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star chef RAW novel - Chapter 105
105
Chapter26 – 필상 & 다빈 듀오 (1)
그 뒤로 며칠이란 시간이 더 흘렀고, 그사이 이런저런 일들이 연달아 있었다. 우선 존 스튜던트를 대상으로 한 ‘레토르트 히든 캠’ 영상의 조회 수가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로 상승하는 중이었다.
게시 이후로 고작 삼사일 남짓한 시간이 흘렀음에도 벌써 천이백만 뷰를 돌파한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 와, 진짜 미쳤다. 레토르트 식품으로도 저 정도로 고급스러운 요리를 만들 수 있는 거였구나. ] [ 저 정도면 그냥 한국 레토르트 식품 자체가 미국 레토르트 식품에 비해 질적으로 월등히 뛰어난 거 아닌가? ] [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아시아권 레토르트 식품의 품질이 미국 식품들에 비해 뛰어난 건 사실이야. 뿐만 아니라 미국 식품에 비해 조금 낫다뿐이지, 그래도 레트로트는 어쩔 수 없는 레토르트일 뿐이고. ] [ 그나저나 영상에 나온 ‘레드 라벨 소주’와 ‘메론바’는 대체 어디에서 구입할 수 있는 건데? 오늘 온종일 마켓 돌아다녀 봤는데 전부 품절이라던데, 정말 너무 맛있어 보여. 누구든 제발 알려줘···. ] [ 아마 당분간은 힘들 거야. 보니까 두 제품 ‘리셀’(*Resell)하는 사람들도 수두룩한 것 같던데? 장담하는데 열기가 잠잠해질 때까지는 구하기가 쉽지 않을 거야. ] [ 나 메론바 먹어봤는데, 정말 천국의 맛이야. 마치 메론과 아이스크림이 태초에는 하나의 존재였는데, 인간의 욕심 탓에 분리됐다가 다시 하나로 합쳐진 게 아닐까 싶은 의문이 들 정도로 황홀한 맛이었다고 해야 하려나···? ]필상이 분장 거울 앞을 꿰차고 앉은 채, 휴대폰 화면 위로 떠 있는 댓글들을 읽어내리는 데 여념이 없던 찰나였다. 어느새 필상의 뒤편에 바짝 다가온 멜리가, 분장 거울에 비친 필상의 얼굴을 바라보고는 사뭇 과장된 투로 말문을 열었다.
“필상, 오늘 정말 멋진데요?”
“공감하는 바에요.”
“잠깐 옆에 앉아도 되죠?”
“얼마든지요.”
이내 멜리가 바로 곁에 놓여있던 빈 의자를 꿰차고 앉으며 재차 말문을 열었다.
“떨리지는 않아요? 이 정도 규모의 TV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건 처음이잖아요?”
“인생이 많이 바뀌었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는데 다행히 떨리거나 하진 않네요.”
다름 아니라, 어느덧 ‘투데이 쇼’(Today Show)의 녹화 당일. 그것도 녹화 시작까지 불과 한 시간도 채 남지 않은 시점에 접어들어 있던 것이다. 지금은 방송국 내 메이크업 룸에서, 간단한 머리 손질과 메이크업을 받는 중이었고 말이다.
이내 멜리가 다리를 꼬고 앉으며, 재차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이번 히든 캠 영상의 여파가 정말 대단하던데요? 채널에서 기록 중인 조회 수야 그렇다 치더라도, 외부 플랫폼에서도 몹시 빠른 속도로 퍼져나가고 있거든요. 더군다나 ‘*코리안 레토르트 릴레이’(*Korean Retort Relay)라는 열풍까지 만들어내셨고요.”
“그러게요. 사실 반응이 꽤 좋으리라고 예상하기야 했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이라곤 미처 예상치 못했었거든요.”
다름 아니라 여러 SNS플랫폼을 통해 히든 캠 촬영 당시 사용된 레토르트 식품을 구매하고 맛본 뒤, 이를 인증하는 게시물을 작성하는 놀이가 일종의 유행처럼 번져나가고 있던 것이다.
단연 일반인들뿐 아니라, 구독 인원수가 상상을 초월하는 전문 스트리머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가장 주목받고 있는 제품은 ‘레드 라벨 소주’와 ‘메론바’였고 말이다.
“그러고 보니, 이번 영상이 태평양 건너편에 위치한 필상의 자국. ‘한국’에서도 꽤 열렬한 반응을 얻어내고 있는 것 같던데요?”
“네. 맞아요. 관련 기사들이 쏟아지다시피 보도되더라고요. 제 근황을 다루기도 하고, 미국 내에서 거둔 사소한 성공들을 부풀려서 말해주기도 하고···.”
필상이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가려던 찰나였다. 멜리가 턱을 살짝 치켜들며, 의미심장한 투로 말을 건네왔다.
“어제저녁 무렵에, ‘메론바’를 제작∙유통 중인 한국 기업의 본사로부터 메일이 도착했어요.”
“메일이요?”
한차례 “네.” 하고 답해 보인 멜리가 입가에 은은한 미소를 머금은 채 덧붙였다.
“수취 가능한 주소를 말씀해 주신다면 ‘메론바’를 원하는 만큼 얼마든지 보내줄 용의가 있다던데요? 마케팅에 상당히 큰 도움이 되었다면서요.”
“설마 괘씸하게 메론바 몇 박스로 때우겠다는 거예요? 최소한 CF출연 제의쯤은 해줘야···.”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가려던 필상이 말을 멈춘 채, 멜리의 얼굴을 뚫어지라 바라보다가 마냥 조심스러운 투로 되물었다.
“설마?”
“빙고.”
손가락을 튕겨가며 답해 보인 멜리가 곧장 제 옆구리에 끼고 있던 두툼한 서류 봉투를 건네주었다. 필상은 서류 봉투를 받아들기 무섭게 곧장 그 내용물을 확인해보기 시작했고 말이다. 다름 아니라, 메론바의 제조사 측에서 보내온 CF 출연제안서와 더불어, 광고 내용이 기록된 콘티가 한 뭉텅이나 담겨있었다.
심각한 표정을 한 채 그 내용을 살펴보고 있던 필상이, 시선을 옮겨서는 멜리를 바라보며 되물었다.
“멜리. 저보고 메론 모양 옷을 입고, 양손에 메론바를 한 개씩 든 채로 게다리 춤을 추라는 것 같은데요?”
“그게 뭐 어때서요?”
“이건 못해요. 차라리 바지 위에 팬티를 입은 채로 일하는 게 백배는 나을 것 같네요. 정중히 거절해주세요.”
말을 마친 필상이 “아니면, 내용 수정을 요구해도 좋고요.”하고 덧붙이던 찰나, 대기실 너머에서 노크 소리와 더불어 투데이 쇼 스태프의 부름이 들려왔다.
“이제 슬슬 가봐야겠네요.”
필상이 대기실 밖으로 나서고자, 문고리를 가볍게 움켜쥐던 찰나였다. 여전히 자리를 꿰차고 앉아있던 멜리가 재차 필상을 불러세웠다.
“필상, 실은 좋은 소식이 한 가지 더 있어요.”
“뭔데요? 설마 소주 CF 관련 오퍼까지 들어온 건가요?”
“아뇨.”
“그럼?”
“축하해요.”
잠시 뜸을 들이던 멜리가 활짝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답했다.
“이번 ‘2014 라이징 셰프 어워즈’(2014 Rising Chef Awards)의 후보로 발탁되셨다네요.”
그 말에 필상이 제자리에 멈춰 서서는, 한참 동안 멜리의 얼굴을 뚫어지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마냥 멍한 얼굴을 한 채로.
*
스튜디오 안으로 무수히 많은 이들이 자리해 있었고, 분위기는 마냥 분주하기만 할 따름이었다. 스태프들은 바삐 움직이며 장비를 점검하는 중이었고, 꺼져있는 객석 등 탓에 정확히 확인할 수는 없으나 널찍한 객석이 꽉 차있음이 분명해 보였다.
한편, 그런 지금.
필상은 게스트를 위해 준비된 쇼파 위에 털썩 주저앉은 채, 넋을 놓고 멍하니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아니,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깊은 고민에 잠겨있을 수밖에 없었다. 다름 아니라, 메이크업 룸을 나서기 직전 멜리로부터 들은 바 있는 ‘희소식’ 때문이었다.
라이징 셰프 어워즈.
지금은 별세한 19세기 미국의 전설적인 요리사 ‘제임스 베어’가 설립한 *JBF’(*JAMES BEAR FOUNDATION:제임스 베어 재단)에서 주관하는 시상식에 수록된 상 중 하나로, 요식업계의 오스카상이라 불릴 정도로 권위 있고 뜻깊은 상이랄 수 있었다.
더군다나 자신이 수상 후보로 등재된 라이징 셰프 어워즈의 경우, 신규 파인다이닝 점포를 런칭한 지 3년이 되지 않은 신예 셰프들 중 가장 괄목할 만한 성장 및 강렬한 개성을 보여준 이에게 주어지는 영예로운 상이랄 수 있었고 말이다. 데뷔 이후 이렇다 할 기복이나 우여곡절 없이 꾸준히 성공 가도를 달려온 스타 셰프들의 경우, 필수적으로 지니고 있는 ‘영광의 증표’이자 ‘천재의 상징’이나 마찬가지다.
비록 수상후보로 등재되었다는 소식을 듣기 전까지는 아무런 생각도 없다지만, 지금은 이야기가 사뭇 달라졌다. 사람 마음이 으레 그렇듯, 눈앞에 어른대기 시작하자 욕심이 용암처럼 펄펄 끓어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필상이 그렇게 상념에 젖어들어 있던 찰나였다. 돌연 스튜디오 내 모든 조명이 *암전(*암전)되더니, 돌연 담당 PD 프레이디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장내에 울려 퍼졌다.
“곧장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내 스튜디오 뒤편에 부착된 스크린 화면 위로 지난번에 촬영한 ‘레토르트 히든 캠’ 영상이 재생되기 시작했고, 덕분에 장내 곳곳에서 잔잔한 웃음소리가 끊임없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관객들도, 그리고 히든 캠 영상을 몇 번이고 시청했을 스태프들도, 심지어 당사자인 존 스튜던트조차 연신 웃음을 흘려대고 있던 것이다.
반면 필상은 어둠 속에 딱딱한 표정을 감춰둔 채, 계속해서 고민을 이어나가고 있는 중이었다.
이윽고, 영상이 거의 끝맺어졌을 무렵. 필상이 촬영에 집중하기 위해 제 뺨을 가볍게 ‘톡, 톡.’ 두드려댔다. 이내 그 소리를 들은 존이 낮은 웃음을 흘려 보이고는 나직이 물음을 건네왔다.
“긴장되시나 보군요.”
“전혀요.”
“그럼?”
“자꾸 다른 생각이 들어서요.”
이내 존이 진중한 투로 말을 건네왔다.
“필상, 기분 나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아마 이런 기회가 쉽게 다시 찾아오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존 스튜던트의 투데이 쇼는 미국 전역에서 사랑받는 심야 토크 쇼에요. 자신을 알리고, 한 사람의 셀러브리티로서의 ‘캐릭터 성’을 굳힐 수 있는 기회의 공간이죠.”
“예, 알고 있습니다.”
“좋아요. 그럼 지금부터 녹화 도중 어떤 말을 해야, 어떤 제스쳐를 취해야, 어떤 태도를 유지해야 대중들의 이목을 조금이라도 더 잡아끌 수 있을지에 대해서만 고민하는 겁니다. 프로답게요. 나는 당신이 마음에 들어요.”
“고마워요.”
“진심입니다. 빈말을 할 바에 자살을 할 거예요. 그래서 말인데, 녹화 도중 당신에게 몇 번 정도 방송이 나간 뒤 손쉽게 화제의 중심에 설 수 있을 법한 ‘기회’를 드릴 거예요. 제 욕심을 채우고자 드리는 말이 아니에요. 필상이 게스트로 출연하는 이번 편의 흥행은 이미 보장되어 있으니까요.”
말을 마친 그가 의미심장한 투로 덧붙였다.
“그러니, 정신 단단히 차리고 제가 부여해드릴 기회를 잘 붙잡으셔야 할 겁니다. 존 스튜던트의 투데이 쇼를 거쳐 간 셀럽들이 큰 성공과 명예를 거두어들인 건 절대 우연이 아니에요.”
훨씬 더 큰 이목을 필요로 하는 상황이었다. 자신과 함께 수상후보로 등재된 신예 셰프들의 성과는 비슷할 터였다. 모두 자신의 파인다이닝에서 훌륭한 요리를 선보이고 있을 터였고, 또 파인다이닝은 연일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을 터였으니 말이다. 그들 중 최고라는 자격을 얻기 위해서는 더 큰 부와 명예, 그리고 대중들의 관심과 집중이 필요했다.
“이런 기회가 절실한 상황입니다.”
“그럼 붙잡으세요.”
그때, 인트로 영상이 종료되었고 연달아 지난 수년간 ‘투데이 쇼’의 오프닝 음악을 담당하고 있는 밴드의 화려하고 능숙한 합주가 이어지기 시작했다. 견고한 스윙을 지닌, 경쾌하기 그지없는 분위기의 재즈 음악이었다. 이윽고, 찢어지는 느낌의 심벌즈 소리를 끝으로 음악이 끝나던 찰나.
존 스튜던트가 한순간에 다른 사람이라도 된 것 마냥, 경쾌하고 밝은 투로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이미 많은 분들이 조금 전 송출된 인트로 무비를 한 번쯤은 시청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만큼 화제를 낳았던 영상이니까요.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카레이싱 챔피언 ‘보스턴 락’을 게스트로 모셨던 540화의 인트로 무비, ‘총알택시 히든 캠’보다 훨씬 더 재미있는 것 같군요.”
그의 프로페셔널함이 여실히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이내 필상 역시 자세를 고쳐앉고는 스스로에게 지속적으로 암시를 걸었다. 집중해야 한다고. 존의 말대로 쉽게 찾아오지 않는 기회이니만큼, 그가 던질 몇 가지 기회성 질문에 대해 꽤 그럴싸하거나 자극적인 답을 내놓아야만 한다고 말이다.
말을 마친 존이 고개를 돌려서는, 푹신한 쇼파에 편히 앉아있는 필상을 들여다보며 덧붙였다.
“그때도 교활한 제작진에게 속아 바보가 되어야 했죠. 카레이싱 챔피언 보스턴 락이 택시기사로 위장한 채, 저를 뒷좌석에 태우고는 시속 230km로 달려댔어요.”
“와우, 짜릿했겠는데요?”
“돌아가신 조부모님 얼굴이 아른거렸다고요. 만약 보스턴 락이 저보다 팔∙다리가 얇았더라면, 그 자리에서 곤죽이 될 때까지 얻어맞았을 겁니다. 진심이에요.”
말을 마친 존이 눈썹을 한 번 튕겨 보이고는 덧붙였다.
“하지만 다행히 제 ‘분노조절 장애’는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곧잘 조절되는 편이거든요. 덕분에 폭력 사건에 휘말리지 않을 수 있었죠. 선공을 가한 뒤 일방적으로 얻어맞는 멋없는 폭력 사건 말입니다.”
“저는 존보다 팔∙다리가 얇으니 더더욱 경각심을 가져야겠군요.”
그 말에 스튜디오 안으로 잔잔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지기를 잠시, 존이 재차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럼 오늘의 게스트를 정식적으로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빌리 반 코퍼레이션과 에이전시 계약을 체결한 최초의 셰프이자, 맨해튼에 위치한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파우스트의 오너 셰프입니다.”
말을 마친 그가 손에 쥔 큐 카드로 필상을 가리켜 보이며 우렁찬 투로 덧붙였다.
“크레이지 영 셰프, ‘필상’입니다!”
한차례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울려 퍼지기를 잠시, 존의 진행에 따라 본격적인 촬영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심야 토크 쇼의 진행방식이 으레 그렇듯, 존이 대본에 기재되어 있는. 혹은, 즉흥적인 질문을 건네면 필상이 약간의 과장과 위트가 섞인 대답을 늘어놓는 식이었다. 분위기는 마냥 화기애애했고, 두 사람은 몇 번이고 합을 맞춰본 것처럼 녹화를 물 흐르듯 유려하게 이어나갔다.
모두가 이번 편의 흥행 성공을 예측하고 있는 중이었다. 방청객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스태프들조차 이따금 소리 죽인 채로 웃음을 흘려댈 지경이었으니 말이다.
“다음 질문입니다. 혹시 셰프를 꿈꾸는 학생들이나, 후배 요리사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말씀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제가 감히 그런 조언을 해드릴 수 있을지는 모르겠군요. 주방에서 보낸 시간이 짧은 게 사실이니까요. 거창한 조언 대신, 요리에 대한 제 철학을 말씀드리는 정도는 얼마든지 가능할 것 같군요.”
“얼마든지요.”
이내 필상이 카메라 렌즈를 바라보며 진중한 투로 덧붙였다.
“바베큐를 요리할 때의 지켜야 할 법칙이 한 가지 있습니다. 요리사들은 이를 ‘로우&슬로우’(Low&slow) 법칙이라고 일컫곤 하죠. 많은 분께서 알고 계시겠지만, 바베큐는 낮은 온도에서 아주 오랜 시간을 들여 조리해야 해요.”
“그렇군요, 이유는요?”
“간단해요. 근육이 많은 부위는 온도가 조금만 높아져도 조직이 수축되며, 식감이 엉망진창으로 변해 버리기 때문이죠. 저는 제가 품은 열정의 온도나, 빠른 성취에 집착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바베큐를 요리하듯 느리더라도 상관없어요. 다만 꾸준히, 또 묵묵히 제 할 일을 할 겁니다.”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 보인 존이 재차 되물었다.
“명언이로군요. 좋습니다. 그럼, 요리에 도전할 때마다 연금술을 행하곤 하는 이들에게 몇 가지 팁을 나눠주자면요?”
“모든 요리를 120도에서 180도 사이에서 조리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대부분의 식재료가 당분을 지니고 있고, 최소한 120도 이상의 온도에서 그 당분의 맛이 극대화되곤 하죠. 단백질의 아미노산과 당분이 결합을 시작하는 온도이기도 하고요.”
“조금 더 쉽게 풀어서 말씀해주실 수는 없는 겁니까?”
말을 마친 존이 투덜대듯 “방금 꼭 셰프가 아니라, 과학자처럼 보였거든요.” 하고 덧붙였다. 이내 잠시 고민하듯, 미간을 살짝 찡그린 채 허공을 응시하고 있던 필상이 다시금 유려하게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쉽게 말씀드리자면 찌거나 삶는 요리 대신, 굽거나 튀기는 요리를 하란 뜻이에요. 튀김이야말로 가장 좋은 예시겠죠. 실패하기가 어려운 요리입니다. 어떤 재료를 튀기든, 중간 이상의 맛을 낼 수 있죠. 물론 그 영역을 넘어서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지만요.”
“몇 가지 팁을 더 주시자면요?”
“소금과 산, 그리고 지방의 균형을 맞춘 요리는 대부분 훌륭합니다. 이를테면 스테이크에 레몬즙을 뿌려 조리를 마무리하는 것처럼요. 이 정도만 기억하더라도 꽤 먹을 만한 요리를 만드는 데는 일절 부족함이 없을 겁니다. 대신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하는 영역도 분명히 존재하죠. 오믈렛을 만들거나, 육류를 적당히 구워낼 수 있는 능력은 반복 학습에 의해 완성되거든요.”
몇 번 고개를 주억거려 보인 존이 재차 말문을 열었다.
“좋아요, 갑자기 주부를 대상으로 한 쿠킹 클래스 프로그램으로 전락해 버린 것 같으니 황급히 화제를 전환해보도록 하죠.”
그리고는 제 얼굴을 살짝 들이밀며, 엷게 떨리는 투로 조심스레 물음을 건네왔다.
“필상이 빌리 반 코퍼레이션과 에이전시 계약을 체결하고 미국 내 활동을 시작한 이후로, 무수히 셰프들이 필상을 ‘쇼맨’이라고 비하했었죠?”
“예, 그렇습니다.”
“또 근래에 들어서는 그 표현 대신 ‘잡종 셰프’라고 비하하고 있고요. 그 표현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상당히 민감한 영역의 질문이었다. 하나, 필상은 지금의 질문이 존이 자신에게 부여해 준 ‘기회’라는 사실을 단박에 눈치챌 수 있었다. 이내 필상이 제 아랫입술을 한 번 핥아내고는, 재빨리 머릿속 계산기를 두드려대기 시작했다. 시청자 수 몇만 명짜리 방송과는, 차원이 다른 여파를 거두어들일 수 있는 곳이다. 돌아오지 않을 기회이니, 어떻게든 기회를 붙잡아야 한다.
반면 스튜디오 외곽에 선 채 마냥 흐뭇한 얼굴로 녹화를 지켜보고 있던 멜리의 반응은 사뭇 달랐다. 곧장 다급한 걸음으로 프레이디에게 다가서서는, 곧장 날이 바짝 선 날카로운 어투로 쏘아붙이듯 항의의 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프레이디, 지금 당장 중재해주세요. 대본에 없던 질문이잖아요?”
“하지만···.”
“더 이상 빌리 반의 아티스트가 투데이쇼의 게스트로 출연할 일은 없겠군요.”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맞닿기를 잠시. 한차례 후끈한 콧김을 뿜어가며 “알겠습니다.” 하고 답해 보인 프레이디가, 존에게 사인을 보내려던 찰나였다. 그렇게 꽤 오랜 시간 동안 침묵을 유지하고 있던 필상이, 한 치의 굴곡조차 없는 덤덤한 투로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뭐, 이해는 합니다.”
“그런데요?”
“한 가지 알아두셨으면 합니다.”
“말씀하시죠.”
이내 필상이 카메라 렌즈를 바라보며 덧붙였다.
“여러분의 레스토랑이 경영난에 허덕이는 건, 제가 누리고 있는 인기나 관심 탓이 아닐 겁니다.”
그 말에 희비가 교차했다. 멜리는 이럴 줄 알았다는 듯 제 머리를 쥐어 뜯어가며 “맙소사···.” 하고 중얼거렸으며, 방청객들은 박수갈채를. 개중 몇몇은 자리에서 일어선 채 휘파람을 불어대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또 존은 돌연 필상의 팔뚝을 거세게 후려친 뒤,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서는 격정적이기 그지없는 투로 소리쳐댔다.
“Shit! 당신이 정말 마음에 들어요! 우린 정말 좋은 친구가 될 겁니다!”
그리고는 카메라를 바라보며 덧붙였다.
“정말 진심이야! 내가 여자였다면 이 친구에게 반했을 거라고요!”
비로소, ‘진짜 녹화’가 시작된 시점의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