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hon RAW novel - Chapter 234
234화. 비밀을 누설하다
육 노부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송씨의 말에 동의했다.
“확실히 서 마마에게 맡기는 게 좋을 것 같구나.”
그러더니 소심에게 지시했다.
“어떻게 만들면 좋을지 물어봐야겠으니 서 마마를 좀 불러오너라.”
육 노부인은 잠시 생각해보다 눈을 가늘게 뜨고 웃으며 말했다.
“이참에 노태야도 모셔와서 어떤 색깔과 모양이 좋을지 여쭤보고 한꺼번에 결정하는 게 좋겠다.”
소심은 명을 받들어 사람들을 찾으러 갔다.
육 노부인은 내심 어제 그런 불쾌한 일이 있었으니 사람들의 기분을 좀 풀어 주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맹 마마에게 옷궤를 전부 열라고 지시하고 물건을 하나하나 꺼내 확인하며 차례로 옷감을 나눠 주었다. 임근용의 차례가 되자, 육 노부인은 특별히 담홍색 원추리 무늬의 소라를 골라 들고 웃으며 말했다.
“아용, 이건 네가 가져가거라.”
훤초의남(*萱草宜男: 옛날 미신으로 부인이 원추리를 소지하고 다니면 아들을 낳는다고 여김)이라, 육 노부인의 의도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송씨가 웃으며 말했다.
“좋네요, 맞아요, 이런 건 아용이가 입어야죠. 그래야 얼른 자손을 낳고 집안을 번성하게 해 줄 수 있지 않겠어요. 우리 원랑이랑 호랑이한테도 같이 놀 동생들을 좀 만들어 줘야죠.”
임근용은 웃는 얼굴로 고개를 숙인 채 옷궤 안의 차 봉지를 만지작거렸다. 육운이 앞으로 나와 차 봉지를 들고 슥 보더니 웃으며 말했다.
“역시 우리 새언니가 보는 눈이 있어요. 이건 조정에 공물로도 들어가는 밀운용(*密云龙: 복건성 무의산에서 나는 품질이 우수한 차)이네요. 20병(*饼: 둥글넓적한 전병 모양으로 만든 한 덩어리를 세는 단위)에 한 근인데, 10병씩 한 봉지로 나눠져 있나 봐요. 보니까 최고급 같아요. 이건 저도 몇 년 동안 맛도 못 본 물건이에요.”
육 노부인이 웃으며 말했다.
“무슨 말인지 알겠으니 그만해라. 그럼 이건 너희 올케와 시누이 두 사람이 한 봉지씩 나눠 가지거라. 그걸로 차 끓일 때는 이 할미한테도 맛보여 주는 거 잊지 말고.”
려씨는 어제 일 때문에 망신스러워서 줄곧 한쪽에 서서 침묵만 지키고 있었다. 그녀는 송씨가 연거푸 두어 번 눈짓을 하고 나서야 용기를 내 작은 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할머님, 아용과 아운만 생각하시느라 전 잊으셨나요. 섭섭해요, 저도 좀 챙겨 주세요.”
“그래, 어디 보자, 뭘 줄까?”
육 노부인이 그녀를 힐끗 보고 옷궤 안에서 정교하고 아름다운 난새단화(鸾鸟团花) 부채를 골라 건네며 말했다.
“넌 차를 별로 좋아하지 않으니, 이걸 가져가거라. 이런 좋은 물건은 너희 같은 젊은이들이 쓰기 딱 좋지.”
이 부채는 상자 전체를 통틀어 두 자루밖에 없는 물건이었다. 려씨는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임옥진은 짜증이 나서 입을 삐죽 내밀었다.
‘세상에 귀한 물건을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이건 다 내 남편이 보낸 물건들이잖아. 제일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은 나 아니야? 근데 이게 뭐야, 나한테는 아무것도 안 주고 아무 상관도 없는 려씨한테 제일 좋은 걸 골라주다니.’
육 노부인이 한숨을 쉬며 임옥진의 뺨을 가볍게 꼬집었다.
“넌 아직도 하는 짓이 어린 아가씨 같구나.”
그러더니 나머지 부채 하나를 그녀에게 주었다. 임옥진은 그제야 웃기 시작했다.
대체 나이가 몇 살인데 아직도 저렇게 순진하고 귀여운 척을 하는 거야? 송씨는 한편으로는 경멸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질투하면서 옷궤 안에서 연두색과 미색의 얇은 비단을 한 필씩 꺼내 청했다.
“어머님, 이건 이노야와 대소야한테 각각 한 필씩 주면 어떨까요. 두 사람 다 하루 종일 쨍쨍한 햇빛 아래에서 뛰어다니느라 온몸에 땀띠가 날 지경이랍니다.”
육 노부인이 말했다.
“그래, 가져가렴, 공부하는 아이들 것도 챙기고.”
그러더니 임근용을 부르며 말했다.
“너도 둘째 손자 걸 좀 골라 보거라.”
다들 이렇게 즐거워하고 있는 사이 육 노태야와 육함을 비롯한 몇 명의 사람들이 아주 밝은 표정으로 안으로 들어왔다. 육 노태야가 말했다.
“당신 지금 나 같은 남자를 불러다 여인들이랑 같이 옷감을 고르고 재단을 하자는 거요? 남들이 알면 얼마나 비웃겠소?”
그는 말은 이렇게 했지만 눈에 웃음기가 가득했다. 멀리 있는 아들이 잘 지낸다는 서신과 함께 명절 선물을 보내왔으니 이보다 더 기쁜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육 노부인이 입을 길게 늘어뜨리고 미소 지으며 말했다.
“모처럼 큰아들이 이렇게 효도를 하는데, 당신 아니면 누가 이걸 누리겠어요?”
그녀는 고개를 돌리고 서 마마를 바라보며 말했다.
“서 마마, 이걸로 뭘 만들면 좋을지 와서 좀 봐 줄래?”
서 마마가 얼른 다가와 옷감을 자세히 살펴보고 의견을 제시했다.
“노부인, 이 주홍색 사경교라는 큰 소매 상의를 만들어 안쪽에 연한 연두색 비단을 덧대면 좋을 것 같습니다. 또 이 죽청색 제화(*提花: 자카드 무늬)교라는 긴팔 배자를 만들고 연갈색 천으로 안에 받쳐 입을 옷을 만들어 깃을 금색으로 하면 좋을 겁니다.”
육 노부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거라.”
서 마마는 그제야 육 노태야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육 노태야는 원하는 바가 따로 있었다.
“난 시원하고 편한 옷이 필요하니 그걸로 내 장포 하나랑 대금(*大襟: 중국 옷에서 단추로 채우게 되어 있는 오른쪽 앞섶) 겉옷을 하나 만들면 좋겠구나. 색깔은 네가 알아서 하거라.”
이런 대화를 하는 도중에 여씨가 어린 시녀의 부축을 받으며 천천히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안으로 들어온 그녀는 인사를 올린 뒤 물건들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말없이 담담하게 한쪽에 앉아 부채를 부치며 차만 마셨다. 송씨가 잠시 눈을 깜빡이다 웃는 얼굴로 다가가 인사했다.
“셋째 동서, 왜 이리 늦게 왔어? 우리가 좋은 물건을 다 골라 가면 어쩌려고?”
여씨가 부채를 부치며 담담하게 말했다.
“큰 아주버님께서 선물 보내신 걸 제가 무슨 수로 알겠어요. 전 그냥 어머님께 문안을 드리러 왔다가 지금에서야 알았어요.”
송씨가 미안해하며 말했다.
“아이고 내가 실수했네. 물건들을 여기로 가지고 오는 것에만 정신이 팔려서 동서한테 알린다는 걸 깜빡했어.”
그러더니 고개를 돌리고 려씨를 나무랐다.
“내가 못 챙기면 너라도 좀 챙겼어야지 뭘 한 거니. 네 셋째 숙모께서 너그러우셔서 다행이지 안 그랬으면 내가 일부러 빼먹었다고 화냈을 거 아니야.”
려씨가 앞으로 나와 여씨에게 사과했다.
“다 제 잘못이에요, 이른 아침부터 너무 바빠서 제가 정신을 좀 놓았었나 봐요. 셋째 숙모님, 노여워 마세요.”
여씨가 임근용을 흘끗 쳐다보고 웃으며 말했다.
“난 아무 말도 안 했는데, 다들 왜 난리예요?”
임근용은 송씨 고부가 여씨에게 무슨 짓을 하든 전혀 신경도 쓰지 않고 있었다. 여씨는 속으로 자신이 팔자가 나빠 저런 며느리를 둔 것이라며 한탄했다.
임근용은 한쪽에 앉아 아무것도 보지도, 듣지도 못한 척하며 종이와 붓을 든 서 마마를 도와 사람들의 요구 사항과 옷감을 기록했다. 그리고 앵두와 여지를 불러 귀한 비단들을 조심스럽게 잘 정리해 두라 지시했다. 육함은 아무렇지 않아 하는 임근용을 보고 다시 시선을 돌렸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 옥으로 만든 쌍련필통(双联笔筒)을 집어 들었다.
육 노부인은 기분 나빠하는 여씨의 말투를 듣고 나서야 그녀를 빠뜨린 것이 생각나 위로하며 말했다.
“네 것도 다 남겨 놨으니 얼른 와서 보거라. 셋째와 여섯째 손자 옷감을 골라 보거라. 그리고 네가 직접 만들 건지 아니면 침방에 부탁할 건지 빨리 결정하렴. 그래야 하루라도 빨리 새 옷을 입을 수 있지.”
여씨는 그제야 앞으로 나가 물건을 골랐다. 그녀는 한참을 고르다가 임옥진이 손에 들고 있는 난새단화 부채를 탐내며 말했다.
“그 부채 정말 좋아 보이네요.”
임옥진은 일부러 그녀 앞에서 부채를 펼쳐 보이며 눈썹을 들어 올리고 자랑했다.
“좋은 물건이지, 아쉽게도 더는 없어.”
‘이런 물건이 너한테 가당키나 하단 말이냐!’
여씨의 눈에 번쩍하고 분노가 스쳐 지나갔지만 그녀는 곧바로 활짝 웃으며 말했다.
“큰형님께서는 늘 우아하고 고상하시니 그런 물건은 당연히 저희보다는 큰 형님이 쓰시는 게 어울리지요.”
‘넌 그런 물건이나 가지고 놀아, 다른 물건들이 너한테 무슨 소용이 있겠어!’
임옥진이 잠시 눈썹을 치켜들었다가 얼른 웃으며 말했다.
“그래, 시부모님께서 이렇게까지 날 아껴 주시는 걸 보면 내가 팔자가 정말 좋은 모양이야.”
‘약올라 죽겠지!’
여씨는 짜증을 참느라 부채질을 하며 육함 쪽을 돌아보았다. 육함은 고개를 숙인 채 손에 든 물건만 만지작거리고 있을 뿐 그녀 쪽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여씨는 또 눈가와 코끝이 시큰해졌다. 그녀는 또 다시 어젯밤 일이 떠올라 슬픔이 밀려왔다. 갈수록 모질게 구는 걸 보니 장가를 가고 나서 어미는 아예 잊은 모양이었다.
송씨가 상황을 지켜보다 여씨에게 기회를 봐서 밖으로 나오라고 힐끗 눈짓했다. 여씨는 잠시 앉아 있다가 부채를 부치며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 그녀가 송씨를 따라가 웃으며 말했다.
“둘째 형님, 무슨 일이세요?”
송씨가 길게 한숨을 내쉬고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셋째 동서가 앞으로 날 많이 도와줘야 해, 혹시 전에 나한테 무슨 서운한 일이 있었더라도 동서가 너그럽게 이해해 줘.”
여씨가 의아해하며 말했다.
“형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그녀는 약간 의기양양해졌다. 송씨가 늘 자신에게 친절하게 대하긴 했지만 이런 말까지 했던 적은 없지 않았나? 여씨는 눈을 굴리며 생각해보다 떠보듯 말했다.
“둘째 형님, 이러지 마세요. 저는 그저 형님을 도와드리는 것뿐이고 굵직한 일들은 다 둘째 형님께서 결정하셔야죠. 아버님께서 어떤 일을 배분해 주실지 아직 모르는 거고 저도 제가 잘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어요. 그러니 제가 괜히 망신당하지 않게 형님께서 많이 도와주세요.”
송씨가 의아해하며 말했다.
“동서, 아직 몰라?”
이 말을 들은 여씨가 살짝 긴장하며 말했다.
“뭘 말씀하시는 거예요?”
송씨가 그녀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이번에 집안일을 완전히 분리할 것 같아. 난 계속 구매하는 일을 맡을 거고 우리 큰 며느리도 하던 대로 주방을 관리할 거야. 듣자니 아버님께서 동서한테 창고 관리를 맡길 생각이시라 하더라고. 내가 장부 정리를 끝내는 대로 동서한테 말씀하실 거야. 근데 동서, 이건 딴 데 가서 소문내면 안 돼, 다 육륜이한테서 들은 얘기야.”
여씨는 갑자기 심장이 마구 뛰고 온몸이 휘청거려 하마터면 주저앉을 뻔했다. 그녀는 어젯밤 육함에게 거절당한 상처 따위는 싹 잊어버리고 날아오를 듯한 기분을 억누르며 말했다.
“다섯째가 잘못 들은 걸지도 모르잖아요. 아버님께서 직접 말씀하시기 전까지는 모르는 거죠, 그걸 어떻게 믿겠어요.”
“내가 동서를 속여서 뭐 하겠어? 우리 다섯째는 절대 거짓말할 녀석이 아니야. 어쨌든 곧 알게 되겠지.”
송씨가 거의 확신하며 여씨에게 몇 마디 더 하려 하는데 어린 시녀의 기침 소리가 들렸다. 두 사람이 고개를 돌려보니 화단 쪽에서 육운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그녀들은 입을 다물고 흩어져 주변을 한 바퀴 돈 다음 각자 자리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