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hon RAW novel - Chapter 379
379화. 연말
영 대학사 댁에서 돌아온 이후로 임근용은 하루하루가 정말 쏜살같이 지나가는 것 같았다. 매일 새로운 사건이 발생하고 매일 새로운 걱정이 생겼다.
경성은 평주와는 달리 섣달(*腊月: 음력 12월)부터 가난한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 나름대로 즐기고, 부자들은 또 부자들 나름대로 즐겼다. 가난한 사람들은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여자 귀신으로 분장하고, 징과 북을 두드리며 집집마다 방문해 구걸을 했다. 이걸 속칭 타야호(打夜胡)라고 했는데, 사람들은 이걸 하면 악귀를 쫓고 사악한 기운을 몰아낼 수 있다고 믿었다. 이런 사람들이 계속 찾아와서 임근용은 매번 준비해 두었던 쌀을 주었다.
부자들은 눈이 올 때마다 술상을 차려 놓고, 설사자(*雪狮子: 눈으로 만든 사자)를 만들고, 설등(雪灯)을 단 다음, 친구들을 불러 술을 마시며 즐겼다. 육함은 거의 하루걸러 하루씩 초대를 받아서 집에 돌아올 때면 거의 매일 술 냄새가 진동을 했다. 얻어먹은 것이 많아 이쪽에서도 답례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도 다행히 형편이 넉넉하고 춘아와 사 마마까지 있어서 임근용이 피곤할 일은 없었다.
이 정도는 그냥 일상생활에 속하는 수준이었고, 각종 명절이 돌아오면 말도 못 했다.
섣달 8일에 임근용은 탁발하러 온 수많은 스님과 비구니들을 대접한 뒤, 사 마마와 시녀들을 데리고 납팔죽(*腊八粥: 여러 가지 견과를 넣고 끓인 죽으로 섣달그믐에 끓여 부처님께 올리고 나누어 먹음)과 가장 자신 있는 떡을 만들었다. 그녀는 사람을 시켜 이것들을 여러 집에 보내고 동시에 또 많은 답례를 받았다.
15일에는 황제가 경룡문(景龙门) 밖에 있는 보록궁(宝箓宫)에서 원소절 맞이 경축 행사 예행연습을 거행했다. 이날 밤에 육함은 임근용을 데리고 마차를 타고 구경을 나갔다. 임근용은 아직 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너무 졸려서 육함의 품에 기대 잠이 들 뻔했지만 육함이 그녀의 귀를 잡아당기며 깨워서 가까스로 잠들지 않고 집에 도착했다.
24일은 교년절(*交年: 송나라 때, 음력 12월 24일에 묵은 해에서 새해로 바뀐다고 생각해 이날을 교년절로 삼았음)이라 경성 사람들은 이날 밤에 승려나 도사를 초청해 경서를 낭독하고, 술과 과일을 준비해 신에게 바치고, 온 가족이 전지를 태웠다. 또 조왕신의 그림을 붙이고, 술지게미를 아궁이에 발랐고 이 모든 걸 취사명(*醉司命: 민간에서 조왕신에게 제사를 드리던 풍속)이라 불렀다. 또 밤에는 침상 밑에 작은 등불을 켜두는 조허모(*照虚耗: 음력 12월 24일에 침상 밑에 등을 켜두어 사악한 귀신을 쫓는 것)를 해야 했는데 임근용은 불이라도 날까 봐 밤새 마음을 졸였다.
이렇게 매일이 쉴 틈 없이 숨 가쁘게 지나가 마침내 섣달그믐(*除夕: 음력 12월 31일, 한 해의 마지막 날)이 되었다.
밤이 되자 궁중에서는 사악한 기운을 몰아내려 나희(*傩戏: 역귀를 쫓는 춤에서 발전한 민간 전통극)를 공연했고, 도성 안은 폭죽 소리로 가득 찼다. 임근용과 육함은 화로 앞에 앉아 밤을 샐 작정이었지만, 임근용은 삼경 무렵이 되자 육함에게 기대 깊이 잠들었다.
육함은 고요하게 잠들어 있는 그녀의 볼록한 배를 바라보다, 창밖의 폭죽 소리를 듣고 문득 두 사람이 부부가 된 지 벌써 3년 가까이 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옛일을 떠올려보다 잠시 감상에 젖어 참지 못하고 임근용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육함은 임근용 대신 그녀의 머리에 꽂혀있는 비녀를 조심조심 뽑아내기 시작했다. 마지막 하나 남은 비녀를 절반 정도 뽑았을 때 임근용이 깜짝 놀란 듯 갑자기 눈을 뜨더니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그러는 바람에 육함의 손에 들려 있던 비녀가 옷을 따라 미끄러져 땅에 떨어졌다.
얼른 주워보니 이미 비녀 머리 부분에 금이 가 있었다. 이건 바로 양미가 임근용에게 선물로 준 그 금상 백옥 매화 비녀였다.
육함은 임근용이 이 비녀를 아주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더구나 금기가 많은 섣달과 정월에 하필이면 이런 일이 생겨 영 기분이 꺼림칙했다. 그는 임근용이 보면 마음 상할까 봐 얼른 비녀를 등 뒤로 숨겨 소매 속으로 집어넣고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안 그래도 이 아가씨를 씻겨서 재워야 하나 했는데, 어찌 딱 맞춰 일어났소?”
임근용은 잠에 취해 몽롱한 상태라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그녀는 약간 멍한 눈으로 속삭이듯 말했다.
“꿈을 꿨어요.”
육함은 그녀가 이마에 땀이 맺히고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걸 보고 절로 사랑스럽고 안타까운 기분이 들었다. 그가 손수건으로 조심스럽게 그녀의 땀을 닦아주며 속삭였다.
“무슨 꿈을 꿨길래?”
임근용은 눈을 깜빡이다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개꿈이에요. 이제 곧 7개월이니 유모와 산파를 찾아야겠어요.”
꿈에서 임근용이 아이를 낳을 때가 되자 임씨 가문에서 풍속에 따라 아주 먼 길임에도 공 마마를 시켜 선물을 보냈는데, 그때 유모도 한 명 데리고 왔다. 공 마마는 임근용에게 이 유모는 아이를 돌보기 위해 임옥진이 아주 엄선해서 고른 사람이니 안심하고 써도 된다고 말했다. 임근용은 경성에서 유모를 찾으면 나중에 평주로 데려가기가 곤란할 거라 생각하고 있던 참이라 아주 기뻐했다. 그녀가 유모를 앞으로 불러 보았지만 그 유모의 얼굴이 계속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임근용은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 유모가 안고 있던 아이를 그녀에게 건네주는 순간 그 유모가 문랑이었다는 걸 깨닫고 깜짝 놀라 꿈에서 깼다.
육함은 임근용이 쿨쿨 잘 자다가 깨더니 갑자기 유모와 산파를 찾아야겠다고 말하는 걸 듣고 그녀의 성격이 점점 더 제멋대로가 되어간다고 생각했다. 임신을 하면 기분이 오르락내리락 한다더니 정말로 그런 모양이었다. 육함은 자기도 모르게 실소하며 말했다.
“언제는 서두를 필요 없다더니, 자다 일어나서 갑자기 왜 또 이렇게 서두르는 거요. 한밤중에 어딜 가서 사람을 찾는단 말이오? 그건 일단 사람을 시켜서 자세히 알아봐야하오. 이런 큰일은 아무렇게나 할 수는 없어요.”
임근용이 미소 지었다.
“지금 당장 찾아야 한다는 말은 아니에요. 그냥 이제 슬슬 찾아볼 때가 되었다는 말이지요. 당신이 다음에 동향 사람들한테 한 번 알아봐요. 다른 건 몰라도 정직하고 일을 꼼꼼하게 하는 사람으로 골라야 해요.”
육함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걱정 마시오, 명심하겠소. 가서 옷을 갈아입고 자는 게 어떻소?”
임근용은 더 이상 잠이 오지 않았다.
“같이 밤을 새기로 했잖아요, 좀 전에 잠깐 잤으니까, 이제는 당신하고 같이 지킬래요. 춘절에 대조회가 있다고 하지 않았어요? 당신도 좀 자 둬요, 이따 가봐야 하잖아요.”
육함이 그녀에게 말했다.
“경성은 정월이 제일 번화한 시기라고 하더군. 내일부터 관청에서 금령을 해제해서 백성들도 3일 동안은 자유롭게 지낼 수 있소. 낮에는 물론이고 밤이 되면 일반 백성들뿐만 아니라 귀한 집안의 아녀자들도 밖으로 나와서 여기저기 놀러 다닌다고 하오. 길거리에서 내기하는 걸 구경하거나 술집이나 찻집에서 먹고 마시며 내외에 구애받지 않고 즐긴다고 하더군. 새해 연하장은 벌써 육량에게 보내라고 했지만 몇몇 집들은 직접 가서 인사를 드려야 해서 난 대조회가 끝나고 난 후에 들렀다 올 거요. 당신은 기력이 있으면 세배하러 온 손님들을 좀 대접해 주고 힘들면 그냥 쉬시오. 저녁을 먹고 나서 같이 밖에 나가서 구경할 거니까 기력을 모아두어야 하오.”
임근용이 알겠다고 대답하고 또 말을 덧붙였다.
“몸이 이렇게 둔한데 괜찮을까요.”
육함이 웃으며 말했다.
“당신 옷 만들 때 옷감을 조금 더 쓰는 것뿐이지 않소? 내 눈에는 지금도 아주 예쁘오. 사람이 많고 좁은 곳을 피해 멀리서 구경하면 괜찮을 거요.”
“알았어요.”
임근용은 알겠다고 대답하고 그의 손가락을 잡고 장난을 쳤다. 육함은 눈을 내리깔고 그녀를 바라보다가 무심코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임근용은 버티지 못하고 또 다시 눈을 감았다.
육함은 그녀가 깊이 잠이 들 때까지 기다렸다가 조심스럽게 그녀를 눕히고 이불을 잘 덮어 주었다. 그는 저린 두 다리를 가볍게 움직이고 기지개를 켰다. 육함은 뒤돌아서서 소매 속에 들어 있던 금상 매화 비녀를 꺼내 등불 불빛에 비춰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운 좋게도 다행히 부러진 건 아니었다. 금이 좀 가긴 했지만 금사를 박아 넣으면 가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비녀를 소매 속으로 다시 집어넣으며 조심스럽게 숨겼다.
* * *
이튿날 아침 임근용이 잠에서 깨어났을 때 육함은 이미 나가고 없었다. 두아가 그녀의 아침 식사 시중을 들고 나서 연하장이 담긴 쟁반을 들고 들어와 웃으며 말했다.
“대부분 하인들이 가져온 것이고, 몇몇 집에서는 직접 들고 오시기도 했어요. 하지만 다들 아가씨의 몸 상태가 평소 같지 않다는 걸 알고 계셔서 사 마마와 춘아 언니가 대신 대접했는데도 아무도 불평하지 않으셨어요.”
임근용은 연하장들을 건네받아 펼쳐보았다. 세 치 너비의 질 좋은 종이로 만들어진 연하장은 젓가락 굵기로 말려 비단실로 묶여 있었다. 그녀는 육함이 미리 작성해 둔 연하장 발송 명단과 일일이 대조해본 뒤 빠짐없는 걸 확인하고 나서 한쪽에 내려놓고 물었다.
“육량이는 언제 나갔어?”
두아가 웃으며 말했다.
“날이 밝자마자 나갔으니까 대충 돌아올 때쯤 됐을 거예요.”
그녀들이 대화를 하고 있는 도중에 앵두가 안으로 들어오며 말했다.
“아가씨, 요 집사가 왔어요.”
임근용이 급히 그를 안으로 불러들였다.
새 옷을 입은 요탁이 고개를 숙이고 들어와 휘장 밖에서 임근용에게 세배를 한 뒤 말했다.
“앞으로 며칠 동안은 계속 영업을 할 예정이라 손님이 많아서 인사드리러 올 겨를이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미리 이소야와 이소부인께 세배를 드리러 왔습니다.”
임근용은 웃으며 수고해 달라 말한 뒤 두아에게 준비해둔 세뱃돈을 가져다주라고 지시했다. 그녀는 요탁에게 자기를 대신해 가게 점원들에게 나눠주라고 지시한 뒤 몇 마디 격려의 말을 건네고 그에게 밥을 먹고 가라 했다.
요탁이 말했다.
“이소부인께 한 가지 보고 드려야 할 일이 있습니다. 요 며칠 물건은 사지 않고 계속 가게 안에 들어와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물어대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소인이 뭔가 꺼림칙해서 그 사람 뒤를 밟아보라 했는데 도중에 놓쳤다 합니다. 아무래도 누군가가 가게 내부 사정이 어떤지 염탐하는 것 같아서 이소부인께서는 알고 계셔야 할 것 같아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동지 이후로 가게의 매출이 계속 상승하고 있는 상황이니 누군가가 노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임근용은 잠시 생각해보다가 입을 열었다.
“알았다. 넌 가서 사람들을 잘 살펴보거라. 돈을 탐하지 말고, 부적절한 거래는 절대로 하지 말거라.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하마.”
요탁은 알겠다고 대답한 뒤 조용히 물러갔다.
임근용은 쟁반에서 연하장을 하나 집어 들고 그 위에 쓰여진 단아한 해서체를 보며 순간 결심을 굳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