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417)
러스트 [RUST]-417
시로 박사의 발작 때문에 버지니아 랭리 직원들은 골머리를 앓았다.
사이코메트리를 데려오려면 일단 만나야 했다. 얼굴을 봐야 설득하든, 납치하든 할 것 아닌가? 그런데 시작부터 문제였다.
“최신 정보는 없나?”
“이상 한파가 몰아치기 전 자료밖에 없어.”
제대로 된 마지막 정보는 이상 한파가 몰아치기 전 통신장애가 없을 때 일이니, 벌써 100일 가까이 지난 정보일 뿐. 계획을 세워야 했는데, 최근 정황이 없었다.
“애매하군.”
“위성 마을과의 관계도 생각보다 건실해.”
위성 마을 몇 군데를 선동, 뉴욕으로 떠나게 한 작전은 성공과 실패 사이쯤에서 끝났다.
위성 마을 시스템을 흔들고 블라디마루 칼린 세력을 약화했다는 점에서 본다면 성공이었고, 모든 위성 마을이 들고 일어나지 않은 점과 블라디마루 칼린의 지배에서 벗어난 자들이 뉴욕에 도착하지 못한 것을 따져보면 실패였다.
“휴민트는?”
“블라디 아크 타운에는 들어가는 데 성공했지만, 거주구역 밖으로는 이동이 금지됐다고 하군.”
휴민트(HUMINT)는 휴먼(human)과 인텔리전스(intelligence)의 합성어로 인간을 이용해 정보를 취득하는 모든 방법을 총칭했다.
단순한 스파이 뿐만 아니라 학연, 혈연, 지연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대상자가 자기도 모르게 정보를 유출하게 하는 것도 휴민트.
연인 관계를 활용한 정보수집, 친인척이나 친구를 이용한 방법도 이에 해당하지만, 블라디마루 칼린의 쪽은 애초에 휴민트를 사용하기 어려운 구조였다.
위성 마을->외성-> 아크 타운 [구역 분리] ->내성-> 아크 타워 [층간 분리]라는 중세스러운 구역 분리도 어이없는데, 가족 단위로 거주 지역을 지정해 버린 것.
“친인척이라고 할지라도 능력이 없으면 블라디 아크 타운 밖에서 거주해야 한다는 규칙이 있어서 친인척을 이용해 접근하는 것도 불가능해.”
“어이가 없군.”
“영상 통화는 가능하지만, 인공지능이 실시간으로 검열하고 있다고 봐야 해서 의미 없지.”
“자체 통신망과 인트라넷을 이용하고 있고, 전문 해커와 인공지능이 있어서 해킹도 사실상 불가능해. 한다고 해도 바로 잡히고.”
“인공지능을 활용한 24시간 자율방어시스템?”
“군사시설도 아니고···. 편집증적이군.”
거기에 사방에 깔린 CCTV와 자동포탑까지, 심지어 사이코메트리가 거주하는 곳은 제일 안쪽인 블라디 아크 타워인지라 방법이 없었다.
“잠깐···. 방법이 있을 것 같군.”
“······.”
서류를 뒤적이던 요원 하나가 미소를 지었다. 그의 손에 들린 건 이주 현황 서류였다.
“그렇군.”
“그쪽을 이용한다면···.”
블라디마루 칼린과 그 그룹의 관계를 생각해 본다면 충분히 해볼 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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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 LA 인근 해안 마을.
예년 같으면 영상의 날씨로 포근했어야 할 해변에 차가운 눈발이 날리고 있었다. 영하 10~15도를 넘나드는 칼바람이 창문을 흔들고 지나가는 소리.
부르르르르-
심은영이 손에 쥔 명함을 꾸깃- 구겼다.
“지금 뭐라고 했죠?”
“이제 미합중국의 일원이 됐으니, 국익을 위해 헌신해주셔야겠습니다.”
“아니. 그 전에. 어디로 가라고요?”
“디트로이트입니다.”
심은영은 눈앞에 있는 버지니아 랭리 직원의 머리통을 열고 싶었다.
“이 날씨에 7만 명이 넘는 사람들을 데리고 디트로이트로 가라는 말입니까?”
“회장님과 측근들만 가셔도 됩니다.”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렇게 자리를 비우고 나면 능력자들을 흡수하려고? 심 회장의 다리가 꼬아졌다.
이래서 양키 새끼들을 믿을 수 없었다. 툭하면 국익이 어쩌고, 동맹이 저쩌고. 오죽하면 선빵 때렸다가 처절하게 응징당한 일본이 또 통수를 준비했을까.
“디트로이트면 하마루. 아니, 여기서는 블라디마루 칼린인가요? 그 사람에게 가라는 말인가요?”
“그렇습니다.”
“이유가 뭐죠?”
“그저 협상을 해주십사 하는 겁니다.”
지금 스무고개 하자는 건가?
부장도 아니고 국장도 아닌, 일반 직원이?
심은영의 눈빛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한국 정부가 미쳐 날뛰기 시작하는 것을 피해 급하게 미국으로 탈출했다.
미국에서 손을 내민 곳은 두 곳. 국토안보국과 버지니아 랭리. 둘 가운데 샬롯의 가치를 더 쳐주는 곳이 버지니아 회사였다.
‘거리 문제도 무시할 수 없었고 말이지.’
국토안보국과 손을 잡으려면 뉴욕까지 가야 했다. 파나마 운하와 수에즈 운하가 막혔기 때문에 배를 타고 뉴욕에 가려면 동남아시아를 거쳐 인도양, 중동, 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 대서양을 지나거나, 태평양을 건너 남미를 돌아 북상해야 했다.
‘동부와 남부가 사실상 갈라선 걸 몰랐던 게 패착이었어.’
남부에서 장악한 해군을 피해 가려면 뉴욕까지 가는 게 쉽지 않았다. 그래서 버지니아 랭리를 선택했더니, 고작 1달 만에 개소리를 지껄이고 있었다.
샬롯을 우습게 보지 않았다면 이렇게 불쑥 찾아오지 못했을 것이다. 아니, 애초에 달랑 직원을 보내서 개소리하지 않았겠지.
‘미군 새끼들도 자기 앞가림 못 해서 쩔쩔매고 있고.’
톡-톡-톡-
다리를 꼰 채, 손끝으로 테이블을 두들기던 심 회장이 무슨 협상인지 이야기를 해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블라디마루 칼린의 디트로이트가 이쪽에 합류하도록 협상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쪽에서 거절하면?”
“블라디마루 칼린이 데리고 있는 사이코메트리 능력자를 데려와 주시면 됩니다.”
“그것도 거절하면?”
“그렇다면 7만 명의 도시락이 생기겠죠. 식인귀와 괴수들이 포식하겠네요.”
비릿하게 웃는 직원을 무기질적으로 바라보던 심은영이 다시 톡톡톡- 테이블을 두들기다 말했다.
“이기영 부장님.”
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눈이 살짝 풀린 직원이 테이블 앞으로 꼬꾸라지다 말고 버텼다.
“호오- 이걸 버텨?”
하지만 그 짧은 순간, 옆에 있던 샬롯 경호원들이 버지니아 직원의 사지를 결박했다. 살짝 풀렸던 눈동자가 또렷해지며 직원이 으르렁거렸다.
“미친 새끼들이···. 지금 뭐하는 짓이지?”
그러거나 말거나 심은영이 인터폰을 켰다.
“전부 잡아요. 여기엔 아무도 오지 않은 겁니다.”
[예.]그 태연한 소리에 버지니아 직원의 표정이 흔들렸다.
“뭐라고?”
“귀가 먹었나요?”
피식- 웃은 심은영이 고개를 끄덕이자, 경호원들이 그를 끌고 가기 시작했다.
직원이 목에 핏발을 세우며 몸부림쳤지만, 예상과는 달리 사지를 결박한 끈은 끊어지지 않았고, 샬롯의 경호원들의 힘도 자신의 아래가 아니었다.
미국의 국익을 위해서라고 한다면 벌벌 떨 거라는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 이것들 위험한 놈들이었다. 수틀린다고 바로 지워버릴 생각을 해?
갱단과 마피아, 카르텔도 버지니아 직원을 함부로 건드리지 못했다. 근데 이것들은 달랐다. 이 정보를 본사에 전달해야 했다.
“잠깐. 이러지 마십쇼. 미국에서 버지니아와 척을 지고 살 순 없습니다.”
끌고 가던 경호원들이 발걸음을 잠시 멈췄다.
“그럼 블라디마루 칼린은 뭘까요? 국토안보국은? 그 대단한 버지니아 랭리와 친하게 지내고 있다는 소리인가 보죠?”
“···미쳤군. 미쳤어. 당신들 전부 미쳤어!”
한국이 개판이라서 미국으로 탈출했더니 여기도 만만치 않았다.
이렇게 개판이면서 지랄해? 샬롯 그룹 회장에게 이래라저래라? 심은영의 눈동자가 호선을 그렸다.
“그냥 보내주긴 아깝군요. 쥐어짤 것은 짜세요.”
“알겠습니다.”
정보를 쥐어짜고 남은 찌꺼기는 변기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버지니아가 제정신이 아닌가 봅니다. 아니면 우리를 버러지처럼 무시하고 있거나.”
“어느 쪽이든 기회지 않겠습니까?”
“기회. 그렇죠. 기회긴 하네요.”
“우리 그룹에서 그 병력을 흡수하는 데 성공한다면 캘리포니아에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불가능한 건 아니었다.
“어쨌든 시간이 필요하겠네요.”
“예. 확실하게 지우도록 하겠습니다.”
혹한을 비롯해 변이 괴수들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길바닥에서 객사하기 좋은 조건. 온 적 없다는데 어쩔 건가?
곁에 있던 임직원 한 명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래도 악명 높은 버지니아 랭리입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놈들이 먼저 시작했으니 괜찮고 괜찮지 않고 할 게 없죠. 놈들도 여력이 있었다면 이따위로 일 처리하지 않았을 겁니다.”
심은영이 섬뜩하게 웃었다.
샬롯이 샌프란시스코에 내려준 미군은 해산하지 못한 채, 붕 떠 있었다.
몇 개월 동안 반파된 도시에서 치안유지 활동을 하면서 썩고 있는 미군을 보면, 연방군이 제 기능을 상실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고작 3만이 조금 넘는 연방군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서 뭐가 어째? 이래라저래라?
“마루 씨가 대단하긴 하네요.”
시작부터 장난질 치는 새끼들과 어울려서 그렇게 몸집을 불리다니. 하기야 처음부터 정상과는 거리가 멀긴 했다.
그림자를 헬기에서 던져버리고, KTX를 절단했던 것을 떠올려 보면 확실히 그랬다.
마루는 달랑 날붙이 들고 미국에서 자리 잡았는데, 샬롯은 그룹이 아니던가?
“계획과 많이 달라졌지만, 어쩌면 이게 더 좋을 것 같군요.”
“그렇습니다.”
겨울 한파가 물러나기 전 자리를 잡을 수만 있다면, 유리한 건 이쪽이다.
“그러니까 이 좋은 소식을 마루 씨에게 전해줘야겠죠?”
“준비하겠습니다.”
“아- 오랜만인데 선물이 필요하겠네요. 우리가 파악한 버지니아 관련 시설 위치를 함께 보내세요.”
“···예.”
샬롯 소속 능력자들이 블라디 아크 타워를 향해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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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트로이트는 오늘도 평화로웠다.
마루가 친환경 철도 사업을 시작하고 며칠이 지나자 매번 만석이던 천국행 열차에 점점 승객들이 줄어들기 시작하더니, 어느 순간 뚝 끊겼다. 고기를 구워 먹든, 짜장을 볶아 먹든 이쪽으로는 아주 발길을 끊은 것.
[그래도 며칠이나 갔네?]김 양은 머리 좋은 쥐새끼들이라면서 왜 그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걔들도 여기 아니면 갈 곳이 없었나 보지.]쥐들이 보이지 않은 지 며칠 됐지만, 하루에 한 번은 돌아다니면서 천국행 열차 준비를 하는 마루였다.
친환경 열차운영은 마루에게 많은 도움이 됐다.
살기를 일으키는 방법이나 살기 지속시간, 살기 도달 범위 같은 부분을 다양하게 실험할 수 있었다.
가끔은 제법 덩치가 큰 쥐들이 몰려오면서 살기의 강도 조절도 연습할 수 있었기에 상당히 만족스러운 경험이었다.
두런두런 이야기하면서 주변을 정찰하던 김 양의 시야에 생뚱맞게 냄비가 보였다.
[여기에 왜 스테인리스 냄비가 있어? 이거 뭐임?] [건드리지 마.]급하게 달려온 마루가 감각을 끌어 올렸다. 급조폭발물 같은 게 들어있다면 느낌이 올 테니까. 미약하게 피어오른 살기가 주변을 잠식했다.
[아. 좀.]김 양이 갑갑해지는 가슴을 부여잡고 뒤로 빠졌다.
들어 올 거면 깜빡이를 켜고 들어와야지, 냅다 살기는 뭐임 진짜?
‘어?’
이거 살기는 아닌가?
아니 그럼 뭔데 살기를 양념처럼 뿌린 거?
마루의 감각이 냄비를 훑었다. 더러운 느낌은 아니고, 찝찝한 느낌도 없었다. 뭔가 위험한 건 아니라는 소리.
[괜찮음?] [그런 거 같다.]마루의 대답에 김 양이 냉큼 냄비뚜껑을 열었다.
[어?] [하?]노랗게 빛나는 것들이 냄비를 절반쯤 채우고 있었다.
[이거 금붙이 같은데?] [······.]금반지와 팔찌를 이리저리 살펴보던 김 양이 고개를 끄덕였다. 금 전문가를 자부하는 그녀가 보자면 이건 분명 금이었다.
갑자기 냄비.
속을 채운 금붙이.
이게 뭐지?
김 양이 마루와 금붙이를 번갈아 보다가 한마디 툭 던졌다.
[공물?]아니면
[뇌물?] [뇌물? 쥐새끼들이 나한테 뇌물? 어쩌라고?] [그러니까 나오지 말아 달라는 부탁인 듯.]마루는 어이없었다. 쥐새끼들이 뇌물도 주고.
[샬롯 그룹에서 전령이 왔습니다.]디아나의 보고에 마루의 표정이 변했다.
[샬롯 그룹? 그 부산의 샬롯?] [맞습니다.]한국의 부산에서 디트로이트까지 전령이 왔다고.
[얼마 전 샬롯 그룹 전체가 미국으로 이주했다고 합니다.] [그래? 그래서 무슨 일인데?] [버지니아 랭리에서 블라디 아크 타워를 노리고 있답니다.] [아- 그래-]걔들이야 호시탐탐 이쪽을 노린 애들 아니던가? 신기할 거 없는 일이었다.
[블라디 아크 타운의 복속, 사이코메트리 능력자를 노리고 있다고 합니다.]이건 좀 선 넘네.
[그리고 버지니아 관련 시설의 좌표를 가져왔습니다. 선물이라고 합니다.]마루와 김 양이 눈빛을 마주쳤다.
이거.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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