
“문주님의 말을 듣고 제가 생각을 고쳤고. 생각을 고쳤더니 삼 공자와 가문도 살았습니다. 걱정할 만하지요.”
“걱정할 필요 없다. 그나저나 교에서는 누가 화산에 오르는지 대충 아나?”
삼복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다 보니 대충 알게 되었습니다.”
“읊어라.”
“일단 실종된 가주님도 화산으로 가야 했던 상황입니다. 사망 혹은 실종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렇다는 것은 대공자의 외가 측 고수도 참전한다는 뜻입니다. 양 대공은 전 우사에게 죽었다고 들었습니다. 위 좌사도 참전합니다. 공통점이 뭔지 아십니까?”
“몰라.”
“교주님은 아마 죽어도 크게 신경 쓰이지 않는 자들을 불러모아서 오르실 겁니다. 차도지계(借刀之計)랄까요. 은둔자 행세를 하거나, 방관했거나, 기회를 엿봤거나……하던 자들이 끌려갈 겁니다.”
이렇게 황당할 수가…….
교주가 우리에게 내부 청소를 맡긴 셈이다. 그렇다고 청소부가 죽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사내라서 더욱 황당했다.
나는 맏형을 쳐다봤다.
“맏형은 예상했어?”
“너무 당연한 일이라 예상할 것도 없다. 교주는 우리를 약자라고 생각하지 않아. 현재는 어차피 데려갈 고수도 부족할 테니 은둔자나 방관자를 지목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그렇다면 교주를 제외한 최고수는 정해진 셈이다.”
“누군데?”
삼복이 대답했다.
“일마조(一魔祖)라 불리며 과거 서열 첫 번째인 일대공이었습니다. 대공자의 외숙입니다. 권력이나 자리를 탐하지 않아서 더 인정을 받았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그것이 더 불충이 되어 눈 밖에 난 모양입니다.”
코웃음이 절로 나왔다.
“도전을 받아준 줄 알았더니 청소를 맡겨 버리네. 알았다. 싹 다 치워주마. 새벽에 보자.”
“예.”
나는 먼저 일어나서 객잔으로 들어갔다. 오늘이 아니면 이제 마차에서 자거나 화산에 도착할 때까지 야영을 해야 한다. 잠자리가 편한 것은 오늘 밤밖에 없어서 잡념을 지운 채로 잠을 자는 게 가장 올바른 대처였다.
* * *
새벽에 우리는 도망치듯이 일양현에서 출발했다
딱히 죄 지은 것은 없지만 어린 제자에게 사부의 부재는 죄라서 그랬던 모양이다.
말없이 새벽길을 마차로 뚫었다.
내가 탄 마차에는 삼복이 함께 앉아 있고, 다른 마차에는 맏형과 색마가 탔다.
일양현을 이제 떠난다는 것 자체가 묘한 감흥을 주고 있어서 입을 열고 싶지 않았다. 마차에 머리를 기댄 채로 눈을 감았다. 모용백과 차성태도 만나지 못했으나 어쩔 수 없었다. 어떻게든 접점을 만들어 놓으면 마교가 이용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안 보는 게 두 사람에겐 더 좋은 일이었다.
눈을 감고 있는데 삼복의 목소리가 들렸다.
“……식사는 야영하면서 먹을까요. 아니면 평범한 객잔으로 가시겠습니까.”
“나는 객잔이 좋아.”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가 삼복이 질문했다.
“왜요?”
“음식 맛도 제각각이고, 사람도 구경하고. 먹어보지 못한 것도 먹어보고. 화산으로 가는 동안에 무조건 객잔에 들려라. 가면서 점점 음식의 분위기도 바뀌겠지. 식도락 여행이라 생각하고. 마부들 밥값까지 전부 내가 치를 테니 걱정하지 말고.”
삼복이 대답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도 입을 열지 않았다. 살짝 졸렸는데 삼복이 배신할 수도 있었기 때문에 잠에 빠져들 수는 없었다.
한참을 말없이 이동하다가…….
삼복의 목소리가 들렸다.
“……문주님, 주무십니까?”
“…….”
“멀리 도망치시겠다면 이대로 제가 모시겠습니다. 서장도 좋고, 대막도 나쁘지 않습니다. 어차피 교주님의 명령이 있어서 일양현을 건드리는 교도는 없을 겁니다.”
나는 눈을 뜬 다음에 삼복의 표정을 구경했다.
“진심이냐?”
“예.”
“삼 공자는 어쩌고.”
“거긴 특별한 사고를 치지 않는 이상, 이제 다 살았습니다.”
“내 성격을 대충 알 텐데 왜 이런 허무맹랑한 제안을 하지?”
삼복이 말했다.
“교주님을 상대로 승산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차라리 척박한 곳에서 더 수련한 다음에 도전해도 늦지 않습니다.”
“너는 교도가 아니냐?”
“교도지요.”
“교도가 왜 우리 걱정을 해.”
“그러게 말입니다. 일전에 살려주셨으니 교도가 아닌 사람으로서의 보답입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만 받겠다. 화산으로 가자.”
삼복이 마차 바깥을 쳐다보다가 착잡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