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lesperson Kim Yubin RAW novel - Chapter 107
107화 – 싱가포르, 마케팅 콘퍼런스(6)
이 사람이 원하는 것은 뭘까?
유빈이 처음 만나는 사람과 대화할 때 기본적으로 품는 생각이었다.
영업사원의 기본적인 자세랄까?
이런 마음가짐은 영업뿐만이 아니라 인생 전반에 도움이 되었다. 누군가로부터 무언가를 원한다면 받기 전에 우선 줘야 했다.
존경, 칭찬, 사랑 등을 원하는 사람도 있고 1차원적으로 돈이나 물건 또는 정보나 지식을 원하는 경우도 있다. 아니면, 단순히 이야기를 들어 주기를 바라는 사람도 있는 반면에 상대방의 마음을 원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애초에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모른다면 아예 시작조차 할 수 없었다.
영업일을 하면서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알아채는 능력을 갈고닦은 유빈은 남자가 말하는 모습을 유심히 살폈다.
어려웠다.
남자는 사람을 대하는 일에 있어 프로였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상대방의 의중을 읽어 내는 사람. 오라도 평온한 바다처럼 흔들림이 없었고 표정도 거의 없었다.
만만치 않았다.
본사의 COO라고 자신을 소개한 톰 로렌스가 무엇을 원하는지 감조차 오지 않았다. 그래도 유빈은 포기하지 않고 대화하면서 계속 그를 관찰했다.
“그러니까 저를 만나기 위해 뉴욕에서 어제 출발해 한국에 도착했고 다시 싱가포르로 왔다는 말씀이군요.”
유빈은 이야기하면서도 믿기 힘들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정확합니다.”
“이메일이나 전화로 연락하셔도 될 텐데…….”
“중요한 일이니까요.”
톰 로렌스는 유빈의 생각과 관계없이 담담하게 답했다.
“어떤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고생해서 오셨으니 궁금하신 게 있으면 최선을 다해 답해 드리겠습니다.”
“머리 회전이 빠르군요. 내가 굳이 나의 장황한 여행담을 들려준 이유도 바로 그겁니다.”
“말씀하십시오.”
저녁 11시가 다 되어 가는데도 호텔 로비에는 드나드는 사람이 꽤 있었다. 톰 로렌스가 잠시 그들 중 한 명에게 시선을 돌리며 지나가는 투로 물었다.
가벼운 질문들이었다.
회사에서는 몇 년 일했는지, 마케팅 일은 할 만한지.
그러다가 갑자기 들어오는 질문이 있었다.
“바이오시밀러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요?”
“바이오시밀러요?”
유빈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언론에서 다룬 기본적인 정의에 관해서 설명했다.
“만약 제네스에서 바이오시밀러 사업에 착수한다면 어떤 항체의약품을 타겟으로 하는 게 좋을까요?”
그냥 평범한 질문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들었다면 역시 아무렇지도 않게 아는 바를 대답했을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을 급하게 찾아와 하는 질문이 바이오시밀러에 관한 거라니.
게다가 미세하지만, 질문하는 톰 로렌스의 오라에서 호의적이지 않은 기운이 감지되었다.
‘앤으로부터 뭔가를 들은 건가.’
유빈이 다시 한 번 답했다.
“그렇게 깊이 있게는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바이오의약품은 화학약품과 비교하면 부작용이 적고 효과는 뛰어난 대신 약값이 비싸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바이오시밀러가 유망할 수 있겠다는 정도만 알고 있습니다. 이것도 인터넷 기사에서 본 거고요.”
“그렇군요.”
톰 로렌스는 유빈의 정석적인 대답에서 딱히 의심스러운 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하지만 유빈이 방어적으로 대답한다는 사실을 감으로 알 수 있었다.
마크 램버트 CEO의 비서인 앨렌은 유빈 킴이 다니엘 듀레인 회장에게 바이오시밀러에 관해서 이야기했다고 털어놨다.
그녀의 제반 지식으로는 내용을 다 기억할 수 없었지만 듀레인 회장이 그의 이야기를 듣고 감탄했다고 했다.
톰 로렌스는 앨렌의 증언을 온전히 믿지는 않았다.
특히 듀레인 회장이 감탄했다는 부분은 더욱 그랬다. 살아 있는 제약업계의 전설이 아시아에서 온 젊은이의 이야기를 듣고 감탄했다고?
그건 마치 F1 드라이버가 아마추어 레이서의 운전을 보고 감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 안 되었다.
그 일이 있고 얼마 후 앤 해밀턴이 바이오시밀러에 관한 미래전략 보고서를 제출했다.
정리해 보면 듀레인 회장이 유빈으로부터 바이오시밀러에 관한 내용을 듣고 흥미로워 했으며 그 이야기를 손녀인 앤에게 전달했을 거로 추측할 수 있었다.
톰 로렌스가 추측한 첫 번째 시나리오였다.
그런데 지금 유빈의 대답으로 봐서는 그 추측의 가능성이 작아진 것이다.
그렇다고 유빈을 의심하기에는 그의 태도가 너무 자연스러웠다.
‘만약 내 의도를 알고 일부러 애매하게 답을 한 거라면…….’
작전을 바꾼 톰 로렌스가 다시 질문했다.
“듀레인 회장님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개인적으로 만난 적이 있나요?”
유빈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이거였구나.’
본사 COO가 한국 지사의 대리급 직원을 만나기 위해 지구 반 바퀴를 돌아온 이유. 바로 이것이었다. 이 사람의 최종 타겟은 듀레인 회장인 것이다.
본사 COO라면 CEO의 측근이다.
그의 행동엔 마크 램버트의 의중이 담겨 있을 가능성이 컸다.
마크 램버트가 듀레인 회장의 행동을 신경 쓴다?
만약 듀레인 회장에게 해가 될 일을 계획하는 거라면 확인해서 알려 줘야 했다.
여기까지 생각을 정리한 유빈이 마음을 정했다. 톰 로렌스가 자신에 대해 오해하도록 할 생각이었다.
문제는 그가 어디까지 알고 왔느냐는 거였다.
“한국에서요? 뉴욕에서는 우연히 뵌 적이 있지만, 한국에 오셨을 때는 먼발치에서밖에 보지 못했습니다.”
유빈이 조심스럽게 단어를 선택하며 답했다.
제네스 뉴욕 본사에서 듀레인 회장과 점심을 먹을 때는 마크 램버트의 비서인 여자와 함께였다.
정황상 이 사람은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을 가능성이 컸다. 유빈은 사실과 거짓을 적절히 섞어 가며 답했다.
“뉴욕에서 회장님을 만난 적이 있다고요?”
“하이 퍼포머 위크에 참석했을 때 만났습니다. 제가 마크 램버트 CEO의 팬이라서 얼굴이라도 한 번 보려고 무작정 그의 업무실을 찾아갔는데 거기서 우연히 회장님을 만났습니다. 좋은 분이셨고 점심도 함께 먹었습니다.”
유빈이 즐거워하는 표정으로 답했다. 누가 봐도 추억을 곱씹는 얼굴이었다.
톰 로렌스는 헷갈리기 시작했다.
유빈의 말이 진실일까?
다른 사람의 말이 참인지 거짓인지를 단번에 파악하는 그의 능력이 오늘은 성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놈 봐라.’
반대로 유빈은 톰 로렌스가 질문을 하면서 하나도 궁금해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오라가 말해 주고 있었다.
그 말은 그는 이미 유빈이 듀레인 회장을 만난 적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유빈이 고개를 끄덕이며 표정을 부드럽게 풀었다.
“듀레인 회장님을 만날 수 있어서 좋기는 했지만, 마크 램버트 CEO의 얼굴을 한 번이라도 볼 수 있으면 하는 아쉬움이 더 큽니다.”
“그의 얼굴을 꼭 봐야 하는 이유라도 있나요?”
머리싸움으로 두 사람 사이에 보이지 않는 불꽃이 튀었다.
“마크 램버트 CEO가 저의 롤모델이기 때문입니다. 젊은 나이에 경영 전문가로 인정받고 제네스라는 거대 기업의 CEO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씨크릿이라는 책을 보니 롤모델을 찾아가서 그의 이미지를 담아 오라고 하더군요.”
“그런 의미에서였군요.”
“램버트 씨가 인터뷰한 기사도 찾아봤습니다. 효율을 가장 중시하는 CEO라는 제목이었죠. 저도 일하면서 효율성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이번에 제네스 코리아에서 있던 감사 결과는 아쉬운 면이 있습니다.”
“어떤 면이 그렇습니까?”
톰 로렌스는 계속되는 유빈의 말에 살짝 짜증이 올라오려 했다.
COO를 어려워하지 않는 모습도 마음에 안 들었고 수다스러운 모습도 별로였다.
“감사 결과 현상 유지 쪽으로 결정되었는데 효율성을 중시한다면 조직을 축소하는 편이 낫다고 계속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왜죠?”
“불필요한 인원이 많습니다. 그들이 없어진다 해도 매출에는 큰 영향이 없을 것 같다고 나름 판단을 하고 있었습니다.”
유빈은 마치 면접을 보는 사람처럼 열과 성을 다해 대답했다.
“제대로 보고 있군요. 미스터 킴의 생각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곧 볼 수 있을 겁니다.”
톰 로렌스가 대화를 빨리 끝내기 위해 결론을 내는 듯한 투로 말했다. 유빈은 그의 말에 눈을 빛냈다.
유빈은 조그마한 단서라도 건지기 위해 톰 로렌스의 오라에 집중했다. 전생의 능력이 여러 가지 일을 겪으면서 점점 현생에 녹아들고 있었다.
마치 전생에서 사용했던 것처럼 능력이 자연스럽게 발현되었다.
-나비로이
약하지만 톰 로렌스로부터 분명한 사념이 전달되었다.
‘나비로이?’
나비로이라면 내년에 글로벌 런칭하게 되는 비뇨기과 약품이었다. 유빈이 어지 데일의 감사에 대비해 여성건강사업부에서 런칭을 유도한 제품이기도 했다.
그런 약의 이름이 톰 로렌스로부터 전달된 것이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유빈은 마치 못 알아들은 것처럼 딴소리를 했다.
“마크 램버트 CEO가 한국에 오십니까?”
“크흠, 한국 방문한 계획은 없습니다만, 미스터 킴은 유능하니까 다른 곳에서도 곧 얼굴을 볼 기회가 올 겁니다.”
톰 로렌스가 열정이 넘쳐 보이는 유빈을 향해 속으로 실소를 던지며 성의 없이 말을 던졌다.
본사는 아무나 올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특히 조그만 나라의 동양인 직원이라면 더욱 가능성이 작았다.
당연히 속마음을 알아채지 못할 거로 생각하고 한 말이었지만 유빈은 들여다보고 있었다.
“정말입니까? 제 자랑이라 말하기가 쑥스럽기는 합니다만 이번 마케팅 콘퍼런스에 참석하면서 아시아 BD팀 매니저 자리를 제안받았습니다.”
“그래요?”
‘높은 곳으로 가고 싶은 욕심이 가득하군.’
톰 로렌스는 유빈이 열심히 자신한테 능력을 어필하려는 것을 알았다. 동시에 유빈에 대한 의심도 완전히 사그라졌다.
괜한 발걸음을 했다고 생각하니 짜증이 솟구쳤다.
‘다시 한국으로 가서 듀레인 회장의 동선을 확인해 봐야겠군.’
그는 딴생각하며 무표정하게 이야기했다.
“그렇군요. 축하합니다.”
“감사합니다. 저, 미스터 로렌스 괜찮으시면 제가 식사라도 대접할 수 있을까요?”
톰 로렌스의 오라와 반응을 보니 의도한 대로 자신을 판단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욕심이 크고 권력에 약한 모습.
유빈이 연기하고 있는 캐릭터였다.
“아닙니다. 전 다시 움직여야 해서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같이 하죠.”
“아쉽군요. 한국에 오시면 꼭 연락해 주십시오.”
톰 로렌스가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 머무를 이유가 없었다. 끈질기면서 욕심 많은 이 직원을 빨리 떼어 내고 싶었다.
톰 로렌스가 멀어지자 유빈의 표정이 평소처럼 돌아왔다.
“아부하기가 이렇게 힘드네.”
성격에 맞지 않는 짓을 하려니 피곤했지만, 유빈은 그 대가로 톰 로렌스의 말에서 중요한 단서를 얻을 수 있었다.
‘설마 대규모 감원이라도 할 생각은 아니겠지? 그리고 나비로이는?’
유빈의 몸이 살짝 떨렸다. 마크 램버트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확신은 없었다.
듀레인 회장과 상의를 해 봐야 했다. 그러면 본사에서 돌아가는 일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알 수 있을지 몰랐다.
톰 로렌스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졌다. 유빈은 굳어진 표정을 풀지 않았다. 오늘은 어떻게든 넘어갔지만, 톰 로렌스 정도의 사람이라면 유빈의 행동에서 이상한 점을 느낄지도 몰랐다.
* * *
다음 날 마케팅 콘퍼런스는 시작하기 전부터 한 가지 주제로 떠들썩했다.
제네스의 에이티제이 인수합병 기사가 주인공이었다.
마케터들은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며 이야기하기에 바빴다. 유빈 역시 아침에 기사를 확인했다.
글로벌 제약업체인 제네스가 항체의약품인 애브비로 유명한 에이티제이 인수를 추진한다. 에이티제이는 시가총액으로만 보면 20대 제약회사에 들지 못하지만, 블록버스터 의약품인 애브비의 폭발적인 매출 증가로 바이오제약회사의 선두주자로 불린다.
파이낸셜타임스는(FT)는 제네스가 에이티제이의 인수 예비논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1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마크 램버트 최고경영자(CEO)와 제리 클레멘트 에이티제이 회장이 관련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FT는 전했다.
제네스는 세계 1위 제약사다. 시총 4840억 달러 규모다. 에이티제이 시총은 1130억 달러 수준이다. 제네스가 에이티제이를 인수해 두 회사가 합치면 시총 약 6000억 달러(약 700조원)가 넘는 최대 공룡 제약사가 탄생하게 된다. 이는 올해 최대 규모 인수합병(M&A)이기도 하다.
제네스는 M&A를 통해 항체의약품이라는 새 성장 동력을 확보할 수 있다. 최근 제약사들은 주력 제품의 특허가 만료되는 상황에서 인수합병을 통해 돌파구를 찾는 분위기다.
하지만 아직 양측의 논의가 초기 단계로 변수가 많은 상황이다. 높은 인수합병 가격과 합병과정에서의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내부의 반발 등도 걸림돌이라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적했다.
기사 내용을 곱씹어 보면서 바이오시밀러에 대해 묻던 톰 로렌스의 질문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는 기사 내용을 이미 알고 그런 질문을 했던 걸까?
기사가 나온 타이밍이 공교로웠다.
만약 제네스와 에이티제이의 인수합병이 순조롭게 이뤄진다면 셀아키텍트의 바이오시밀러 판매권을 제네스에서 받을 이유가 없었다.
유빈이 알기로 셀아키텍트의 개발단계 중 가장 앞서 있는 제품이 에이티제이의 애브비 바이오시밀러였다.
듀레인 회장이 투자하면서 내건 조건이 휴지통으로 들어가는 셈이었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에이티제이 M&A를 추천하지 말 걸 그랬다는 후회가 들었다.
마크 램버트가 그냥 제네스의 CEO가 된 건 아닌 모양이었다. 유빈의 주장이 들어간 앤의 리포트가 기반이 되기는 했지만 그걸 받아들여서 실천하는 것 또한 능력이었다.
유빈은 제네스도 셀아키텍트도 잘되길 바랐다.
그런데 이대로 상황이 진행된다면 두 회사는 적대적인 관계가 될 수밖에 없었다.
마크 램버트는 미래 성장 동력도 얻음과 동시에 듀레인 회장의 투자도 빛이 바래게 하려는 것 같았다.
약간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유빈이 원하는 것은 제네스가 잘되는 것이지 마크 램버트가 잘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둘은 떼어 놓을 수 없는 관계였다.
하나가 잘되면 다른 하나도 잘될 수밖에 없었다.
유빈은 이제 선택을 해야 했다.
마크 램버트를 제네스 CEO에서 물러나게 하려면 제네스를 흔들 수밖에 없었다.
유빈이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렸다.
여러 가지 퍼즐이 제자리를 찾아가야 가능한 계획이었다. 하나라도 어긋난다면 실패할 가능성도 컸다.
‘그래도 해볼 수밖에 없어. 시간이 걸리기는 하겠지만, 서우석 회장님이라면 해내실 수 있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