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ved a tyrant from a slave trader RAW novel - chapter 14
그래서 필요한 것도 사고 육포와 식료품도 살 겸 시장에 한 번 들르자고 기사들을 설득했다.
기사들은 헤레이스의 말을 순순히 들어주고 싶은 생각이 없었지만 물품을 보충하기는 해야 해서 시장으로 갔다.
헤레이스는 필요한 물건을 에이바르에게 사게 하고 자기는 레이아스와 루엔피스를 데리고 다니면서 맛있는 것들을 잔뜩 사서 먹였다.
“야. 너희 돼지냐? 너무 많이 먹지 마. 저기로 가면 먹어봐야 할 게 더 있다고.”
헤레이스는 하나만 더 사달라고 불쌍한 표정을 짓는 황자들에게 말했다.
“그래? 나는 그냥 이걸 하나 더 먹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레이아스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이며 말했다.
“헤레이스. 그럼 혹시 모르니까 이것도 몇 개만 더 사 가자. 이게 더 맛있을지도 모르잖아.”
“헤레이스. 에이바르가 이제 빚 안 지니까 우리도 돈 있지 않아?”
결국 헤레이스는 그럼 그렇게 하자면서 간식거리를 엄청나게 샀다.
로젠비크는 헤레이스가 산 걸 받아들었다.
어느새 그가 들고 있는 것들이 푸짐해졌다.
헤레이스는 쌍둥이들을 데리고 자기가 말했던 점포에 가서 도넛을 사주었다. 쌍둥이들은 감격을 금치 못하며 그 자리에서 몇 개나 먹어버렸다.
헤레이스는 손에 든 것 때문에 먹지 못하는 로젠비크에게 도넛을 물려주려 했다.
그러나 그는 고개를 돌리며 거절했다.
“됐어. 나는 배 안 고파. 이런 곳에 서서 먹는 것도 안 좋아하고.”
“거 참 시끄럽기는. 먹으라고 하면 그냥 좀 먹어라.”
헤레이스는 말을 하는 로젠비크의 입에 그대로 도넛을 쑤셔 넣어 버렸다.
루엔피스와 레이아스는 형에게 그러는 사람은 처음 봤다면서 신기해했다.
“이거도 더 사 갈까?”
“응. 헤레이스. 그리고 말 타고 가면서 먹자. 이거 정말 맛있어.”
헤레이스는 그들이 원하는 만큼 사 주었다.
“쟤들. 그렇게 말해도 다 못 먹어. 어차피 조금 먹다가 질릴 거야.”
로젠비크가 말했지만 헤레이스는 그냥 웃었다.
어리석은 짓이라는 걸 알아도 한 번쯤은 누군가와 작당하고 이런 걸 해 보고 싶어서 그러는 것뿐이라는 것을 로젠비크는 모를 터였다.
그동안 헤레이스는 늘 여러 모로 생각을 하고 최선의 결과를 내기 위해서 주저하고 다시 생각하기를 반복했다.
그러던 삶을 마치고 돌아오고 보니 쌍둥이들처럼 그냥 하고 싶은 대로 지르는 것도 좋아 보였다.
계속 이렇게 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앞으로도 몇 번쯤은 그런 짓을 같이 벌이고 싶었다.
“내가 다 먹을 수 있어.”
레이아스는 로젠비크 때문에 도넛을 더 사지 못하게 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는 것처럼 급히 말했다.
결국 헤레이스는 간식을 조금 더 샀고 구시렁거리는 로젠비크의 입을 도넛으로 틀어막았다.
로젠비크는 자기가 그런 굴욕적인 일을 당하면서도 화가 나지 않는 것을 신기하게 생각했다.
“헤레이스는 이런 걸 많이 먹어봤어? 어디에서 뭘 파는지 다 아는 것 같던데.”
루엔피스가 말하자 에이바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
헤레이스는 잠시 흠칫했지만 곧 모르는 척했다.
이 시기의 그녀는 고향에서 나와본 적도 거의 없었다.
임무에 투입된 적도 별로 없었고, 임무에 투입된 일이라고 해 봐야 아주 가까운 거리에 물건을 운반하는 일 정도나 맡았을 것이다.
그것도 아버지와 용병들이 같이 가는 길에 정말 안전하다고 확신할 수 있는 일에만 따라갔었다.
그러니 에이바르가 헤레이스를 이상하게 보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자기도 그곳이 낯설어서 뭘 어디에서 파는지 몰라 몇 번이나 물어가면서 물건들을 구입하고 있었는데. 헤레이스는 어디에 뭐가 있는지 미리 알면서 아이들을 부르는 것 같아 보였다.
헤레이스는 에이바르와 눈이 마주쳤지만 굴하지 않았다.
내가 안다는데 네가 뭘 어쩔 거냐는 듯한 표정에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들은 일행에게 돌아갔다.
시중드는 사람들은 따로 자작가에서 데리고 왔기에 용병들은 그런 일은 하지 않았다.
헤레이스와 용병들이 돌아갔을 때 기사들은 시종들의 시중을 받다가 괜히 용병들을 노려보았다.
전부터 한번 손을 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마침 자작이 보이지 않는 참이라 그 김에 이러는 것 같았다.
몇 사람만 데리고 시장을 돌아다니고 있는 중인 듯했다.
오랜만에 일상을 즐기고 싶을 만도 했을 것이다.
‘그냥 조용히 있을 것이지.’
자작이 있을 때는 찍 소리도 내지 못하던 그들이 기회를 잡고 눈알을 굴리는 것을 보면서 헤레이스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고 생각했다.
“페이먼 용병대가 요즘 많이 유명해졌다지?”
기사 한 사람이 헤레이스 쪽으로 오며 말했다.
“유명한지야 저는 모릅니다.”
“아하. 겸손을 떠시겠다?”
그는 헤레이스를 얕잡아보는 듯이 말하며 비아냥거렸다.
“얼굴도 이렇게 반반한 여자가 왜 용병을 할까? 용병은 거친 사람들이나 하는 일일 텐데. 다른 용병들이 가만히 놔두지 않을 것 같기도 하고. 혹시 그런 걸 좋아하나? 그래서 용병대에 있는 건가?”
시답지 않은 말에 기사들이 와하하 웃어댔다.
헤레이스는 그런 도발이 그저 같잖을 뿐이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냥 넘길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을 것이다.
특히나 로젠비크는 금방이라도 기사들을 때릴 듯이 주먹을 쥐고 달려가려 했다.
그러나 헤레이스의 목소리가 그를 붙잡았다.
“도발에 넘어가는 건 바보 중의 바보나 하는 거야. 저 말이 사실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 왜 화를 내는 거지? 사실이라면 그런 소리를 하는 놈 얼굴을 다 쳐서 박살을 내놔야 하겠지만.”
“헤레이스!”
로젠비크가 억울하지도 않냐는 듯이 말했지만 헤레이스는 전혀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런 건 심리전이라고 할 것도 못 되었고 그런 놈의 말에 반응을 한다는 것이 오히려 더 창피할 일이었다.
재미있는 일이 벌어질까 하고 기대를 한 것 같던 기사들은 헤레이스가 로젠비크를 막는 것을 보고 실망한 듯이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몇 놈은 그대로 포기하지 않았고 이번에는 레이아스와 루엔피스를 상대로 빈정대기 시작했다.
“너희는 뭐냐? 용병 다섯 명이 온다고 해서 거기에 맞게 돈을 지불했는데 도대체. 이건 사기 아니야?”
“그러게 말이야. 이런 놈들이 당최 뭘 할 수 있다는 건지. 기가 막혀서.”
“싸움이 나면 무섭다고 징징거리면서 도망치기나 바쁘게 생긴 놈들이 말이야. 어?”
그러면서 기사 중 하나가 루엔피스의 얼굴 앞으로 주먹을 휙 들이밀었다.
루엔피스는 정말 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한 듯 피하려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어쭈. 피하지도 않네? 내가 안 때릴 거라고 생각했다는 거야? 그럼 이번에는 어쩔래?”
그가 다시 한번 루엔피스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루엔피스는 이번에도 피하지 않았다.
겁을 먹고 움찔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자 기사는 슬슬 열이 받은 듯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헤레이스는 그들이 선을 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기사가 마지막으로 주먹을 날렸을 때는 그 속도와 움직임을 보며 루엔피스가 다칠 거라는 것을 깨달았다.
헤레이스의 몸이 빛살처럼 날아가 기사의 팔을 뒤로 꺾고 무릎으로 등을 찍고는 팔을 한계 이상으로 잡아당겼다.
두두두둑-!
“으아아아악!!”
기사의 비명이 크게 울렸다.
헤레이스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자리로 돌아가더니 도넛을 뜯었다.
“도넛이 식으면서 맛이 없어지는 것 같아. 질겨지는 것 같고. 너무 많이 샀어.”
“딱딱해지면 맛없는데.”
레이아스도 말하면서 도넛을 루엔피와 에이바르에게 주었다.
기사들은 기사의 팔을 꺾어놓고 아무렇지 않은 듯이 도넛을 나눠 먹는 그들을 보면서 할 말을 잃었다.
헤레이스가 기사들 앞으로 나서서 말했다.
“우리가 약속한 건 페이먼 용병대에서 다섯 명의 용병이 의뢰인들을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모신다는 겁니다. 우리 용병의 안전을 해치는 사람은 우리가 제거합니다. 자작 각하께서 오시면 이 사실을 알리겠습니다. 당신들이 우리를 위협했다고 말입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헤레이스를 얕보고 있던 기사들의 얼굴이 서서히 굳어갔다.
그 말에는 아무리 그들이라고 해도 긴장이 될 수밖에 없었다.
로젠비크는 아쉽다는 듯이 헤레이스를 보았다.
“나한테는 못 하게 하더니.”
“계산을 잘해야지. 언제 나갈지, 언제 무시할지. 로젠비크는 그게 잘 안 되는 것 같더라.”
헤레이스는 기고만장해졌다.
쌍둥이 황자들은 헤레이스가 아주 믿음직스러운 듯했다.
“역시. 헤레이스랑 결혼해야겠어.”
“내가 할 거거든?!”
의미도 없는 싸움을 지치지도 않고 하는 녀석들이었다.
헤레이스는 루엔피스를 다시 봤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주먹을 피할 생각을 하지 않는 그를 보면서 황자의 기품이라는 것이 그럴 때 나오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철부지처럼 보이지만 문득 다른 사람들이 흉내 낼 수 없는 기품이 느껴질 때가 있었는데, 그때가 바로 그런 순간들이었다.
“잘했어. 루엔피스. 아까 멋졌어.”
헤레이스가 말하자 루엔피스는 감격스러운 듯 눈을 반짝거렸다.
“우우우우우와! 나 방금 헤레이스한테서 칭찬받았다!!”
광분한 듯한 목소리에 헤레이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레이아스는 정말 부럽다는 듯이 두 손을 꼭 모으고 루엔피스를 바라보았다.
기사들은 그사이에 용병들의 입을 막아놔야겠다고 생각한 것 같았지만 헤레이스는 그들에게 신경도 쓰지 않았다.
팔이 꺾인 기사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욕설을 퍼부었지만 그렇게 해 봐야 결국 자기만 손해라는 것을 그도 곧 깨달을 터였다.
영지에서 쫓겨나고 급여를 받지 못하게 되면 기사라고 해도 평민보다 더한 신세가 될 수도 있는 거였다.
게다가 상처를 치료하지 못하고 불구가 된다면 그의 인생은 앞으로 훨씬 더 암담해질 터였다.
그러는 동안 자작이 돌아왔다.
열두어 살 정도 된 것 같은 영식이 시장에서 사 온 물건들을 가지고 마차로 들어가고 나자 헤레이스가 자작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자기들이 먼저 보고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한 듯이 기사들 몇 명이 자작에게 가서 헤레이스가 갑자기 기사를 공격했다고 말했다.
자작은 한심하다는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헤레이스를 바라보았다.
“할 말 있나?”
“예. 각하. 각하께서는 페이먼 용병대에 일을 맡기셨으니 걱정을 내려놓으셔도 될 겁니다. 저희는 저희의 안전을 지키며 이번 일을 완수할 것입니다.”
자작은 자기들의 안전을 지킨다는 말이 무엇인지 알아듣고 웃음을 지었다.
“페이먼 용병대에 사람들이 눈독을 들여서 이제 곧 넘어갈 줄 알았더니 생각보다 용병대장이 똑똑해서 오래 가겠어. 오래 가는 게 아니라 판을 새로 짤 수도 있겠는데?”
헤레이스는 자작이 하는 말을 다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말이 통하는 사람인 것 같다고 생각하며 안심했다.
로젠비크와 헤레이스는 서로 눈빛을 나누었고 일단 오늘은 별일이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다시 말에 올랐다.
* * *
말을 탄 칠십여 명의 사람들이 덤벼든 것은 이틀 후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도적들 같았지만 헤레이스는 그들이 다른 목적을 위해서 급조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무리의 곳곳에 이질적인 기운들이 섞여 있었다.
수준 높은 검사가 두어 명 끼어 있었고 나머지는 칼받이 용인 듯했다.
헤레이스는 로젠비크에게 다가갔다.
“자작을 노리는 사람들이 아닌 것 같아. 그렇다고 하기에는 수준이 너무 높아. 저런 사람들을 동원할 만한 일은 아닌데.”
“그러면 우리?”
로젠비크의 눈이 빛났다.
헤레이스도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그들이 황자라는 것을 어떻게 안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 정도의 실력자들이라면 황자들을 노리는 사람이라고 해야 맞을 것 같았다.
설마하니 자기를 포섭하기 위해 대공이 짠 판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우리가 각자 한 사람씩 맡으면 가능성은 있나?”
로젠비크가 먼저 검을 빼자 헤레이스가 고개를 저었다.
“혼자 할 수 있을 거야. 내가 아는데 로젠비크는 안 죽어. 나는 사람들을 지켜야지. 우리 둘 다 마차를 떠났는데 그때 마차에 더 강한 사람이 오면 안 되잖아.”
헤레이스는, 너만 믿는다는 표정으로 로젠비크를 바라보았다.
로젠비크가 안 죽을 거라는 걸 안다고 했지만 그는 그 말을 대수롭게 여기지도 않았다.
그 말을 진심으로 한 거라고 생각도 하지 않았을 터였다.
로젠비크는 순간적으로 배신감을 느꼈지만 그 말도 틀린 것은 아닌 것 같아서 고개를 끄덕였다.
헤레이스는 에이바르를 바라보았다.
“에이바르!”
“걱정 마. 쌍둥이들은 내가 지킬 테니까.”
그 말이 아니잖아, 이 자식아! 하고 말할 새도 없이 에이바르는 정말 루엔피스와 레이아스를 챙기려 들었다.
그러나 쌍둥이들은 검을 빼 들고 말에 올랐다.
그리고 헤레이스가 말을 할 새도 없이 로젠비크를 향해 달려나갔다.
헤레이스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기시감을 느꼈다.
위기를 느낀 순간 그들이 본능적으로 각성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헤레이스는 별수 없겠다고 생각하며 에이바르를 돌아다보았다.
“오빠. 오빠가 여기를 맡아.”
“저게 이럴 때만 오빠래!”
“오빠가 맡은 게 제일 쉬운 일이야. 여기에는 기사들도 있잖아. 별로 도움은 안 되겠지만.”
헤레이스는 그 말만 마치고 당장 말을 달렸다.
쌍둥이들이 어느 정도나 각성했는지 알 수가 없어서 걱정이 됐다.
아직은 나이가 너무 어리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달려가는 동안 쌍둥이 황자들의 검에 오러가 맺히는 것이 보였다.
‘설마. 정말? 정말 쌍둥이들도?’
헤레이스는 기대하지 않았던 상황에 놀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