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ved a tyrant from a slave trader RAW novel - chapter 49
“마을 대표들한테서 지속적으로 얘기를 듣는 것도 좋을 것 같아. 네가 가진 권한을 다른 사람한테 다 넘기지 말고 그 힘이 어떻게 사용되는지 자주 봐.”
로젠비크와 황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용병으로, 그리고 상단의 짐꾼으로 다니면서 겪었던 일들이 그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성 안에는 수많은 사람이 오고 갔다.
여러 가지 이유를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런 사람들의 운명은 몇 시간 만에 완전히 뒤집어졌다.
하루하루를 호화롭게 살던 사람들은 이제 자기들의 미래를 걱정해야 할 처지가 되었고, 굶주림에 찌든 삶을 살던 사람들은 넉넉한 식량을 배급받고 감격한 표정을 지었다.
에버콘의 문제는 비단 에버콘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다른 곳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을 거라는 것을 그들은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여기를 시작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아.”
에이바르의 말에 로젠비크도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리카르도가 도움이 될 것 같은데. 헤레이스 생각은 어때?”
헤레이스는 그때까지 리카르도에 대해서는 거의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가 그 말을 듣고서 그를 떠올렸다.
그라면 아버지의 곁에서 영지의 경영을 지켜보기도 했고 돕기도 했으니 이런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괜찮은 생각인 것 같아. 잘할 거야, 리카르도라면.”
헤레이스까지 그렇게 말하자 로젠비크는 바로 그를 불러들였다.
리카르도는 그때까지도 로젠비크가 자기를 부르는 이유를 생각지도 못하고 있다가 에버콘의 임시 영주를 맡으라는 말에 그대로 쓰러질 뻔했다.
“화, 화, 황자 전하….”
로젠비크가 그렇게 하라고 한다면 거절을 할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부담이 되는 것은 사실이었다.
황제가 세운 영주를 체포해서 감금하고 자기가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하는 것이 반역이나 다름없는 행위이기에 걱정되는 것은 아니었다.
이미 헤레이스를 따르기로 한 이상, 리카르도에게 그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시해당한 황제의 황자들과 함께 다닐 때부터 이미 그는 심정적으로 그에게 동조하고 있었고 언젠가 로젠비크를 도와 반역에 가담하게 될 운명이라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단지 자기가 에버콘이라는 영지를 잘 다스릴 수 있을지, 그게 걱정될 뿐이었다.
“많은 것을 걸고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할 거야. 나도 잘은 모르지만 그래야 할 거라고 생각해. 어려운 일도, 슬픈 일도, 낙심되는 일도 많겠지만 함께 해 보자. 리카르도.”
그는 로젠비크의 말을 들으며 감격에 겨워 울먹였다.
생전 이런 말을 들어본 적은 없었다.
그는 처음으로 자기가 왜 태어났는지, 왜 로젠비크의 곁에 남아있었는지 알 것 같았다.
“성심을 다하겠습니다. 황자 전하. 제 뼈가 부서지도록 충성을 바치겠습니다.”
“리카르도는 너무 살벌한 소리를 아무렇지 않게 한단 말이야? 저렇게 말을 하니까 더 진실성이 없이 들리는데 자기는 그걸 모르나 봐.”
헤레이스는 옆에서 수하의 승진에 초를 치고 있었다.
“저… 그러면 잠시 아버님께 좀 다녀오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가서 쓸만한 게 있으면 쓸어 오고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조언도 구하고요.”
리카르도는 아주 의욕적이었고 로이드는 자기가 데려다주겠다며 나섰다.
옆에서 지켜보면서 신기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런 거라도 하면 더 자세히 구경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로이드는 일단 한번 얘기를 하면 다른 사람이 허락을 할 때까지 기다리지도 않고 그냥 가 버리는 버릇이 있었다.
그렇게 로이드와 리카르도의 모습이 사라졌다.
“에버콘은 리카르도한테 맡긴다고 하고. 다른 곳도 여기랑 사정이 비슷할 텐데 거기는 어떻게 할까? 우선 용병들이 여기로 올 거니까 기다렸다가 다 같이 데리고 갈까?”
에이바르의 말에 로젠비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조금씩 초조해지고 있었지만 이럴 때일수록 신중하고 차분하게 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혼자서 모두의 목숨을 구할 수는 없는 일이라는 것은 헤레이스가 자주 해 온 이야기였다.
그도 그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여기에서 일어난 일은 곧 황궁으로 들어갈 거야. 그러면 황제랑 대공이 가만 있지 않을 거고, 여기로 황군을 보낼 수도 있어. 만약 여기만이라면 우리가 지킬 수 있겠지만 다른 지역으로 세를 넓혀가면 그때는 어려워질 거야.”
“그렇겠지.”
“거기에는 용병대를 보내보는 걸로 하지. 그러다가 일이 커지면 거기에서 우리에게 지원을 요청하는 거야. 로이드의 통신 마도구를 이용하면 그건 어려움이 없을 거야.”
“그렇게 하면 되겠군.”
에이바르 덕분에 일머리가 잡혀가는 것 같았다.
로젠비크는 한숨을 돌리고 헤레이스와 함께 영지를 둘러 보았다.
아침에 나설 때까지만 해도 그들의 계획은 완전히 달랐었지만 지금은 영지에서 말을 달리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나와서 신기한 눈으로 그들을 보고 있었다.
몇 사람이 갑자기 두 손을 번쩍 들며 황자 전하 만세를 외치기도 했다.
그것은 전파력이 강해서 다른 사람들도 따라 만세를 외치기 시작했다.
로젠비크는 그런 것이 낯설어서 어색해하면서 슬금슬금 피하곤 했다.
헤레이스는 그 모습을 재미있어 하며 따라왔다.
“기분이 어때, 로젠비크?”
“나는 아직 잘 모르겠어. 정신이 없어.”
“잘될 거야. 처음부터 세세하게 계획을 했으면 오히려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 것 같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 어쩌다 보니까 이렇게 됐어.”
“이제는 돌이킬 수도 없고. 너와 황제는 같은 제국의 주인이 될 수 없어.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자리를 내줘야 할 거야.”
헤레이스의 말에 로젠비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자리를 내 줄 생각이 없어.”
“그래. 나도 허락 안 해.”
헤레이스의 말에 로젠비크는 웃음지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헤레이스를 보면 왜 마음이 편해지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녀가 하는 말을 들으면 그 말대로 될 거라는 믿음이 생긴다.
그는 서두르지도 않고 말을 달렸다.
에버콘은 아름다운 곳이었다.
작은 마을이 여러 개가 이어져 있었고 발달한 도시도 있었다.
곳곳의 사람들은 각각의 표정을 하고 있었다.
넓은 지역이었지만 에버콘 사람 중에 그날 에버콘에서 벌어진 일을 듣지 못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용병들이 부지런히 움직인 덕에 그들은 자기들의 삶이 변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았다.
로젠비크는 그들과 눈빛을 나눴다.
철없는 어린아이들은 그들에게 방긋 웃어 보이며 손을 흔들기도 했다.
로젠비크는 저도 모르게 아이들을 보며 마주 손을 흔들어주다가 괜히 쑥스러웠는지 손을 내리기도 했다.
“왜? 계속 흔들어 줘. 황자 전하가 자기를 보고 손을 흔들어 줬다는 기억이 얼마나 오래가겠어? 그런 황자 전하를 위해서라면 충성을 다 바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
로젠비크는 그래도 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팔이 빠져라 손을 흔들어대는 아이와 눈이 마주치는 바람에 어쩔 수가 없었다.
헤레이스도 옆에서 같이 손을 흔들어 주었다.
어른들이 나와서 허리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그들은 아마 아직 완전히 마음을 놓지는 못했을 것이다.
마을 대표들이 붙잡혀 가서 언덕에 전시되듯 매달려 있던 게 어제까지의 일이었다.
아니.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그런 상황이었다.
그들은 갑자기 나타난 사람들이 자기들의 용사이기를 간절히 바랐을 것이다.
그들의 표정을 보면서 로젠비크는 많은 생각을 했다.
헤레이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내가 어떤 제국을 원하는지 알 것 같아.”
그가 조용히 말했다.
바람이 그의 머리카락을 슬쩍 휘날리며 지나갔다.
헤레이스는 그의 얘기를 들었다.
“저 아이의 웃음 말이야. 저게 지켜질 수 있는 곳이면 좋을 것 같아. 아이가 환하게 웃으면서 제 부모를 바라볼 때 그 부모도 근심 없이 웃으면서 아이를 봐줄 수 있으면 좋겠어. 그런 곳이면 충분히 행복하겠지?”
“그런 제국이라면 나도 살고 싶어. 나도 네 제국민이 되고 싶어, 로젠비크.”
“어차피 선택의 기회는 없어. 너는 내 제국민이어야 해. 황후는 제국민이어야 하거든.”
그가 웃으며 말했다.
헤레이스가 환하게 웃었다.
마주 보며 웃는 두 사람의 얼굴에 구김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제 곧 에버콘의 소식이 황실에 전해질 터였다.
그리고 그때부터 그들의 삶에는 본격적으로 그늘이 드리워질 수도 있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겁내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것은 단순한 다짐의 문제가 아니었다.
서로를 바라보는 동안 저절로 용기가 났다.
이 사람을 위해서 뭐든 견딜 수 있다는 마음이 굳게 생겨났다.
로젠비크가 말에서 내려 헤레이스가 다가갔다.
붉어지는 하늘을 배경으로 두 사람의 모습이 하나가 됐다.
불어오는 바람이 점점 강해졌지만 그들은 오히려 더 굳건해졌다.
* * *
로이드와 함께 돌아온 리카르도는 흥분한 기색이 가득했다.
영주의 커다란 회의실에 사람들이 가득 모여있었다.
마을 대표들까지 참석하게 될 본격적인 회의에 앞서 로젠비크가 측근들과 함께 마지막으로 큰 틀을 정리하기 위해서 모은 자리였다.
그들이 정한 내용은 시간마다 바뀌었다.
구체적으로 생각을 하지 않다가 갑작스럽게 일을 시작하려다 보니 현장에 적용을 하고서야 문제를 발견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아버지께서는 전하를 따를 거라고 하셨습니다.”
리카르도의 입에서 그 말이 나오자 사람들이 놀란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영주들 중에 로젠비크에게 돌아서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도 그때문이었다.
“저희 아버지도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저희 영지에 다녀오려고 해요.”
로이드는 그 말을 마치고 사라졌다.
“이번에 로이드가 돌아오면 대답을 들을 때까지는 먼저 사라져 버리지 말라고 확실하게 얘기를 해 놔야겠어.”
헤레이스가 말했지만 사람들은 그게 잘 되겠느냐며 궁시렁거렸다.
여러 의견이 오고 가는 동안 돌아온 로이드는 자신의 아버지 역시 황자 전하를 따를 거라고 했다면서 싱글벙글했다.
그러자 로젠비크가 에이바르를 바라보았다.
“에이바르. 에버콘과 그 두 곳을 연결해서 그 안의 세력을 결집하는 건 어떨 것 같아?”
그러자 곁에 있던 리카르도가 회의실에 있던 지도를 가져와 책상 위에 펼쳤다.
그리고 각각의 곳을 표시한 후에 그 사이에 있는 곳들 중 로젠비크에게 우호적인 영주들을 알려주었다.
“이곳의 영주들은 선황제 폐하께 충성심이 대단한 사람들입니다. 이곳 영지들 자체가 그렇게 좋은 곳이 아닙니다. 땅이 척박하죠. 그런데 지리적인 이점이나 군사적인 요소로 따진다면 아주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습니다. 전하께서 가신다면 무혈 입성이 가능할 겁니다. 저는 적극적으로 찬성합니다.”
“어렵지 않을 곳 같아. 이곳에 각각 용병들이 주둔하고 있잖아. 그리고 여기에 있는 용병들을 불러올 수 있고. 우리 세력도 절대 적은 규모가 아니야. 그동안 돈을 모으는 대로 용병들을 키우고 포섭한 효과를 지금 볼 수 있겠어.”
에이바르의 손가락이 지도 위에서 분주히 움직였다.
“좋아. 그러면 바로 시작해야 하는 건 먼저 시작하자.”
로젠비크의 말에 에이바르가 용병들 몇 사람을 불렀다.
그리고 간단하게 지휘 체계를 갖추고 몇 군데를 점령하도록 지시를 내렸다.
“강하게 저항하는 사람은 죽여야 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체포하고 투옥해. 그러나 싸움이 극렬해질 것 같으면 뒤로 빠지고 도움을 청해. 어떤 경우에도 너희와 영지민들의 안전이 우선시돼야 하니까,=.”
로젠비크의 말에 용병들이 고개를 숙였다.
큰 일을 앞에 두고서도 자기들을 걱정해주는 로젠비크를 향해서 고마운 마음이 드는 듯했다.
“이제 나는 내 제국을 만들 생각이다. 그리고 아마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내 제국의 제국민들이 되겠지.”
헤레이스는 로젠비크가 하는 말을 조용히 들었다.
달변가는 아니었지만 그는 깊이 생각을 하며 말했다.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로젠비크가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이들이었다.
자기들이 앞으로 모시게 될 사람이 누구인지 분명히 안 채로, 존경할 수 있는 사람에게 충성을 바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하고 황홀한 일인지 그들도 알았을 터였다.
로젠비크가 말을 하는 동안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얼굴에 나타난 표정을 보면서 헤레이스는 그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내가 그릇된 결정을 내리면 그때는 말해주기를 바라겠어. 여기에 있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라면 나는 몇 번이건 그 말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볼 거다. 여기에 있는 사람들이라면 괜히 시비를 걸기 위해서 말을 하지는 않을 테니까.”
“에이바르라면 그럴 수도 있어, 형.”
레이아스의 말에 모두가 웃음을 터뜨리며 정말 그럴 것 같다고 했다.
“대장님만 조심하시면 됩니다. 전하.”
“맞아요. 대장님은 원래 그러시니까요. 전하께만 그러는 게 아니라 아무한테나 그러시잖아요.”
모두가 와하하하 하고 웃으며, 심지어 에이바르까지 웃자 분위기가 한결 누그러졌다.
“자자. 각자 일들 해. 로젠비크가 말 못 하는 건 다들 알고 있잖아. 잘해 보자. 앞으로 많이 도와달라. 그런 얘기인 거야. 앞으로 너희의 주군은 로젠비크다. 아. 이제 나도 전하라고 부르기는 해야겠군. 내가 로젠비크라고 부르는 걸 보면 다른 사람들도 로젠비크를 우습게 여길 수도 있겠어.”
“지금까지 대장님이 이름을 부르셔도 저희는 전하를 존경했습니다.”
“맞아요. 기품과 권위라는 건 저절로 나오는 것 같았어요. 전하를 보면서 그런 걸 정말 많이 느꼈거든요. 세 분 전하 모두를 보면서요.”
한두 사람이 얘기를 덧붙이자 에이바르가 손을 내둘렀다.
“하여간. 말들만 많아지고 있어. 지금 그럴 시간이 없다니까 그러네.”
그러면서 그는 용병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그동안 크고 작은 규모로 여러 임무를 같이 해 왔던 사람들이라 지시를 내리는 것도, 그것을 이해하는 것도 쉬웠다.
“이 커다란 영역을 접수하는 게 목표다. 에버콘에서부터 시작이야. 이 세 거점을 중심으로 해서 깃발을 바꿔 꼽는 거야. 너희가 시작하겠지만 결국 이 깃발이 제국 전역을 덮게 될 거다. 새 제국에서 황자 전하가 너희의 새로운 주군이 되는 거다.”
“에이바르도 참 말이 많아. 다 알고 있어.”
루엔피스의 말에 용병들도 자갈자갈 웃고는 밖으로 나갔다.
쉬지 않고 몰아치는 강행군이었지만 누구 하나 불만을 나타내지 않았다.
모두가 같은 꿈을 꾸며 벅찬 가슴을 끌어 안았다.
“루엔피스, 레이아스.”
로젠비크가 부르자 두 사람의 눈이 반짜였다.
“이 두 곳은 지리적으로 중요해. 여기를 확보하게 되면 너희는 여기에 남아. 그리고 당분간 이곳을 너희가 지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