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Mount Hua Sect RAW novel - Chapter 729
728화. 더 훌륭해질 수도 있지! (3)
백매관 안에 까드득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윽고 엄지손톱이 살짝 뜯겨 나갔다.
하지만 정작 손톱을 물어뜯는 이는 자신이 뭘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듯했다.
“저기⋯⋯ 사숙.”
“응?”
“⋯⋯그러다 피나겠습니다.”
까득.
참다못해 만류하는 말을 들으면서도 손톱을 다시 한번 물어뜯은 백천이 푹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 윤종을 바라보았다.
“와, 씨!”
그제야 백천의 얼굴을 제대로 본 윤종은 순간 화들짝 놀라 뒤로 주춤 물러나고 말았다.
평소의 단정하고 고운 얼굴이 아니었다. 피부는 거칠기 짝이 없고, 눈 밑에서 시작된 검은 음영이 거의 턱 끝까지 내려온 몰골이 아주 반송장이 따로 없었다.
“아니, 뭘 잘못 드셨습니까? 얼굴이 왜⋯⋯?”
“윤종아⋯⋯.”
“예?”
“⋯⋯괜찮을까?”
“⋯⋯.”
백천은 말을 꺼낸 것만으로도 더 불안해지는지 귀신이라도 마주친 듯 얼굴이 더 희게 질렸다. 이제 아예 입술까지 덜덜 떠는 걸 보니 윤종마저 괜스레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때 백천이 다시 물었다.
“진짜 괜찮을까?”
앞뒤 다 잘라 먹은 질문이지만 윤종은 그의 말을 찰떡같이 알아들었다.
“별걱정을 다 하십니다. 아무리 그래도 설마⋯⋯ 우리한테 하는 식으로 하겠습니까? 청명이 놈도 머리가 달린 놈입니다.”
“머리는 달렸지.”
백천이 다시금 손톱을 물어뜯었다.
“⋯⋯머리 안에 뭐가 없어서 그렇지.”
어⋯⋯. 그건 반박하기가 좀 어려운데.
백천은 마치 정신이 반쯤 나간 사람처럼 힘없이 중얼거렸다.
“⋯⋯우리야 이제 뭐⋯⋯ 그래, 이미 버린 몸이니까.”
“잠시만요, 사숙. 남의 몸 마음대로 버리시면 안 됩니다.”
“그런데 장문인께서는⋯⋯ 장로님들께서는 이번에 처음으로 청명이 놈을 겪는 건데.”
백천이 부들대는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늘 지저분한 곳도 없이 결 좋고 깔끔하게 내려와 있던 머리는 이미 산발이 되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좋은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 지금이라도 말리는 게 좋지 않을까? 말려야겠지?”
“아니⋯⋯. 그래도 설마⋯⋯.”
윤종은 백천을 달래면서도 말끝을 개운하게 끊질 못했다. 그도 슬슬 불안해진 탓이다.
“⋯⋯그래도 그놈이 위아래는 있⋯⋯. 아니, 없나? 아니, 있⋯⋯. 없어?”
윤종의 얼굴이 점점 혼란으로 물들었다.
그게 그⋯⋯ 위아래가 있는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불안하지?”
“⋯⋯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어째 위장이 뒤틀리며 아파 왔다.
두 사람의 얼굴이 불안으로 점차 얼룩져 가자 옆에서 쉬고 있던 조걸이 피식 웃었다.
“하여튼 두 분 다 걱정도 많으십니다. 걱정도 많아.”
“응?”
“거 수련이라는 게, 빡세게 시키고 싶다고 다 생각대로 되는 게 아니잖습니까. 이게 뭐 검술이나 경공 같은 거면 죽어라 굴려 댈 수 있지만, 신공을 익히면서 무슨 수로 사람을 굴립니까? 기운이야 결국 자기가 움직이는 건데.”
“⋯⋯.”
“⋯⋯.”
조걸의 태연한 말에 두 사람의 얼굴이 멍해졌다. 조걸은 잠깐 주춤하며 고개를 갸웃했다.
“왜 그렇게 보십니까?”
“아니⋯⋯.”
백천이 머뭇거리자, 윤종이 그의 말을 대신 해 주었다.
“네 입에서 바른 말이 나올 때도 있구나 싶어서.”
“아니. 이분들이⋯⋯.”
조걸이 발끈하거나 말거나 백천과 윤종은 서로를 마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리가 있네요.”
“그러게⋯⋯. 확실히 그렇구나. 제아무리 청명이 놈이라고는 해도, 신공을 수련하는 사람을 갈아 댈 수는 없을 테니.”
이제야 비로소 조금이나마 안심이 되는 느낌이었다.
하나 그들과는 생각이 다른 사람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럴까?”
모두의 시선이 한곳으로 쏠렸다.
여태 말없이 앉아 있던 유이설이 뚱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과연?”
“⋯⋯.”
딱 두 음절만으로 사람을 이토록 불안하게 만드는 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이었다.
“사고 생각은 다르신 거예요?”
“어떻게든 괴롭힐 놈.”
“⋯⋯그 말도 맞네요.”
화산의 제자들이 청명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확연히 알 수 있는 순간이었다.
“⋯⋯슬쩍 가 볼까?”
“일반 제자들은 절대 접근하지 말라고 했잖습니까. 괜히 갔다가 걸리면 운암 사숙조께서 대노하실 겁니다.”
“⋯⋯그래, 그러면 안 되지.”
백천이 몸을 살짝 떨었다.
매일 얼굴을 마주하는 운검이야 호통을 쳐도 너스레를 떨며 빠져나올 수 있다. 하지만 운암은 백천에게도 여전히 어려운 사람이었다. 차라리 운암보다는 현자 배들이 더욱 친숙할 정도이니 말이다.
‘문파에는 반드시 그런 분이 계셔야 하는 법이지.’
모두가 가족처럼 지내는 게 반드시 좋은 일은 아니다. 어느 순간에는 문파의 기강을 잡고 쓴소리해 줄 사람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운자 배에서는 운암이 그런 역할을 하고 있고, 백자 배에서는 백상이 그런 사람이다.
“끄응. 속이 타도 확인해 볼 수가 없으니.”
“일단 비명 소리가 안 들리니 조금은 안심해도 되지 않겠습니까?”
“⋯⋯그것도 그런데⋯⋯.”
백천이 막 한숨을 내쉬려는 찰나였다.
백매관 문이 벌컥 열리더니 백상이 안으로 급히 고개부터 들이밀었다.
“사형! 장문인과 장로님들께서 내려오십니다!”
“뭐?”
백천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문으로 돌진했다.
“비켜!”
“으악!”
심지어는 문을 반쯤 막고 서 있던 백상을 걷어차 치워 버린 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려 나갔다. 그 뒤를 다른 오검이 급히 뒤따랐다.
“어디? 어디지?”
“저쪽입니다!”
백천의 시선이 윤종이 가리킨 곳으로 획 돌아갔다. 과연 화산 뒤쪽으로 이어지는 소로를 따라 몇몇 사람이 터덜터덜 걸어오는 모습이 똑똑히 보였다.
“멀쩡한데?”
“멀쩡하신데라고 해야지, 이 싸가지 없는 놈아!”
윤종이 반사적으로 조걸의 목을 잡고 졸랐다.
“켁! 케엑! 죄, 죄송!”
조걸의 목을 짤짤 흔들어 대는 윤종을 보며 백천이 식은땀을 흘렸다.
‘가만 보면 저 새끼도 항상 조걸이 놈 팰 준비만 하고 있는 것 같군.’
하지만 이건 누가 보아도 윤종의 잘못은 아니었다. 그 윤종을 저렇게 만든 조걸과 그 조걸을 저리 만든 청명이 놈의 잘못이었다.
“이, 일단 가 보자.”
“예!”
백천을 필두로 한 오검이 장문인이 오는 쪽을 향해 우르르 달려갔다. 일단 절뚝대거나 휘청대지 않는 것을 보면 그들이 우려했던 그런 일은 없었던 모양이다.
‘그래도 청명이도 사람이네.’
‘양심이 있으면 장문인께 그러면 안 되지.’
‘마귀 같은 놈이지, 진짜 마귀는 아니었네!’
모두가 한시름 놓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런데 그때였다.
“⋯⋯어?”
“엥?”
“저, 저거⋯⋯.”
장문인과 장로들에게 다가가던 발걸음이 점점 느려졌다.
“⋯⋯자, 장문인?”
백천이 당황한 듯 현종을 불렀다. 그러자 현종이 고개를 슬쩍 들어 그를 마주 보았다.
움찔.
백천은 깜짝 놀라 언어를 잃은 사람처럼 더듬거렸다.
“아, 아니⋯⋯. 왜⋯⋯ 왜 이렇게 수척해지신⋯⋯. 그⋯⋯.”
그도 그럴 게, 현종의 얼굴은 말이 아니었다.
백천의 얼굴도 상태가 그리 좋지 않지만, 지금 현종의 얼굴에 비하면 한잠 늘어지게 잔 뒤 쌀뜨물로 세수까지 마친 뽀얀 얼굴이라 해도 될 정도였다.
‘피골이 상접했는데?’
‘아니, 이 미친놈이 대체 무슨 짓을 한거야?’
‘무서워.’
현종뿐 아니라 현영과 현상의 얼굴도 마찬가지였다. 하루 사이에 사람이 거의 목내이(木乃伊: 미라)가 되어 버린 것 같지 않은가?
“자, 장문인. 대체 무슨 일이⋯⋯.”
현종은 아주 힘없이 꺼져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별거⋯⋯ 아니다.”
아니, 되게 별거 같은데요?
“아우. 개운하다.”
그때 별안간 들려온 목소리에 백천의 시선이 획 돌아갔다.
저 뒤쪽에서 청명이 놈이 잘 자고 일어난 고양이 같은 얼굴로 자박자박 걸어오고 있었다.
“야, 이 새끼야!”
순간적으로 눈이 뒤집힌 백천이 와락 달려들어 그의 멱살을 움켜잡았다. 아니, 잡으려 했다.
하지만 꿈은 그저 꿈일 뿐, 백천은 달려들었던 속도보다 더 빨리 튕겨 나가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헐, 씨. 뭐야.”
청명은 내뻗어진 제 주먹과 백천을 번갈아 보다 혀를 찼다.
“아, 내가 그런 거 하지 말라고 몇 번이나 말했잖아.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주먹이 나간다니까?”
“끄으으⋯⋯. 저 새끼가⋯⋯.”
고개를 번쩍 들어 올린 백천이 원독 가득한 두 눈을 부라렸다.
“야, 이 미친놈아! 장문인께 무슨 짓을 한 거냐! 위아래도 모르는 놈 같으니!”
“아, 이거? 이건⋯⋯.”
“법도도 모르고 예의도 없는 놈!”
“아, 그러니까 그게⋯⋯.”
“육시를 할 놈! 치도곤을 내어 버르장머리를 고쳐야 할 놈! 허리를 분질러 놓⋯⋯.”
“에라, 진짜!”
퍼억!
청명이 벗어 날린 신발이 백천의 얼굴에 틀어박혔다. 비로소 조용해진 백천이 옆으로 스르륵 쓰러졌다.
털썩.
“⋯⋯아주 신이 났지, 신이 났어. 쯧쯧.”
쓰러진 그를 보며 청명은 혀를 차 댔다. 예전에는 그나마 좀 멀쩡했던 것 같은데. 어떻게 된 게, 가면 갈수록 상태가 안 좋아지는지 몰라.
그때 유이설이 빠르게 현종을 향해 다가갔다. 퍼뜩 정신이 든 윤종이 외쳤다.
“장문인, 괜찮으십니까? 너희도 가서 빨리 부축해 드려라!”
“예!”
유이설과 당소소, 조걸이 재빠르게 장문인과 장로들을 부축했다. 윤종은 사색이 된 얼굴로 청명에게 물었다.
“오늘 자하신공 익히는 거 아니었어?”
“맞아.”
“그, 그런데 왜 이런 것이냐? 설마 입마(入魔)라도⋯⋯?”
“입마는 얼어 죽을. 그것도 뭘 좀 익혀야 걸리는 거지. 하루 만에 주화입마 들면 역사에 남을 일이지.”
“그, 그럼 왜?”
“아아.”
청명이 어깨를 으쓱했다.
“별거 아냐. 그냥 첫 운용을 하는데, 도통 감을 못 잡으시는 것 같아서.”
“같아서?”
“시간을 들여 할까 하다가⋯⋯ 그것도 낭비다 싶더라고. 그래서 그냥 내가 몸 안으로 기운을 넣어서 강제로 돌려 버렸거든?”
“⋯⋯남의 몸 안으로 기운을 넣어서 강제로 기운을 돌렸다고?”
“응.”
“어⋯⋯. 그게 문제가 되는 건가? 진기도인이잖아. 그건 이전에도⋯⋯.”
“아니지.”
“응?”
청명이 빙긋 웃었다.
“진기도인은 원래 기운이 흐르는 곳으로 기운을 보내는 거고. 이건 안 가던 곳으로 강제로 뒤틀고.”
뒤틀어?
“기혈을 뚫고?”
뚫어?
“긁어내고, 부수고, 으스러뜨리고, 찢어 가며!”
장로를 부축하며 듣고 있던 조걸의 등에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 그러니까 그럼 어떻게 되는 건데?”
“흐음. 어⋯⋯ 뭐 큰 문제는 없지. 어쨌거나 첫 흐름을 잡는 데는 성공했으니까. 이제는 좋아질 일만 남았지.”
윤종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장문인의 상태가 왜⋯⋯.”
“별건 아니고, 결과적으로는 좋은 건데 평생 기운을 돌리던 데서 다른 곳으로 흐름을 바꾸다 보면⋯⋯ 음, 그러니까 조금 아프거든.”
“⋯⋯얼마나?”
“음. 그걸 어떻게 비유해야 하나?”
잠깐 고민하던 청명이 생각난 듯 환하게 웃었다.
“몸속에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손가락 두께로 구멍을 파내는 느낌이라고 하면 이해가 갈까? 기혈을 따라서 꼬불꼬불하게?”
“히이이이이익.”
윤종이 사색이 되어 뒤로 주춤주춤 물러났다. 핏기가 가신 얼굴로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야⋯⋯ 야, 이 미친놈아 사람이 맨정신으로 그걸 어떻게 버텨!”
“버텨, 버텨. 다 할 수 있어. 저기 봐. 훌륭하게 버티셨잖아.”
저게? 넋이⋯⋯. 아니, 영혼이 사라졌는데 이 새끼야?
“괜찮으세요, 장로님?”
윤종이 다가가 장문인의 상태를 살폈다. 그러자 초점이 사라졌던 현종의 눈에 희미하게 빛이 돌아왔다.
“윤종아⋯⋯.”
“예, 장문인! 접니다! 저 윤종입니다! 정신이 좀 드십니까?”
“⋯⋯문적(門籍).”
“예?”
“⋯⋯저 새끼 문적 파서 쫓아내.”
“⋯⋯.”
“⋯⋯썩을.”
현종의 몸이 기어이 옆으로 털썩 넘어갔다.
“으아아! 장문이이이인!”
“장로님! 장로님, 정신 차리십시오!”
“이 미친놈아 뭘 하면 내공 익히다가 사람이 기절을 하냐!”
“의약당! 의약당으로 모셔라, 어서!”
난장판이 된 주변을 멀뚱히 보던 청명이 혀를 차 댔다.
“쯧쯧. 이리 나약해서야.”
뭐, 그래도 이제 곧 나약하지 않게 될 테니까 괜찮지.
청명은 기지개를 쭉 켰다.
하지만 이 순간에는 그조차도 알지 못했다.
그가 저지른 이 일이 화산에 어떠한 태풍을 몰고 올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