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writing Filmography RAW novel - Chapter 200
200화. 달라졌습니다
“공개 오디션을 통해서 배역을 따낼게요. 그게 제가 원하는 조건이에요.”
“허허허…….”
기욤 뒤자르댕이 헛웃음을 내뱉었다.
김진모가 어떤 생각으로 공개 오디션을 통해서 배역을 따내겠다고 말하는지 대번에 파악한 것이다.
“어째 친구끼리 생각하는 게 똑같네요. 뭐…… 진모라면 그럴 거라 예상하긴 했어요.”
“너무 큰판에 무임승차를 하는 건 제 스타일이 아니라서요. 게다가 이 작품 노리는 배우가 꽤 있을 것 같거든요. 최소한 억울하지 않게 기회는 줘야죠.”
한국 감독이 메가폰을 잡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할리우드의 거대 자본이 투입되는 영화다. 『Timeless』의 성공으로 급성장한 JP스튜디오가 평균 이상의 제작비를 책정해 놓은 상황이다.
따라서 김진모는 자신의 손에 들린 시놉시스를 할리우드 작품이라고 판단하기로 했다.
그리고 할리우드 첫 작품이니만큼 캐스팅보다는 공개 오디션으로 주연 배역을 따낼 자격이 있음을 증명하고 싶었고, 그래야지 스스로 마음 편하게 촬영에 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저야 진모의 선택을 지지하지만…… 걱정이 안 되는 건 아닙니다. 위험 부담이 큰 선택이라는 거 알죠?”
“잘 알죠. 한 번 겪어 봤으니까.”
김진모는 『브레이킹 월드』의 주연 알버트 리 배역을 노리고 공개 오디션에 참여했고, 최종 2인까지 올라가는 경합을 벌일 만큼 열연을 펼쳤다.
하지만 한 끗 차이로 류성웅에게 밀리며 할리우드 진출을 다음 기회로 미뤄야만 했다.
김진모의 배우 인생에서 처음 경험한 실패였다.
기욤 뒤자르댕은 공개 오디션은 통해 자신이 할리우드 영화의 주연을 맡을 자격이 있다는 걸 증명하려는 김진모의 선택을 이해하고 존중했다.
다만 리스크가 있는 선택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었다.
만에 하나 『브레이킹 월드』 때처럼 오디션에서 떨어지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걱정하지 마요.”
기욤 뒤자르댕의 우려에도 김진모는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다.
“실패는 한 번이면 족하니까.”
* * *
김진모는 기욤 뒤자르댕으로부터 영화와 관련된 정보를 많이 듣지 못했다.
공개 오디션 여부 결정과 시나리오 지급은 미팅 당일에 진행될 것이며, 캐스팅라인이 확정된 건 최정수가 유일하다는 정도였다.
“자세한 건 미팅 때 알게 될 거예요.”
정보가 부족함에도 김진모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이미 시놉시스에 푹 빠진 상태였고, 기욤 뒤자르댕을 통해 전해 들은 배역은 자신의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공개 오디션이 불가하다면 미련 없이 캐스팅에 응할 생각을 하고 있을 만큼 시놉시스가 마음에 들었다.
그렇다고 메가폰을 잡을 감독이 누구일까 궁금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귀국으로부터 일주일 후.
스위스에서의 촬영 장면을 일부 포함한 『내 아내는 처녀귀신』의 최종 예고편이 공개된 날.
김진모가 매니저와 함께 JM액터스를 방문했다.
감독과의 미팅을 위해서였다.
“두 분은?”
“회의실에서 대표님과 함께 계십니다.”
“그래? 커피 사서 바로 올라가자.”
김진모는 매니저와 함께 커피를 사서 곧장 회의실이 있는 사옥 5층으로 올라갔다.
회의실의 문을 열고 들어간 직후.
“어……?”
김진모가 당혹한 기색을 드러냈다.
“박 감독님?”
김진석 대표와 기욤 뒤자르댕과 함께 있는 게 박의준이었기 때문이다.
“설마 박 감독님이?”
“네. 김 배우님이 본 시놉시스, 제가 쓴 거예요. 스타일이 달라져서 못 알아봤죠?”
“와…… 전혀 몰랐어요. 시놉시스만 보면 어떤 감독님인지 대충 감이 오는데, 이번에는 아예 감이 안 왔거든요. 이렇게 감쪽같이 스타일 변신해도 되는 거예요?”
“칭찬으로 받아들일게요.”
박의준이 기분 좋게 미소를 지었다.
스타일이 변했다는 김진모의 말을 듣고서, 자신이 목표했던 것을 반쯤 이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수 선배가 캐스팅됐다는 말을 듣고서 눈치를 챘어야 하는 건가요? 와. 그나저나 정수 선배도 진짜 너무하네. 출국 전에 잠깐 얼굴 봤을 때는 아무 말도 없었는데, 할리우드 진출하는 걸 숨겨?”
“제가 비밀로 해 달라고 했거든요. 캐스팅 라인이 어느 정도 확정된 이후에 기사가 나가야 잡음이 적을 것 같아서요. 커리어 첫 번째 작품도 이래저래 시끄러웠는데, 두 번째 작품도 시끄러우면 좀 그렇잖아요.”
“할리우드에 진출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시끄럽지 않을까요?”
“하하하. 그렇겠네요. 가명으로 투고한 게 JP스튜디오 대표님의 시선을 사로잡은 덕분에 제작이 확정됐지만, 대중들은 과정보단 결과에 먼저 관심을 가지니까요.”
입봉작인 『90일』이 상업적으로나 작품성으로나 성공했음에도, 박의준의 두 번째 작품에 대한 소식은 한동안 전혀 들리지 않았다.
당사자는 인터뷰를 일절 거부했고, 매형인 최정수에게 물어봐도 곧 좋은 소식을 들려줄 수 있을 거라는 말만 들려왔다.
그 좋은 소식이 설마 할리우드 진출일 줄이야.
그것도 인맥을 통한 게 아닌, 스스로 발품을 팔고 투고를 통해 만들어 낸 결과이기에 더욱 뜻깊었다.
JP스튜디오에서 투자를 결정하자마자 박의준은 최정수를 캐스팅했다. 이후 두 번째로 러브콜을 보낸 게 최정수와 함께 주연을 맡아 줄 김진모였다.
할리우드 배우들 또한 다수 캐스팅 할 예정이었지만, 기본적으로 영화를 이끌어 나갈 배우로는 최정수와 김진모를 고려했다.
그 와중에 김진모가 공개 오디션을 제안한 것이다.
박의준 감독은 곧장 JP스튜디오 측에 공개 오디션 여부를 문의했고,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 긍정적인 답변이 되돌아왔다.
“어차피 단역 캐스팅도 해야 하니 겸사겸사 공개 오디션을 진행하려고 해요. 물론, 김 배우님이 오디션에서 경쟁자들을 압도하는 연기를 보여 줄 거라고 확신하기에 진행하는 거 아시죠?”
“믿어 주셔서 감사해요.”
주연 배우를 낙점했고, 배우가 응했음에도 공개 오디션을 하는 건 위험 부담이 큰 선택이다. 오디션 결과에 따라 주연 배우가 바뀔 수도 있다.
그럼에도 박의준 감독은 흔쾌히 김진모의 제안을 받아 줬다. 오디션 결과 이변은 존재하지 않을 거라고 확신을 가졌기에 할 수 있는 선택이었다.
어찌 보면 박의준이 확신을 가지는 게 당연했다.
김진모가 연기해 주기 바라는 캐릭터는, 김진모가 연기할 걸 고려하고서 만들어졌으니까.
* * *
미팅 후.
김진모는 박의준으로부터 시나리오를 건네받았다. 이후 곧장 연습실로 향했고, 박의준은 그런 김진모의 연습을 지켜보기 위해서 덩달아 따라갔다.
기욤 뒤자르댕은 한국에 온 김에 곽상필에게 연락을 취했다. 김진석과 셋이 간만에 식사를 하기로 했다.
곽상필이 사옥으로 오는 사이.
김진석 대표는 박정상과 대화를 나눴다.
“진모가 이렇게 할리우드에 진출하게 되는군.”
“언젠가는 진출할 거라고 예상했잖습니까. 솔직히 늦은 감도 있습니다. 진모의 연기력이라면 더 큰 무대에서 하고 싶은 걸 마음껏 해도 될 정도이지 않습니까.”
“자네 말이 맞아. 늦은 감 또한 존재하지. 다만…… 기분이 묘한 건 어쩔 수 없군. 마냥 어리게만 보였던 녀석이 배우로서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 나가는 것도 가끔씩 낯선데, 할리우드 진출은 오죽하겠어. 내 머릿속의 진모는 여전히 데뷔 당시에 멈춰 있는데 말이야.”
김진석 대표가 과거의 기억을 떠올렸다.
갓 데뷔했을 당시의 김진모는 타고난 재능이 넘쳐났지만, 아직 그것을 완벽하게 다룰 줄 몰랐다. 배우로서 만개하려면 좀 더 시간이 필요해 보이는 게 사실이었다.
김진모는 타고난 재능에 만족하지 않았다.
매 순간 배우로서 최선의 연기를 보여 주기 위해 노력했고, 더 좋은 연기를 보여 주기 위해서라면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타인의 장점을 배우기 위해 연습실에서 살다시피 한 적도 많았다.
그 결과.
김진모는 안시현을 제외하면 동년배 배우 중 비교 대상이 없는 필모그래피를 쌓았다.
어느새 30대 중반.
김진모는 배우로서 한 단계 더 성장하기 위해, 자신의 연기가 어디까지 통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할리우드 진출이라는 도전을 하게 됐다.
그 과정에서 김진석 대표가 한 건 딱히 없었다.
비단 김진모의 할리우드 진출 건만이 아니었다.
최근 JM액터스의 주요 업무는 박정상의 지시 아래 이뤄졌다. 김진석 대표가 의도적으로 박정상을 밀어주고 있긴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조언을 구하는 횟수조차 줄어들 만큼 박정상의 좋은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이에 김진석 대표는 박정상에게 대표 자리를 물려줄 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꼈다.
그 생각에 쐐기를 박은 것이 『내 아내는 처녀귀신』의 특수 효과팀 섭외 과정, 그리고 김진모의 할리우드 진출 건이었다.
김진석 대표가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이내, 무언가를 결심한 듯한 표정으로 박정상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이제, 사옥에 내 자리는 이제 없어도 되겠어.”
“……대표님?”
“상필이가 그러더군. 얼른 그만두고 자기랑 강릉에 있는 별장에서 바다낚시나 하며 한량이 되자고 말이야. 그때가 된 것 같아.”
“…….”
“내년부터는 자네가 내 자리를 맡아 주게.”
김진석 대표가 박정상에게 자신의 자리를 물려줄 것임을 시사했다.
* * *
『내 아내는 처녀귀신』제작 발표회 당일 저녁.
TV Y 사옥에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회의실에서 대기하고 있던 김희숙 작가와 배우들은, 최창국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본부장님은 오늘도 바쁘신가 보네요.”
“웬만한 결과물로는 만족하지 못하시잖아요.”
첫 방영이 다가올수록 최창국은 촬영 때를 제외하면 좀처럼 얼굴을 보기 힘들어졌다. 연출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편집실에 틀어박혀 있었기 때문이다.
“최종 예고편 보면 걱정 없이 보이던데요.”
『내 아내는 처녀귀신』은 시청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귀신과 퇴마를 비롯한 판타지 요소를 전면에 내세웠고, 방송 3사가 아닌 TV Y에서 방영하는 것이기에 실패할 거라는 일부 여론은 삽시간에 자취를 감췄다.
기가 막힌 특수 효과와 최창국 특유의 연출이 더해지며 드라마 예고편이 아니라 할리우드 영화의 하이라이트를 보는 것 같다는 평가가 넘쳐났다.
그럼에도 최창국은 여전히 편집에 열을 올렸다.
완벽주의자인 그의 성향상, 최종화의 편집본을 넘기기 전까지는 긴장을 놓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제작 발표회 5분 전.
“늦어서 죄송합니다.”
초췌한 표정의 최창국이 회의실에 모습을 드러냈고, 김희숙 작가가 미리 준비해 놓은 건강 음료를 마신 뒤 제작 발표회 현장으로 향했다.
제작 발표회에서는 다양한 질문이 쏟아졌다.
그리고 그중 김희숙 작가의 대답 하나가 제작 발표회 이후 제법 화제가 됐다.
“김희숙 작가님에게 묻겠습니다. 첫 촬영 당시 목표가 최고 시청률 25%라고 말씀하셨는데요. 방영을 일주일 앞둔 지금은 생각이 달라지셨습니까?”
“네. 달라졌습니다.”
김희숙 작가는 첫 촬영 당시 자신이 이야기했던 최고 시청률 25%라는 목표가 바뀌었다고 쿨하게 인정했다.
그와 함께 새로운 목표를 공개했다.
“25%가 아니라 30%가 목표입니다. 예고편에 대한 반응을 보니, 제가 목표치를 너무 낮게 잡았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네요.”
25%가 아니라 30%로 목표를 상향 조정했고, 방송 3사로 따지면 어느 정도의 시청률이라고 생각하냐는 추가 질문에는 이렇게 답했다.
“50% 이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내 아내는 처녀귀신』의 OST가 음원 차트를 싹쓸이하고, 드라마가 방영한 다음 날에는 실시간 검색어가 관련 내용으로 도배될 거고, 온갖 광고에 저희 드라마의 핵심 배우들이 출연하게 되겠죠.”
김희숙 작가의 최고 시청률 30% 발언과 관련된 추가 기사가 줄지어 쏟아졌다. 긍정적인 의견과 부정적인 의견이 공존했지만, 적어도 한 가지만큼은 확실했다.
『내 아내는 처녀귀신』이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두는 드라마가 될 것이라는 것.
2013년 12월 6일 금요일 저녁 9시 50분.
마침내 『내 아내는 처녀귀신』 1화가 전파를 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