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ved a tyrant from a slave trader RAW novel - chapter 23
‘키에로드 백작이 자기 딸을 무지하게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좋겠네.’
시녀들이 와서 그녀의 단장을 마무리하자 헤레이스는 대공과 함께 밖으로 나섰다.
대공은 그녀가 팔짱을 끼도록 팔을 내밀어 주었지만 헤레이스는 팔짱을 끼지 않았다.
그리고 치맛자락이 길어서 그러는 거란 듯이 두 손으로 치맛자락을 잡았다.
감이 좋은 대공이니 그녀가 일부러 그러는 거라는 것을 알았을 가능성도 있었다.
그가 마음이 상했을까 하는 걱정 같은 것은 전혀 하지 않았다.
차라리 알면 더 좋을 것 같기도 했다.
다음부터는 이런 구질구질한 짓에 자기를 데리고 다닐 생각이 들지 않도록.
마차는 한참을 달렸다.
마차 안에서 대공은 헤레이스에게 여러 가지 이야기를 시켰다.
그중에는 최근에 어느 상단에 가서 깽판을 치고 온 일에 대한 얘기도 있었다.
“거기는 개인적으로 아는 상단인가?”
그가 그것까지 알고 있는줄은 몰랐지만 그가 알고 있다면 놀라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됐다.
“네. 용병대 일을 하다 보면 별별 일로 얽히는 일이 많죠. 좋은 쪽으로만 얽히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그리고 그런 일이 더 기억에 오래 남는 법이죠.”
“그래? 페이먼 용병대에 있을 때 그 상단과 거래를 한 일이 이었나?”
대공이 설마 그런 것까지 일일이 알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을 하지 못했지만 헤레이스는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은 채 말했다.
“꼭 거래를 해야만 얽히는 건 아니죠.”
헤레이스가 퉁명스럽게 말하자 대공도 거기에 대해서 더는 말하지 않았다.
마차가 달리는 동안 대공은 정세에 대한 얘기를 했다.
지금의 황제가 황위를 지키는 게 얼마나 갈 것 같냐는 질문에 헤레이스는 말을 아꼈다.
그러면서 대공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의 의견을 물었다.
그는 제법 냉철한 판단을 보였다.
그가 말한 이야기들은, 앞으로 일어나게 될 일과 대부분 합치하고 있었다.
미래를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순전히 정보를 분석하고 상황을 판단하기만 해서 그 정도로 예측을 해낸다는 것은 확실히 놀라운 일이었다.
얘기를 하는 동안 그들은 어느덧 키에로드 백작가에 이르렀다.
“저택이 마음에 드나?”
대공이 물었다.
“제가 마음에 든다고 하면 저에게 주실 건가요?”
“원한다면 안 될 것도 없지.”
“상당히 마음에 들고 원하기도 합니다. 대공 전하.”
주겠다는데 마다할 생각은 없었다.
더군다나 그것이 키에로드 백작의 것이라면 그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복수의 방법이 될 거였다.
“그러면 저는 이걸 언제 받을 수 있죠?”
“재미있는 사람이군.”
“저는 깜짝 놀라게 하겠다면서 오래 기다리게 하는 건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빨리 주는 걸 좋아하죠.”
대공은 웃음을 지었다.
그러면서 백작저를 한번 훑어 보았다.
대공이 왔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저택의 사용인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바빠진 것은 비단 그들만이 아니었다.
키에로드 백작과 측근들을 데리고 나타나 대공의 앞에서 예를 갖추어 올렸다.
루시아는 아직 준비가 덜 끝났는지 보이지 않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전혀 부족함이 없도록 대공을 환대했다.
사람들이 대공에게 인사를 하는 동안 헤레이스는 그의 곁에서 조금 떨어지려 했다.
그들이 인사를 올리는 상대는 그이지 헤레이스가 아니었기에 그들을 위해 배려한 거였다.
그러나 대공은 그녀의 손을 잡은 채 자기 곁에 그대로 서 있게 했다.
헤레이스는 민망해하며 백작을 바라보았다.
백작의 얼굴에는 기분 나쁜 표정이 그대로 묻어났다.
“키에로드 공. 기분 나쁜 일이라도 있는가 보군.”
대공은 감히 자신의 앞에서 얼굴을 구겼다는 듯이 그에게 말했고 키에로드는 대공의 싸늘한 말에 긴장을 감추지 못했다.
“아닙니다. 대공 전하. 전하께서 찾아 주시다니 무한한 영광입니다.”
그는 말을 돌렸다.
대공이 그의 인사를 기다리며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있자 백작은 할 수 없이 대공과 헤레이스 모두에게 인사를 올렸다.
헤레이스는 자기가 인사를 받은 것이 아니라서 마주 인사를 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잠시 고민을 했다.
마주 인사를 하면 그가 자신에게 인사했다고 인정하는 꼴이 되는 것인지라 조금 당황스럽기도 했다.
“안으로 안내하도록. 언제까지 나를 계속 여기에 세워둘 생각은 아닐 테고.”
“예. 전하. 안으로 드시지요.”
키에로드 백작은 쩔쩔매는 태도로 그를 안으로 안내했다.
헤레이스는 그들 사이에 확실한 주종 관계 비슷한 것이 세워져 있다고 느꼈다.
키에로드 백작가문은 대공의 가신 가문은 아니었다.
그 가문이 크기 시작한 것은 오래전의 일이 아니었다.
기회를 잘 잡았고, 운이 좋았다.
다른 사람들이 균열과 충격을 피하지 못하고 흔들리다 쓰러질 때 키에로드 가문은 주변의 정세를 기민하게 포착하고 거기에 맞게 움직였다.
거센 바람이 불 때는 몸을 낮춘 채 그 바람이 지나가기를 기다렸고 자기가 나서는 게 좋겠다고 생각될 때는 과감하게 나섰다.
매번 그의 결단이 성공하더니 어느새 제국에 가문의 이름이 드높아진 상태였다.
그렇다고 해 봐야 유서깊은 가문들에 비하면 아직 이름을 겨우 내밀 수 있는 수준이기는 하겠지만 세간에서 그 가문의 이름이 명성을 얻고 있다는 것만큼은 확실했다.
헤레이스는 키에로드 백작의 태도를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에 잠겼다.
가장 의문스러운 것은 대공이 왜 굳이 그녀를 이곳까지 데려왔냐는 거였다.
혼담 문제가 귀찮아서 그렇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핑계라고밖에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게 핑계라면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그들은 아주 웅장하게 장식된 접객실로 안내되었다.
두 사람이 안으로 들어가자 잘 차려입은 시녀들이 안으로 들어오며 다과를 대접하며 정성스럽게 시중을 들었다.
어느 것 하나 부족함이 느껴지는 부분이 없었다.
준비된 모든 것에, 닿은 손길 하나하나에 기품이 넘쳤고 우아하고 고풍스러웠다.
“백작 부인은 나오지 않는가.”
대공이 말하자 키에로드 백작의 얼굴이 붉어졌다.
“준비가 조금 늦어지는 모양입니다. 대공 전하. 전하께 좋은 모습을 보이고 싶어서 그러는 것이니 조금만 기다려주시지요.”
대공의 태도는 오랫동안 지존으로 군림해온 자 같았다.
헤레이스는 그 사실이 의아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군림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고, 그로 인한 수혜를 능숙하게 누리고 있었다.
아주, 아주 오랫동안 그런 습관이 몸에 배어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키에로드 영애를 먼저 보고 싶은데 영애도 오래 걸리는가?”
“루시아야말로 오래 걸릴 것입니다. 대공 전하.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 정말 죄송합니다. 전하께서 오신다는 것을 알고 저희 루시아가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르실 것입니다.”
그의 말에 대공은 무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헤레이스는 접객실의 내부를 둘러보았다.
사방이 화려했고 바닥에는 푹신하고 비싸보이는 양탄자가 넓게 깔려 있었다.
그런 물건의 값이 어느 정도나 되는지, 그런 것을 구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재질은 무엇이고 그걸 만들기 위해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그런 것들이 대부분 헤레이스의 머릿속에 들어 있었다.
그래서 헤레이스는 잠시도 지루할 틈이 없었다.
사람들 사이에 대화가 거의 오가지 않고 어색한 기운이 감돌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침묵을 버텨나갈 줄 알았다.
어떤 불편함도 느끼지 않은 채.
주위를 보던 헤레이스는 대공이 자신을 주의 깊게 바라본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러나 그 시선을 눈치채고도 그녀는 그를 바라보지 않았다.
백작은 침묵을 만들어내는 것이 죄스럽기라도 한 것처럼 어떻게든 이야기를 이어 나가려고 필사적으로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면서 굳이 할 필요가 없는 이야기도 계속 꺼냈다.
대공은 거기에 관심이 없는 듯 몇 마디 짧게 대답을 하더니 나중에는 아예 손을 들어 그의 말을 막았다.
“조용히 기다리고 싶군. 나가서 일을 보다가 영애가 온 후에 와도 되네. 우리는 우리끼리 충분히 잘 기다리고 있을 수 있으니까 우리에 대해서는 너무 신경을 쓰지 말게.”
대공의 말에 그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손님 대접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구세주라도 되는 것처럼 그녀가 나타났다.
루시아 키에로드.
헤레이스는 그전까지 그녀를 직접 만날 일이 없었기에 루시아 키에로드를 만난 것이 신기하고 흥미롭게 느껴졌다.
루시아 키에로드는 그곳에 대공이 헤레이스와 함께 나타났다는 소식을 먼저 들었을 테지만 헤레이스는 철저히 무시하기로 한 것 같았다.
자기가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서 헤레이스의 가치가 떨어질 거라고 생각하기라도 한 것처럼, 그녀는 대공에게만 인사를 하고 헤레이스의 인사는 받지도 않았다.
루시아 키에로드는 둘 중 한 가지를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헤레이스를 인정하고 그녀에게 잘 대해주거나, 헤레이스의 존재를 무시하는 전략 중 하나를 선택하고 자기가 선택한 것을 밀고 나가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헤레이스에게 친절하게 구는 모습을 보여서 대공의 환심을 사게 된다면 자기가 궁극적으로 원하던 것은 얻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한 것 같았다.
대공비가 되고 싶었던 그녀가 대공이 느닷없이 데리고 나타난 헤레이스에게 잘해 주면서 헤레이스에 대한 대공의 호감이 유지되도록 하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대공비가 되고 싶은 루시아 키에로드에게 대공의 마음에 두 번째로 드는 여자가 되고 싶은 마음은 없었을 것이다.
노예상에게서 폭군을 구했다 1권
지은이 : 채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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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장
“대공 전하. 먼 길을 오시느라고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기별도 없이 어떻게 이렇게 갑자기 오신 것인지요? 저는 정말 너무 기쁘고 반갑지만 말입니다.”
그녀는 탐스러운 붉은 머리카락을 잘 정리해서 한쪽 어깨 앞으로 모아서 내렸고 가늘고 하얀 목이 고혹적으로 드러나 있었다.
아름다운 얼굴이었고 모든 부분이 완벽해 보였다.
어려서부터 가르침을 받은 것이 몸에 배어있는 듯 손끝의 동작 하나하나까지도 우아하고 자연스러웠다.
헤레이스는 자신이 아무리 흉내 내려고 해도 어렵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동시에 그녀는 루시아 키에로드가 자기를 무시하려고 하면서도 신경 쓰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이쪽은 내 약혼녀다. 키에로드 영애.”
대공의 갑작스러운 말에 루시아 키에로드가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당혹스러운 말을 듣고 뭐라고 말을 해야할지 몰라 당황한 것 같았다.
“그, 그게…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전하….”
그녀는 그런 상황에서도 인자한 표정과 절제를 잃지 않았다는 평가를 듣고 싶은 것 같았다.
억지로 미소를 짓고 있는 입술 끝이 가늘게 경련했다.
대공의 말은 당연히 사실이 아니었지만, 헤레이스에게 원하는 역할이 그거라면 그런 것쯤이야 얼마든지 해 줄 수 있었다.
헤레이스는 자기가 맡은 일이 크게 어렵지 않다는 것에 안도했다.
그리고 자신의 눈앞에 있는 부녀가 좋은 관계로 얽힌 사람들이 아닌 것은 더 잘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대공 전하.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지난번까지만 해도 그런 말씀은 없지 않으셨습니까.”
키에로드 백작은 충격이 컸는지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때까지는 내 약혼녀까지 보이지 않아도 알아서 끝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했으니 말을 하지 않은 것이네. 나는 내 사생활을 지키고 싶어하는 사람이네.”
대공의 말은 백작에게 더 큰 충격을 안긴 것 같았다.
헤레이스는 왜 이런 일이 필요한 건지는 알고 싶지도 않고 궁금하지도 않았다.
다만 힘이 충돌하는 상황에서 서로의 긴장 관계가 드러나는 것을 구경하는 것이 흥미로울 뿐이었다.
백작과 영애가 자신의 얼굴을 사납게 노려보는 동안 헤레이스도 굳이 그들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그 태도가 두 사람의 화를 더욱 돋운 것 같았다.
“이 여자는 귀족가의 영애도 아닌 것 같은데, 지금 이러시는 것은 저희 가문을 모욕하시는 것입니다. 전하.”
키에로드 백작이 말하자 대공의 입꼬리가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