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lesperson Kim Yubin RAW novel - Chapter 114
114화 – 드림팀 구성(2)
20층 역시 직원들은 거의 모두 퇴근한 후라 한산했다.
막 퇴근하려는 참인지 히잡을 쓴 여직원이 미소를 보내며 그의 옆을 지나갔다.
“저기, 미안한데 이 층에······ BD라는 게 있나요?”
“BD요? BD면 Business Development인데요. 유빈 킴 매니저를 찾아오셨나요?”
여직원의 말을 들은 타츠야가 눈을 깜박였다.
2단계 클리어!
BD는 해결이 되었다. 동시에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며칠 전 그를 스카우트하겠다고 찾아온 동양인이었다.
“유빈 킴 매니저님이라면 아직 사무실에 있어요. 저쪽으로 쭉 가시면 돼요.”
“아, 감사합니다.”
명패가 달린 BD 팀 매니저의 업무실 앞에서 타츠야가 잠시 망설였다.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멀뚱히 서 있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문이 스르륵 열렸다.
“미스터 츠카모토, 들어오시죠.”
유빈이 사람 좋은 웃음으로 그를 맞았다.
“아, 안녕하세요.”
반면에 타츠야는 무안한 표정으로 인사를 했다.
“퇴근 시간도 지났는데 무슨 일이십니까?”
“아, 저, 그게······ 혹시 이 보고서 매니저님께서 쓰신 건가요?”
타츠야가 품 안에서 주섬주섬 보고서를 꺼냈다.
“네, 맞습니다. 그게 왜 미스터 츠카모토에게 있죠? 저는 미즈 콜슨의 자리에 두었는데요.”
뻔뻔한 유빈의 대답에 타츠야는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왜 그러시나요? 제가 미스터 츠카모토의 일을 대신 해 드려서 좋지 않으세요?”
“아니, 지금 상황이 뭔가 이상한 것 같은데요. 왜 BD 팀 매니저님이 제 대신 보고서를 작성해서 제출까지 하셨는지 이해가 안 됩니다.”
“정말 그걸 물어보려고 여기까지 찾아온 건가요?”
“······그것도 그렇고, 저, 어떻게 보고서를 작성하셨는지 궁금하기도 해서요.”
“읽어 봤나요?”
“읽어 봤습니다.”
“어떤가요?”
“······며칠 걸리셨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3일 걸렸습니다. 제가 미스터 츠카모토에게 스카우트 제안을 한 날, 미즈 콜슨에게 부탁해 자료를 받았습니다.”
유빈은 대답을 듣지 않아도 타츠야의 표정으로 그가 보고서를 보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3일이라고요? 도대체 어떻게?”
타츠야도 분석은 3일 만에 끝냈지만, 보고서를 작성하는 데는 일주일이 걸렸다.
믿을 수 없는 게 솔직한 마음이었다.
“궁금합니까? ‘궁금하면 오백 원.’이라고 해도 못 알아듣겠죠······.”
유빈의 알 수 없는 말에 타츠야는 대꾸할 말을 생각하지 못했다.
“그럼 제다이의 마인드 트릭(Jedi mind tricks)이라고 하죠.”
“네?”
“스타워즈 좋아하지 않나요? 자리에 포스터도 붙여 놨던데.”
“좋아합니다만······ 마인드 트릭이라니······.”
“이렇게 설명을 하죠. 스타워즈에서 강력한 황제와 그의 제국을 무너트리기 위해서는 제다이 한 사람의 힘으로는 불가능하죠. 그래서 제다이는 여러 행성을 떠돌아다니며 황제에 대항해 같이 싸울 동료를 구합니다.”
“······.”
타츠야의 황당해 하는 반응에 굴하지 않고 유빈은 이야기를 이어 갔다.
“어느 날, 제다이는 어떤 행성에서 잠재력이 큰 동료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친구는 자신의 재능을 이용해 편하게 살면서 하루하루를 허투루 보내고 있었죠. 그의 고향이 있는 행성으로 돌아갈 날만 그리워하면서요.”
타츠야의 표정이 순간 변했다.
유빈이 이야기에서 누구를 지칭하는지 알았기 때문이었다.
“제다이는 그를 찾아가 황제에 대항해서 함께 싸우자고 하죠. 하지만 편안한 일상에 깊게 빠져 있는 그는 제다이를 의심하고 따르려 하지 않죠.”
“······그래서요?”
“그래서 제다이는 그 친구를 설득하기 위해 마인드 트릭을 사용한 겁니다.”
“······그런 거였군요. 정말 마인드 트릭이었군요.”
스타워즈의 이야기에 살짝 긴장이 풀린 타츠야가 웃음을 보이자 이야기하던 유빈의 표정은 오히려 진지해졌다.
“지금 미스터 츠카모토는 재능을 낭비하고 있습니다.”
“그게 무슨······.”
“일주일 정도 지켜보니 알겠더군요. 상사가 한 달의 말미를 준 보고서는 일주일 안에 해치워 버리고 나머지 시간은 업무와 관계없이 딴생각만 하면서 보내고 있다는 사실 말입니다.”
타츠야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아무도 알지 못할 거로 생각했다.
“사람들은 바보가 아닙니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과 요령을 피우는 사람은 차이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보스는 저한테 허구한 날 자료 분석 일만 시킵니다. 대안도 제시해 봤지만, 전혀 마케팅 플랜에 고려하지 않더군요. 저도 처음에는 열심히 해 볼 생각이었습니다.”
타츠야가 처음으로 속마음을 털어놨다.
일 년간의 아시아 지부 생활에 실망한 그는 현실에서의 자신의 처지를 어떻게든 잊어 보려고 했다.
스타워즈의 제다이에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면서 황제를 무찌르는 상상을 하며 대리만족을 했다.
하지만 유빈은 그 상상마저도 무참히 깨 버렸다.
스타워즈 속에서도 그는 그저 하루하루를 무심하게 흘려보내는, 조연도 되지 못하는 엑스트라에 불과했다.
그가 절대로 되고 싶지 않은 캐릭터였다.
“저와 함께 일하다 보면 딴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바쁠 겁니다. 시간도 빨리 갈 거고요. 이왕 커리어 패스로 아시아 지부에 왔으면 배워 가야 하는 게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 상태로 어영부영 최선을 다하지 않는 습관이 든 채로 지내다가 일본에 돌아가면 다시 열심히 일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
“미스터 츠카모토, 제가 어떤 마인드 트릭으로 3일 만에 미스터 츠카모토가 감탄할 만한 보고서를 썼는지 알려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미스터 츠카모토가 재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일을 주겠습니다.”
“······황제는 누군가요?”
“그건 나중에 알려드리겠습니다.”
질문을 얼버무리며 유빈은 속으로 감탄했다. 감이 나쁘지 않은 친구였다.
타츠야가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제가 뭘 어떻게 하면 됩니까?”
타츠야의 질문에 유빈이 미소를 지었다.
유빈이 타츠야의 손에 들려 있는 보고서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저 녀석을 완성하기 위해 3일 밤을 꼴딱 새운 참이었다.
유빈 혼자서 한 일은 아니었다.
제네스 코라아에 있는 인맥을 총동원해 항암사업부의 예전 자료를 구했고 여성건강사업부 마케팅 PM들의 도움도 받았다.
물론 자료를 분석해 대안을 제시한 통찰력과 전체적인 그림을 하나의 보고서로 작성한 사람은 유빈이었다.
삼고초려까지는 아니더라도 타츠야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오글거림을 참으며 그가 좋아하는 영화 스타워즈의 내용을 빌릴 정도로 최선을 다했다.
타츠야도 유빈의 그런 마음을 조금은 알아준 것 같았다.
그의 오라를 보니 경계심은 거의 사라져 있었다.
BD 매니저라는 사람이 찾아와서 자신의 이력서를 주지 않나, 자신을 스카우트하기 위해 보고서를 작성하지 않나.
평범한 사람은 아니라고 느꼈지만 유빈의 열의와 진심은 확실하게 타츠야에게 전달되었다.
“BD 팀에 합류하십시오. 그래서 올해 목표를 성취하면 미스터 츠카모토는 한 단계 발전한 상태로 내년에 일본으로 돌아가게 될 겁니다.”
“하지만 지금 맡은 일도 있고······ 미즈 콜슨이 허락하지 않을 겁니다.”
타츠야가 현실을 이야기했다.
좋게 말하면 신중했고 나쁘게 말하면 결단력이 부족한 타입이었다. 하지만 유빈에게 필요한 것은 그의 결단력이 아니었다.
이번에도 그의 마음을 돌리지 못한다 해도 유빈은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한 단계, 한 단계씩 사람의 마음에 다가가는 일.
영업의 비법이었다.
“그 부분은 걱정 안 해도 됩니다. 타츠야 씨가 승낙하면 미즈 콜슨하고는 제가 따로 이야기하겠습니다.”
“에? 정말입니까?”
“정말입니다.”
유빈의 장담에 타츠야의 고민이 깊어졌다.
오늘 아침에도 출근하면서 일본에 돌아갈 D-DAY를 달력에 체크한 그였다.
“······성함이 뭐라고 하셨죠?”
“유빈 킴입니다. BD 팀 매니저고요.”
타츠야가 그제야 유빈을 자세히 살폈다.
이력서를 통해 이미 알고는 있었다. 그래도 매니저라고 하기에는 과하게 젊어 보였다.
리전 헤드쿼터 정도 되면 직급과 나이가 큰 연관이 없었지만, 대부분은 본사 출신의 백인인 경우였다.
그런데 이 남자는 그 대부분에 들지 않는 동양인이었다.
“BD 팀에 합류하면 프로그램을 1년 단축해 준다는 조건은 확실한 거죠?”
“제 모든 것을 걸고 약속하죠.”
“휴우,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군요.”
“타츠야 씨. 그럼 이렇게 하죠. 일주일 동안 다시 한 번 잘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마음이 정해지면 다음 주 월요일 이곳 제 사무실로 출근하십시오. 그럼 미스터 나라옌이 바로 부서 발령을 낼 겁니다.”
“그래도 될까요?”
유빈은 적절히 당기고 밀면서 타츠야의 부담감을 덜어 줬다. 타츠야의 성격을 봤을 때 당기기만 해서는 오히려 반발감만 키울 수 있었다.
“물론입니다. 그리고 BD 팀에 오기로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면 USB에 들어 있는 자료를 다음 주 출근 전에 모두 숙지해 주십시오. 그리고 상황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해 주십시오.”
“무슨 USB요?”
질문이 끝나기 무섭게 유빈이 타츠야의 손에 USB를 건넸다.
두 사람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타츠야의 대답에 유빈이 문밖으로 그를 안내했다.
“잠깐만요. 그런데 왜 저죠?”
막 문을 닫고 들어가려던 유빈이 타츠야를 다시 마주 봤다.
만약 타츠야가 유빈이 어떤 과정을 거쳐 그를 선택했는지 알면 기겁을 했을 것이었다.
인사 자료에 붙어 있는 사진의 오라에서 시작해서 경력은 물론이고 주변 사람과의 인터뷰, MBTI 성격유형, 국적 등을 기본적으로 고려했다.
그다음으로 확인한 것은 오라의 상성이었다.
유빈이 오라에 관해서 깨달은 것 중 하나가 사람도 잘 맞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오라도 그렇다는 것을 알았다.
말과 그림의 박 과장, 강북 2팀 이혁 지점장, 듀레인 회장 모두 유빈과 오라의 상성이 좋았다.
상성이 좋은 사람의 오라가 겹치면 고유한 색을 띠던 오라가 또 다른 고유의 아름다운 색을 만들어 냈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에는 겹친 오라가 어두운 흙색으로 변했다.
유빈은 그와의 상성을 확인하면서 진짜 제다이라도 된 듯한 기분이었다. 타츠야와 유빈 두 사람의 오라는 신기하게도 에메랄드 같은 연둣빛 녹색을 만들어 냈다.
다시 생각해 보니 위의 내용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느낌이었다.
“왜나고요? 미스터 츠카모토에게서 포스의 힘이 강하게 느껴졌거든요.”
“네?”
“그냥 그렇게 알고 계시면 됩니다. May the force be with you.”
유빈이 다시 한 번 환한 미소를 지으며 문을 닫았다.
“뭐라는 거야······.”
조금은 쑥스러울 수 있는 대답에 타츠야가 중얼거리며 손안에 들려 있는 USB를 만지작거렸다.
자리로 돌아온 타츠야가 컴퓨터를 켜고 USB를 꼽았다.
퇴근에 대한 생각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평범했던 그의 일상에 폭풍이 몰아친 느낌이었다. 그런데 그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오랫동안 잊어버리고 있던 뜨거움이 가슴 속에서 스멀거렸다.
그 느낌을 더 확실히 하기 위해서 USB 안에 뭐가 있는지 일단 확인해 봐야 했다.
폴더명이 특이했다.
JEDI YODA.
“에? 자기가 요다라는 거야, 뭐야.”
투덜거렸지만 그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파일별로 정리된 자료가 USB 안에 빽빽하게 들어 있었다.
“뭐야 이게······ 우소······ 이걸 일주일 안에 다 숙지하라고? 거기에다 발표까지? 잠깐 이게 뭐야? 프로젝트 나비로이?”
프로젝트 나비로이라고 이름 지어진 폴더를 연 타츠야는 그대로 얼어 버렸다.
“이게 가능하다는 거야?”
타츠야가 계속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나비로이의 매출 목표를 확인한 그의 머리가 가능성을 계산하기 위해 빠르게 돌아갔다.
월 단위로 계획된 스케줄도 가히 살인적이었다.
프로젝트를 완수하려면 거의 매일 야근을 해야 할 것 같았다.
‘5년 동안 해야 할 일을 1년에 몰아서 해야 할 것 같은데······. 정말 포스라도 필요한 거 아니야?’
“그래, 까짓것 못할 게 뭐 있어.”
왠지 자신의 분석력을 고려해서 짠 스케줄 같았다.
두려움이 엄습했지만 오랜만에 그의 가슴이 두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