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Ranker's Comeback RAW novel - Chapter 190
◈ 190화
거대한 문을 밀고 들어서니 보이는 건 사방이 거울로 둘러싸인 특이한 방이었다.
‘천장과 바닥까지…… 역시 거울방이구나.’
알페온의 지하 수로 14층.
말하자면 ‘안전지대’인 15층을 앞두고 존재하는 마지막 층간보스 방일 것이다.
가능하면 피하고 싶었고,
만약 에일과 강서준 단둘이었다면 결코 도전조차 해 보지 못했을 곳.
서서히 닫히는 석문을 바라보며 강서준은 나지막이 침을 삼켰다.
‘괜찮을 거야. 호크 알론은 내 생각보다 훨씬 강하니까.’
호크 알론도 약간 긴장한 눈치로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검을 앞으로 빼어 들며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모두 내 곁에서 떨어지지 마라.”
주변의 거울이 점차 흑색으로 물들면서 이상한 BGM이 내리깔리기 시작한 건 그때였다.
이건 ‘녀석’이 나타난다는 징조.
그리고 강서준은 호크 알론이 말한 대로 그의 곁에서 떨어지지 않는다는 건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이놈은 그런 놈이니까.’
[‘14층’의 층간 보스 몬스터 ‘미러 이미지(A)’가 등장했습니다.]하지만 메시지 이후로 그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몬스터는 없었다. 그저 거울의 양면이 새카맣게 물들 뿐.
호크 알론은 경계를 늦추질 않았다.
물론 거울이었던 바닥이 그들의 몸을 삼켜 버리는 건 부득이한 일이겠지만.
“이런……!”
창졸간에 아래로 삼켜진 일행은 거울 속을 부유했다. 그리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종전과 같았지만 다른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강서준은 고개를 들어 천장을 보았다.
그곳엔 호크 알론이 혼자서 검을 쥔 채 한 몬스터를 마주하고 있었다.
형태는 마치 검은색 연기로 이루어진 인간 같기도 했다.
“에일! 루디!”
천장 속 거울에 갇힌 호크 알론의 외마디 외침을 뒤로하고, 강서준은 눈앞에 점차 형상을 갖추는 몬스터를 볼 수 있었다.
A급 몬스터 ‘미러 이미지.’
“으억?!”
겁에 질려 뒤로 물러나던 에일은 순식간에 벽면의 거울에 잡아먹혔다.
그는 금세 왼쪽 거울 벽면 속에 갇혀 버렸다.
“……하, 결국 이리됐구나.”
이놈의 특징은 거울 속으로 플레이어를 끌어당겨, 그 팀을 붕괴시키는 데에 있다.
여러 명이 들어가면 각자의 거울 속에서 보스 몬스터와 홀로 싸워야 하는 귀찮은 특징을 가진 놈.
결국 이놈을 쓰러트릴 방법은 하나다.
‘누군가가 거울을 부수고 구하러 오길 기다리거나, 직접 몬스터를 때려잡아야겠지.’
다만 한 놈이 여러 개로 분열되는 만큼 그 능력치도 하향된다.
즉 레벨만 350에 달하는 미러 이미지는 세 개로 분할된 만큼 약해져 있었다.
‘물론 그조차 내가 이길 상대는 못 되겠지만…….’
강서준은 천장에서 어느덧 미러 이미지를 향해 검을 휘두르는 호크 알론을 응시했다.
“……어떻게든 살아만 있으면 되겠지.”
호크 알론이 구하러 올 테니까.
***
그리고 욕지거리를 내뱉는다.
‘빌어먹을…….’
호흡을 거칠게 내뱉으며 벽면의 거울을 박찼다. 그를 쫓아서 다가오는 건 한 마리의 데스 구울.
놈의 목을 베고 심장을 관통하니 겨우 데스 구울은 바닥에 축 늘어졌다.
하지만 끝은 아니었다.
쓰러트린 미러 이미지는 붕괴되더라도 그보다 더욱 강력한 몬스터로 재탄생할 뿐이니까.
강서준은 데스 구울이 있던 자리로 새로 모습을 드러낸 데스 스켈레톤을 확인했다.
아마 저놈은 3층 몬스터다.
“후우…… 후우!”
다시 호흡을 정돈하며 데스 스켈레톤으로부터 거리를 벌렸다. 녀석이 뼈다귀를 집어 던졌지만 애써 피해 낼 수 있었다.
그리고 천장을 바라봤다.
‘앞으로 몇 층이나 남았지?’
거울방의 보스 몬스터의 패턴은 지극히 단순하다. 그저 1층부터 14층의 몬스터를 하나씩 소환해 내는 것.
층마다 소환되는 몬스터를 모두 처치해야 겨우 본체인 ‘미러 이미지’를 공략할 기회가 생긴다.
‘……이제 13층이구나.’
그리고 호크 알론은 막 13층의 몬스터를 향해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머지않아 14층의 본체까지 도달할 것 같았다.
문제는.
‘그때까지 내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짧게 호흡을 끊은 강서준은 데스 스켈레톤이 갈비뼈를 뽑아내는 걸 보고 말았다.
기왕이면 저층의 몬스터를 상대로 시간을 끌고 싶었지만, 갈비뼈는 조금 위험하다.
크아아앗!
괴성을 지르는 놈에게 접근하자마자 강서준은 놈의 다리 관절을 베어 버렸다.
갈비뼈를 뽑다가 고꾸라진 데스 스켈레톤!
강서준은 공격을 잇기보다 놈의 반경에서 멀어지는 쪽을 선택했다.
‘갈비뼈는 폭탄이니까.’
곧 커다란 폭발이 일어났다.
콰아아아아앙!
본인의 몸을 희생하여 ‘데스아웃’을 일으키는 3층의 데스 스켈레톤.
불행인지 다행인지, 방금 자폭 대미지로 놈은 소멸하고 말았다.
그리고 바로 누더기 천을 머리에 뒤집어쓴 ‘데스 스펙터’가 모습을 드러냈다.
‘……으으.’
강서준은 일단 귀부터 막아 냈다.
데스 스펙터는 ‘소음’으로 ‘데스아웃’을 유발하는 몬스터.
놈의 누더기 천이 세차게 떨리다 그 흔들림이 고요해질 즈음에야, 강서준은 손을 귀에서 뗄 수 있었다.
또한 귀를 막는 사이 천장이 요란하게 진동을 일으키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드디어 기다리던 보스전의 징조였다.
“빨리도 해낸다. 진짜…….”
그래도 호크 알론 덕분인지 눈앞의 데스 스펙터는 반쯤 희미해졌고, 옆면으로 빨려 들어갔던 에일도 돌연 이쪽으로 돌아왔다.
“으아앗!”
대체 무슨 꼴을 당해 온 걸까.
전신이 넝마가 된 에일은 피를 토하면서 강서준의 옆에 쓰러졌다.
해서 강서준은 미간을 구기며 일단 그의 몸에 포션을 부어 줬다. 그쯤엔 강서준의 거울방에 있던 데스 스펙터도 완전히 소멸한 뒤였다.
예상대로였다.
미러 이미지…… 놈도 결국 분할한 채로 호크 알론을 이길 수 없다고 깨달은 모양이다.
강서준은 천장을 올려다봤다.
호크 알론과 똑같이 생겼으면서 색깔은 새카만 형태의 ‘미러 이미지’가 한창 전투를 펼치고 있었다.
“허억…… 여긴.”
“정신이 들어요?”
“내가 어떻게 된 거지?”
포션 덕에 그나마 회복된 에일은 강서준을 올려다봤다. 그리고 천장을 보더니 저도 모르게 입을 쩍 벌리고 말았다.
호크 알론이 한 마리의 보스 몬스터를 상대로 보여 주는 무시무시한 검술!
멀리서 봤을 때는 그저 화려한 춤과도 비슷한 검술에 절로 감탄이 흘러나왔다.
미러 이미지도 속수무책이었다.
역시 난놈은 난놈이다.
키잇! 키이잇!
하지만 그때였다.
이미지의 입에서 들려오는 반복적인 울음. 그 소리에 집중하던 강서준은 서서히 녀석의 몸이 이쪽으로 내려오고 있다는 걸 볼 수 있었다.
“당장 놈을 죽여야 해요!”
간절한 목소리가 닿은 걸까. 호크 알론의 매서운 공격은 녀석의 목을 잘라 냈다.
피가 분수처럼 솟구치며 거울을 핏빛으로 물들이는 순간이었다.
츠츠츳!
하지만 이미 늦었다.
창졸간에 바닥으로 스며든 녀석은 잃어버린 목을 제외하고, 강서준과 에일의 앞에 섰으니까.
아연실색하여 잠시 숨 쉬는 것조차 잊었는지 꺽꺽대는 에일을 뒤로하고, 강서준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돌겠군…….”
미러 이미지는 머리가 없어졌음에도 막강한 보스 몬스터의 기세를 흘려 대고 있었다.
바라만 봐도 온몸이 굳고 당장이라도 심장이 멈춰 버릴 것만 같은 공포가 떠올랐다.
‘호크 알론은…….’
슬쩍 위를 올려다보니 호크 알론이 바닥을 향해 무수하게 공격을 쏟아붓는 게 보였다.
당황한 그는 막대한 공격력을 바탕으로 서서히 거울을 깨부수고 이쪽으로 내려올 기세였다.
하지만.
“……기다려 주진 않겠지?”
키이이이잇!
강서준은 창졸간에 접근한 미러 이미지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분명 놈의 심장을 노렸지만 검이 스친 곳은 그저 허공이다.
목덜미가 스산해졌다.
채애애앵!
빠르게 몸을 돌려 공격을 막아 냈지만 그 충격에 튕겨 나가 한쪽 거울에 부딪쳤다.
일격에 피가 위로 역류했다.
“크헉!”
역시 본체가 다르긴 다르다.
강서준은 쓰러질 것만 같은 의식을 다잡고 애써 몸을 일으켰다.
미러 이미지가 에일을 향해 휘적휘적 다가가는 게 보였기 때문이다.
“정신 차려요!”
아마 녀석이 아래로 내려온 이유는 빤했다. 그나마 약한 에일과 루디를 흡수해서 체력을 회복할 속셈이겠지.
츠츠츳!
하지만 강서준의 외침에도 퍼뜩 정신을 차리지 못한 에일은, 결국 미러 이미지의 검에 의해 한쪽 팔이 잘려 나가고 말았다.
스거어억!
괴로움에 울부짖는 에일을 일별하며, 강서준은 이를 악물고 녀석의 뒤를 공략했다.
놈이 일단 옆으로 물러났다.
“또 옵니다!”
금방이라도 그를 죽일 듯이 달려오는 ‘미러 이미지’와, 절박한 얼굴로 바닥을 향해 공격을 퍼붓는 ‘호크 알론’.
동시에 강서준은 천장의 균열도 확인했다. 호크 알론의 검은 머지않아 거울을 부술 것이다.
‘기다리다간 늦어.’
호크 알론이 아무리 빨라도 녀석이 코앞에서 휘두르는 검만큼이나 빠르진 않을 것이다. 결국 강서준은 이를 악물고 자세를 잡아야 했다.
‘……막을 수 있을까?’
뒤쪽에서 들려오는 에일의 울음 섞인 비명과, 지척에 다다른 미러 이미지의 살기와 압박감.
천장에서 들려오는 커다란 폭음.
레벨이 고작 302밖에 안 되는 루디의 몸은 본능적으로 떨었고, 그만큼 검극은 세차게 흔들렸다.
죽음이 목덜미를 물어뜯는 기분이다.
강서준은 이를 악물었다.
‘이딴 곳에서 죽을 것 같냐.’
돌연 거칠게 뛰던 심장이 착 가라앉았다. 본능적으로 떨어 대던 손도 금세 안정됐다.
뭐라 형용할 수 없었다.
소음이 멀어지고 숨은 느려졌으며, 오히려 세상에 대한 집중력은 더욱 강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걷잡을 수 없는 강인한 의지에 의해, ‘플레이어 강서준의 봉인’이 일시적으로 해제됩니다.] [플레이어 ‘강서준’이 스킬, ‘집중(S)’을 발동합니다.] [!] [‘차원 서고의 주인’의 특수 조건을 만족시켰습니다.] [당신은 향후 어떤 상황에서도 ‘정체성’을 잃지 않습니다.] [전직 퀘스트로 인하여 잠금된 모든 봉인이 해제됩니다.]달 던전, 재앙의 유성에서 나도석이 그러했듯 강서준은 의지로 시스템의 제한을 풀어낸 것이다.
‘그렇다면…….’
아직 배움도 부족하고 그 위력은 미천하겠지만, 당장 그가 사용할 수 있는 최적의 기술이 있었다.
[스킬, ‘태산 가르기(S)’를 발동합니다.]순간적으로 주입한 마력은 노도와 같은 기세로 빠르게 다가오는 미러 이미지를 향해 휘둘러졌다.
별안간 발동한 ‘필사의 참격’.
콰아아앙!
뒤로 튕겨 나가긴 했지만 미러 이미지도 대미지가 있었는지 괴성을 지르며 뒤로 나자빠졌다.
처음으로 먹인 유효타!
하지만 놈의 레벨은 본래 강서준의 능력이 복구됐다고 해도 이길 수 없는 수준이었다.
녀석은 바로 자세를 잡아 강서준을 향해 달려들었다. 강서준도 피할 수 없음을 직감하고 검을 그쪽으로 겨눴다.
그때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호크 알론의 기술을 사용해 보자. 태산 가르기를 강화하는 거야.’
생각은 짧았고 행동은 더 빨랐다.
강서준은 다가오는 놈을 향해 초상비를 발동시켰고, 동시에 검에 마력을 흘리며 진동시켰다.
농도 짙은 집중력은 시간을 길게 만드는 효과라도 있었을까. 찰나의 틈에 이어진 많은 생각은 짧은 시간에도 스킬 이해도를 대폭 늘려 줬다.
강서준의 검에서도 한 마리의 맹수가 점차 그 울음을 토해 내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였다.
[스킬, ‘맹수의 울음(S)’을 습득했습니다.] [스킬, ‘맹수의 울음(S)’을 발동합니다.]콰아아아앙!
그리고 들려온 폭음은 공교롭게도 강서준과 대치 중인 미러 이미지의 머리 위에서 들려왔다.
무너지는 천장과 거기서부터 묵직한 마력을 검에 담은 채로 아래로 떨어지는 한 남자.
호크 알론은 세상을 무너뜨릴 기세로 미러 이미지를 향해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키잇! 키이잇?
머리 위로 떨어지는 묵직한 공격과 정면에서 접근하는 맹수 같은 강서준의 공격.
당황한 녀석은 저도 모르게 공격력이 더 강한 호크 알론 쪽으로 몸을 비틀었다.
물론, 그건 실수였다.
강서준의 스킬과 루디의 스킬이 한데 뭉쳐 미러 이미지의 아래에 있는 거울을 확인했다.
놈은 또 도주를 계획하고 있었다.
해서 강서준은 아예 놈이 이동할 방향으로 공격을 퍼부었다.
콰지직!
바닥에 약간의 균열이 생겨나고 그 균열은 이윽고 미러 이미지에게 틈을 만들어 냈다.
그 틈은 곧 약점이 됐다.
쿠우우우웅!
떨어져 내린 호크 알론의 검은 정확하게 틈을 잘라 내고, 아래의 거울까지 부술 기세로 땅에 꽂혀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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