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711)
러스트 [RUST]-711
[백기? 확실해? 백기라고?]김 양의 눈초리가 매섭게 변했다.
[네. 12층 빌딩 옥상에 백기입니다.]김 양이 기순을 보며 말했다.
[빌딩 옥상. 까마귀 부대로 확인해서 깃발 흔드는 게 거미년이면 바로 폭격하면 좋겠음.] [거미가 백기를 흔들었으면 폭격해버리자고? 왜?]‘거미가 백기를 흔들면 폭격을 해봅니다.’ 무슨 이상한 제목처럼 보이는 대응이라니. 기순은 김 양의 생각에 동의할 수 없었다.
[필드에서 거미년들이 함정 팠던 거 생각해 보셈. 저거 백기 흔드는 게 거미면, 12층짜리 빌딩 안에 들어가야 한다는 소린데. 안이 함정이면 감당할 수 있겠음?] [내가 가지.]감정을 볼 수 있으니까 가까이에 접근해서 확인하면 될 일이. 김 양은 기순의 의견을 단칼에 거절했다.
[안 됨. 그러다 댁 뒈지면 내가 피곤해짐.]최고 존엄이 빡 칠 텐데. 그럴 위험을 감수할 이유가 없었다.
‘거미 년들 하는 짓을 보면 믿을 수 없어.’
개미 년들도 짜증 났기는 했는데, 거미 년들이 하는 짓이랑 비교하면 그나마 나았다. 개미년은 여왕개미라도 있어서 그거랑 협상하면 됐지만, 거미들은 그렇지 않았다.
‘화염방사기로 그렇게 태웠는데.’
땅거미 년들 한 마리도 항복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갑자기 백기를 흔들어?
그러니까 거미 년들 문답 무용 전멸시킬 생각으로 조지는 게 안전했다.
새끼고 뭐고 모조리 털어버린 뒤, 살아남은 년 몇 마리랑 대화하는 게 맞겠지. 일단 싹 털어버릴 심산인 김 양에게 기순이 제의했다.
[거미용 진동 통신기를 써보는 건 어때? 빌딩이 함정인지 아닌지, 거미줄에 대보면 알 거 아닌가?] [···알겠음. 대신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다음부터는 이런 거 없음. 동의?]전투가 시작되면 김 양의 명령이 우선이었으니까 불만은 없었다. 기순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가 바로 신호를 보냈다.
[백기 빌딩으로 알파, 브라보, 찰리 전진. 주변 살펴보고 거미줄 확인되면 보고해.] [넵!]3개 팀을 보낸 김 양은 나머지 친위대로 빌딩을 포위했다.
[브라보. 거미줄 찾았습니다.] [알파. 1층 현관에서 거미줄 확인.] [찰리. 외벽에서 거미줄 다수 발견.]김 양과 기순은 바로 빌딩으로 향했다.
[저것 보셈. 저거 보고도 위로 올라가고 싶음?]확실히 가까이서 본 빌딩은 거미줄 천지였다. 무엇보다 1층 로비는 거미줄로 완전히 뒤덮여 있었다.
중간마다 누에고치처럼 둘둘 말린 덩어리가 흔들흔들 매달린 광경. 벽과 천장을 전부 거미줄로 만든 천으로 도배한 것만 같은 모습에 질려버린 김 양이었다.
[이건···. 꼭 땅거미 집을 붙여 놓은 것 같은데.]예상과는 전혀 다른 모습에 기순이 다가서자,
치직- HUD(Head-Up Display)가 순간적으로 흔들렸다.
뭣?
기순은 바로 한 걸음 물러섰다.
팟-
뒤로 물러서는 순간 깨졌던 화면이 감쪽같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전파장애? 디스플레이 간섭? 이 구조물은 인간에 대응하기 위한 구조체인가? 거미줄에 이런 기능이 있다고 건가?’
기순의 생각이 복잡해졌다. 만약 거미줄에 이런 다양한 기능이 있다면, 거미와의 관계를 좋게 이끌어가는 게 신성 왕국에 유리했다.
김 양의 생각은 달랐다. 이거 진짜 위험한 년들 아닌가?
숫자가 많지 않더라도 거미줄을 이용하면 통신장애를 일으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센서와 같은 전자기기에 간섭까지 가능했다. 그녀가 보기엔 거미는 너무 위험한 적이었다.
[이거 봤음? 이년들 하는 짓이 위험한 거? 개미와는 다른 거 알겠음?]김 양이 진동 통신 번역 장치를 거미줄에 장치하며 기순의 반응을 살폈다.
[···위험한 건 알겠는데. 그만큼 우리 편이 되면 더 좋아지지 않겠어?]기순의 대답에 김 양은 쉽게 가능하지는 않을 텐데, 하곤 진동 통신기에서 분석된 신호를 확인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전혀 진동하지 않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거미줄은 끝없이 울리고 있었다.
(접근. 공격.)
(불꽃. 폭격.)
(항복. 공격.)
(탈출. 항복.)
의견이 하나로 통일되지 않고 있다?
마치 여러 집단이 모인 것처럼 의견일치가 되지 않고 있었다.
거미들은 크게 셋으로 나뉘어있었다. 하나는 싸우자는 그룹. 나머지 둘은 퇴각하자는 쪽과 항복하자는 쪽이었다. 그런데 가장 큰 문제는 각각의 그룹에서도 명확한 머리가 있는 게 아니었다.
[대화가 되겠음?] [···그래.]김 양은 바로 빌딩을 포위했던 진형을 풀며 항공지원을 요청했다.
[까마귀 폭격대. 현재 좌표에 있는 빌딩. 폭격 바람.]까악! (알았다!)
인근을 맹폭하고 있던 까마귀 부대가 둘로 나뉘어 리치먼드(Richmond)로 향했다. 웨에에에에엥. 발톱으로 쥐고 있는 네이팜 폭탄에서 울리는 소리.
마치 나팔 소리 같은 고음이 울려 퍼지며 옥상에서 백기가 흔들리는 빌딩에 네이팜 폭탄이 틀어박히기 시작했다.
옥상을 시작으로 빌딩 측면을 때린 폭탄은 두툼한 유리를 뚫고 들어가 폭발했다. 시커먼 연기와 불꽃에 휘말린 빌딩은 어쩐지 고등어 비린내가 진동했다.
[무슨 냄새가 이 모양임?]까아아악! (들판과 언덕에서도 이런 냄새!)
[뭐래.]까아악 니애애앰새액- 나아안다악-
김 양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까마귀 발음이 미묘했기 때문이었다.
‘마크 2 기강 잡으면서 까마귀 년들도 한 번 손 봐야겠네.’
지금 중요한 건 거미 새끼들. 그녀는 일의 순서를 아는 여자였다.
[빌딩 옥상에 거미나 거미줄 보면 바로 폭격해버려.]까악! (알았다!)
죽음을 부르는 나팔 소리가 창공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
‧
‧
신성 왕국. 디트로이트.
인공지능 디아나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제국으로 가는 정기 화물 비행선이 새떼의 공격을 받아 회항했습니다.]까마귀는 전부 뉴포트뉴스 중간지대까지 내려온 거미들을 폭격하기 위해 차출된 상황이었다.
“시뮬레이션 상에서는 드론으로 막을 수 있었을 텐데.”
[새떼의 밀도가 순간적으로 높아지면서, 전자장비가 순간적으로 고장 났습니다.]“EMP(전자기 펄스 Electro-Magnetic Pulse) 대응은 어려운가?”
[현상은 EMP와 같지만, EMP와는 다르다는 연구 결과입니다. 현재 확보한 EMP 대응 시스템으로 방어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현재 주력인 드론과 로봇에는 설치하기 어렵습니다.]이것 참.
까마귀들의 이상한 집착이 문제였다. 새끼였을 때부터 육아했던 산성 갈매기를 제외하고는 다른 새들이 접근하는 것을 쫓아내고 있었다.
“에-또- 숲에 있는 애들은 제 말을 들어주는 애들도 있었거든요. 그래서 이쪽으로 데려오려고 했는데 까마귀들이 계속 공격했어요.”
이제는 능력이 강해져서 어지간한 동물과는 대부분 의사소통 가능한 간호사였다. 그녀가 직접 섭외한 부엉이와 함께 오려고 했으나, 까마귀들의 집단 린치에 놀란 부엉이가 다시 숲으로 돌아가 버린 것.
까악? (몰루?)
“모르기는요. 다 알면서 그러면 왕님께서 화내십니다.”
간호사가 마루가 화낸다고 협박했음에도 끝까지 모르는 척 딴청 하는 까마귀. 고개를 완전히 돌린 채 마루의 눈치를 보는 까마귀였다.
“왜 그러는 건데?”
까악? (무슨 말씀이십니까?)
깃털을 고르는 까마귀를 향해 마루가 말했다.
“다른 새들 쫓아내는 이유가 뭐냐?”
까-까아악. (저는- 안 그랬습니다.)
“그럼 너 말고 다른 까마귀들 말이야. 이유가 뭐냐 대체.”
까··· 까아악- (아니··· 그건 저도 잘-)
마루의 눈빛이 점차 차갑게 변하자, 까마귀가 필사적으로 말했다.
까-까악-깍! (본능- 진짜 본능- 본능 같은 겁니다!)
“본능이라. 그럼 본능을 바꾸도록 훈련 시켜주면 되겠네.”
생체 구조상 어렵다는 똥오줌도 가리게 해줬는데, 조류종 차별이나 왕따쯤이야. 피똥 좀 싸게 만들어 주면 금방 고쳐지겠지.
“이번에 거미 원정 끝나고 나면 까마귀들 전수 소집 명령 내리도록 해. 내가 직접 정신교육 한다고.”
[장소는 어디로 하시겠습니까?]“까마귀들이 옛날 기억도 좀 떠올리게 실내 경기장에서 하지.”
[디트로이트 실내 경기장을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예전에 까마귀 때려잡고 기강 바로 세웠던 그 경기장에서 교육하겠다는 마루의 이야기에 간호사의 어깨에 앉아있던 까마귀가 눈을 질끈 감았다.
“왜? 교육받기 싫어? 그럼 다른 새들이 들어오도록 하든지.”
······.
이상한 놈들이로세. 먹이를 부족하게 준 것도 아니고 월급을 적게 준 것도 아니고. 그냥 다른 새들을 밀어내는 이유를 모르겠네.
[까마귀는 영역 동물이자, 텃새이기 때문이라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알아서 맛있는 거 사 먹고 취향 따라서 쇼핑 다니는 놈들이 무슨 영역이고 텃새야. 너희들이 일반 까마귀냐? 그것도 아니잖아. 그렇게 똑똑한 놈들이 일반 까마귀들이나 따지는 걸 따지면서 다른 새들을 쫓아내?”
김 양이 곁에 있었다면 ‘까마귀 새끼들 전부 빠져서 지랄.’이라면서 찐하게 기강 잡자고 붕붕- 난리를 쳤겠지.
피식 입가에 미소를 지은 마루가 서늘한 눈으로 까마귀를 바라봤다. 그 차가운 눈빛에 좌불안석 불안해하는 까마귀가 고개를 푹 숙였다.
“폭격대로 나간 애들 돌아오면 이야기 잘해. 중요한 이유가 있으면 모를까. 일반 까마귀들처럼 한 거라느니, 본능이 어쩌고 영역이 저쩌고 그딴 이유로 신성 왕국의 전력이 강해지는 것을 방해한 거라면 제대로 대가를 치르게 될 테니까. 알겠나?”
까- 까악! (알- 알겠습니다!)
까마귀들이 새떼를 쫓아내는 걸 그냥 묵인하는 것도 한계였다. 개미 제국도 모자라 거미도 발광하고 있었다.
작년까지만 하더라도 문제가 되는 곤충은 바퀴벌레 정도였는데, 1년 만에 개미와 거미가 위험할 정도로 견고한 세력을 만들었다.
그럼 어떤 일이 벌어질까?
바퀴벌레만 하더라도 먹이사슬의 하부를 담당하면서 쥐떼의 증식이 영향을 줬다.
쥐뿐만이 아니었다.
당연히 벌레를 잡아먹는 조류도 폭증하겠지.
그 결과가 이번 수송선 회항 사건이었다.
작년만 하더라도 새떼의 위험이 있었지만, 회항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었다.
“바퀴벌레 말고도 다른 벌레들 세력이 많이 커졌을 가능성도 있어.”
개미나 거미. 벌. 하루살이, 파리 같은 벌레들이 넘쳐났을 거고, 그걸 주식으로 하는 소형 포유동물이나, 조류, 파충류, 양서류, 어류까지 전부 불어날 가능성이 컸다.
[연산결과. 말씀하신 해당 시나리오 발생 확률이 85%··· 삑··· 93% 이상으로 집계됐습니다.]“일단. 곤충들의 변이 쪽에 신경 쓰고 연구하라고 하고. 거미 분석은 어떻게 됐어?”
인공지능 디아나가 마루의 질문에 답했다.
[현재까지 샘플을 분석 연구한 결과. 위험한 동물로 결론 났습니다.]여왕이라는 개체를 통해 협상이 가능한 개미와는 달리, 거미는 개별로 협상해야 했다. 게다가 더 피곤한 점은, 거미줄과 껍질에 있었다.
희연과 김 양이 처음 보낸 거미줄 샘플로는 알 수 없었던 특수한 성질이 밝혀졌다. 높은 밀도로 거미줄을 짜면 전파방해 효과를 내는 특성이었다.
그것 말고도 진동을 통해 신호를 전달할 수 있는 통신선으로서의 특성도 중요한 성질이었다. 이것을 응용할 수만 있다면, 통신장애를 극복할 방법이 됐다.
거의 모든 물체를 접착하고 묶을 수 있는 거미줄 자체의 성능도 뛰어났다. 심지어 접착력과 내열성까지 생각하면 이번에 마주친 거미는 신성 왕국에 호재가 될 수 있었다.
‘일이 잘 풀리기만 한다면 말이야.’
[김 양의 보고가 올라왔습니다.]디아나의 목소리가 차분하게 주요 내용을 출력했다.
[리치먼드(Richmond)시 공략 성공.] [시의 절반을 장악하고 있던 거미, 대부분 사살.] [생포한 거미 본국으로 후송 중.]마루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리치먼드에 생존자 무리를 발견.] [생존자를 어떻게 할지, 처리 방안을 요청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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