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thless Warrior RAW novel - Chapter 38
오후 3시. 초겨울의 햇살이 따뜻하고 기분 좋았다. 나는 싸움터가 잘 보이는 장소에서 느긋하게 차를 즐겼다.
아래쪽에서는 이 산을 양분하는 멧돼지바위 파벌과 벼락나무 파벌의 전사들의 전투 준비가 한창이다. 야행성인 이들에게 오후 3시면 새벽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인간의 감각으로 따지면 오전 3시라고 봐도 괜찮다. 이런 꼭두새벽부터 연장을 들고 나선 걸 보면 이번 일로 얼마나 달아올랐는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가뜩이나 언제 붙을까 간을 보던 두 파벌이다. 내심 차라리 잘 되었다고 생각하는 자들도 적지 않으리라.
“쿠라 무스투 구모라 후단 하라사(치고 도망가는 비겁한 자들은 들으라)!”
벼락나무 파벌에서 덩치 큰 오크가 하나 나오더니 상대방을 비난하기 시작한다. 그러자 이번에는 멧돼지바위 파벌에서 쌍두 오거가 나오더니 받아친다.
양측이 시끄러워지고 함성과 욕설이 난무했다. 전투 전에 기세를 확보하기 위한 행동이었다. 이어서 전투의 의식이 펼쳐지면서 전고를 둥둥! 두들기는 소리가 요란했다.
마치 원시인의 싸움을 보는 느낌이었다. 본격적으로 붙기 전에 이런저런 의식이나 말다툼이 상당히 오래 이어졌다. 그러다 보니까 벌써 뉘엿뉘엿 해가 져가고 있었다.
이러려고 일찍 만난 거로군. 아무래도 날이 저물어야 싸울 거 같다.
우우웅-. 우웅-,
그때 반지가 다시 울렸다. 쿠발트였다. 이 양반 할 일이 없나, 연락이 잦네?
-전하.
-발러. 별일 없는가?
-신격들께서 보우하시어 무탈합니다.
-하핫! 어울리지 않은 농담을 다 하는군. 오늘은 한 가지 정보를 입수해서 알려주려고 연락했네.
쿠발트는 좋은 소식을 전해왔다. 라이테르 기사가문 내에서 다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 발푸르기스가 내가 요구한 대로 기존의 자세와 다르게 너그러운 합의안을 제시했기에 이걸 받아들이자는 쪽과 끝까지 황제의 뜻대로 하자는 쪽으로 갈려서 다투고 있다는 것.
이쪽의 시간 끌기가 잘 먹혀들고 있었다. 발푸르기스의 성격상 절대 굴욕적인 합의는 하지 않을 것이지만 이를 모르는 라이테르 기사가문에선 제대로 낚여서 서로 아웅다웅하고 있는 것이다.
-일부러 소식을 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자네가 마음에 들어 할 것 같아서 말이야. 음, 그런데 웅장한 소리가 들리는구먼?
양 파벌은 이제 본격적으로 부딪치고 있었다. 산지가 떠날 것 같은 함성과 함께 서로에게 파도처럼 밀려간다.
-아, 지금 단체 토너먼트 경기를 구경 왔습니다. 멧돼지바위 팀과 벼락나무 팀이 맞붙고 있습니다. 오늘의 빅매치죠.
-그것 참 볼만 하겠군. 팀명도 재밌어. 자네는 어느 팀에 걸었나? 설마 내기의 재미를 모른다고 하지 않겠지.
-하하하.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나는 쿠발트에게 양팀이 다 패한다는 것에 걸었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는 의아해했다.
-단체 토너먼트에서 양팀 다 패하는 일은 극히 드물 텐데? 그런 경우도 있나?
-변수가 있으면 가능할 겁니다.
-두 팀 다 반칙으로 실격패 하는 것에 걸었나 보군? 확률이 엄청 낮을 것 같네만. 자네는 의외로 도박에선 화끈하군.
-하하하. 확률이야 올리면 되죠.
그래, 확률이야 올리면 된다. 게임의 결과를 얌전히 기다리는 건 내 취향이 아니었다. 잠시 더 쿠발트와 잡담을 하다 통신을 끊었다. 그러자 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쿠르라크가 나타났다. 해가 떨어지자마자 뱀파이어인 녀석이 활동을 시작한 것이다.
“겨울은 뱀파이어가 좋아하는 계절일 것 같군. 이렇게 해가 빨리 떨어지니까.”
“신은 뱀파이어가 되고 맞이하는 첫 겨울이라 잘 모르겠습니다만, 듣고 보니 실로 그렇습니다.”
“앞으로 많은 겨울들을 보도록 하게.”
나는 병력이 준비됐는지 물었다. 현재 휘하에는 언데드 70마리가 있다. 해가 떨어지면 싸울 준비를 하라고 일러놨었다.
“물론입니다. 때를 봐서 저들을 치실 생각이십니까?”
쿠르라크가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양 파벌을 내려다보며 묻는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무리다. 대략 봐도 1천이 넘는다. 양쪽이 지칠 때를 노려도 전력의 차이가 크다.”
“저희는 모두 전하를 위해 죽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각오는 고맙다만 저들이 언데드인 우리를 발견한다면 싸움을 멈출 것이다. 죽은 자란 존재는 원수끼리도 손을 잡게 만드는 힘이 있지.”
아무리 불사의 군대라고는 하나 1천 마리의 마족 한 가운데 뛰어들면 순식간에 녹아버릴 거다. 애초에 저들이 진을 뺄 때까지 기다렸다가 끼어 들 생각도 없었다.
“하오시면 어찌해야 합니까? 신이 아둔하니 전하의 명을 따를 뿐입니다.”
“이럴 땐 좀 더 간단한 수가 있다네. 쿠르라크, 자네도 앞으로 짐의 요령을 배웠으면 좋겠군.”
“부디 가르침을 주십시오.”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 필리를 향해 걸었다. 그러자 뱀파이어 하나가 엎드렸다. 나는 그의 등을 밟고 말에 올랐다.
“전쟁에서 가장 재밌는 게 바로 텅텅 비어있는 본진을 터는 것이다. 저들이 싸움질에 골몰하는 사이, 만만한 부락을 돌며 털어버린다. 부락에는 비전투인원이 주로 남았을 터. 그들을 남김없이 몰살시킨다.”
내 말에 쿠르라크는 감탄한 표정이 됐다.
“분명 저들은 격노할 것입니다! 신성한 전투로 승부를 가리기로 했으면서 상대가 별동대를 운용해 부락을 습격했다고 믿겠지요!”
“맞다. 그게 짐이 노리는 바다. 남김없이 처리할 수 있는 적당한 규모의 부락을 습격하겠다. 목격자가 있어선 안 된다.”
“명을 따르겠습니다!”
신성한 전투를 하든, 남자답게 승부를 하든, 알아서 하라고 해라. 나는 그들 부락에서 볼 일을 좀 볼 뿐이니까. 우리는 먼저 멧돼지바위 파벌에 속한 부락으로 갔다.
“싸그리 죽여라. 다만 불을 지르진 말라. 멀리서 불빛이 오르는 걸 보면 놈들이 싸움을 멈출 수도 있으니까. 그저 조용히 해치우라.”
“알겠습니다!”
나는 스펙터를 10마리 소환해서 숨거나 도망치는 자가 없게 방비했다. 이 유령들은 살아있는 자라면 귀신 같이 찾아내는 재주가 있었다.
“다락이든, 지하실이든 몰래 몸을 감춘 자가 있으면 찾아내 죽이라.”
스펙터들은 내 명을 받고 홀연히 사라졌다. 곧 부락에 비명이 가득 찼다. 나는 차분히 언데드들을 지휘했다. 전사들도 없는 이런 부락을 쓸어버리는데 직접 나설 필요는 없었다. 한데 그때 시스템 메시지가 떴다.
<S등급 스킬 언데드 통솔이 숙련2단계에 오르는 게 가능해졌습니다!>
오, 숙련2단계인가. 최근 언데드 무리를 이끌고 이리저리 다닌 게 효과를 본 모양이었다. 망설일 것 없이 스킬 포인트를 투자했다.
<반경 150미터 안의 언데드는 생명력 +15%, 방어력 +15%, 공격속도 +7%를 얻습니다!>
어둠의 오러가 나를 중심으로 한층 강해져 일대의 언데드들을 휘감았다. 그러자 그들은 새로운 힘에 흥분해서 빠르게 부락을 정리했다. 일대를 울리던 비명은 거짓말처럼 모두 사라졌다.
“남김없이 처리했느냐?”
“네, 전하. 숨을 쉬는 이가 없습니다.”
“좋다. 이번에는 벼락나무 파벌의 부락을 습격하자.”
그렇게 우리는 몇 개의 부락을 전멸시켰다. 5시간 이상 걸렸지만 돌아오는 길에는 꽤 만족스러운 기분이었다.
“수고해 일하고 돌아가는 길은 언제나 보람이 있구나.”
“실로 그러합니다. 전하.”
“옛 성현이 이르길 이마에 땀이 배어 나와야 빵을 먹을 자격이 있다고 했다.”
“노동하는 자야말로 먹을 자격이 있다는 말씀이시군요. 신은 전하의 사업을 위해 피땀을 바치겠습니다.”
쿠르라크는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나는 그게 아주 질 나쁜 농담이란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내 주위로 피와 땀이 없는 해골들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
우리가 몰래 부락을 쓸어버린 일 때문에 양 파벌이 완전히 뒤집어졌다. 이제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셈이 됐다.
며칠이 지나자 상황은 수습되기는커녕 더욱 악화일로였다. 어쩌면 양측의 지도부는 한 번의 전투로 승패를 정하고, 이후 원만한 합의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멧돼지바위 파벌과 벼락나무 파벌은 불구대천의 원수가 됐다. 그날부터 잔인하기 짝이 없는 섬멸전이 벌어졌다. 양 파벌은 상대방이라면 완전히 씨를 말리려고 했다. 산지가 피와 죽음으로 물들었다. 그리고 그럴수록 내 진영은 살이 쪘다.
“왜 언데드의 도시가 주로 추운 곳에 있는지 알겠다. 시체가 썩지 않고 얼어붙으니 언데드를 만들기 참 좋도다.”
나는 눈밭에 파묻혀 있던 한 덩치 큰 오거를 뱀파이어로 되살렸다. 이미 산지의 마족들은 재기불능이었다. 나는 괜찮은 시체들을 언데드로 살리는데 집중하며 그들에게 신경을 껐다.
이제 그들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마룡 슈바르체토이펠을 잡을 구상이 머릿속에 가득 찼다.
“전하. 양쪽의 희생이 돌이킬 수 없는 수준이 됐습니다.”
쿠르라크의 보고에 의하면 양 파벌을 다 합쳐도 몸이 성한 전사가 200을 넘지 못한다고 했다. 그야말로 끝장이다. 며칠 전만 해도 그들의 전사는 1천이 넘었었다.
“남김없이 정리하게 좋은 때입니다.”
“아니다. 남은 자들은 내버려 두라.”
왜 남겨두는지 쿠르라크가 의아한 표정이라 부연설명을 해줬다.
“너희 뱀파이어들이 먹을 가축이 남아있어야 하지 않겠느냐?”
“아! 신의 생각이 짧았습니다.”
“그것보다 들어보라. 짐은 이 산을 짐의 첫 영지로 삼을 작정이다.”
언데드의 도시를 하나 세울 작정이었다. 이 거대한 산지는 외부와 격리되어 있으며 방어에 유리하다. 새로운 터전으로 삼기 딱 좋았다.
제대로 된 도시를 만들기 위해선 앞길이 구만리겠지만, 로마도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니잖은가.
“실로 훌륭하신 계획이십니다!”
“상상해 보라! 쿠르라크!”
나는 산의 오솔길을 가리켰다.
“저 보잘 것 없는 길에 포장도로가 만들어질 것이다. 그리고 그 도로를 위풍당당한 데스나이트 기사단이 행진하겠지.”
이어서 산등성이 쪽을 가리켰다.
“병풍처럼 산이 둘러싸인 저곳에는 리치들의 마탑이 올라갈 것이다. 분명 이 도시는 사령술 연구의 중심지로 발돋움할 터!”
이번에는 창공을 가리켰다.
“하늘에는 장엄한 해골용들이 날아다니며 모두를 수호할 것이다! 생각해 보라! 쿠르라크! 그 위대한 도시를! 산 자들은 공포에 빠져 이 도시의 이름조차 언급하길 두려워할 것이다!”
쿠르라크는 이 장대한 계획에 크게 감탄해 홀린 듯한 표정이었다.
“전하! 그 위대한 도시의 이름이 무엇입니까?”
“자네에게 처음으로 들려주지. 도시의 이름은 모르스 솔라Mors Sola.”
“신이 감히 묻습니다. 그 뜻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간단하고도 명확한 뜻을 담고 있었다.
“오직 죽음만이!”
***
산의 마족들은 완전히 정리되었다. 남은 이들은 더는 싸울 생각도 못하고 피해 복구에 골몰할 뿐이었다. 이제 그들은 죽은 자의 존재를 알아챘지만 이미 모든 게 늦은 후였다.
일부는 산을 떠나고 일부는 계속 억척스럽게 살아가겠지. 아무래도 상관없는 문제였다. 그저 많은 시체가 산지 곳곳에 꽁꽁 얼어붙어 있단 게 중요했다. 그들은 마룡 슈바르체토이펠과 싸우기 위한 귀중한 자원이었다.
“흠, 역시….”
죽은 오거를 언데드로 만들어 봤지만 언데드 소환은 숙련4단계에서 꿈쩍도 안 한다. 산지의 마족으로는 더는 숙련도를 올릴 수 없었다. 그렇다면 지체할 필요 없이 슈바르체토이펠을 토벌하기 위해 나설 때였다.
나는 언데드 80마리를 이끌고 전투 준비했다. 더 소환할 수 있겠지만, 그랬다가는 쌍코피가 터질 거다. 적정선을 유지하며 계속 들이받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모두 들으라! 이곳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도시가 될 장소이다. 오로지 죽은 자의! 죽은 자를 위한! 죽은 자에 의한!”
나는 이것이 전설의 시작이 될 것임을 약속했다. 언데드들은 열광적으로 환호해 왔다.
“하지만 이 영광의 여정을 시작을 위해서는 반드시 슈바르체토이펠을 토벌해야만 한다. 이것은 우리 앞에 준비된 단 하나의 길이기에 어떤 이론異論도 있을 수가 없다!”
“케이에에에!”
이제 전투만이 남았다.
승자가 이 산을 지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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