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hon RAW novel - Chapter 147
147화. 점진적인 변화 (2)
“편하게 앉아라.”
육 노태야는 임옥진이 불편하게 앉아 있는 것을 보고 이렇게 말하더니, 또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한동안 너도 참 고생이 많았지. 나와 네 시어머니도 다 알고 있단다. 우리가 널 박대할 일은 없을 거야!”
임옥진은 갑자기 눈시울이 붉어져 손수건으로 눈가를 닦고 눈물을 참으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버님과 시어머님께서 항상 제게 잘 해 주신 걸 늘 마음에 새기고 있습니다.”
이건 진심에서 우러난 감사였다. 여자에게 자식이 없다는 것이 무슨 의미겠는가? 그럼에도 그녀의 시부모는 정말로 그녀에게 모든 성의를 다해 주었다. 아들이 없는 그녀에게 양자를 들일 수 있게 해 주고 또 그녀가 아이를 스스로 고를 수 있게 해 주었다. 아이를 데리고 멀리 가서 7, 8년 동안 돌아오지 않아 효도도 다하지 못했지만 단 한 번도 그녀를 탓한 적이 없었다. 그러니 설령 임 노태야 부부라 해도 그들에게 무슨 트집을 잡을 수는 없었다.
육 노태야가 한숨을 내쉬었다.
“너도 괜히 쓸데없는 생각은 하지 말거라. 사람이란 다 주어진 운명이 있게 마련이야. 그래도 육함이가 정말 괜찮은 아이지 않느냐. 아주 진취적이고 말이야. 아이가 너한테 불효를 하는 것도 아니지 않느냐?”
지난 일을 회상하고 있던 임옥진은 그의 이 자상한 물음을 듣고 갑자기 마음이 따듯해졌다.
“예. 아이가 진취적이긴 한데 노는 데 정신이 팔려 뒤에서는 늘 밖에 나가 놀 생각뿐입니다. 전 아이가 혹시라도 나쁜 걸 배울까 걱정이 됩니다. 아이가 말수가 적어서 무슨 일이 있어도 통 저한테 말하려 하지를 않으니…….”
육 노태야가 그녀를 타일렀다.
“아이가 벌써 많이 컸고 또 남자아이지 않느냐. 아이를 자꾸 방에 가두어 두려고 하면 안 돼. 적당히 밖으로 내보내 견문을 넓힐 수 있게 해 주어야 해. 세상일이 쉽지 않다는 걸 눈으로 보고 경험하면 너에 대한 고마움을 알게 될 게다.”
“알겠습니다, 앞으로 주의하겠습니다.”
임옥진이 아주 시원스럽게 대답했다.
육 노태야가 잠시 침묵했다 다시 입을 열었다.
“내가 한 가지 생각해 둔 일이 있는데 아직 임 노태야께 말씀은 안 드렸다. 일단 네 생각이 어떤지 묻고 싶구나. 네 조카딸 중에 넷째 근용이는 어떠냐? 육함이 짝으로 삼으면 어떨까 싶은데.”
임옥진은 깜짝 놀라 안색이 변했다. 이게 다 무슨 소리란 말인가? 맨 처음 그녀 역시 임근용을 고려해 보지 않았던 건 아니었지만, 임근용은 그녀에게 실망스러운 모습만 보여 주었다. 그리고 도씨와 그녀 역시 태생적으로 서로 맞지 않는 사이였다. 그래서 임옥진은 이미 오래 전에 마음속에서 임근용을 배제해 버린 상태였다. 그런데 이렇게 갑자기 육 노태야가 육함을 임근용과 맺어주고 그 아이를 자신의 며느리로 들이겠다고 하다니?! 임옥진은 갑작스럽게 마음이 몹시 심란해졌다. 그녀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입을 벌린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방 마마도 깜짝 놀라서 몇 번이나 자기가 잘못 들은 게 아닌지 의심했다.
육 노태야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내 눈엔 그 아이가 아주 괜찮더구나. 네 조카들 중에서 나이가 제일 많고 용모도 단정하고 글도 알고 재능도 있지 않니. 육함이의 재능과 용모랑 비교해도 손색이 없으니 아주 좋은 배필이지 않느냐. 너만 이견이 없다면 내가 임 노태야께 서신을 보내 이 일을 확정 지을까 한다.”
임옥진은 그때서야 목소리를 되찾았다.
“아버님, 이 일은 다시 생각해 보시는 게 어떠실지요?”
육 노태야의 눈썹 밑에 숨겨진 두 눈에 희미한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응? 그게 무슨 소리냐?”
그의 목소리에는 이미 약간 언짢은 기색이 서려 있었다.
임옥진은 손바닥에서 땀이 솟았지만 용기를 내어 말했다.
“셋째 올케가 벌써 사람들한테 그 아이의 선 자리를 알아보고 있습니다.”
“아직 선 자리만 보는 게 아니냐? 일이 시작도 되지 않았으니 괜찮아. 아마 내가 말씀을 드리면 네 아버지께서도 괜찮다고 하실 게다.”
임옥진은 긴장한 표정으로 침을 삼켰다.
“고모가 되어서 조카 흉을 보려는 건 아니지만 그 아이는 좀 날카롭고 강한 기질이 있습니다!”
“난로회 일 때문이지?”
육 노태야가 웃으며 말했다.
“사실 내가 보기엔 그 아이가 너랑 좀 닮은 것 같더구나. 앞으로 그 아이가 집안일을 맡아서 주관해야 할 텐데 날카롭고 강한 기질이 조금은 있는 게 좋지 않겠느냐.”
임옥진은 정말로 마음이 다급해졌다.
“그 아이는 재물 욕심이 지나치게 많습니다! 난로회에서 제가 그 아이에게 준 수정비녀를 열 냥의 금자를 받고 근주에게 팔았다고 합니다! 정말 기가 막힌 일이지 않습니까!”
육 노태야가 담담하게 말했다.
“알고 있다. 그리고 또 뭐가 있느냐?”
임옥진은 할 말이 많았지만 더는 하고 싶지 않았다.
육 노태야의 태도는 점점 더 강경해졌고 상황은 엉망이 되어 거의 돌이킬 수 없는 지경이 되어 버렸다. 임옥진은 절망하며 마지막 남은 지푸라기 하나라도 잡는 심정으로 말했다.
“그 아이는 저를 존경하지 않습니다! 그 아이의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고집이 세고 상황을 볼 줄 아는 눈도 없습니다. 지금이야 고모 조카 사이이니 상관없지만 앞으로 고부 사이가 되면 어떻겠습니까?”
육 노태야가 수염을 쓰다듬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드디어 돌파구를 찾았구나! 임옥진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버님, 그 아이는 답답하고 괴팍한 성격이라 외출하는 것도, 자매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어울리는 것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녀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육 노태야가 큰 소리로 말했다.
“그래야 좋지, 그럼 쓸데없는 말도 안 할 테고, 괜한 시비나 소란을 일으키지도 않지 않겠느냐! 입은 밥을 먹을 때와 말을 할 때 모두 쓰는 것이긴 하다만 어떤 말을 해도 될지 안 될지는 구분을 해야 해야지!”
쓸데없는 말을 하고 괜한 시비를 만든다고? 왠지 따로 가리키는 사람이 있는 것 같은데? 그녀가 평제사에서 있었던 일을 외부에 알리지 말라고 엄명을 내려두긴 했지만 송씨와 육경이 모두 그 자리에 있었으니 그들이 정말로 알아내려 했다면 아마 충분히 알아낼 수 있었을 것이다. 임옥진은 갑자기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참지 못하고 눈을 들어 육 노태야를 바라보았다. 육 노태야는 엄숙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눈도 깜빡이지 않았다.
두 사람은 잠깐 동안 서로를 마주보았다. 결국 패배한 임옥진은 어깨를 늘어뜨리고 반쯤 고개를 숙인 채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의 작은 소리로 말했다.
“아버님께서는 언제 이 일을 말씀하실 생각이십니까? 어머님께서는 이 일을 알고 계십니까?”
“적당한 때가 되면 내가 자연스럽게 말을 꺼낼 것이다. 내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제일 먼저 너에게 말을 꺼낸 건 네가 따로 생각했던 바가 있어 처리해야 할 것들이 있다면 미리 처리해 두라는 뜻이다. 그때 가서 또 소란을 피우며 꼴사납게 만들지 말거라!”
육 노태야가 딱딱하게 말했다.
“네 시어머니한테는 내가 직접 이야기하마. 네 시어머니는 현모양처라 여태껏 내 말을 거역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장남의 혼사는 아주 큰일이야. 여자가 어찌 남자보다 안목이 더 좋을 수 있겠느냐? 너도 때론 마음을 좀 너그럽게 가지거라. 자꾸 사소한 일을 걸고넘어지지 말고. 그건 너 자신에게도 좋을 것이 없어.”
임옥진은 갑자기 할 말이 없었다. 노부인이 노태야의 말에 순종하는 현모양처라는데 며느리인 그녀가 무슨 말을 더 보탠단 말인가. 그녀가 더 말을 해 봤자 현숙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윗사람의 말을 거역하고 사소한 일을 걸고넘어지며 임근용과 같은 어린아이를 괴롭히는 사람이 될 뿐이었다. 그리고 육 노태야가 그녀에게 먼저 말을 한 건 어쨌든 그녀의 체면을 세워 준 것이나 다름없으니 언쟁을 해 봤자 스스로 화를 자초하는 꼴밖에는 안 됐다. 임옥진은 몹시 화가 나 분개했지만 육 노태야와 또 다시 다툴 엄두가 나지 않아 그저 억울해하며 인사하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문을 나서자마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발에 불이라도 붙은 것처럼 빠르게 걸었다. 그녀는 우연히 만나 인사하는 하인들마저 매섭게 노려보며 황급히 발걸음을 옮겼다. 방 마마가 빠른 걸음으로 그녀의 뒤를 따라가며 말리지도 못하다가 대문 앞에 다다라서야 시녀에게 눈짓하며 육운을 불러오라고 시켰다.
임옥진은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큰 꽃병을 깨뜨리며 욕을 했다.
“분명 송씨 그 계집이 수작질을 부린 게야!”
육 이부인 송씨를 빼면 누가 이렇게 수작을 부려 그녀를 괴롭히고 불쾌하게 만들겠는가? 차남가만이 노태야의 마음을 움직이는 이런 재주를 가지고 있었다. 임옥진은 장남가의 맏며느리였다. 이 집은 원래 그녀가 지배하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그녀가 자식 때문에 7, 8년 동안 멀리 가 있다 돌아오니 사람들과 상황이 모두 달라져 있었다. 육건신이 아무리 잘 나가고 육함이 아무리 쓸 만한 재목일지라도 뜻대로 되지 않고 손을 뻗칠 수 없는 부분은 분명히 존재했다. 사람들은 송씨는 좋은 사람이고 임옥진은 흉악한 사람이라 수군댔지만, 송씨에게 이런 사악한 면이 있다는 걸 누가 알겠는가?
방 마마가 황급히 방문을 닫고 임옥진을 잡으며 낮은 목소리로 타일렀다.
“아이고, 부인, 이러지 마세요. 소문나면 좋을 게 뭐가 있겠어요?”
임옥진을 난처하게 만들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만, 그녀의 수하에 있는 사람들이 괜히 곤란해질 수 있었다.
임옥진이 큰 소리로 말했다.
“정말 무서운 계집이야! 너희들 중에 누가 말을 전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눈치 보지 말고 상금을 받으러 가거라!”
방 안에 있던 시녀들은 소스라치게 놀라 입을 다물고 눈을 내리깐 채 발끝만 쳐다보았다. 그녀들은 속으로 차라리 자신이 이 자리에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 방 안에 있는 아이들은 모두 부인을 따라 강남에서 온 아이들인데 누가 쓸데없이 입을 놀리겠어요?”
방 마마가 손을 흔들어 나머지 사람들을 내쫓고 말했다.
“부인, 누가 무서워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이런 일이 노태야의 귀에 들어가면 좋지 않아서 그런 거예요. 노태야의 성격이 어떤지 부인께서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본인이 생각을 바꾸지 않는 이상 한 번 뱉은 말은 절대 바꾸는 분이 아니시잖아요.”
임옥진은 자리에 앉아 한참 동안 묵묵히 생각하며 점차 화를 가라앉혔다.
“둘째 공자가 요즘 특별히 이상한 행동을 한 적은 없고?”
방 마마가 의아해하며 말했다.
“없습니다. 매일 시간에 맞춰 책을 읽고 글씨를 쓰시고 외출도 하지 않으셨어요. 쓸데없는 사람들과 접촉한 적도 없으시고요.”
임옥진은 워낙 의심이 많은 사람이라 송씨를 의심한 뒤 또 여씨와 육함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만약 도씨와 임근용이 그녀를 거들떠보지 않아 두 집안의 관계가 아주 나쁜 것만 아니었다면 임옥진은 그들 모녀가 이 일을 꾸몄다고 의심했을 것이다.
임옥진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가서 공자한테 잠깐 왔다 가라고 해라!”
이런 일을 육함을 부른다고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설마 육함에게 노태야를 찾아가 임근용은 싫고 임근주를 원한다고 말이라도 하란 소린가? 혼사와 같은 큰일은 예로부터 윗사람의 결정에 따랐기 때문에 스스로 결정할 수 없었다. 방 마마는 속으로 투덜거렸지만 가뜩이나 운수 사나운 임옥진의 성질을 건드릴까 봐 얼른 밖으로 나가 사람을 시켜 육함을 불러오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