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Mount Hua Sect RAW novel - Chapter 1705
발작처럼 휘두른 손에서 무시무시한 열기가 뿜어져 나왔다.
열양기공으로는 견줄 문파조차 존재하지 않는다는 남해태양궁의 정수. 이를 한껏 실은 태양궁주의 태양신장(太陽神掌)이 극성으로 전개된 것이다.
그 순간 화르륵 피어났던 매화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태양궁주의 양손에 들러붙었다. 마치 불씨가 번지기 전에 제 몸을 던져 꺼뜨리려는 것처럼.
“이……!”
물론 매화검기는 진짜 꽃잎이 아니고, 태양신장 역시 진짜 불길은 아니다. 그러니 그런 상황은 벌어지지 않는다.
다만 태양신장의 발출을 잠시나마 늦추는 데는 성공했다.
그 틈으로 백천의 검이 파고들었다.
태양궁주의 얼굴을 향해 백천의 검이 질주한다.
전력을 실었으나 하찮은 검이다. 적을 일격에 꿰뚫을 만한 쾌속함도, 적을 혼란케 할 변화도 없다.
하지만 그 부족한 검이 흩날리는 매화검기와 조화된 순간, 태양궁주조차 기함할 만한 살초(殺招)로 변모했다.
“큭!”
태양신장의 발출을 포기한 태양궁주가 잽싸게 손을 들어 백천의 검격을 막았다.
카앙!
손과 검이 충돌하는 순간, 고막을 찢을 듯한 금속음이 터져 나왔다. 태양궁주의 입가에 비웃음이 스쳤다.
‘멍청한 놈!’
태양신장으로 발출되지 않았을 뿐, 실린 내력은 어디로도 가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내력을 잔뜩 머금은 태양궁주의 손을 후려친 백천이 울컥 피를 토했다.
“저리 꺼…….”
파아아앗!
그런데 그 순간, 백천의 검이 돌연 수십으로 분열하더니 태양궁주의 전신으로 쏟아졌다. 내상이 단전까지 침투하고 남을 상황에서도 외려 공격에 박차를 가한 것이다.
이 실로 무모한 행동에 태양궁주가 눈을 치떴다.
카앙! 카앙!
태양궁주의 손발이 삽시간에 어지러워졌다.
평소라면 어렵지 않게 막아 낼 허술한 연격이건만, 태양궁주의 얼굴은 점차 당혹감으로 일그러지고 있었다.
‘이 미치광이 같으니!’
한순간이다. 말 그대로 한순간의 틈만 그에게 주어진다면, 이 미치광이의 육신은 얼마 안 되는 핏덩이만 남긴 채 녹아 내릴 것이다. 이토록 가까운 거리에서는 장력을 피할 방법도, 태양신장의 열기를 흘릴 방법도 없을 테니까.
그리고 이놈 역시 그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을 터.
그럼에도 이렇게 잠깐의 주저도 없이 바짝 붙어 오며 검을 휘두르고 있다. 제 목숨은 진즉에 내려놓았다는 듯한 모양새다.
카앙!
손과 검이 연이어 충돌한다.
타격음이 반복될 때마다 태양궁주의 얼굴이 일그러졌고, 하늘을 찌르던 그의 자존심 역시 사정없이 구겨져 내리고 있었다.
쾅!
날아든 검을 일격에 쳐 날린 태양궁주가 노호성을 내지르며 백천의 열린 가슴을 향해 일장을 날렸다.
우우우우우웅!
수천 마리 벌이 일제히 날아오른 듯한 소리와 함께 금빛으로 물든 눈 부신 장력이 백천의 가슴팍으로 파고들었다.
파아아앗!
가슴 앞으로 빠르게 세 자루의 검이 날아들었지만, 태양신장을 완전히 막아 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때.
고오오오오!
상서롭다는 말이 어울리는 공명음이 일며 백천의 옆구리 근처에서 태양신장의 화려한 금광과는 다른, 은은한 불광(佛光)이 솟구쳤다.
쿠우우웅!
태양신장이 백천의 옆에서 뿜어져 나온 반야신장(般若神掌)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닿는 모든 것을 녹여 버리는 극강의 창이 부처의 지혜를 담아 만물을 감싸 안는 방패와 맞닥뜨렸다. 잠시 후, 수십 개의 거대한 종이 동시에 울리는 듯한 공명음이 울렸다.
태양궁주의 눈에는 분명히 보였다.
타다닥!
백천의 옆구리 쪽에서 뻗어 나온 손이 그의 태양신장과 맞부딪히는 순간, 끓어오르듯 익어 가는 광경을 말이다.
그러나 그 손은 잠시도 물러서지 않고, 주저하지도 않았다.
그저 굳건히 백천에게 쏟아지는 공격을 막아 내었다.
파아아아앗!
백천 역시 저 익어 가는 손의 주인과 사정이 다르지 않을 터였다. 아니, 오히려 더 심각할 것이다.
그러나 백천의 검은 또다시 대단한 속도로 태양궁주를 향해 쇄도했다.
태양신장과 반야신장이 맞부딪히며 생겨난 작은 틈을 절묘하게 노리며 파고든 것이다. 검 끝은 태양궁주의 얼굴 중앙을 노렸다. 흡사 독 오른 독사 같은 움직임이었다.
태양궁주가 기겁하며 빠르게 고개를 획 꺾었다. 하나 그 짧은 찰나 얼굴이 길게 베이며 피가 허공에 튀어 올랐다.
벌겋게 달아오른 검이 얼굴을 베며 지지는 고통. 심지어 그 고통은 얼굴 바깥뿐 아니라 입 안에서도 느껴졌다.
태양궁주의 두 눈에 진노의 핏발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아아! 이 천한 놈이 감히!”
콰아아아아!
그가 가공할 힘을 실어 손을 휘둘렀다.
작은 태양이 몸을 휩쓰는 것 같은 상황이지만, 백천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집요하게 태양궁주의 얼굴만을 노렸다. 방어는 고려조차 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 장력을 대신 막아 낸 것은 곱슬머리를 지닌 젊은 검수였다. 검기를 잔뜩 품은 검이 횡으로 장력을 가로막았다.
콰르르릉!
잔뜩 성이 나 울부짖는 맹수의 이빨을 검으로 막아 내는 듯한 광경. 조걸이 버티지 못하고 뒤로 밀리는 순간, 검의 뒷면을 향해 녹빛으로 물든 손이 날아들었다.
쾅!
윤종의 죽엽수였다. 그가 전력을 다해 조걸의 검면을 때리는 것과 동시에.
치이익!
검과 닿은 손이 타들어 가며 지독한 냄새가 일었다. 윤종은 이를 악물며 손에 더욱 큰 내력을 불어넣었다.
“하아아아아압!”
“이……!”
태양궁주가 단숨에 밀어붙여 둘 다 숯으로 만들어 버리려는 찰나, 머리 위에서 수십 송이의 매화가 피어났다. 유이설이었다.
그는 기함하며 몸을 뒤로 젖혔다. 머리카락이 매서운 검기에 잘려 사방으로 흩날렸다.
서걱!
얼굴에 또 한 번 화끈한 감각이 번졌다. 고통을 채 실감하기도 전에 백천의 검이 이번엔 목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또한 혜연이 뿜어낸 백보신권이 초근거리에서 가슴팍을 향해 날아들었다.
“으아아아아아아압!”
열양지력이 사방으로 폭발하듯 뿜어졌다. 장력이 아닌 기공의 형태로 그를 에워싼 모두에게 쏟아졌다.
조걸이 눈을 부릅뜬 순간, 익숙한 등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콰아아아아앙!
“아아악!”
“큭!”
태양궁주가 뒤로 또 뒤로 주춤주춤 물러섰다.
“으…….”
주르륵.
그의 이마에 새겨진 상처에서 피가 흐르며 눈을 적셨다. 세상이 일순 붉은빛으로 물들었다.
“사숙!”
“빌어먹을, 그걸 왜!”
애써 눈을 뜨니 백천을 좌우에서 부축하고 있는 조걸과 윤종의 모습이 보였다. 열양기공을 정면에서 맞받은 백천의 몸에선 흰 증기가 끊임없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턱.
그때, 이제 붉다 못해 검게 변해 버린 백천의 손이 조걸의 어깨를 힘겹게 움켜잡았다. 그는 자꾸 힘이 빠져 늘어지려는 상체를 애써 들어 올렸다.
오싹.
태양궁주와 백천의 눈이 마주쳤다. 순간 태양궁주의 온몸이 섬찟하며 소름이 내달렸다.
살이 익고 부어올라 제대로 뜨지도 못하는 눈이었지만, 그 사이로 엿보이는 백천의 눈빛은 실로 섬뜩했다.
거기에 더해 백천의 상태를 살핀 화산의 검수들까지 살기 어린 눈으로 태양궁주를 노려봐 왔다. 조금 전까지 그들의 눈에 어려 있던 공포는 이제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욱신.
이마의 상처가 비명을 질렀다. 심지어 뺨이 깊게 베이며 입 안까지 상처가 남아 진득한 피가 계속해서 고였다.
그의 삶에서 이제껏 이런 종류의 고통은 한 번도 없었다.
태양궁주는 혼란에 빠졌다.
아니, 정확히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 그가 느끼고 있는 이 감정이 무엇인지 말이다.
이는 태양궁주인 그가 벌레보다 하찮은 저들에게 느낄 만한 감정이 아니었으니까.
“궁주님!”
하지만 이쪽을 향해 달려오는 호법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태양궁주는 저도 모르게 소리치고 말았다.
“신호를 보내라!”
호법이 크게 당황했다.
“구, 궁주님? 하지만 아직……”
“보내라, 당장! 지금 당장!”
“아, 알겠습니다!”
태양궁의 호법이 황급히 품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 절벽 쪽을 겨누었다.
조걸과 윤종의 두 눈에 잠깐 의문이 스쳤고, 돌연 다 죽어 가던 백천이 눈을 치뜨며 거칠게 외쳤다.
“막아! 당장!”
“예?”
타앙!
그러나 이미 늦은 뒤였다.
호법이 절벽을 향해 겨눈 작은 원통에서 새빨간 무언가가 튀어나왔고, 화산의 검수들이 아닌 그들 너머의 절벽 끄트머리를 향해 쏘아져 나갔다.
* * *
“오오오오!”
남궁명이 우렁우렁한 기합과 함께 전력을 실어 검을 휘둘렀다.
명성에 비해 신법의 수준은 그리 높지 않다고 평해지는 남궁세가. 하지만 이 불안정한 상황 속에서도 그가 내뿜는 검기는 분명 위력적이었다.
검격과 열양장력이 금방이라도 충돌할 듯 서로를 향해 내달렸다.
적들의 실력 역시 무시하지 못할 수준이다. 그러나 이곳에 오른 이들은 강호의 유력 문파들이 모조리 모인 천우맹에서도 또 한 번 골라낸 정예들이다.
장소가 어디건, 고작 한 문파의 실력자들이 감당할 수 있을 만한 전력이 아니라는 의미였다.
콰아아앙!
이윽고 검기가 그대로 폭발하며 적을 휩쓸었다. 이를 보며 남궁명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할 수 있다!’
적이 이곳에서 무엇을 노렸건, 어쨌든 상황으로 보아 저들이 준비를 마치기 전에 저지할 수 있을 게 분명하다. 그리고 이대로 놈들을 방해할 수 있다면, 내친김에 절벽에 매달린 놈들을 모조리 베어 죽이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이곳에 뛰어든 모두, 나아가 절벽 위에 올라 있는 화산도 살아남을 수 있을 터.
물론 화산이 저 위에서 치르게 될 악전고투는 별개의 문제겠지만…….
‘이대로만 되어 준다면.’
하지만 그 순간, 위를 올려다본 남궁명의 시야에 괴이한 것이 잡혔다.
백안암과 하늘이 맞닿은 그 경계선 쪽에 새빨간 선이 그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마치 작고 빨간 유성이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것처럼.
‘저건 뭐지?’
정체를 유추해 보기도 전에, 그것이 허공에서 터져 버렸다.
퍼어어어엉!
사방으로 붉은빛이 뿜어져 나왔다.
폭약이 아니다. 소리만 크고 요란할 뿐, 사람을 상하게 할 만한 위력은 없다. 그래, 그저 요란한…….
“효시(嚆矢)?”
아니, 신호탄이라 불러야 더 적절한 무언가다.
남궁명이 본 것을 절벽에 있는 모두가 보았다. 다들 이 신호의 의미에 대해 의문을 품고 경계하는 눈치였다. 대체 이 상황에 절벽으로 무슨 신호를 보낸단 말인가.
하나 의문은 금세 풀렸다.
남궁명이 또 하나의 광경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신호를 본 태양궁도들의 얼굴에 말로 설명하기 힘든 비장함이 깃드는 모습을 말이다.
‘서, 설마…….’
더 생각할 틈도 없었다. 그와 가까이 마주해 있던 태양궁도의 몸에서 선명하고 붉은 불이 화르륵 타오르기 시작했다.
마치 스스로 몸을 불사른 등신불처럼 온몸을 휘감은 불길, 그 의미를 이해한 순간.
남궁명은 더 생각할 것도 없이 몸을 움직였다.
턱!
단박에 손을 뻗어 등 뒤에 있는 남궁도위를 움켜잡고 모든 힘을 쥐어짜 절벽을 박찼다.
신음하는 듯한 남궁도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안 돼.”
화아아악!
태양궁도들의 몸이 너나 할 것 없이 금세 불길에 휩싸인다.
남궁도위의 신음이 처절한 절규로 화했다.
“안 돼에에에에에에에에에!”
콰아아아아아아앙!
불길에 타던 태양궁도들의 육신이 연이어 폭발하기 시작했다. 이 전투의 끝을 알리는 거대한 축포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