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star chef RAW novel - Chapter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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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1 – 비극도, 기회도 느닷없이 (2)
5.
그날 밤, 필상은 꿈을 꾸었다. 아주 어렸을 적, 어머니와 아버지께서 함께 ‘식당’을 운영하시던 때의 꿈이었다.
아버지께서는 구슬땀을 뻘뻘 흘려가며 요리를 하고 계셨고, 어머니는 계산대 앞을 지키고 선 채 단골손님들과 주거니 받거니 대화를 나누고 계시는 중이었다. 가게 안은 손님들로 마냥 북적였고, 왁자지껄한 소음이 연신 끊일 줄을 모르고 있었다. 필상은 그런 가게 안을 쏘다니며, 주문을 받거나, 음식을 나르는 등의 간단한 업무를 거들었다.
부모님의 식당.
필상이 난생 처음으로 ‘요리사’라는 꿈을 품게 되었던 곳이다. 처음으로 식도를 손에 쥐어봤던 곳이자, 처음 화구의 뜨거운 불 앞에 서보았던 곳이며, 또 난생 처음으로 그럴싸한 요리를 만들어냈던 곳이다.
꿈속에서의 필상은 부지런히 움직였다. 우렁찬 목소리로 주문을 받았고, 당찬 걸음으로 음식을 나르곤 했다. 한 번 지나가 버린 시간은 절대 되돌릴 수 없다. 필상 역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족히 기백 번은 그리워했던 장소이자, 시절이었다. 그렇기에 필상은 더더욱 처절히 움직였다. 꿈이 끝나지 않기를 갈망하며. 아니, 조금이라도 더 오래 존속되길 희망하며.
하지만.
“아-.”
다시, 현실.
두눈을 게슴츠레 떠보이기 무섭게 누렇게 변색된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몸을 일으키자 낡은 매트리스가 “끼이익-.”하고 앓는 소리를 내보였다. 이내 필상이 제 양손으로 얼굴을 꼬옥 감싸 쥔 채, 짙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 어떤 말로도 형언할 수 없을 허무가 솟구쳤던 탓이었다. 맴맴맴, 매미 우는 소리가 창을 투과하여 흘러 들어오고 있었다. 뙤약볕 탓에 후끈하게 달아오른 아스팔트 위로 아지랑이가 일렁이고 있는 한여름이었다.
몹시 공허했다.
6.
시간이 꽤 흘러, 한낮에 접어든 지금 역시 마찬가지. 여전히 간밤에 꾸었던 꿈의 여파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채, 허우적대고 있는 중이었다.
“아들. 자, 여기.”
어머니의 부름 덕에, 필상이 다시금 정신을 다잡았다. 이내 필상의 시선이 어머니의 손에 들려있는 ‘열쇠꾸러미’로 향했다. 다름 아닌, 부모님의 식당 열쇠였다.
“어차피 팔려고 내놓은 가게, 뭐하러 가보게?”
“그냥….”
한차례 말끝을 흐려보였던 필상이, 멋쩍은 미소와 함께 뒷말을 이었다.
“뭔가 아쉬워서요.”
간밤에 꾸었던 꿈 때문인 걸까? 세 식구의 추억과 향수가 매립되어 있는 공간이, 다른 이들의 터전으로 변모하기 전에 꼭 한 번은 들러봐야 할 것 같다는 기이한 의무감에 사로잡혀 있는 상태였다.
이윽고.
“그래. 조심히 다녀와라.”
집을 나섰다.
7.
부모님의 식당은 고향 집이랄 수 있는 주택가의 연립주택으로부터, 도보로 불과 15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 곳이었다.
요즘에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단층 상가건물. 먼지가 수북히 덮여있는 허름한 간판 위로, ‘식구 백반’ 이란 상호명이 투박한 필체로 쓰여있는 상태였다. 식당을 찾은 모든 손님들께, 제 식구에게 내어줄 법한 푸짐하고 맛있는 한 끼 식사를 대접하겠다는 아버지의 또렷한 소신이 담겨있는 상호명이었다.
제 자리에 멈춰선 채 간판을 빤히 올려다보고 있기를 잠시. 이내 녹슨 자물쇠를 해제하고 미닫이 문을 열었다. 불이 꺼진 가게 내부는 쥐죽은 듯 고요했다. 이내 필상이 익숙한 손길로 벽면을 더듬거리다가 스위치를 찾아내 불을 켜던 찰나, 그제야 가게 안에 내리앉아 있던 어둠이 걷어내지며 내부의 전경이 오롯이 드러났다.
모든 게 기억 속 그대로였다.
비좁은 홀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테이블도, 달랑 메뉴명과 가격만 적어둔 간소한 메뉴판도, 어머니의 자리였던 계산대도, 처음에는 아버지만의 공간이었으나 훗날에는 ‘부자’(父子)의 공간으로 변해버린 자그마한 주방도….
가게 안이 바깥보다 훨씬 더 후덥지근했던 터라, 문을 활짝 열어둔 채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한 자리를 꿰차고 앉아서는, 야윈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톡, 톡.’ 두드려가며 반쯤 공개되어 있는 주방을 빤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필상아.’
아직도, 주방 안에서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올 것만 같았다.
‘미안한데, 냉수 한 잔만 가져다줄래?’
쉰내가 나는 축축한 수건으로, 얼굴을 흠뻑 적신 땀을 훔쳐낸 뒤 그리 말씀하실 것만 같았다. 냉수가 담긴 컵을 건네 드리고 나면, 벌컥벌컥. 단숨에 잔을 비워내신 뒤 활짝 웃으며 이렇게 말씀해주실 것만 같았다.
‘고맙다, 아들.’
그리고는 다시금 굵직한 손가락으로 야무지게 나물을 무쳐내실 것만 같았다. 찌개를 끓이든, 생선을 굽든, 두툼한 고기를 썰든, 뭐라도 하실 것만 같았다. 그러다가 도로 눈이 마주치기라도 하면 씨익 웃어주실 것만 같았다.
“아버지.”
답이 들려올 리 없었다. 하지만, 필상은 답을 기다리듯 잠시 침묵했다.
“가게, 내놨대요. 얼마전에.”
정적이 흐르기를 잠시.
“뭐, 어머니께서 잘 판단하신 것 같아요. 아무래도 이렇게 방치해두는 것보다야 낫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새로 입점하게 될 가게 영업 시작하고 나면, 저도 한 번 와볼까 봐요. 괜히 전처럼 북적이는 모습이 보고싶더라고요.”
주절주절 두서없이 말을 이어나가던 필상이 돌연 제 입술을 꽉 깨물었다.
돌연 가슴이 쓰라려 왔던 탓이었다.
마치 뜨겁게 달군 자갈을 몇 움큼 삼켜내기라도 한 것 마냥 속이 후끈댔다.
“아버지, 죄송해요. 저 사실 포기했어요.”
이내 필상이 제 고개를 푹 떨굼과 동시에, 재차 “정말 죄송해요.”하고 덧붙였다.
그저 노력했을 뿐이다.
죽을 만큼 성공하고 싶어서, 정말 죽을 만큼 노력했던 것뿐이다.
그런데, 왜?
그간의 노력이 무색해질 정도로 비참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일까?
대체 왜 벼랑 끝에 내몰린 신세가 된 것일까?
그토록 노력해 온 삶의 종착지가 고작 여기인 것일까?
“한심한 말이라지만, 요즘들어 부쩍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자그마한 식당 안으로 늘 구수한 밥 내음과, 찌개 향이 진동하던 그 시절로. 여장부처럼 시원시원한 성격의 어머니께서, 고봉밥을 듬뿍듬뿍 담아내 손님들께 내주곤 하시던 그 시절로. 미닫이 문을 열고 식당 안에 들어서면 아버지께서, “아들, 밥은 먹었어?”하고 물으시며 맞아주시던 그 시절로….
또, 세계 최고의 요리사라는 거창한 꿈을 꾸며 아버지께 요리를 배우던 그 때로.
“돌아가고 싶어요, 사무치도록.”
나직이 뱉은 말이 멎어들던 때였다. 돌연 가게 바깥쪽에서 ‘쏴아아아-.’하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고개를 돌려 살펴보니, 한바탕 소낙비가 쏟아지기 시작한 듯 보였다. 문득 어저께 우연히 보았던 뉴스가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러고 보니, 분명 태풍이 상륙했다고 했었지. 필상이 멍하니 가게 문쪽을 바라보고 있던 찰나.
콰앙-!
돌연 휘몰아친 거센 비바람 탓에 가게 출입문이 부셔질듯 닫혀버렸다. 화들짝 놀란 듯 두 눈을 휘둥그레 떠보였던 필상이, 이내 제 미간을 잔뜩 찡그렸다. 다름 아니라, 돌연 묘한 기분이 들었던 탓이었다.
‘뭐지…?’
마치 자신과 세상이 아예 격리되어버린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난생 처음 느껴보는 이질적인 느낌. 하나, 그 기묘한 감상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돌연 극심한 두통이 엄습해 온 탓이었다. 정신이 아찔해질 정도로 맹렬한 고통이었다. 이내 필상이 양손으로 제 머리를 꽉 감싸 쥐었다. 연달아 심장이 터질 듯 뛰어대기 시작했다.
두근, 두근, 두근! 종지에는 벽면에 거치 된 낡은 시계를 기점으로 울리던 초침소리가, 점점 더 크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째깍, 째깍, 째깍-!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자신을 괴롭히던 고통과, 소음이 모두 멎어들기 시작하던 무렵. 필상은 지독한 어둠에 휩싸였다. 무저갱 끝자락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짙은 어둠이었으나, 희한하게도 아늑함을 느끼고 있었다. 혹시 죽음이란 게 이런 형식이지 않을까? 필상은 그 광활한 어둠 속을 헤엄치듯 부유했다. 온 몸의 감각이 말소된 것만 같았다. 마치 뇌가 제 기능을 다 하고 멈춰버리기라도 한 것 마냥 그 어떤 움직임도 취할 수 없었으며, 더 나아가서는 시간감각조차 무뎌져버렸다.
이윽고….
귓가에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한두 사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소란이 아니었다. 족히 열댓 명이 될 법한 인원이, 잔뜩 흥이 올라 대화를 주고 받을 때에야 형성될 수 있는 소란스러움이었다.
그때, 또렷한 목소리가 그 소란을 비집고 들어왔다.
“필상아.”
뭐지? 익숙한 음성이다.
“필상아.”
아, 그래 이건 분명….
아버지다.
아버지의 목소리다.
이내 필상이 지그시 감고 있던 두 눈을 조심스레 떠보였다. 눈앞에 아버지께서 서계셨다. 기억 속 모습 그대로, 시큼한 향이 날 것만 같은 수건으로 얼굴에 송골송골 맺혀있는 땀방울을 닦아내고 계셨다.
“미안한데, 냉수 한 잔만 가져다줄래?”
이내 필상이 잘 떠지지 않는 눈을 게슴츠레 뜬 채, 주변을 한 번 둘러보기 시작했다. 마치 오랜 시간만에 햇빛을 마주하기라도 한 것 마냥, 눈이 부시고 머리가 지끈거렸다. 상황을 파악하는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곳은, 부모님의 식당이다.
좁은 가게 안이 손님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다들 반주삼아 걸친 소주 몇 잔 탓에 벌게진 얼굴을 한 채, 제 일행들과 이런저런 대화를 주고받고 있는 중이었다. 이내 필상이 고개를 휙휙 돌려가며, 주변을 조금 더 자세히 살펴대기 시작했다.
꿈인가?
일순 뇌리를 스쳐 지나간 생각이었다. 혹시 부모님의 식당 테이블에 납작 엎드린 채, 저도 모르는새 깜빡 잠들기라도 했던 게 아닐까? 그 달콤한 단잠 속에서 행복하기 그지없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이지 않을까?
‘꿈이 아니야.’
꿈이라 치부하기엔 모든 것이 지나치게 생생했다. 귓가에 아른거리는 소음도, 눈앞에 펼쳐진 광경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계신 아버지도, 계산대 앞에 선 채 장부에 무언가를 끄적이고 계신 어머니도, 이 공간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지나치게 생생했다.
꿀꺽.
마른 침을 한 번 삼켜내 보인 필상이 애써 말문을 열었다.
“아버지…?”
그리고는 아버지를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이윽고, 지척에 다다른 뒤에는 그 넓은 품에 와락 안겨버렸다.
“허허, 것 참. 다 큰 녀석이 갑자기 왜이래?”
답하고 싶은 말이 한 가득이었다. 하나, 입술을 옴싹달싹 대는 게 고작이었다. 목이 메여 차마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입을 열고 무어라 말을 하면, 속에 몽우리진 무언가가 ‘톡.’하고 터져버릴 것 같았다.
“아버지….”
이내 아버지께서 솥뚜껑처럼 큼지막한 손으로 등을 쓸어내려주기 시작하셨다.
“아들, 괜찮아? 왜 그래?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거야?”
아버지께서 걱정스러운 눈을 한 채, 연신 필상에게 물음을 건네고 있는 지금. 가게 한 쪽에 설치된 자그마한 tv뉴스 속 앵커가 오늘이 여름의 시작인 ‘입하’(立夏)라는 말을 떠들어대고 있었다. 또 그런 그녀의 가슴팍 밑으로는 한반도에 태풍이 상륙했다는 문구가 흘러가고 있는 중이었다.
비극이 그랬듯, 기회 역시 느닷없이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