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Ranker's Comeback RAW novel - Chapter 40
◈ 40화
강서준이 의식을 되찾은 건, 만 이틀이 지난 뒤였다.
[칭호, ‘도깨비의 왕’을 습득했습니다.] [도깨비들이 당신에게 머리를 조아립니다.]힘겹게 몸을 일으킨 강서준은 아릿하게 느껴지는 통증에 미간을 구겼다. 지끈거리는 두통 뒤엔 전신을 두드리는 근육통이 뒤따랐다.
“흐음…….”
하지만 통증이 있다는 건 그가 아직 살아 있다는 증거였다. 강서준은 한숨과 함께 약간의 통증을 밀어냈다.
마지막 기억은 단연 방황하는 영혼이 제 갈 길을 잃고 폭주하려던 장면.
사방에서 울리던 귀곡성과 시시각각 떨어지던 에너지 바가 기억났다. 해서 강서준은 최후의 도박을 했던 것이다.
그 결과는…….
“왕이시여! 정신이 드십니까!”
강서준은 자신의 앞에서 무릎을 꿇고 물수건을 쥔 채로 흥분하는 한 마리의 도깨비를 볼 수 있었다.
달린 뿔만 세 개.
그 크기가 손 두 뼘짜리 인형처럼 작았다. 언뜻 앙증맞게 생기기도 하여 가만히 있었다면 인형이라고 착각했을지도 모를 생김새였다.
그나저나 이놈은.
‘……삼깨비잖아?’
이 던전의 보스이자, 한때는 C급의 개체로 성장해서 무지막지한 위압감을 보여 줬던 몬스터.
던전을 집어삼키려고 할 정도로 거대해졌던 모습을 떠올리던 강서준은 눈앞에서 물수건을 든 채로 부들부들 떠는 도깨비를 응시했다.
갭이 커도 너무 크지 않은가.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그는 시야의 한쪽에 자리한 문장을 읽을 수 있었다. [도깨비의 왕]이라는 생소한 칭호를 습득한 내역이었다.
단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는 칭호였다.
“어?”
그때, 다행히 상황을 알려 줄 만한 사람이 한쪽에서 나타났다. 인기척을 따라 고개를 돌리니 그녀가 웃고 있었다.
“……최하나 씨.”
“일어나셨어요?‘
고개를 끄덕인 강서준은 라이칸을 경계하며 조심스레 물었다.
“어떻게 된 일이죠?”
“……이틀간 많은 일이 있었어요.”
“이틀요?”
“네. 서준 씨는 꼬박 이틀을 주무셨거든요.”
최하나는 흔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구태여 쓸모없는 정보는 배제한 핵심적인 내용 위주의 브리핑.
군더더기 없이 이틀간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우선 눈앞의 라이칸이 이틀간 강서준을 간호하며 밤잠을 설친 터무니없는 소식부터 말이다.
최하나는 쓰게 웃으면서 말했다.
“그러고 보니 이 던전에 국정원이 타고 있었어요.”
“국정원요?”
“아크에서 왔더라고요.”
조금 놀라운 이야기였다.
난장판이 된 서울과 온갖 곳에서 활개를 치는 컴퍼니를 보면 현 한국은 무정부 상태나 다름없는 줄 알았는데.
정부가 아직 살아 있는 건가?
하기야 4천 년의 유구한 역사를 가진 민족이었다. 고작 게임 하나 때문에 무너질 정도로 가볍진 않겠지.
‘원래 대한민국은 게임강국이기도 했고.’
유난히 드림 사이드의 플레이어를 다량 보유한 대한민국은 전 세계 어느 곳보다 상황이 좋아야 정상일 것이다.
플레이어가 많을수록 던전에 대응할 전사는 늘어나는 셈이니까.
‘당장 천외천의 반절은 한국인이었으니 말 다 했지.’
그러고 보니, 지상수는 어디 갔지?
강서준은 문득 보이지 않는 지상수를 찾으면서 물었다.
“상수는 아크와 협상하러 갔어요.”
“……무슨 협상요?”
“아무래도 아크의 상황이 많이 어렵나 봐요. 상수에게서 급하게 물건을 구하려는 걸 보면.”
들어 보니 아크는 리자드맨 때문에 풍전등화에 놓인 상태라고 했다. 육로가 모조리 끊겨 당장 굶어 죽는 사람들도 늘어나는 실정인 것이다.
강서준은 미간을 구겼다.
‘리자드맨이라…….’
최하나는 부연설명을 해 줬다.
“오픈 당일, 광화문을 점령한 리자드맨의 우물을 봤어요. 한 번도 클리어되질 못했다면 지금쯤 꽤 높은 던전이 되었을 거예요.”
“군단을 이뤘으면 벌써 C급은 넘었겠네요.”
“그래서 더더욱 문제죠. 아크엔 아직 C급 던전을 공략할 플레이어가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최하나는 지그시 강서준을 바라봤다. 이에 괜히 멋쩍어진 강서준은 얼굴을 긁으면서 물었다.
“제 얼굴에 뭐 묻었어요?”
“아뇨.”
그 뒤로도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경매장에서 우연히 발견한 반주역 생존자 ‘공지원’에 대한 이야기. 그를 포함한 수많은 인간 노예들의 소식도 들을 수 있었다.
“형사님도 함께 아크로 향했다고요?”
“네. 지원 씨가 포션으로도 회복시키기 어려운 상태였거든요.”
해서 아직 ‘의사’가 있는 아크로 향한 것이다. 최소한 생명을 유지시키는 수술 뒤에, 회복 증세가 보이면 ‘HP포션 치료’를 병행할 예정이었다.
“떠난 지 이틀이 되었으니 슬슬 돌아올 거예요.”
한편 공지원을 제외한 인간 노예들은 여전히 던전에 남아 있었다. 그들은 영혼이 돌아오지 않은 상태일 뿐이라, 아크로 돌아간들 치료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강서준은 라이칸을 돌아봤다.
“왕이시여. 하달하십시오.”
잠시 미간을 좁힌 그가 물었다.
“……아이들의 영혼은 소멸했어?”
“아닙니다. 왕께서 원하시는 영혼은 무사히 보전되었습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치열한 전투 속에서 아이들의 영혼도 무의미하게 소모됐을 줄 알았는데. 온전한 상태를 유지한 것이다.
“그럼 아이들의 영혼을 되돌릴 수 있을까?”
“……그건 불가능합니다.”
난색을 표하는 라이칸을 내려다보며 강서준은 미간을 구겼다. 분명히 도깨비감투까지 그의 머리에 씌워 줬던 게 기억이 났으니까.
당장 그가 죽지 않았고.
최하나부터 다른 사람들이 모두 멀쩡한 걸 보면 라이칸이 영혼을 완전히 제어했다는 증거인데.
어째서 불가능하다는 걸까.
“우선 도깨비감투는 감히 저의 것이 아닙니다.”
“뭐?”
“왕의 목숨이 다하는 그 순간까지 도깨비감투는 그저 왕의 것입니다.”
“……게임에선 그런 설정은 없었는데.”
혀를 찬 강서준은 한숨을 가볍게 뱉었다. 하기야 게임에 없는 걸로 치면 ‘삼깨비 라이칸’의 존재부터 말이 안 됐다.
강서준은 새삼스럽지만 놈의 이름표를 확인했다.
몬스터라면 응당 푸른색부터 붉은색으로 구분되어야 할 이름이 마치 플레이어처럼 ‘하얀색’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또한 도깨비감투에 뒤섞인 수많은 영혼 중 저들의 영혼만 가려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건 강서준이 인간이기에 벌어진 문제였다. 본래 영혼을 다루는 것이 종족 특성인 도깨비라면 전혀 곤란한 일이 없었을 테지만, 인간인 그가 영혼을 쉽게 다룰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러면 네가 해. 도깨비감투를 빌려줄 테니까.”
“그런 영광을…… 하지만 왕이시여. 저 또한 영혼을 다룰 수 없습니다.”
라이칸의 경우는 폭주하는 영혼을 잠재우느라 모든 힘을 잃어버린 상태였다. 느껴지는 힘의 수준은 이젠 ‘새끼도깨비’에 불과했다.
강서준은 약간 신경질적인 목소리를 냈다.
“그래서 방법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라이칸은 바짝 긴장하며 답했다.
“왕의 위엄을 더욱 갖추시면 됩니다.”
“왕의 위엄?”
그때였다.
“그거 제가 알아요.”
강서준의 의문에 대한 답은 전혀 다른 쪽에서 들을 수 있었다. 소리가 들린 쪽을 바라보니 지상수가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도깨비의 뿔이 필요한 거예요. 도깨비는 영혼을 뿔로 조종하는 걸로 알고 있거든요.”
강서준은 다시 만난 그를 반기며 물었다.
“일은 잘됐어?”
“껌이죠. 뜯어낼 만큼 뜯어냈습니다.”
“……뜯어내?”
“그보다 이 문제는 제가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도깨비의 뿔, 마침 제가 그걸 소재로 한 아이템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거든요.”
지상수는 으스대며 말했다.
“국정원의 공식 협조 요청이 있었어요. 이곳에서 그다지 떨어지지 않은 위치에 아크의 플레이어 팀이 조난당했다더라고요.”
“갑자기?”
“더 들어 보세요. 조난당한 팀장은 김강렬 대위라는 군인이에요. 이번에 버뮤다 구역이란 곳을 탐사하러 떠났다가 실종이 됐다나 봐요.”
강서준은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버뮤다 구역?”
“네. 서울엔 던전 이외로 사람들이 실종하는 알 수 없는 구역이 생겼거든요. 드림 사이드 1에서는 없던 종류죠.”
“……드림 사이드 2 고유의 콘텐츠야?”
“모르죠. 저도 직접 경험해 보진 못했으니.”
지상수는 어깨를 으쓱이며 눈을 빛냈다. 강서준은 본능적으로 이 다음에 나올 말이 핵심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중요한 건 김강렬 대위가 마지막으로 보내온 문자예요. 그는 실종 직전, 아크로 이런 문자를 남겼다고 해요.”
「위험, 고렙, 도깨비보주……」
그리고 그 문자의 뜻은 하나로 귀결될 수 있었다.
지상수는 씨익 웃으면서 말했다.
“버뮤다 구역은 도깨비랑 관련된 곳인 겁니다.”
***
스슥…… 스슥.
어두운 공간, 옹기종기 모인 사람들이 이었다. 그들은 바닥을 스치는 기묘한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숨을 죽였다.
스스슥…….
조금은 멀어진 소리.
사람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있었다. 깨진 안경을 고쳐 쓴 누군가가 살짝 고개만 내밀어 동태를 살피더니 말했다.
“대위님, 이젠 어떡하죠?”
“…….”
“이대로면 우린 모두 죽을 거예요.”
그의 말에 일행은 한껏 몸을 떨었다. 아무도 그 말에 부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김강렬 대위는 한참 침묵을 유지했다.
“대위님, 시간이 없어요. 잠시 숨을 수는 있겠지만 놈들의 숫자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니까요?”
그때, 다시 바닥을 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일제히 입을 다문 일행은 눈만 껌뻑였다. 그들의 주변으로 기어서 다가온 무언가는 날카로운 쇳소리를 내고 있었다.
“크르르…….”
정확히 사람들의 머리 위였다. 내뱉어진 날숨엔 오랫동안 방치된 음식물 쓰레기 냄새가 났지만, 아무도 움직일 수 없었다.
그저 손으로 입을 막고 내뱉어질 숨을 참을 뿐.
스스슷…….
……스슷.
재차 멀어지는 소리.
참았던 숨을 낮게 내뱉으며 사람들은 새파랗게 질린 안색으로 김강렬을 바라봤다.
한참을 고민을 잇던 김강렬은 자신만을 바라보는 그의 대원들을 보면서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C급 몬스터 ‘리자드 장군’이야. 천부적인 전투 재능으로 어릴 적부터 사냥에 능하고, 신묘한 검술을 보유해서 여타 다른 몬스터와 비교를 불허하는 엘리트 몬스터지.”
“……네?”
“방금 여길 지나간 몬스터의 제원이야.”
대원들의 얼굴은 죽은 안색으로 입술을 잘게 깨물었다. 느낌으로도 알고 있었다. 종전부터 등장하는 몬스터들의 행렬은 모두 그들이 감히 상대조차 할 수 없는 막강한 수준이라는 것을.
하지만 그 존재가 아크에서도 ‘소재앙’으로 불리는 그놈이다.
그놈 때문에 죽어 나간 동료가 몇이던가. C급 던전 ‘리자드맨의 우물’이 공략은커녕 생존조차 불가한 지역으로 판단되는 이유 중 하나였다.
하지만 김강렬은 턱을 손으로 짚으며 말했다.
“이상해.”
“네?”
“이곳까지 오는 동안 리자드맨의 흔적은 없었잖아. 게다가 이 근처에 던전이 있었나?”
“하지만 대위님. 분명히 이곳엔 몬스터가 있습니다.”
김강렬은 어둠 속에서 눈을 빛내며 말했다.
“그게 이상하다는 거야. 이곳에 나타난 몬스터는 리자드맨부터 오크, 고블린…… 너무 다양하단 말이지.”
제아무리 자유분방하던 드림 사이드라고 해도 이처럼 생태계가 복합적으로 뭉친 공간은 없었다. 김강렬이 의문을 품은 내용은 그것이었다.
“게다가 리자드 장군이 어떻게 바깥을 나돌아 다녀.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나지 않고서는…….”
C급 개체가 현시점에서 바깥을 나돌아 다닌다? 김강렬은 그것만큼 비현실적인 얘기는 없다고 생각했다.
리자드맨의 우물도 현시점에선 아직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날 징조조차 없었다. 누군가가 인위적으로 던전 브레이크를 가속했다면 모를까.
김강렬은 대원에게 넌지시 물었다.
“그 아이템 이름이 도깨비보주라고?”
“네. 1에서 본 적이 있어요.”
“그것도 어느 정도 관련이 있겠지? 몬스터가 본인의 특성과 관련 없는 장비 아이템을 들고 다니는 건 흔한 케이스가 아니니까.”
다시 곰곰이 고민을 이어 나가던 김강렬. 그의 대원 중 한 명이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연 건 그때였다.
“……대위님, 지금 그게 중요해요?”
“응?”
“여길 벗어나질 못하면 우린 죽은 목숨이에요. 대위님이야 워낙 괴짜시니 이해 못 하시겠지만, 전 여기서 죽으면 안 돼요. 돌아가기로 약속했단 말이에요.”
김강렬은 눈을 가늘게 뜨면서 말했다.
“사망 플래그…….”
“네?”
“걱정 마. 돌아갈 거야. 아니, 돌아가야만 해.”
김강렬은 어둠 속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키면서 말했다. 그의 주변엔 안 그래도 어두운 공간을 더욱 으스스하게 만드는 각종 장치들이 있었다.
그들이 숨은 곳은 그런 곳이었다.
“여긴 함정이야. 아무도 이곳으로 오지 못하게 막아야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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