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thless Warrior RAW novel - Chapter 158
“뭐? 탈 것? 지금 탈 것이라고 했나!”
“그래, 탈 것.”
과거 회차에서 피도 눈물도 없는 자가 본드래곤을 타고 다니는 게 그렇게 부럽고 멋져 보이더라. 지금 이 몸은 그때 피도 눈물도 없는 자보다 훨씬 급이 높다.
나라고 못할 거 뭐있냐.
드라코 리치면 본드래곤 따위와 비교도 안 되는 상위의 존재다. 본드래곤이 그냥 스켈레톤화 된 드래곤이라면, 드라코 리치는 리치화 된 드래곤이다.
차원이 다르다. 잘나신 이 몸의 탈 것으로 딱 어울린다고 할 수 있었다.
“안 그래도 하나 필요했는데 이렇게 근사한 게 나타나다니 딱좋군. 흐흐흐.”
잘 됐다는 듯 두 손을 비비며 다가가자 드라코 리치 쿠쿠바는 본능적으로 꺼림칙함을 느낀 듯 정색한다.
“이놈! 인간 주제에 그런 사악하고 음흉한 웃음을 흘리다니! 가까이 오지 말거라!”
크게 외친 쿠쿠바는 입을 쩌억 벌린다. 시커먼 연기가 그의 입에서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피하게! 마법의 숨결을 토하려는 거야!”
콰아아아앙!
삽시간에 검은 연기가 우리를 덮쳤으나 페자무트가 시의적절 하게 방어 마법을 펼쳐냈다. 역시 고위 마왕이라 그런지 이런 험악한 공격도 잘 막는다.
“바로 반격하세나!”
페자무트는 투쟁심이 불타오르고 있었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얼른 도망치자고.”
“엥?”
욕까지 날리고 기세등등하던 내가 갑자기 빠지자고 하니 페자무트는 혼란스러워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를 붙잡고 지하공동의 입구로 달려 나갔다.
“이놈들! 이제 와서 튀려는 것인가!”
성난 쿠쿠바가 검은 연기 너머에서 마법을 연달아 쏘아냈다. 마치 파랗게 타오르는 초승달 같은 마법이 회전하며 날아왔는데, 딱 봐도 위력이 장난 아니었다.
묵직한 땅 드레이크도 일격이겠군. 저런 걸 10개나 줄지어 쏘아내니, 정말 대단한 실력이잖아.
하지만 나 역시 호락호락하지 않다. 바로 SS등급 휘감는 촉수를 사용했다. 그러자 기괴하게도 양팔이 기다란 촉수로 변한다.
문어처럼 끈적이는 촉수는 아니고 마치 파충류의 꼬리와 같은 느낌이었다. 탄력있고 강하며, 표면은 단단한 비늘로 덮혀있었다.
이게 괜히 SS등급 스킬인 게 아니다.
카앙!
촉수를 휘둘러 쇄도해 오는 강력한 파괴 마법을 쳐냈다. 파란 스파크가 사방으로 튀며 사람보다도 더 큰 초승달 형태의 마법이 튕겨나가 벽에 충돌한다.
콰아앙!
하지만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양팔의 촉수를 휘둘러 나머지 9개의 초승달도 모조리 쳐냈다. 극속으로 날아온 마법 10개를 쉬지 않고 쳐냈으니 그야말로 내 움직임은 보이지도 않을 정도였다.
한 가닥 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빛이 파파밧! 튀는 정도만 보이겠지.
콰앙! 콰앙! 쾅! 쾅! 콰아앙!
튕겨나간 초승달이 지하 공동 여기저기를 때리며 대폭발을 일으켰다. 흙먼지와 소음으로 사방이 어지러운 틈을 타, 페자무트와 함께 지하를 빠져나왔다.
“쫓아오지 않을까?”
“그렇지는 않을 걸세. 저 드라코 리치는 거드름 부리는 성격이라 일단 달아나면 쫓지 않아. 조무라기가 튄다고 여기고 무시하지. 다만 자네가 성질을 긁었으니 어떨지 모르겠군.”
다행히 드라코 리치는 엉덩이가 무거운 듯 추격해 오진 않았다. 도망쳤으니 이겼다고 여긴 모양이다.
“아니, 그것보다 왜 도망가는 건가! 탈것이라며!”
페자무트는 복수를 하고 싶었던 모양인지 분해보였다.
“생각보다 강하더라, 그 녀석.”
그대로 싸웠으면 승리할 수 있겠지만 상당히 애 먹을 거다. 과연 전설이란 이름이 아깝지 않은 게 초월자 셋의 후원을 받은 내가 전투를 꺼리게 만들 정도였다.
“싸우면 중상은 피할 수 없겠더군.”
“중상 정도야 자네 능력이면 아무 것도 아니잖나?”
“물론 그렇긴 하지.”
나는 이미 밤하늘에 별마저 생긴 초인이다. 그깟 상처가 문제겠는가.
“하지만 더 괜찮은 방법이 있다면?”
“오? 남을 나락에 떨어뜨리는데 특화된 그 머리에서 뭔가 또 나온 모양이로군?”
페자무트는 내가 꾀를 냈다는 걸 눈치채고는 투덜거리는 걸 멈췄다. 오히려 그는 만족한 듯 웃으며 기대감을 감추지 못했다.
“흐흐흐, 악랄한 계책을 내는 건 자네가 최고야. 그 머리에서 나온 계획으로 얼마나 많은 이들을 파멸시켰나? 원래 자네 인성은 용서가 없으니 망할 드라고 리치도 이제 끝이군.”
이거 칭찬인지, 욕인지 좀 애매한데.
“저 쿠쿠바란 놈은 현재 언데드 도시의 특성을 잘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진정한 주인이 나란 점도 모르는 모양이야.”
“맞네. 저놈은 과인을 쫓아내고 도시를 차지했다고 천하태평이야. 도전받지 않은 강자 특유의 오만이지.”
“그렇다면 모르스 쏠라의 힘을 과소평가하고 있겠군.”
얘기해 보니 심지어 마룡 슈바르체토이펠이 이 도시의 최대 투자자란 점도 모르는 것 같단다.
“그 망할 영감이 이번 사태에 관여하지 않은 탓이지.”
어쩌면 이 산에 마룡이 산다는 걸 알지 못하는 게 아닐까 싶다.
“페자무트, 당신도 이 기회에 정신 좀 차려. 슈바르체 영감 잔소리가 꼭 틀린 것만은 아니니까.”
“끄응…그런데 지금 어디 가는 건가? 이 방향이면 도시를 벗어나 그 영감탱이 땅으로 가는데?”
“맞아. 슈바르체 영감을 보러 가는 거지.”
내 말에 페자무트는 펄쩍 뛰며 싫어했다.
“소용없네! 말해도 도와주지 않을 걸세! 그 영감은 귀찮은 일이라면 질색하지. 신경 쓰는 건 오로지 자기 수염뿐일세.”
“가보면 알아. 너무 열 내지 말라고.”
필리를 타고 앞장서자 페자무트는 투덜거리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듯 따라온다. 어차피 그는 내가 없으면 한 명의 노숙인에 불과하니까.
산을 좀 탄 뒤에야 페자무트와 함께 슈바르체토이펠의 둥지에 도착했는데, 그가 기다렸다는 듯 나타났다. 슈바르체토이펠은 페자무트는 보자마자 잔소리를 시작했다.
“도시를 시원하게 말아 먹은 놈이 무슨 낯짝으로 예까지 나타나!”
“아니, 누군 뭐 오고 싶어서 온 줄 아나? 영감탱이!”
옆에서 지켜보고 있자니 둘의 관계는 사이가 안 좋은 사장과 투자자를 떠올렸다. 다툼은 점점 유치해져갔는데, 이 중년과 노인의 싸움은 완전 애들 같았다.
“영감탱이! 그 긴 세월 동안 이룬 건, 수염이 자란 것 밖에 없지?”
“흥! 부러우면 부럽다고 말해! 염소 같이 경박한 수염 밖에 안 나는 놈.”
인신공격으로 시작된 싸움은 이내 멱살잡이로 이어졌다. 진짜 못 봐주겠군. 지금 유치하게 아웅다웅하는 이 둘은, 하나는 전설의 마룡이고 다른 하나는 제국 서남부를 공포에 몰아넣었던 고위 마왕이다.
“헹! 못생긴 놈이! 인물로 따지면 이 페자무트 님이 훨씬 낫지!”
“뭐라! 이 피도 양심도 없는 마왕이!”
더 봐줄 수 없던 나는 박수를 짝! 쳤다.
“둘 다 곁에 자식이 없어서 다행이군. 이런 유치한 꼴을 보고 배울 일이 없으니.”
내 말에 쌍심지를 켜고 멱살을 잡던 둘은 머쓱해져서 떨어진다. 자기들이 생각해도 좀 그런 모양이었다.
“자네, 왔군.”
“잘 지내셨소? 슈바르체 영감.”
“흥! 자네가 데려온 누구 덕에 이 고요했던 산지가 하루도 평안할 날이 없구먼!”
그러자 페자무트가 다시 발끈한다.
“영감탱이! 어서 심장발작으로 돌아가시는 게 모두에게 좋을 거야! 과인이 장례식은 거하게 해줄 테니 걱정 말고.”
“뭐라!”
“안 그래도 자괴감만 느끼고 있잖나? 전설의 마룡이라고 불리면서 요즘의 새로운 마법 이론을 이해하지 못해서 머리만 긁고 있는 거 다 알고 있네.”
“크윽!”
사실인 듯 슈바르체토이펠이 관우처럼 탐스러운 하얀 수염을 부르르 떨었다. 그러자 페자무트의 조소가 더욱 짙어진다.
“어차피 영감탱이가 하는 일이라곤 배에 복대나 두르고 난로가에서 요즘 마법이 개성이 없고, 진정한 마법은 옛 사람들이 했다고 불평이나 늘어놓겠지.”
“이 멍텅구리 마왕 놈이!”
안 본 사이에 페자무트의 말발이 엄청 늘었는데. 슈바르체토이펠을 주둥이로 다운시키기 직전이었다. 내버려두면 또 한 번 거하게 터질 기미라 끼어들었다.
“페자무트, 당신은 지금처럼 늙으면 슈바르체 영감의 반도 못 따라갈 테니 잘난 척할 거 없어.”
“크윽.”
“얼마 전까지 뒷방 늙은이 신세 경험해 본 사람이 늙은 마룡을 놀리면 못 쓰지.”
페자무트는 할 말이 없는지 고개를 돌리고 딴청을 부렸다. 괜히 옆에 있는 마법 시약들을 살피는 시늉을 한다. 지켜보던 슈바르체토이펠은 비싼 거니까 떨어뜨리마! 라고 소리를 꽥 지르더니 근처의 흔들의자에 몸을 묻는다.
“자네의 방문은 반갑지만 어찌 이 몸의 집에 저런 골칫덩이를 데려온 건가?”
“저 골치의 일을 해결해 줘야지 않겠소.”
“이보게, 발러슈테드. 자네는 너무 사람이 물러. 이럴 때 보면.”
핀잔을 준 그는 뭘 도와주면 좋겠냐고 묻는다.
“일단 끓어오르는 심연을 소환하고자 하니 도와주시오.”
“뭐? 그 어둠의 존재를 또!”
슈바르체토이펠은 깜짝 놀란 듯 의자에서 몸을 일으킨다. 아무리 마룡이라고 해도 어둠의 대군을 직면하는 건 두려운 일이겠지.
“자네, 그 존재를 너무 쉽게 생각하는 거 같군. 지난번은 잘 끝났지만 그가 변덕을 부리면 우리는 벌레처럼 죽고 말아.”
“물론 그렇긴 하지.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좋소.”
나는 이미 두 번이나 더 끓어오르는 심연을 만났으며 그의 후원까지 얻어냈음을 말해줬다. 그러자 슈바르체토이펠은 눈이 찢어져라 커졌다.
“뭐라고! 그 존재의 후원까지 받았단 말인가!”
열 번 설명하는 것보다 한 번 보여주는 게 낫다. 나는 두 손을 촉수로 변형시켰다. 휘감는 촉수 스킬을 보자 슈바르체토이펠은 납득한 듯했다. 다만 크게 놀라 말을 잃어버렸다.
“발러슈테드, 자네는 대체….”
그러자 눈치를 보고 있던 페자무트가 기다렸다는 듯 끼어들었다.
“영감탱이! 이제야 그의 진가를 안 것인가? 참 아둔하군.”
어째서 자기가 기가 산 건지 모르겠군. 페자무트는 내 곁에 오더니 어깨를 으쓱으쓱하며 의기양양했다. 마치, 봐라, 우리 발러가 이 정도라고 자랑하는 모양새였다.
하지만 슈바르체토이펠은 정말 놀란 듯 페자무트의 그런 태도에 한 마디 쏘아붙이지 못하고 수염만 쓰다듬는다.
“자네가 그 존재에게 후원받고 있으니 만남을 청하는 건 가능하겠지. 위험천만해서 솔직히 거절하고 싶은 심정이지만 한 번 해보지.”
“고맙소. 슈바르체 영감.”
“그런데 대체 뭘 부탁하려는 건가? 그런 위험스러운 존재에게.”
슈바르체토이펠은 차마 끓어오르는 심연이라 부르지도 못하고 있었다. 하긴 저게 보통이다. 그런 격이 높은 존재 앞에선 정신이 하얗게 탈색되어 자아를 잃어버리기 쉬우니까. 대신격 아퀼라의 가호 덕에 덤덤한 내가 이상한 거다.
“그에게 팔 물건이 있어서 말이오.”
내 말에 슈바르체토이펠은 질렸다는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자네는 정말 드래곤조차 할 말을 잃게 하는군. 정말 그런 존재와 거래를 하고 있었다니. 일전에 저 염소수염이 영혼석을 갖고 와서는 그 존재가 내린 영혼이 들어있다 자랑을 하기에 허풍으로 여겼네. 설마 참일 줄이야.”
“그 외에도 맘에 드는 탈것이 하나 있어서 노예로 만들려고 하오.”
“탈것?”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그를 보며 나는 웃을 뿐이었다.
***
슈바르체토이펠을 만난 뒤, 도시 외곽에 있는 마법사의 탑 지역으로 향했다. 그곳은 총 13개의 마탑이 솟아 장관을 이뤘다.
이곳은 마법을 연구하는 상위 언데드들이 입주해있었는데, 12명의 강력한 리치에 의해 다스려졌다.
“영혼의 주인을 뵈옵니다!”
“영혼의 주인을 뵈옵니다!”
가장 큰 중앙 마탑에 도착하자 연락을 받고 미리 대기하고 있던 12인의 리치들이 내게 경의를 표했다.
이들은 끓어오르는 심연에게 받은 영혼을 페자무트가 언데드화 한 리치들이다. 살아생전 모두 한가닥하던 자들로, 지금도 도서관의 마법서에서 이들의 이름을 찾아볼 수 있을 정도였다.
실력은 다들 다르긴 하지만, 대략 중위권~하위권 마왕 정도의 힘을 지녔다. 쉽게 생각하면 눈앞에 마왕이 12명이나 있는 셈이니 실로 엄청난 전력이었다.
진짜 끓어오르는 심연은 챙겨줄 때는 확실히 챙겨준다. 옹색한 성품의 무덤에서 웅크리고 있는 자와는 상당히 비교됐다.
“위대하신 주인이시여. 저희 미천한 종복들을 어찌 찾으셨나이까?”
“간단하다. 이번에 도시에 들어온 드라코 리치 사냥을 도와줘야겠어.”
“음? 그자는 새로운 도시의 관리인이 아닙니까?”
지금의 대답만 봐도 드라코 리치인 쿠쿠바가 얼마나 큰 착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는 페자무트를 물리치고 이 언데드 도시를 날로 먹었다고 여기고 있는데, 심한 착오다.
모르스 쏠라의 중핵들은 모조리 내게 절대복종하는 노예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페자무트가 패해서 물러난 일도 그저 관리인이 바뀌었다고만 여기고 있었다. 애초에 페자무트는 이 리치들의 주인이 아니니까.
“상황을 설명해 주지.”
내가 그간 있었던 일을 알려주자 갑자기 12개의 해골 머리가 일제히 한쪽으로 돌아간다. 나를 쫄래쫄래 따라온 페자무트를 향해서였다.
그는 근처에서 신비한 마법 물품을 건드리며 놀고 있었는데, 자신에게 쏟아지는 시선에 해맑게 웃었다.
“하핫! 이놈의 인기하고는.”
쑥스러워 하는 그 꼴에 12명의 리치들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외면하며 소곤거린다.
“저래서 쫓겨난 겁니다.”
“과연 쫓겨날 만한 겁니다.”
“페자무트스러운 겁니다.”
“가까이 가지 않는 겁니다. 페자무트가 옮는 겁니다.”
“그 와중에 볼품없는 수염은 관리하고 있는 겁니다.”
그들은 페자무트를 무시하고는 이쪽을 향해 묻는다.
“주인이시여, 저희가 할 일이 무엇입니까?”
“간단하다. 그 멍청한 드라코 리치에게 축하연을 열어줘라. 도시의 정당한 지배자로 인정하겠다고.”
“음?”
12개의 해골 머리가 일제히 사선으로 기운다. 도대체 취지를 모르겠다는 듯했다. 하지만 내가 계획을 설명하자 그들은 사악하게 웃어댔다.
“축하연이니 드래곤의 덩치로 오기는 무리. 결국 사람의 형태로 참석하겠군요.”
“과연! 적당히 띄워준 다음에, 놈의 흥이 올랐을 때 배때지에 칼빵을 놔주라 그거군요. 크흐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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