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hon RAW novel - Chapter 195
195화. 사과
임근용이 웃으며 말했다.
“이 무슨 과분한 말이냐. 셋째 숙모께서 걱정이 많으셔서 그런지 너무 겸손하게 말씀하시는구나. 이러시면 내가 어찌 감당을 하라고?”
여지가 걱정스러운 눈길로 그녀를 바라보았고 혜 마마도 그녀를 보며 살짝 불편한 웃음을 지었다.
“이소부인, 오해는 푸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당연히 사과를 드려야지요.”
육함이 임근용을 힐끗 보고 어두운 표정으로 냉담하게 말했다.
“마마는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게야? 이소부인이 누구한테 뭐라고 한 적도 없는데 갑자기 와서 화가 났으면 이해해 달라니 그게 무슨 소리냐? 이런 말이 새나가면 남들이 이소부인에 대해 뭐라고 떠들어대겠느냐. 다음부터는 삼부인의 입을 빌려 함부로 떠들어대지 말거라. 안 그러면 내가 널 용서치 않을 것이다. 나이도 이리 많은 마마가 어찌 사리 분별도 제대로 못 하는 게야?”
혜 마마는 잠시 멍해졌다가 얼른 자기 입을 때리며 말했다.
“이소야 말씀이 맞습니다. 노비가 말을 제대로 못 해서 삼부인의 뜻을 잘못 전달했습니다. 이부인, 용서해 주십시오.”
네가 얼마나 이걸 잘 수습하는지 한번 보자. 임근용이 태연하게 말했다.
“마마, 그만 때려. 앉기 싫다니 굳이 강요하지는 않을게. 수고스럽겠지만 돌아가서 셋째 숙모께 안심하고 건강을 회복하는 데에만 전념하시고 다른 일은 걱정하지 마시라고 전해. 그러다 혹시 병세가 악화되면 그 화살이 다 나한테 돌아오지 않겠어? 원래는 내가 찾아가서 뵈어야 하는데 쉬시는 데 방해가 되면 안 될 것 같아 안 가는 거라고 말씀드려.”
임근용은 이 말을 마친 뒤 고개를 숙이고 차를 마시며 더 이상 혜 마마를 거들떠보지 않았다.
혜 마마는 그녀의 이 뜨뜻미지근하고 싱거운 말 몇 마디에 내심 실망했다. 그녀는 말을 하다 만 것 같은 느낌에 잠시 서서 자신을 거들떠보지도 않는 임근용을 쳐다보았다. 육함도 눈을 내리깐 채 자신을 무시하는 걸 보고 그녀가 자기도 모르게 기분이 나빠져 몇 마디 더하려 입을 여는데 육함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여지야 마마를 부축해서 배웅해 주거라. 나이가 많아서 다리가 불편해.”
여지가 한 걸음 앞으로 다가오더니 거짓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마마, 이쪽으로 오세요.”
혜 마마는 더 이상 있어봤자 좋을 게 없을 것 같아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
“이소야, 이소부인, 그럼 이만 쉬십시오. 노비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임근용은 눈꺼풀조차 들지 않고 그녀를 완전히 무시했다. 혜 마마가 문밖으로 나서는 걸 본 그녀는 큰 소리로 사람들에게 물었다.
“밥은 아직 안 왔느냐? 상을 차리거라.”
사람들이 바쁘게 식탁을 차리며 두 사람이 손을 씻을 수 있게 뜨거운 물수건을 올렸다. 육함이 손을 씻고 곧장 임근용의 맞은편에 가서 앉으며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임근용은 그를 쳐다보지 않고 밥도 떠 주지 않았다. 여지가 급하게 두 사람의 밥을 퍼 주고 일부러 즐거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소부인께서 새끼양고기를 제일 좋아하시는데 이소야께서 좀 집어드리시는 게 어떨까요?”
육함이 얼른 가장 두툼한 것으로 골라 임근용의 밥그릇에 놓아 주었다.
여지가 또 웃으며 말했다.
“밥을 가지고 온 시녀가 그러는데 이 닭구이는 방금 구운 거라 껍질이 바삭하고 정말 맛있을 거라고 하더라고요.”
여지는 역시 임근용 편이었다. 임근용이 육함에게 고기를 집어 주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한 말이었지만 그녀는 임근용을 난처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아 에둘러 표현했다.
임근용은 역시나 들은 체도 하지 않고 고개를 숙인 채 밥만 먹었다.
육함은 잠시 기다렸지만 그녀가 반찬을 집어 줄 마음이 전혀 없어 보이자 더 이상 기다리지 않고 고개를 숙이고 밥을 먹었다.
임근용은 다른 사람이 자신을 못살게 굴수록 자기 자신을 푸대접하지 말고 스스로에게 잘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끊임없이 밥을 먹었다. 육함은 원래 밥을 많이 먹었지만 지금은 별로 입맛이 없었다. 하지만 그는 쉴새 없이 먹는 임근용을 보고 약한 모습을 보여선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사내대장부가 여인보다 마음 씀씀이가 작아서야 되겠는가?
이러한 이유로 두 사람은 평소와는 달리 식탁에 있는 음식을 싹 먹어 치웠다. 계 마마와 여지를 비롯한 시녀들은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의아해했다. 계 마마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조용히 산사탕(*山楂汤: 산사나무 열매로 끓인 탕으로 소화불량에 효과가 있음)을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임근용은 밥을 다 먹고 앵두의 시중을 받으며 입을 헹구고 얼굴을 닦았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날 때쯤 되어서야 배가 꽉 찼다는 걸 느끼고 밖으로 산책을 나갔다.
육함은 그녀를 힐끗 쳐다보며 뭘 하려는 건지 묻지도 않고 그녀의 뒤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
밖으로 나가니 임근용은 정원 안에서만 뱅뱅 돌 뿐 밖으로 나갈 생각은 없는 것 같았다. 이에 육함은 그의 작은 서재로 들어가 공부를 시작했다.
임근용은 정원을 크게 한 바퀴 돌다 동쪽 담 밑에 서서 아무것도 없는 땅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할 일 없이 한가할 때 여기에 꽃을 심으면 좋을 것 같은데 뭘 심을까, 국화가 좋겠어. 어떤 국화를 심는 게 좋을까? 이건 육 노태야한테 가르침을 청해 봐야겠어.’
그녀는 최소를 주고 최대의 이익을 얻는 방법을 배울 필요가 있었다.
육함은 창문 앞에 앉아 임근용이 담 밑에 꼼짝도 하지 않고 서 있는 걸 보고 절로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자꾸 그녀를 흘끗거렸다. 우는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계속 그녀 쪽이 신경이 쓰였다. 그는 잠시 후 임근용이 몸을 돌려 움직이는 것을 보고 나서야 고개를 숙이고 계속 책을 읽었다. 육함은 한참 동안 책을 들여다봤지만 임근용이 방 안으로 들어올 때까지 채 한 장도 넘길 수 없었다.
육함은 옆방에서 들리는 물소리를 듣고 임근용이 낮잠을 자려고 한다는 걸 눈치채고 잠시 앉아 있다가 책을 놓고 일어나 옆방으로 갔다. 마침 안에서 나오던 여지가 손가락으로 그녀 쪽을 가리키며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고집이 또 도지셨어요. 이럴 때는 부인께서도 어떻게 못 하셨어요. 이소야께서는 신경 쓰지 마시고 혼자 풀리실 때까지 그냥 두세요.”
육함은 이 말을 듣고 기분이 많이 나아졌다. 누가 화를 안 낸단 말인가? 더구나 그녀는 고집이 세기로 아주 유명했다. 육함은 임근용이 지금보다 훨씬 더 악랄했을 때도 이미 여러 번 그녀와 마주친 적이 있었다. 임근용이 지금 온화하고 조용해 보인다고 해서 그녀의 본래 모습을 잊어버리면 안 되는 것이다.
게다가 요 며칠 동안 그녀를 난처하게 만드는 상황이 연이어 발생해 한 사건이 끝나기도 전에 또 다른 사건이 몰아쳐 육함조차 골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는데, 막 시집온 그녀는 또 얼마나 불편했겠는가? 이런 생각이 든 그는 여지에게 위로하는 듯한 미소를 지어 주며 문발을 젖히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임근용은 벌써 비녀와 겉옷을 벗고 침상에 누워 편안하게 잠들어 있었다. 이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란 말인가? 그저 한 무리의 사람들이 끊임없이 임근용을 괴롭히고, 불편하게 만들어 그녀를 자신들의 발밑에 굴복시키려 하는 것일 뿐이었다. 그들이 소란을 피우고 싶어하면 피우게 내버려두고 그녀가 당해내지 못하면 못하는 대로 그냥 두면 되는 것이다. 임근용은 어쨌든 계속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고 또 잘 살 것이다. 아무리 산해진미를 먹고 살아도 사람은 병이 나게 마련 아니던가? 하물며 시집오자마자 이렇게 무자비하게 모함과 괴롭힘을 당했으니, 새 신부가 참다 못 해 병이 나 드러누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도 당연했다. 이러면 더는 누구도 그녀를 귀찮게 할 수 없을 터였다.
“아용?”
육함은 침상 옆에 잠시 서 있다가 그녀가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자 가볍게 휘장을 젖혔다. 그는 임근용이 고요하게 얕은 호흡을 내뱉는 걸 보고 분명히 잠든 것이라 생각해 자기도 모르게 가벼운 한숨을 내쉬며 다시 휘장을 내려놓고 돌아 나왔다. 그는 다른 데로 가지 않고 옆방에서 종이를 깔고 먹을 갈아 열심히 글씨를 썼다.
그가 열 장 정도 쓰니 이미 황혼에 가까워져 있었다. 바깥 날씨가 어느새 변해 북풍이 휘휘 불고 있었다. 가볍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밖에서 여지의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이소야, 대부인 쪽의 방령(芳龄) 언니가 와서 대부인께서 오늘 저녁 식사에 이소야와 이부인을 초대하셨다고 하네요.”
육함이 얼른 물었다.
“이소부인한테는 여쭤봤느냐, 뭐라 하든?”
여지가 난처해하며 말했다.
“이소부인께서는 몸이 불편해서 못 갈 것 같다고 하셨어요. 아직 자리에 누워 계세요.”
육함은 들고 있던 붓을 얼른 내려놓고 종이를 정리한 뒤 빠른 걸음으로 옆방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너희는 어찌 나한테 미리 알리지 않았느냐? 어디가 아프다는 게냐?”
* * *
방 안이 어두컴컴해서 새빨간 휘장도 조금 어두워 보였다. 침상에서 멀지 않은 곳에 두 개의 놋쇠 숯 화로가 놓여 있었고 숯 화로 안에서는 은사탄(银丝炭)이 붉은빛을 머금은 채 열기를 내뿜고 있었다. 구석에 있는 청자향로에서 약간 달콤한 향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는데 뜨겁고 달콤한 향기 때문에 공기가 답답하게 느껴졌다.
밝고 청량한 서재에 있다가 온 육함은 약간 적응이 안 되어 조용히 지시했다.
“향을 치워라. 휘장을 걷어서 공기를 통하게 하고 숯 화로를 좀 멀리 떨어뜨려 놓아라.”
계 마마가 아주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바깥 날씨가 변해 북풍이 쉭쉭 소리를 내며 불고 있었다. 아가씨가 아픈데 몸을 따뜻하게 해 주어야 하지 않은가? 육함 같이 갓 혼인한 젊은 남자가 부인을 아껴 주고 보살펴 주는 방법을 알기나 하겠는가? 그래서 그녀는 향만 치우고 숯 화로는 건드리지도 않았으며 휘장도 걷지 않았다.
여지는 잠시 머뭇거리다 계원에게 숯 화로를 조금 옮겨다 놓으라고 하면서 더 이상 아무것도 하지 않고 공손히 손을 모은 채 한쪽에 서 있었다.
“이소야, 대부인 쪽에서 아직 회답을 기다리고 계세요.”
이 사람들은 지금 전부 다 화가 나 있는 상태였다. 육함은 그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모르는 척할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께는 내가 이따가 직접 가서 말씀드릴게. 넌 가서 휘장을 걷어 공기가 통할 수 있게 해. 방 안이 열기와 향기로 가득 차서 너무 답답하구나. 아마 소부인도 그럴 거야.”
그는 이 말을 하고 나서 침상으로 다가가 가볍게 휘장을 젖히고 고개를 들이밀며 임근용을 바라보았다.
임근용은 그를 등지고 이불을 목까지 꼭꼭 덮은 채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육함이 손을 뻗어 그녀의 이마를 만지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
“아용, 어디 아프오?”
여지는 계 마마와 눈을 마주치고 조용히 물러났다. 여지는 문가로 가면서 휘장을 걷어서 고리에 걸었는지 생각해 보았다.
육함이 임근용의 이마를 만져보았지만 뜨겁지 않았다. 그는 방 안에 다른 사람들이 없는 것을 보고 몸을 숙여 자신의 이마를 임근용의 이마에 붙이려 하며 말했다.
“열이 나는지 확인을 좀 해봐야겠는데?”
임근용은, 몸을 옆으로 돌리며 다가온 그의 머리를 피하고 이불을 끌어다 얼굴까지 뒤집어쓴 다음 몸을 웅크렸다. 육함은 손과 얼굴을 치우며 가볍게 그녀의 곁에 앉아 한참을 침묵하다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 도대체 어디가 아픈 거요?”
임근용이 담담하게 말했다.
“온몸이 다 아파서 콕 집어서 어디가 아픈지는 모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