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Mount Hua Sect RAW novel - Chapter 1647
1647화. 빨리 찾아봐, 빨리. (1)
말문이 막힌 조걸이 멍하니 제 앞에 선 이를 보다 물었다.
“……뭐라 하셨죠?”
“이 짓거리를 왜 해야 하냐고 물었습니다.”
나이는 마흔 남짓 되었을까?
꼬장꼬장한 중년 검수가 영 마뜩잖은 기색으로 조걸을 노려보고 있었다.
“못 들으셨소?”
조걸의 입에서 대답 대신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반쯤 농담 삼아 화산에 위아래가 어디 있냐고 소리쳐 왔지만, 사실 화산은 절대 위계가 없는 문파가 아니다.
그리고 눈앞의 이 검수는 조걸보다 두 배는 더 살았을 연장자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저자의 주장이 옳고 그르고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천하의 조걸조차 말문이 막히고 만 것이다.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조걸이 눈을 뒤룩뒤룩 굴리며 묻자, 중년의 검수가 어이가 없다는 듯 크게 코웃음을 쳤다.
“문제가 있냐고 물으셨습니까? 뭐가 문제가 아닌지를 물으셔야지요. 두 눈으로 뻔히 보고도 모르시겠습니까?”
“예?”
“여기서 대체 어떻게 수련하라는 겁니까!”
중년의 검수, 모용방화가 손으로 제 뒤편을 가리켰다.
각양각색의 의복을 입은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손을 멈춘 채 이쪽만 바라보고 있었다.
검수, 도사, 권사, 거지…….
그들이 너른 수련장에 뒤섞여 있는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도 세상의 종말을 보는 듯한 감정을 느끼게 했다. 그만큼 기괴한 광경이었다.
하지만 조걸은 여전히 뭐가 문제냐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니까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미치겠군!”
모용방화가 속이 터진다는 듯 제 가슴을 쾅쾅 쳤다.
“수련이란 말이오, 수련! 그것도 뻔한 수련이 아니라, 전쟁을 대비하는 수련!”
“그……렇죠? 그래서 지금 이렇게 열심히 하고 있잖습니까?”
“이런 답답한 사람을 보았나! 타문의 사람들이 저렇게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대체 여기서 어떻게 수련을 하라는 말이오? 여기서 수련하면 비전에도 속하지 못하는 기본공이나 반복해야 하지 않겠냐 이 말이오!”
“……예?”
조걸은 정말로 영문을 몰라 눈을 휘둥그레 떴다. 모용방화가 언성을 높였다.
“전쟁을 앞둔 이 중차대한 시기에 이 무슨 비효율적인 짓거리요! 부당주께선 대체 무슨 요량으로 이런 명을 내리신 거요?”
“어…….”
평소의 조걸이라면 ‘아니, 위에서 시킨 건데 왜 나한테 따지고 난리세요? 정 답답하면 위에 가서 따지시든가!’라는 대답이 화포처럼 터져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가 없다.
어쨌거나 조걸은 이 당의 부당주다. 지켜야 할 체면이 있고, 사수해야 할 위신이 있는 입장인 것이다. 사실 나는 생각 없이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하는 사람이라는 말은 죽어도 할 수 없었다.
“그, 일단 진정하십시오. 수련은 그냥 하면 되는 거…….”
“아니이이이이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돌아온 격한 반응에 조걸은 저도 모르게 움찔했다.
“비전이란 말이오, 비전! 타문의 제자들 앞에서 대놓고 수련할 수 있는 거면 왜 비전이라 부르겠소! 화산에는 그런 개념도 없소?”
엥? 조걸이 슬쩍 갸웃했다.
‘있던가?’
그…… 타문에 전하지 말라는 문규는 있지만, 남 앞에서 수련하지 말라는 내용은 없었던 것 같은데?
청명이 저런 말을 들었다면…… 곁눈질로 배울 수 있는 무학이면 삼류 찌꺼기 수준도 안 되는 건데, 애초에 그걸 왜 비전이라고 부르냐고 눈을 까뒤집었겠지.
‘수련하기 싫어서 농땡이 부린다고 아예 달려들어 패 버렸을 수도 있고.’
한마디로, 여기가 화산이라면 개소리 중 개소리로 치부되었을 주장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여기는 화산이 아니고, 더 안타깝게도 지켜보는 다른 이들조차 모용방화의 논리에 동조하는 눈치였다.
“……그래서 하시고 싶은 말씀이?”
“나는 여기서 더 수련할 수 없소!”
“예?”
조걸이 몇 번째인지 모를 되물음을 뱉었다.
“아,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들었으면서 뭘 다시 묻는 거요? 수련을 할 수 없다니까!”
조걸은 멍하니 모용방화를 응시했다.
“모용세가의 문규에는 타문의 시선이 있는 곳에서 비전을 수련할 수 없게 되어 있소! 그런데 부당주께서는 이곳에서 수련하라 하시니, 이는 서로 상충하는 일이오.”
“그게…….”
“그렇다고 전쟁을 앞두고 뻔한 수련만 반복할 수도 없으니 별수 없지 않소이까? 차라리 남의 눈이 없는 곳으로 가서 홀로 검을 갈고닦는 편이 낫겠소.”
“지금 그러니까…… 항명을 하시겠다는, 뭐 그런 말씀이십니까?”
“항명이라니!”
돌연 펑 터져 나오는 목소리에 조걸이 움찔했다. 모용방화의 수염은 노기에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정말 억울해 미치겠다는 사람처럼.
“그…….”
연기라고 하기에는 그 감정이 아주 진실되게 격렬해 보였다. 조걸은 점점 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막막해졌다.
“내가 항명이나 하는 그런 인간으로 보이시오? 어찌 그런 모욕을!”
“아니, 지금 말씀하시는 게……!”
“우리가 지금 부당주께 해명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 아니오! 애초에 화산이 그런 곳이라 하지 않았소? 권위로 찍어 누르지 않고, 서로 물을 것은 물으며 조율해 가는 곳이라고!”
어느새 그가 말하는 주체가 ‘내’가 아닌 ‘우리’로 교묘히 바뀌어 있었지만, 누구도 이를 굳이 지적하거나 반박하려 들지 않았다.
조걸은 더 큰 혼란에 빠졌다.
“……제가요?”
그랬던가? 화산이?
그냥 청명이가 다 두들겨 패서 돌아가는 곳 아니었나? 거기에 무슨 논의와 조율이 있었지?
무엇보다 그쪽이 왜 나보다 화산을 더 잘 아는 것처럼…….
쿵!
모용방화가 힘껏 발을 굴렀다.
“그러니! 상부에 질의를 하든, 당주님들끼리 논의를 하시든, 내가 납득할 수 있을 만한 대답을 들려주시오.”
“…….”
“그게 부당주의 역할 아닙니까!”
조걸은 입을 쩍 벌린 채 아무 말도 못 하고, 그저 몸을 획 돌려 멀어져 가는 모용방화의 뒷모습을 망연히 보았다.
이윽고 상황을 주시하던 당원들도 눈치를 보다 삼삼오오 흩어졌다. 반수 넘게 이탈하고 나니 연무장은 금세 휑하니 비어 버렸다.
“저…….”
한 대 얻어맞은 표정으로 남겨져 있던 조걸이 굽슬굽슬한 머리카락을 쥐어뜯었다.
* * *
“아오! 진짜 성질 같아서는 콱 그냥!”
콰앙!
조걸이 애꿎은 벽을 발로 걷어찼다.
“부서진다, 인마!”
“부서지면 다시 세우면 될 것 아닙니까!”
“안 부수고 안 세운다는 생각은 안 해 봤냐?”
“아오!”
윤종의 만류에 조걸은 이제 애꿎은 바닥만 걷어차기 시작했다.
“진짜 조동아리를 그냥 콱 걷어차 버리는 건데!”
“……그래. 그게 우리가 너를 바라보는 심정이란다. 이제는 좀 이해가…….”
“아, 지금 불난 집에 부채질하십니까!”
버럭 소리친 조걸이 윤종에게 쏘듯이 물었다.
“그러는 사형은? 사형네 당은 잘 돌아갑니까?”
“음. 다들 적극적이시더라.”
“어? 그……래요?”
“그래.”
윤종이 흐뭇하게 웃었다.
“얼마나 적극적이신지, 개방 분들이 타구봉진(打狗棒陳)을 연습해야 한다고 훌훌 가시더라.”
“…….”
“그걸 굳이 지금 해야 하냐니까 지금 안 하면 전쟁 중에 연습하냐고 되레 따지시던데?”
“개, 개방이요?”
“그래. 확실히, 음……. 그래, 자유로운 분들이시지. 규율과 규칙에 얽매이지 않고,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그런 바람 같은…….”
“이 갈지 말고 말씀하십시오, 사형. 그러다 어금니 다 나갑니다.”
“으…….”
윤종이 머리를 감싸쥐고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조걸이 윤종에게 동정 어린 시선을 보냈다.
그나마 조걸은 모용세가에 얻어맞은 거지만, 윤종은 개방에 맞은 것 아닌가. 그들의 심리적인 거리가 모용세가보다 개방에 훨씬 가까운 만큼 받은 충격도 클 것이다.
“망할 인간들 같으니라고!”
생각할수록 화가 난다는 듯 조걸이 다시 이를 갈아붙였다.
대놓고 무시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교묘하게, 또한 지속적으로 도발해 온다.
마치 그들을 부당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듯이.
“그럴 거면 애초에 반발하든가!”
“상부에서 합의한 것과 자신들은 또 별개라는 거겠지.”
“아니! 누군 맡고 싶어서 맡았습니까? 강제로 시켜 놓고는!”
“……그런 걸 생각해 주시겠냐?”
대화하던 두 사람의 입에서 동시에 한숨이 푹 터져 나왔다.
“죽겠네, 진짜.”
나이라도 비슷하면 어떻게 드잡이질이라도 해 볼 텐데, 웬만해서는 조걸이나 윤종보다 연배가 높다 보니 함부로 대할 수도 없다.
이쯤 되니 강호에서 말하는 연륜이 사실은 ‘연배’의 힘을 지칭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들 정도다.
“망할 인간들 진짜! 따질 거면 제 장문인들에게 가서 따지든가! 왜 애꿎은 우리한테 그럽니까.”
“……한시적으로 문파를 해체했으니 장문인이 나서서 뭐라 할 수 없다는 거지. 좋은 명분 아니냐.”
“으……. 얄미워.”
조걸이 뿌득뿌득 이를 갈다가 무언가 생각난 듯 멈칫하며 고개를 돌렸다.
“사숙. 사숙 쪽은 별문제 없……. 히이이익!”
어두운 곳에서 덜커덕덜커덕 고개를 돌리는 백천을 보고 조걸이 기겁하여 뒷걸음질 쳤다.
“귀, 귀신! 아, 아니! 사숙! 무슨 병 걸렸습니까?”
“병은 이미……. 아니, 세상에. 진짜 상태가 왜 이러십니까? 사숙 지금 얼굴이 그 장일소 놈 같습니다.”
아주 과장은 아니었다. 백천의 얼굴은 그야말로 밀가루라도 끼얹은 듯 허옇게 질려 있었다. 거기에 눈 주위에 거뭇한 음영까지 드리워 있어서 얼핏 화장한 것처럼 보였다.
퀭한 눈으로 두 사람을 보던 백천이 부르튼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그러더니 힘없이 뇌까렸다.
“윤종아…….”
“예?”
“……이런 말이 좀 실례일지 모르겠는데. 아니, 확실히 실례겠지만.”
“뭔 말을 하시려고?”
“부럽다. 네가 고아라서.”
“아니, 이 사숙이 미치셨나!”
조걸이 냅다 걷어차 버릴 듯 달려들며 고함을 치는 순간, 백천의 입에서 힘없는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아버지가 나한테 자꾸 제대로 된 지시를 해 보래.”
“…….”
“망할 진금룡 새끼가 팔짱 끼고 옆에서 비웃고.”
어…….
“말 한마디 할 때마다 ‘부당주께서는 지금 그게 옳다고 여기시는 거요?’ 하는데, 진짜…….”
“자, 잠시만요, 사숙. 일단 검은 잡지 맙시다. 아무리 그래도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마지막 선이라는 게 있잖습니까.”
“후천적인 고아가 될 방법도 있지 않을까?”
“없어요! 그런 거 없다고! 정신 차려, 이 미친 인간아!”
조걸이 백천을 잡고 짤짤 흔들었고, 윤종은 그 광경을 보며 고개만 절레절레 저었다.
얼마나 고통이 심하면 저럴까…….
“진짜 하나같이…….”
왜 그러는지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이건 정도가 심하다.
코앞의 전쟁에 대한 위기감보다 새파란 놈이 명령해 대는 꼴이 보기 싫은 게 우선이란 말인가?
이젠 대체 강호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었는지 순수한 의문이 들 정도였다.
“전쟁이 코앞인데 지금 이런 짓거리를 할 때냐고요. 한시가 급한데! 당장 손발 맞추기도 바쁜데. 대체 머리에 뭐가 든 겁니까!”
“……싸우기 시작하면 나아지겠지.”
“듣자 하니 그것도 아닌 모양이던데요. 예전 마교와의 전쟁 때, 앞에서는 죽어라 싸우는데 뒤에서는 지금이랑 똑같은 짓 했다잖습니까? 그것도 전쟁 내내. 그 짓거리 때문에 다 패 죽여 버리고 싶었다던데, 백 년 지났다고 사람이 변하겠습니까?”
“그렇구……. 음? 근데 너는 그 이야기를 어디서 들었냐?”
“예?”
“백 년 전 이야긴데. 나는 처음 듣는데?”
“어……? 내가 이걸 어디서 들었지?”
조걸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모습을 본 윤종이 한숨을 푹 하고 내쉬었다.
‘이게 전쟁 내내 계속 된다고?’
눈앞에 적이 있는데도?
생각만 해도 암담하기 짝이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다더냐?”
“남궁 소가주 쪽은 그래도 좀 나은 모양이던데요.”
“……아무래도 그쪽은 남궁세가의 가주가 되실 몸이니까 대놓고 들이받기에는 부담되겠지.”
“그럼 우리 사숙은 왜……?”
“거긴 좀 경우……가 다르니까.”
윤종이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 일로 새삼 느끼게 된 것도 있었다.
오검이니, 화산의 인재니 하며 사방에서 떠받들어 줄 때, 그도 내심 우쭐하는 마음이 있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이렇게 되고 보니 확실히 느껴졌다. 사람들의 칭송은 화산의 ‘인재’에게 향해 있는 게 아니라, ‘화산’의 인재에게 향해 있었다.
화산이라는 후광이 없다면 결국 조걸이든 윤종이든 그냥 강호에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애송이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럼 혜연 스님은 좀 낫겠네.”
“그렇겠죠? 아무래도 소림 출신에다, 절세 기재로 유명한 사람이니까. 우리랑은 취급이 다르겠죠.”
“그렇겠…….”
“도, 도장! 도자아아아앙! 도장들!”
“엥?”
그때, 누군가가 황급히 달려오는 게 보였다. 자세히 보니 의외의 인물이었다.
“남궁 소가주?”
“뭔 일이 났나?”
쏜살같은 속도로 코앞까지 달려온 남궁도위가 외쳤다.
“크, 큰일입니다!”
“예? 무슨 일입니까?”
“혜, 혜연 스님이! 혜연 스님이 사람을 팼습니다!”
“……예? 누가요?”
“혜연 스님이 제 당원을 두들겨 팼다니까요! 지금!”
백천과 윤종, 조걸이 서로를 마주 보았다.
“……천잰데?”
“아니, 사고지 인마!”
“나도 한번…….”
“검 내려놓으라고요, 사숙!”
크게 당황한 윤종이 머리를 쥐어뜯으며 벌떡 일어났다.
“이, 일단 가 보죠! 무슨 일인지.”
남궁도위를 따라가는 그의 발길이 다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