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hon RAW novel - Chapter 37
37화. 변수 (2)
보름 후, 임근용은 금족 기간이 끝나 드디어 자유를 얻었다.
그녀가 손으로 백 번 베껴 쓴 여계가 보기 좋게 임 노태야의 앞에 놓여 있었다. 임 노태야가 웃으며 말했다.
“글씨가 예쁘구나. 자신의 본분을 지켜야 집안과 만사가 흥한다는 것을 잊지 말거라.”
“네.”
임근용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리고 곁눈으로 힐끗 글씨를 쓰고 있는 임신지를 쳐다보았다.
임신지는 작은 몸으로 의자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그는 창문 앞에 있는 책상에 엎드려 한 획 한 획 진지하게 글씨를 쓰고 있었다.
그녀는 임신지가 왜 갑자기 이렇게 침착해졌는지 의아했다. 임 노태야가 수염을 쓰다듬으며 웃었다.
“일곱째가 장난이 좀 심해서 마음을 다잡는데 며칠 걸렸단다.”
노태야는 옥도 다듬지 않으면 그릇이 될 수 없다고 믿는 사람이었다. 천성적으로 짓궂은 임신지를 한 달 만에 이렇게 만든 것을 보니 틀림없이 당근과 채찍을 병용하며 많은 공을 들였을 것이다.
임근용은 임신지의 작은 몸, 은근히 찌푸린 눈썹 등을 보면서 마음이 조금 아팠다.
다른 아이들은 일곱 살이 넘어서야 공부를 시작하는데, 그는 이미 그 길에 들어서 본성을 속박당하고 있었다.
하지만 임근용이 영원히 임씨 가문의 집에 남아 있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어떤 일들은 딸이 아들을 대신할 수 없었다. 임신지는 빨리 자라 인재가 되어야 했다.
이런 생각이 들자 임근용의 눈빛이 다시 굳세졌다. 그녀는 웃음을 머금고 조부에게 말했다.
“할아버지께서 일곱째를 위해 심혈을 기울이신 게 눈에 보입니다.”
노태야가 호방하게 웃었다.
“우리 임씨 가문의 번영이 내 대에서 끊기게 할 수는 없지.”
임근용은 인사를 하고 물러 나왔다.
그녀는 입구에 도착해 다시 고개를 돌려 임신지를 보았다. 임신지는 검은 포도알 한 쌍같이 큰 눈으로 장난스럽게 그녀를 쳐다보며 분홍색 혀를 얼른 내밀었다가 집어넣었다.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노태야를 등지고 앉아 그녀에게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주 좋아, 아직 천진난만해.’
그들은 함께 성장하고 있었다.
임근용은 고개를 들어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소리 없이 웃었다. 다 웃고 나서 고개를 돌리니 여지의 얼굴도 그녀와 마찬가지로 기쁨에 가득 차 있었다.
“가자, 우리 얼른 가서 노부인에게 문안드리고 다시 어머니를 뵈러 가자.”
“넷째 아가씨 오셨어요?”
청리가 웃으며 임근용을 대신해 문발을 걷어 주고 낮은 소리로 말했다.
“노부인께서 오늘 기분이 좋으세요.”
임근용이 웃으며 청리를 한 번 쳐다보았다. 그녀는 마음이 정말 수정처럼 맑은 사람이었다. 어쩐지 사람들과 사이가 그렇게 좋더라니.
청리는 마음속으로 그녀를 향해 웃으며 고개를 돌려 큰 소리로 고했다.
“노부인, 넷째 아가씨가 문안을 드리러 왔습니다.”
임 노부인은 임근지의 재롱에 눈물을 흘릴 정도로 웃다가 고하는 소리를 듣고 웃음을 거뒀다. 그녀가 손수건으로 눈꼬리를 눌러 닦으며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들라 해라.”
임 노부인이 아직도 임근용에게 화가 나 일부러 못살게 구는 건 아니었다. 다만 이 규방에서는 그녀가 일인자이므로 절대로 그 위엄에 도전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뿐이었다.
임근용은 관례대로 안부를 묻고 조용히 앉았다. 태연한 표정으로 평소와 같이 예의를 차리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방금 금족령에서 풀려난 사람 같아 보이지 않았다.
임 노부인은 그녀의 이런 태도를 꾸짖을 수는 없었지만 내심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다.
쌍둥이는 입술에 꿀이라도 바른 것마냥 애교를 부리며 재미있는 농담을 해 그녀를 즐겁게 해주었다. 임근지도 귀엽고 사랑스러우며 활발한 편이었다.
이와 비교해 보면 임근용 자매 둘은 너무 답답했다. 그녀들은 노부인과 대화하는 걸 좋아하지 않았고 사람들의 환심을 살 줄도 몰랐으며 고집이 아주 셌다.
노부인이 훈계를 해도 그녀들은 화를 내지도, 그렇다고 뭐라 말을 하지도 않았다. 마치 자신이 일부러 트집을 잡아 못살게 군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 태도였다.
‘됐어, 그런 어미한테서 어찌 좋은 딸이 나오길 기대하겠어? 도씨처럼 앞뒤 안 가리고 아무데서나 날뛰지 않는 것만 해도 다행이지. 강산은 변하기 쉬워도 성품은 변하기 어렵다 했어. 법도에 너무 벗어나지만 않으면 되는 거지. 어차피 곧 출가할 텐데 눈에 안 보이면 짜증도 안 날게야.’
임 노부인은 이렇게 생각하고 개운한 마음으로 담담하게 말했다.
“방금 할아버지께 다녀온 게냐?”
임근용은 몸은 약간 앞으로 기울여서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가르침을 줄 때의 예의를 충실히 표현하고 있었다.
“예. 할아버지께서 손녀에게 할머니께 효도를 다하라고 말씀하셨어요. 할머니께서는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임 노부인은 떨떠름하다는 듯이 흥 하고 콧방귀를 뀌었다. 그녀는 임근용에게 몇 마디 잔소리를 하고 자신의 일상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한 뒤 임근용에게도 어떻게 지내느냐고 물었다.
할머니와 손녀 두 사람의 대화 주제는 서로에 대한 관심을 드러내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마치 남처럼 어색하고 데면데면했다.
임근지가 옆에서 분홍색 뺨을 받쳐 들고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다가 두 눈을 초승달처럼 휘며 웃었다. 두 사람의 인사가 일단락되자 그녀가 끼어들며 말했다.
“넷째 언니, 밖으로 나와서 아직 셋째 숙모를 못 뵈었나 봐요?”
“응, 할아버지, 할머니께 먼저 문안드리고 나서 부모님한테 문안드리려고.”
임근용이 임근지를 바라보았다.
임근지는 호의적으로 그녀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녀는 마치 ‘안심해, 내가 있잖아, 내가 도와줄게’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임근용은 미소를 지으며 담담하게 시선을 거뒀다.
뭔가를 얻으려면 반드시 먼저 주어야 하는데, 임근지는 자신이 그녀를 위해 또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임 노부인이 임근지의 말을 듣고 말했다.
“그래, 넷째 너도 오랫동안 부모를 보지 못했겠구나, 자식 된 도리로 불효를 저지르면 안 되지. 가 보거라.”
임근용은 이에 인사하고 물러나 기쁜 마음으로 도씨를 보러 갔다.
임근용의 발자국 소리가 들리지 않자 임근지는 임 노부인 옆 자단목 발 받침대에 앉아 부드럽게 임 노부인의 종아리를 주무르며 웃었다.
“넷째 언니를 보니 갑자기 그날이 생각나네요. 운 사촌 동생이 언니가 고훈을 부는 소리를 듣고 정말 좋았는지 언니한테 배우고 싶어서 난리더라고요. 근데 넷째 언니가 우리들 앞에서 거절했어요. 운 동생이 아주 민망해하면서 슬퍼하더라고요. 제가 설득해 봤는데도 소용이 없었어요.
저도 넷째 언니가 그때 금족령을 받아 기분이 좋지 않았을 거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제멋대로 하는 건 좀 그렇잖아요. 그 아이가 사촌 동생이라도 역시 손님인데 말을 좀 돌려서 하는 게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은 넷째 언니 기분이 많이 좋아진 것 같아 보이네요. 그래도 앞으로는 언니가 여섯째, 일곱째 여동생과도 더 화목하게 지내서 저도 중간에서 곤란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노부인은 눈을 내리깔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마치 졸고 있는 것 같았다.
청리가 웃음을 머금고 앞으로 나와 임근지에게 말했다.
“다섯째 아가씨, 노부인께서 또 피곤하신가 봐요, 아가씨께서는 잠깐 나가서 바람을 쐬고 오시는 게 어때요?”
임근지는 뒤에서 임근용을 헐뜯어 자신을 추켜세우려 했다. 하지만 그녀는 임 노부인의 반응이 이럴 줄은 몰랐다. 절로 제 발 저린 그녀는 부끄러운 마음에 얼굴이 빨개졌고 멋쩍은 듯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그녀가 막 밖으로 나가려는데 노부인의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너도 별일 없으면 네 여덟째 동생을 좀 데리고 나가 놀아주려무나. 그 아이가 아직 어리고 서출이라 기가 죽어 있는데 네가 언니로서 돌봐줄 줄도 알아야지. 나중에 사람들이 그 아이가 임씨 가문의 아가씨인지 모르고 어디서 온 지 모를 시녀라고 착각하면 안 되잖니.”
이 말은 임근지 뿐만 아니라 대부인 주씨까지 함께 비난하는 것이었다.
임근지의 얼굴이 피처럼 새빨개졌다. 그녀가 모기가 앵앵거리는 것처럼 작은 소리로 대답했다.
“예.”
그녀는 소매로 얼굴을 가리고 도망치듯 재빨리 나갔다.
임 노부인은 눈꺼풀을 축 늘어뜨리며 콧방귀를 뀌었다.
“하나 같이 다 애물단지들이야. 대범한 줄 알았더니 바로 저렇게 옹졸한 티를 내는구나. 다섯째 저 아이도 그날 일과 전혀 무관하다고 할 수 있겠느냐? 큰 그림도 못 보고 분수도 모르는 바보 같은 것.”
임근지의 속마음은 정말 누가 봐도 빤히 들여다 보였다.
서열상 그녀보다 앞서 있는 임근용을 밟으면 그녀가 육가에 시집갈 수 있게 되지 않겠는가?
노부인이 말한 옹졸한 티란 임근지가 다른 사람을 모함하는 걸 가리키는 것이었다. 그 정도의 계략은 노부인에게 먹혀들지 않았다.
청리는 얼굴에 적당한 미소를 띠고 정성스럽게 임 노부인의 어깨를 주무르며 부드럽게 말했다.
“아가씨들이 아직 어리지 않습니까. 하늘에 떠 있는 별처럼 달 앞에서 서로 빛을 발하려고 다투는 거지요. 아가씨들이 노부인의 사랑을 받고 싶은 마음에 그런 걸 겁니다.”
임씨 가문 아가씨들이 별이었고, 임 노부인이 바로 달이었다.
청리가 이렇게 말하자 임 노부인은 주름이 가득한 얼굴로 활짝 웃으며 청리의 손등을 가볍게 두드렸다.
“역시 말은 아주 청산유수로구나.”
그녀는 잠시 눈을 감고 있다가 불쑥 한 마디 했다.
“넷째 계집애가 아마 못난 지 애미의 말을 듣고 일부러 육함과 육운이를 멀리하는 것 같구나. 역시 멍청하고 보는 눈이 없어.”
그 육 이공자는 굳이 다른 사람들의 환심을 사려하지 않고 말 수가 적었지만 학문과 재능 모두 뛰어난 아이였다. 그리고 임옥진은 그의 마음을 흐트러트리지 않기 위해 지금까지도 시녀들을 가까이하지 못하게 하고 그를 모시는 시종들은 모두 어린 남자아이들로 배치했다. 솔직히 말해서 오상보다 못할 것이 없었다.
도씨와 임옥진의 사이가 오랫동안 좋지 않았던 것은 임씨 가문 사람들도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노부인은 정말로 임근용이 마음에 들어 이런 말을 한 건 아니었다. 다만 모두가 좋다고 말하는 것을 누군가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 사람들은 자신의 판단이 옳았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그 사람이 멍청하다고 몰아세우기 마련이었다.
청리는 감히 대답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 채 바쁘게 할 일만 했다.
* * *
“어머니, 저 왔어요.”
임근용은 도씨의 앞마당에 발을 딛자마자 웃으며 어머니를 불렀다. 그녀가 빠른 걸음으로 문 앞에 도착하자 문발이 딱 맞춰 걷혔다. 그 사람이 낮은 소리로 임근용을 불렀다.
“넷째 아가씨.”
뜻밖에도 황 이낭이 거기 있었다.
황 이낭은 쑥색 상의에 짙은 녹색 치마를 입고 국수처럼 간단하게 꼬아 묶은 머리에 작은 은비녀를 꽂고 있었다. 그녀는 아주 소박해 보이는 모습으로 은은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임근용은 잠시 멈춰 서서 의심스러운 눈으로 황 이낭을 바라보았다.
보름 만에 황 이낭이 도씨의 방에 발을 들였다고?
그녀와 황 이낭이 합작하는 것은 황 이낭이 도씨를 괴롭히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황 이낭이 이럴 때 남몰래 도씨에게 와서 공손한 척하며 친근하게 구는 건 또 다른 얘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