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thless Warrior RAW novel - Chapter 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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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각하구나.”
요 며칠 사이 발푸르기스의 고운 얼굴이 펴질 줄을 몰랐다. 북방에서 계속 유민들이 내려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북쪽의 도시 상당수가 해일과 마수의 공격으로 초토화됐다. 이미 제국 북쪽의 여러 정부들은 그 기능이 마비된 상태다. 사람들은 귀족이고 평민이고 가릴 것 없이 유리걸식했다.
“큰일입니다. 바이에른도 점점 사정이 나빠지고 있습니다.”
“저장한 곡식이 썩어가고 있다. 맥주는 모두 상해버렸지. 이래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구나.”
바이에른은 전대부터 부유했다. 발푸르기스의 치세 중에도 그녀의 꼼꼼한 살림살이 덕에 창고에 물자가 가득 차 있었다.
한데 저절로 그것들이 썩고 상하기 시작하자 대책이 없었다. 자연의 법칙과 상식은 며칠 사이에 옛말이 됐다. 무덤에서 웅크리고 있는 자에서 흘러나오는 어둠의 기운이 모든 걸 망가뜨리고 있었다.
“원래 대기근이라고 해도 어떻게든 버티는 법입니다. 풀뿌리라도 캐 먹으며 질기게 살아가죠.”
지구 역사상 최악의 기근이었던 아일랜드 대기근조차 인구의 7/8은 살아남았다. 당시 아일랜드인은 하도 먹을 게 없어 평소에 입에도 대지 않던 해초까지 씹었다고 한다.
극한의 상황이었지만 자연의 도움으로 어떻게든 연명했던 거다. 하지만 그 자연조차 배신해 버린다면 어떻게 할까?
휘이이이잉-.
성벽 위에서 보자 저 멀리서 모래바람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시커먼 바람이 꿈틀거렸다. 바람이라 표현했지만 실제로 메뚜기 떼였다.
갑자기 기형 메뚜기 떼가 무수히 창궐해 모든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고 있었다. 그들이 지나간 곳에는 풀잎 하나도 남지 않을 정도였다.
“아직은 어떻게 버티고 있습니다만, 일주일만 지나면 아사자가 나오기 시작할 겁니다.”
“그 후에는 걷잡을 수 없겠지. 아사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게 뻔하다.”
티 하나 없이 깨끗하던 발푸르기스의 눈가에 다크서클이 확연했다. 군주로서 고뇌가 느껴졌다.
“발러, 백성들이 자식을 잡아먹고 부모를 버리는… 그런 천륜을 저버린 꼴을 보고 싶지 않구나. 하지만 이대로라면 그렇게 되겠지. 길가에는 병과 굶주림으로 죽은 시체가 너무 많아 치우지도 못할 거다.”
발푸르기스는 영명한 군주였기에 낙관적 예측 대신 상황을 정확히 그리고 있었다. 맞다, 내 장담하는데 다음 주 주말 정도면 인육시장이 생길 거다.
“걱정 마시길. 그런 일은 제가 막을 테니.”
나는 그녀의 손을 꽉 잡아줬다.
“자, 이제 선제후 회의가 있으니 가볼까요? 종말은 종말입니다만, 제국의 일도 중요한 법이지요.”
어차피 망할 테니까 제국 따위 어떻게 되든 알 바 아니라고 놔둘 순 없다. 결국 마지막에 승리할 수 있다는 믿음 아래 할 수 있는 일을 계속 해나가는 수밖에.
새삼 비록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하더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말이 와 닿았다. 종말을 경험해 보지 못했을 때는 그게 바보 같은 소리라 여겼는데, 직접 겪어보니 현명하단 생각마저 들었다.
희망이란 건…, 비록 좋아하지 않더라도 마지막까지 놔서는 안 될 것이기에.
***
그날 선제후 회의가 열렸다. 이번에는 특이하게도 마법을 사용해 화상회의를 하는 것처럼 모였다.
선제후 회의는 투표를 하게 되니 마법을 지양하고 직접 만나 확인하는 게 관례였으나 비상시니 어쩔 수 없었다.
이날 회의에서 중대한 안건들이 처리되었다.
첫 번째로, 불의 마왕의 가짜 딸과 결혼한 트리어 선제후의 아들 레온이 아버지의 자리를 물려받았다. 그는 파탈레 몬스트룸이 돌아오자 자기 신부가 가짜란 논란에 휘말렸는데, 숨겨둔 쌍둥이 여동생이었다는 식으로 대강 넘어갔다.
이미 가짜 공주는 아들까지 낳았은 데다가 남편이 확고부동한 후계자였기에 거기 시비를 거는 인원은 없었다.
두 번째는 강철선제후라 불렸던 필립이 팔츠 선제후 자리에 복귀했다. 이미 보헤미아 왕 프리드리히는 지는 해였다. 필립의 복위에 반대하는 이는 없었다.
세 번째로 나 발러슈테드가 새로운 선제후의 자리에 올랐다. 작센 선제후는 폐지되고 비텐바이어 선제후가 새로 생겨났다.
마지막 네 번째로 황제의 붕어 소식을 알리고 새로운 황제를 뽑으려 했으나, 이건 실패했다. 황제의 죽음에 선제후단은 충격을 받았고 차기 황제 문제는 뒤로 미뤄졌다.
“제국을 위해서라면 이 자리에서 결정을 보는 게 좋습니다.”
내 의견에 대개 동의했지만 다들 여력이 없었다. 영지는 엉망인 데다가 새로운 황제를 누구로 뽑을지에 대해서도 의견이 갈리고 있었으니까.
선제후들은 피곤에 젖은 얼굴이었다. 정치적으로 노련한 그들조차 지금 같은 시절에는 수심을 감출 수 없는 것이겠지.
“이 문제는 그럼 다음 회의로 미루겠습니다.”
새로운 황제가 나와야 제국이 건재하다는 걸 보여줄 수 있겠지만, 강하게 밀어붙이지는 않았다.
이제 와서 제국이 무슨 소용인가. 새로운 선제후들이 뽑힌 것만 해도 제국을 유지할 최소한의 질서는 확보한 셈이다. 원래 제국을 지탱하는 건 황제가 아니라 선제후라 불리는 일곱 기둥들이었으니까.
“회의는 이걸로 해산하겠습니다.”
이 정도 결과를 이끌어 낸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었다. 모두가 떠나는 와중에 나는 마인츠 선제후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러자 그의 환영이 남았다.
“마인츠 대주교님.”
“말씀하시오, 공작.”
“직접 만나서 말씀드릴 중요한 얘기가 있습니다. 현재 사태에 대해서 말입니다.”
“흐음…….”
마인츠 선제후는 이번 일이 단순한 재난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을 거다.
“제국… 아니, 세계를 구할 유일한 방법이 있습니다. 함께 상의하고 싶은 내용이 많습니다.”
그는 수호자다. 어떻게든 설득해서 수호자의 위를 포기하게 만들어야 한다.
“직접 찾아뵙지요. 언제가 적당하겠습니까?”
“흐음… 영지의 위난이 긴급하오이다. 사흘 뒤에 괜찮겠소? 지금은 수습할 일이 많구려.”
“알겠습니다.”
***
사흘 뒤.
그림자 차원이동을 써서 마인츠로 출발했다. 마인츠는 경건한 도시기에 이런 어둠의 힘을 써 도시 안으로 들어가면 큰 실례가 될 수 있었다. 그래서 도시 외곽으로 갔는데 비참한 광경을 목도했다.
위윙. 윙. 윙.
가도를 따라 수많은 시체들이 널려있고 무수한 파리 떼가 날아다녔다. 여기저기서 쥐떼가 사람의 시체를 파먹고 있었다. 몸 여기저기 구멍이 난 시체에선 쥐굴처럼 쥐떼가 드나들었다.
입술을 절로 깨물 수밖에 없었다. 고명한 구마축사의 대주교가 돌보는 도시까지 이런 지경에 이른 건가.
죽지 않은 자는 전염병과 굶주림으로 길바닥에 쓰러져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다. 구강으로 파리가 들어갔다 나왔다 하고 있었지만, 입을 멍하니 벌린 채 하늘만 바라볼 뿐이다.
“비켜!”
“꺼지라고!”
갑자기 소란이 일었다. 땅을 파서 개미를 집어먹던 자들이 개미 알을 무더기로 발견한 것이다.
사람들은 서로 주먹을 휘두르며 개미 알을 먹겠다고 난리였다. 어른들이 그리 싸우는 틈에 애들이 영리하게 돌아다니며 땅바닥의 개미 알을 주워 먹고 있었다.
“이렇게 빨리 악화되다니….”
저장해 놓은 식량만 먹을 수 있었어도 이렇지는 않을 거다. 지금 제국의 제후들은 구휼을 하고 싶어도 밀이 썩어서 본인들도 굶고 있었다.
“필리, 이 사태를 내가 어떻게든 해결해야 해.”
오랜 애마의 목을 쓰다듬으며 마인츠 안으로 들어갔다. 이 도시의 화려하고 고풍스러운 모습도 비참함을 가리지 못하고 있었다.
“비텐바이어 선제후다.”
“어서 오십시오. 고귀하신 전하.”
선제후의 궁전에 다다르자 하인들이 날 부산히 맞이했다. 아직 궁전의 사람들은 그래도 안색이 괜찮았다. 어떻게든 밥은 먹는 모양이구나.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전하.”
필리를 맡긴 채 궁전 안으로 들어갔다. 안내 받은 곳은 궁전 안에 있는 대예배당이었다. 거기서 마인츠 선제후가 혼자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나는 방해하기 싫어 그의 근처에서 조용히 기다렸다. 한참 뒤에 마인츠 선제후가 먼저 입을 열었다.
“구해달라고, 구해달라고 매일 기도 중이오.”
“그렇습니까.”
“한데 어찌된 건지 빛의 신격 마르가께서 응답이 없으시오. 심지어 그분의 사제들에게 내리던 신성력까지 끊겼소. 교단이 세워진 이래 전대미문의 사태요.”
어쩐지 성직자들이 많은 도시인데 마인츠의 몰골이 비참하다 싶었다. 현재 재앙 속에서도 성직자들이 충분한 곳은 음식과 물을 정화하거나 창조해 그럭저럭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 빛의 신격은 사망했을 거다.
“유감입니다.”
“그렇소, 진정 유감스러운 일이지.”
“어려운 시기입니다.”
내 영지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재상인 리슐리외가 최선을 다하고 있었지만 매일매일 시체를 치우는 중이다. 사람들은 아침부터 밤까지 먹을 것에 대해 얘기했다. 그리고 꿈속에서도 빵을 찾아 헤맸다. 하지만 입에 넣을 건 아무 것도 없었다.
“할 말이 있다고 했잖소. 여기 앉으시오.”
우리는 예배용 장의자(長椅子)에 나란히 앉았다. 마인츠 선제후는 성호를 그으며 여전히 예배당의 성물을 쳐다보고 있었다. 빛의 신격답게 햇살을 형상화한 화려한 금제 성물이었다.
분명 신의 위엄에 어울리는 것이었지만, 저 성물로 찬양받던 주인은 이미 죽고 없었다.
“지금 이 사태가 종말이란 건 아십니까?”
“그렇다는 얘기가 돌더이다. 자세한 사정은 모르겠지만.”
“무덤에서 웅크리고 있는 자가 리켄티아투스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나는 차분히 사정을 풀어 설명했다. 긴 얘기였다.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발버둥치는 죽음의 봉인을 풀어 둘이 리켄티우스 밖에서 싸우게 해야 합니다.”
“크흠…….”
급진적인 얘기가 노쇠한 성직자의 심기를 거슬리는 것 같았지만 꼭 해야만 하는 얘기였다.
“만약 이 행성이 싸움터가 되면 그때는 감당할 수 없습니다. 이미 신격들은 패했습니다. 섬기는 이와 연락이 안 되는 건 마르가 교단 뿐만이 아니겠지요.”
한참 고민하던 마인츠 선제후는 수호자에 물었다.
“남은 수호자는 셋이라고 들었소. 그대와 나,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누구요?”
“동쪽 숲의 요정군주인 엘룬그라실입니다.”
“하면 그 셋이 수호자를 포기하면 발버둥치는 죽음이 풀려난다는 것이오?”
“맞습니다. 그것만이 유일한 희망입니다. 더 이상 무덤에서 웅크리고 있는 자가 다가오면 이 행성에 남아나는 건 없을 테니까요.”
내 얘기에 마인츠 선제후는 깊은 고민을 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꽤 그럴 듯한 얘기였소.”
안 좋은 예감이 스쳤다.
“대주교님.”
그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본디 난세에는 그대와 같은 협잡꾼이 설치기 마련이오. 이건 신격들의 시험이오. 자신을 섬기는 이의 신실함과 수호자의 사명을 확인해 보기 위한!”
미치겠군. 그렇게 결론을 내린 건가.
설마 마인츠 선제후가 이런 꼴통이었을 줄이야. 하지만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그는 일생을 빛의 신격을 섬기며, 수호자의 의무 속에서 살아왔다.
한데 빛의 신격이 죽었고 수호자의 의무도 포기해야 한다면 쉽게 받아들일 리가 없겠지. 그런 가혹한 진실을 거부하려면 당연히 나를 매도해야 하는 거고.
“발러슈테드! 그대는 진정으로 사악한 자요. 종말이란 신들의 구원으로 극복할 수 있는 법! 어찌 감히 어둠의 대군을 풀어놓자는 망발을 하시오!”
역시 이런 보수적인 자에게 어둠의 대군을 풀어놔 세계를 구하자는 의견은 꼴통처럼 들렸나 보다.
“후우….”
긴 한숨이 나왔다. 사실 협상이 결렬될 걸 예상하고는 왔지만 막상 이런 결과를 맞이하자 속이 쓰렸다.
쿵.
그때 대예배당의 문이 열리며 무장한 자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마인츠의 유명한 성직기사단인 ‘수레바퀴 기사단’이었다.
기사단장은 제국12궁으로 유명한 모하치의 기사왕 ‘루트비히 2세’다. 망국의 마지막 왕으로 모하치란 곳의 격전에서 유일하게 홀로 살아남았다.
하여 그는 자신의 나라가 끝장난 모히치의 이름을 따 모히치의 기사왕이라 불린다. 이후 떠돌던 그는 마인츠에 정착해 속세의 괴로움을 내려놓고 신께 서원해 모든 걸 바쳤다.
“이거 처음부터 준비를 하고 있었군.”
마인츠 선제후와 다툼이 일어날 건 예상했다. 하지만 기사단을 준비해서 함정을 파고 있었을 줄이야.
“사실 본인은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했지. 하지만 현명한 친우의 도움을 받았소.”
“누군가 당신을 부추겼군요. 대주교님.”
그게 누구냐고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기사단이 좌우로 갈라지고 멋들어진 생김새의 사내가 등장했기 때문이었다.
“이게 누구신가.”
내 입에서 절로 으르렁 거리는 소리가 나왔다. 그는 예절 바르게 내게 인사해왔다.
“고귀하신 비텐바이어 선제후 전하.”
이쪽과 앙숙이라 할 수 있는 헤센-카젤 방백이었다. 친 황제파였던 그는 내가 마왕 파르자를 죽여 빼앗은 뷔르츠부르크를 털어먹기까지 했던 자다.
단단히 손을 봐주려고 벼르고 있었는데, 전염병으로 망해서 고향으로 돌아갔다고 들었다. 한데 설마 마인츠로 와 선제후와 작당하고 있었을 줄이야.
그의 곁에는 대단히 고강한 기운을 뿜어내는 강자 둘이 있었다. 맹인검객 ‘피터 폰 단찌히’와 임기응변의 대가인 ‘미카엘 훈트’였다.
둘 다 제국12궁에 이름을 올린 절정의 검객으로, 헤센-카젤 방백이 내게 대항해 온 힘의 근원이기도 했다. 저 둘을 믿고 그간 설치고 다녔다고 할까.
“방백, 아주 날을 잡았군.”
대예배당에 포진한 진영이 실로 호화로웠다. 제국12궁 중 셋이 모인 데다가 그 유명한 수레바퀴 기사단이 거의 전부가 온 것 같았다. 그 외에 마법사들도 듬성듬성 보였다.
이 정도 전력이면 서열 1위 마왕 칼투스가 와도 갈려나갈 정도겠는 걸. 마왕 오드가쉬가 아니면 제국에서 이걸 돌파할 자는 없다고 봐도 좋겠지.
특히 저 모하치의 기사왕은 마리랑 동수를 이룰 정도의 절대강자니까.
“전하, 당신의 사악한 행보도 오늘로 끝입니다. 전하의 패배로 제국의 재난도 끝이 나겠지요. 물론 수호자의 위치에 계시니 죽이지는 않겠습니다. 그저 먼 섬의 수도원에 모시지요.”
“멍청한 놈. 설마 종말이 나 때문이라고 주장하려는 거냐?”
헤센-카젤 방법의 말에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저 쓰레기는 사태의 본질을 볼 생각은 안 하고 그저 자기 유리한 대로 이용하고 있었다.
뭐가 영웅인가. 평소 헤센-카젤 방백이 영웅이라 불리는데 불만이 많았는데 오늘 보니까 진짜 아니었다.
“그럼 아닙니까? 전하의 온몸에 어둠의 기운이 넘실거리는 건, 정의로움을 가슴에 품고 있는 자라면 모두 알고 있습니다.”
확실히 그건 그렇다. 어둠의 존재들에게 후원을 받고 있으니 내겐 사이한 기운이 강하다. 나를 악으로 규정하고 선동하기엔 딱이겠지.
“악? 크크크….”
비웃음이 절로 나왔다. 이렇게 된 이상 가장 먼저 예의를 버렸다. 내가 가진 것 중에 그게 가장 쓸모없으니까.
“자기 신격이 뒤진 줄도 모르는 멍청한 놈들이 감히 누굴 악이라고 규정하는가?”
내 말에 성직기사들이 분통을 터뜨렸다.
“역시 악마다!”
“저런 참담한 말을 하다니!”
“마르가 님께선 건재하시다! 우리를 시험하실 뿐!”
그들의 외침에 나는 발걸음을 떼 태양을 형상화한 성물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앗! 하는 외침이 터져 나왔지만 내 무력을 알고 있기에 쉽게 나서는 이는 없었다.
“봐라, 이 새끼들아.”
나는 성물을 두 손을 쥐고는 머리 위로 들어올렸다. 다들 놀라서 어쩔 바를 모르고 있었다. 이 안에는 과거 빛의 신격 마르가가 강신해서 남겨둔 그의 머리칼이 들어있다고 한다. 교단에서 애지중지하는 거다.
하지만 나는 그걸 있는 힘껏 대리석 바닥에 던져버렸다.
카앙! 와장창!
요란한 소리와 함께 금제 성물이 박살이 났다. 나는 거기 침을 퉤 뱉으며 말했다.
“너희 신은 뒤졌어. 병신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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