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hon RAW novel - Chapter 220
220화. 이상한 느낌
육함은 팔을 움직였지만 옷이 괜찮은지 아닌지는 말해 주지 않았다.
임근용은 그가 자신의 화를 돋우러 온 건가 하는 생각을 했지만 성질을 꾹 눌러 참으며 호의적으로 말했다.
“잘 맞아요?”
“그럭저럭.”
육함은 천천히 상의를 벗고 소맷자락을 가리키며 말했다.
“소맷부리를 줄여 주시오. 글씨 쓰기 불편해요.”
“응, 바로 고칠게요.”
그는 지금 생트집을 잡고 있었다. 그녀가 재단한 옷이 잘못됐을 리가 있겠는가? 임근용은 여씨가 만든 상의를 가리키며 그에게 일부러 물었다.
“이것도 같이 고칠까요?”
육함이 그녀를 힐끗 쳐다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아니오.”
그러더니 그는 탁자 앞에 앉아 반쯤 만들다 만 속옷을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임근용은 답답한 마음에 한숨을 내쉬고 차를 한잔 따라 건네주었다.
“난 손발이 느린 편이라 여기 이 옷들은 아직 다 못 만들었어요. 그래도 먼저 한 번 입어 볼래요? 안 맞는 곳이 있으면 미리 고치게요. 당신 옷을 만드는 건 처음이라 확신이 안 서네요.”
‘트집을 잡고 싶으면 어디 마음껏 잡아 봐라.’
육함은 시선을 거두고 차를 한 모금 마시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팔을 벌리고 그녀에게 손짓했다.
“당신 요즘 바쁘오?”
“응.”
임근용은 그의 속옷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그의 몸에 대 보면서 그를 따라 담담한 척하며 말했다.
“이소야도 바쁘죠? 내가 당신 공부하는 데 방해될까 봐 얼마나 걱정했다고요. 며칠 전에 고모께서 영하 때 사람을 보내 당신을 데려올 거라고 말씀하셨어요.”
육함은 뭔가 말을 하려다가 갑자기 팔에 통증을 느끼고 자기도 모르게 팔을 움츠렸다.
임근용이 당황해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물었다.
“어머, 미안해요. 바늘이 왜 당신을 찔렀을까요? 어디 찔렸어요? 많이 아파요? 어디 봐요.”
육함은 입을 꾹 다물고 소매를 걷어 올려 그녀에게 보여 주었다. 임근용은 잠시 바라보다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피는 안 나네요.”
육함이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말했다.
“아용, 일부러 그런 거 아니오?”
임근용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
“내가 왜 괜히 당신을 찔러요? 당신이 나한테 뭘 어쨌다고요.”
육함이 약간 미간을 찌푸리며 그녀를 응시했다.
“내가 모를 거라고 생각하지 마시오.”
임근용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태연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정말로 일부러 그런 거 아니에요. 못 믿겠으면 당신도 날 찔러서 복수하든지요.”
그녀는 이렇게 말하며 그에게 바늘을 건네주고 팔을 걷었다.
육함이 눈을 내리깔았다.
“사람들이 다 당신 같은 줄 아시오? 당신이 날 찔렀다고 나더러 당신을 찔러서 복수를 하라니, 정말 당신다운 생각이군.”
임근용은 입꼬리를 치켜올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옷에 있는 바늘과 실을 풀고 새로 만든 상의를 바닥에 평평하게 깔았다. 자와 분필을 찾아 옷 위에 치수를 그리고 교도(*交刀: 가위)를 들어 그에 맞게 잘랐다. 이때 마침 여지가 안으로 들어와 이 모습을 보고는 자기도 모르게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녀는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임근용을 막으며 말했다.
“소부인, 뭐 하시는 거예요? 열심히 만드신 멀쩡한 옷을 왜 자르세요?”
임근용이 담담하게 웃었다.
“이소야께서 마음에 안 드시나 봐.”
마음에 안 들면 입지 마. 임근용도 성격이 만만치 않은 사람이었다.
여지가 동작을 멈추고 육함을 바라보자 육함이 잠시 침묵했다 입을 열었다.
“마음에 안 든다는 게 아니라 그냥 좀 크다는 말이었소. 번거로우면 그냥 두시오. 손님을 만나러 갈 때 입으면 되오.”
그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사각 하는 소리가 났다. 임근용은 이미 교도(*交刀: 가위)로 잘라야 할 부위를 다 자른 상태였다.
방 안에는 한동안 정적이 감돌았다. 임근용이 태연한 표정으로 옷을 뒤적이며 말했다.
“이 정도 크기면 적당할 것 같네요.”
육함의 표정이 또 살짝 안 좋아졌다. 여지는 눈을 끔뻑거리다가 말머리를 돌렸다.
“이소야, 뜨거운 물을 가져 왔는데 지금 씻으실 건가요?”
육함이 한참 동안 입을 다물고 있다가 말했다.
“응.”
이에 임근용이 병풍 뒤로 가 그의 세면도구를 준비했다. 여지가 살금살금 그녀를 따라 들어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아가씨, 이소야께서 종일 말을 타고 오셔서 온몸이 땀과 먼지로 범벅이라고 목욕부터 하신다고 하셨어요.”
임근용이 하던 일을 멈추고 밖으로 나가 육함에게 물었다.
“민행, 돌아와서 어른들께 문안은 드렸어요?”
육함은 눈을 내리깔고 생각에 잠겨 있다가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들어 살짝 멍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는 임근용의 기분이 갑자기 좋아진 것 같아 보이자 의아했다.
하루 종일 앉아서 책만 보더니 바보가 된 거야, 아님 오는 길에 먼지를 많이 먹어서 멍청해진 거야? 밥 잘 먹고 왜 저러고 아무것도 안 하고 넋을 놓고 앉아 있어? 차라리 안 오느니만 못 하네. 임근용은 속으로는 이렇게 비난하고 있었지만 겉으로는 티 내지 않고 말했다.
“아직 인사 안 드렸으면 일단 세수만 하고 가서 문안부터 드리고 목욕은 나중에 해요. 안 그럼 머리카락이 마를 때까지 기다려야 하잖아요. 시간을 너무 오래 지체하면 좋지 않을 거예요.”
육함이 벌떡 일어나 병풍 뒤로 갔다.
“문안드리러 갈 필요 없소. 도착하자마자 다 인사드렸소. 갈아입을 옷 좀 찾아 주시오. 저녁도 여기서 먹을 거요.”
여지는 조용히 물러나와 방문을 닫았다. 그녀는 앵두와 계원에게 몇 가지 당부를 한 뒤 장수를 찾아가 대체 누가 육함을 화나게 했는지, 어째서 돌아오자마자 그렇게 이상한 태도를 보이는지 물었다.
임근용이 육함의 갈아입을 옷을 준비해 병풍 뒤로 가서 옷을 옷걸이에 걸고 말했다.
“도와줘요?”
“응.”
육함이 그녀에게 대답했다.
임근용은 그의 뒤로 가서 머리를 풀었다.
“머리부터 감아요.”
육함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의 등이 약간 경직되는 것이 눈에 보였다.
임근용은 잠자코 그의 머리를 감겨 주고, 물을 닦은 뒤 대충 비녀를 찔러 주었다. 그녀가 나갈 준비를 하자 육함이 말했다.
“아용, 등 좀 닦아 주시오.”
임근용은 목욕통에 들어있던 목욕 수세미를 들어 그의 등을 힘껏 문질렀다. 그녀가 두어 번 육함의 등을 문지르자 등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런데도 그는 아무 말 없이 반쯤 눈을 감은 채 그녀가 하는 대로 그냥 내버려두었다. 임근용은 또 그의 등을 몇 번 힘껏 문질렀지만, 그가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자 이내 흥미가 떨어졌고 손도 시큰거려 점점 손에 힘을 풀었다.
육함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당신이 갖고 있는 그 염지는 소작인들을 다 구했소? 듣자 하니 사람들이 부근의 주현까지 가서 소작인들을 구하는데 어떤 사람들은 멀리까지 가서도 못 찾았다고 하오. 이번에 선생님께 말씀드려서 며칠 더 집에 머물다 돌아가기로 했으니 내가 가서 찾아보겠소.”
임근용이 말했다.
“걱정 말아요. 그건 내가 벌써 다 처리했으니 당신은 공부에만 전념해요. 소작인도 구했고 종자도 이미 사 놨어요. 강물을 끌어다 댄 후에 물이 빠지면 농사를 시작할 수 있을 거예요. 당신은 영하가 지나면 바로 돌아가요. 공부가 제일 중요하잖아요.”
육함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임근용도 입을 열지 않아 방 안에는 물소리만 들렸다. 날이 점점 어두워지자 임근용이 목욕 수세미를 내려놓고 일어나며 말했다.
“이제 당신이 알아서 씻어요, 가서 불을 좀 켜야겠어요.”
그녀가 몸을 돌리자 육함이 그녀의 손을 잡았다. 임근용이 고개를 돌렸지만 그의 시선은 병풍을 향하고 있었다.
“아용, 그동안 잘 지냈소?”
임근용이 미소 지었다.
“잘 지냈어요, 당신은요?”
“나도 잘 지냈소.”
육함이 잠시 멈칫했다 말했다.
“아용, 당신도 내가 집에 오길 기다렸소?”
임근용이 웃음을 참지 못하고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럼요, 난 그저 당신을 방해할 수 없었던 것뿐이에요. 더 중요한 게 뭔지 생각을 해야죠. 지금은 당신 공부가 제일 중요하잖아요.”
육함이 꽉 잡고 있던 그녀의 손을 천천히 놓았다.
“가서 불을 켜시오.”
임근용이 빠른 걸음으로 나가 방 안의 불을 모두 켜고 그를 재촉했다.
“빨리 씻어요, 물이 식어서 감기 걸리겠어요.”
병풍 뒤에서 물소리가 나더니 곧 육함이 옷을 걸치고 나왔다. 임근용은 방문을 열고 사람들을 불러 치우라고 명령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정리가 끝났고 여지가 사람들을 시켜 식탁을 차린 뒤 웃으며 말했다.
“이소야, 이소부인, 식사 준비가 다 됐습니다.”
임근용은 식탁 위에 뜻밖에 술이 한 주전자 올라와 있는 것을 보고 여지를 바라보았다. 여지가 그녀에게 의미심장한 눈빛을 보내더니 밖으로 나갔다.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든 임근용이 따라 나가니 여지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장수한테 물어봤더니 지난번 아가씨께서 보내신 편지를 받고 처음에 아주 기뻐하셨다고 하더라고요. 근데 편지를 읽고 나더니 왠지 기분이 안 좋아지셨다고 해요. 그리고는 감기에 걸려서 며칠 앓으셨는데 사람을 보내 소식을 전하라고 하셨었대요. 삼부인께서는 이번 달에 세 번이나 그쪽으로 물건을 보냈다고 하더라고요. 근데 아가씨께서는 한 번도 안 보내고 사람도 안 보내셨잖아요.”
장수 말로는 숙모마저 시시때때로 물건을 보내고 그의 건강을 살피는데, 이소부인은 마치 이소야라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잊은 듯 병이 났다고 전갈을 했는데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는 이 말을 하며 약간 분개해했다. 작은 병이었으니 망정이지 큰 병이었다면 목숨이 왔다 갔다 했을 수도 있지 않은가?
“대체 누굴 보냈다는 거야? 집에서는 아무도 몰랐는데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그 일은 둘째 치고, 임근용은 자신이 보낸 편지를 보고 육함이 왜 기분 나빠졌는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녀는 길게 말을 하지도 않았고 그저 찻집을 열 거라는 소식만 분명하게 전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편지의 말미에 밥을 잘 챙겨 먹고 옷을 단단히 입으라고 당부하며 집안일은 걱정하지 말고 열심히 공부하라고 덧붙인 게 다였다. 그의 마음을 모르겠다고 굳이 알려고 애쓸 필요는 없었다. 어찌 매일 그의 기분만 살피며 살겠는가.
여지는 잠시 생각해보더니 화난 눈빛으로 말했다.
“틀림없이 누군가가 수작을 부린 거예요. 아가씨, 이소야께 분명히 말씀드리셔야 해요.”
“알았어. 넌 그만 가봐.”
임근용은 여지를 보낸 뒤 육함의 곁으로 가 술을 한 잔 따라 주었다. 그녀는 또 그에게 닭고기를 하나 집어 주며 잔을 들고 말했다.
“난 막 집안일을 시작한 데다 혼수까지 정리하느라 근래에 좀 바빴어요. 그래서 이런저런 실수나 빈틈이 있을 수밖에 없었을 거예요. 내가 뭔가 부주의해서 당신을 서운하게 했다면 일단 사과할게요.”
육함은 그녀를 한 번 보더니 술잔을 들어 단숨에 비웠다. 그는 아무 말없이 임근용이 술을 마시는 걸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녀의 잔에 다시 술을 채워 주며 말했다.
“만약 내가 부인을 서운하게 한 부분이 있다면 사과하겠소.”
그는 또 단숨에 술을 들이켰다.
임근용도 미소를 지으며 술잔을 들고 한 번에 다 마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