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hon RAW novel - Chapter 96
96화. 미치다
임근음은 분노한 표정으로 임근용을 냉랭하게 쳐다보며 말했다.
“너 돈에 환장했구나! 그 금자랑 은자가 그렇게 좋아? 그 염지가 그렇게 중요하니? 어디 부끄러운 줄 모르고 동생들한테 장신구를 팔 생각을 해? 큰어머니께서 나한테 뭐라고 했는지 알아? 너 장신구함 좀 열어봐! 대체 뭘 판 거야?”
전생에서 주씨는 도씨가 임근용의 혼수를 마련하면서 또 임역지와 임근용의 혼사를 각각 계획하고 있다는 것을 듣고 주머니 사정이 빡빡할 것을 생각해 도씨를 도와주었다. 임근용은 어떻게든 나눠서라도 갚겠다고 했지만 주씨는 큰어머니가 주는 혼수라고 생각하라며 거절했다. 당시 임근용은 너무 부끄러워서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싫어!”
임근용이 얼굴에 웃음기를 거두고 담담하게 말했다.
“언니가 다 알았으니까 솔직하게 말할게. 그래, 나 돈 좋아해. 그 염지를 사고 싶은 것도 사실이야. 하지만 난 누구한테서 훔치지도, 빼앗지도 않았고 또 누구를 속인 적도 없어. 동생들이 나한테 그걸 달라고 떼쓰면서 안 주면 안 된다고 하길래 원하는 대로 해준 것뿐이야. 그게 뭐 어쨌다고?”
뭘 잘했다고 아직도 이렇게 고개를 빳빳이 들고 있어? 임근음은 화가 나서 뒤로 넘어갈 지경이었다.
“넌 체면도 없어? 어머니한테 가서 말씀드리기 전에 빨리 가서 그 수정비녀 찾아와!”
“싫어! 언니가 알고 있는데 어머니가 설마 아직까지도 모르시겠어?”
임근용은 일부러 화를 돋우듯 말했다.
“돈은 벌써 다 썼어. 이미 엎질러진 물이야. 아무리 화내도 소용없으니까 그만 화내는 게 언니 신상에 좋을 거야.”
임근음이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손을 들어 임근용을 때리려 했다. 임근용은 도리어 고개를 빳빳이 들고 강경하게 말했다.
“큰어머니께서는 이 일로 이득을 못 본 게 배가 아파서 괜히 우리한테 뭐라고 하는 것뿐이야. 언니도 생각해 봐, 작은어머니 쪽에서 뭐라 해? 아무 말도 안 하잖아. 그쪽에선 만족한 거지!”
정말 말이 안 통하는구나! 임근음이 크게 화를 내며 손을 휘둘렀다. 임근용은 눈을 꼭 감았다. “짝” 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볼에는 전혀 통증이 느껴지지 않았다. 임근용이 눈을 뜨자 그녀 대신 뺨을 맞은 여지가 보였다.
여지는 맞아서 아픈 얼굴은 전혀 개의치 않고 무릎을 꿇고 말했다.
“셋째 아가씨 고정하세요. 정말로 다른 아가씨들이 넷째 아가씨한테 자기를 믿으면 그 비녀를 달라는 둥 못 받은 사람은 나쁜 사람이라는 둥 하면서 그 비녀를 달라고 강요했어요. 넷째 아가씨께서도 어쩔 수 없이 이런 방법을 쓰신 것뿐이에요.”
임근음은 임근용이 전혀 뉘우치지 않는 것을 보고 갑자기 무력감을 느낀 듯 한숨을 내쉬었다.
“이건 미친 짓이야. 너, 다른 사람을 속일 순 있어도 난 못 속여. 그래,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네가 알아서 해. 난 모르겠다.”
임근음은 이렇게 말하고 어깨를 늘어뜨린 채 천천히 밖으로 나갔다.
여지는 얼른 가서 임근음에게 해명하라며 임근용을 떠밀었다.
하지만 임근용은 자기가 생각해도 미친 거라고밖에 할 수 없는 상황이라 뭐라 해명할 말이 없었다. 임근용은 가볍게 고개를 저으며 돈궤를 열고 18개의 금원보를 조심스럽게 넣었다. 그녀는 앞으로 다시는 사촌 자매들에게 장신구를 파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걸 깨달았다. 그렇지 않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임씨 가문 넷째 아가씨가 돈에 환장했다고 소문이 나 삼남가 전체가 안 좋은 소리를 들을 것 같았다. 이 길은 그녀가 상상했던 것보다 더 걷기 어렵고 고생스러웠지만, 다른 한편으로 자신은 운이 좋은 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그녀에게는 도순흠 같은 외삼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 * *
박간거에서 주씨가 턱을 괸 채 허 마마에게 물었다.
“도 대노야가 며칠 전에 성 서쪽에서 80경의 염지를 샀다고?”
허 마마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모두 560관에 샀다고 하더라고요. 노비의 친정 조카가 밖에서 열심히 수소문해서 알아낸 거예요. 도 대노야께서 밤에 꿈을 꾸셨는데, 그 땅을 사서 집을 지으면 일이 순조롭게 풀린다고 했다네요. 토지 계약서는 삼부인의 명의로 썼고 두 개로 나눠서 썼다고 해요.”
대체 뭐 하는 짓이지? 갑자기 왜 쓸모도 없는 염지를 이렇게 많이 산단 말인가! 설마 무슨 꿍꿍이라도 있는 건가? 주씨는 미간을 찌푸리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녀는 얼마 전에 임근음을 떠보았지만 그저 부끄러운 듯 고개만 숙이고 있는 통에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다. 주씨는 정말로 임근음이 이 일을 모르고 있거나 아니면 삼남가에서 이 일을 비밀에 부치려고 일부러 모두에게 숨기고 있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뭔가 이득이 있지 않을까? 도씨는 그런 감이 없는 사람이었지만 도순흠은 청주의 유명한 부호이고 똑똑하고 유능한 사람이었다. 주씨도 이 사람들을 따라 염지를 한 번 사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가 또 금방 생각이 바뀌고 하는 통에 마음을 확실하게 정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계속 고민하다가 허 마마에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
“사람을 시켜 삼노야께 이렇게 전해라…….”
허 마마가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예. 부인, 제가 얼른 처리하고 올게요.”
* * *
임근용은 도순흠이 돌아가는 날 그를 배웅했다. 배웅을 하고 돌아와 낮잠을 자고 일어나니 하늘색이 어두웠다. 어두침침한 하늘은 구름이 빽빽했으며 공기 중에 묵직한 습기가 가득해 이유 없이 사람을 당황스럽고 초조하게 만들었다.
계 마마가 임근용의 세수 시중을 들다가 중얼거렸다.
“왠지 큰 비가 내릴 것 같아요. 공기가 답답하네요.”
임근용은 더위를 타는 체질이라 맥없이 늘어진 목소리로 말했다.
“좀 내렸으면 좋겠어, 열흘 동안이나 계속 햇빛이 내리쬐었으니 이제 비도 좀 와야지.”
이때 가볍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하엽이 황급히 달려 들어왔다.
“넷째 아가씨, 셋째 아가씨께서 어서 부인의 방으로 가 보시래요!”
임근용이 다급하게 일어섰다.
“무슨 일이야?”
하엽이 그녀의 귓가에 대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
“삼노야와 부인께서 무슨 일로 말다툼을 하시는데 아마 도 대노야께서 염지를 산 일 때문인 것 같아요. 셋째 아가씨가 아가씨한테 가서 빨리 제대로 해명하라고 하셨어요.”
임근용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 * *
어두컴컴한 하늘 가장자리에서 갑자기 한 줄기 빛이 번쩍였다. 이어서 둔탁한 천둥소리가 멀리에서부터 가까워지며 울리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찬바람이 휘몰아치며 콩알만 한 빗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습하고 서늘한 기운이 뒤섞인 공기가 얼굴에 훅 끼쳤다. 세상이 순식간에 끝도 없이 하얘지고 지붕에서 떨어진 빗물이 처마를 따라 흘러내려 거의 폭포처럼 쏟아졌다.
임근음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복도에 서 있었다. 빗물이 튀어 그녀의 신발과 치마가 흠뻑 젖었다. 집안에서는 부모가 시끄럽게 싸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임 삼노야가 큰소리로 말했다.
“제대로 말해보시오. 이렇게 큰일을 왜 나한테 숨긴 거요? 당신 남매들은 대체 날 뭘로 생각하는 거요?”
도씨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것 참 이상한 소리네요. 임씨 가문의 돈을 쓴 것도 아니고 우리 오라버니가 자기 돈을 쓰는데 왜 당신 허락을 받아야 하는데요? 설마 당신 성이 도씨였어요?”
임 삼노야가 물건을 부쉈다.
“아주 성인군자 납셨네! 형님은 당신들한테는 항상 선물을 보내시면서 어째 나한테는 한 번을 안 보내실까? 분명 당신이 딴마음을 품고 많은 돈을 투자했다가 결국 물거품처럼 다 날리고 나서 나한테 숨기려고 이러는 거 아니오!”
이 말은 벌집을 건드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도 씨가 한바탕 욕을 퍼붓기 시작했다.
“우리 오라버니가 나한테 선물을 하든 말든 그건 오라버니 마음이지요! 당신은 받을 자격이 없으니까 안 주는 거 아니겠어요! 임여공, 감히 또 내 물건들을 부수면 내가 당신 그 낡은 종이 쪼가리들을 다 불살라 버릴 거예요! 당신 지금 그 생각하는 거 아니에요? 내 혼수가 당신 거라고? 왜 대놓고 당신 돈이라고 말해보시죠? 아이고, 뻔뻔하기도 해라!”
임 삼노야는 자존심이 심하게 상해 목소리가 떨렸다.
“당신 혼수를 뭘로 마련했는지 잊었나 보지? 다 우리 집에서 보낸 납채로 산 거 아니오!”
도씨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졌다.
“진짜 낯짝도 두껍네요! 내가 가져온 혼수가 당신이 보낸 납채의 거의 세배는 되는 건 기억 안 나나 봐요. 당신 집에서 보낸 납채 명단이 아직 있는데 어디 가져와서 한 번 확인해 봐요? 근음이 시집보낼 때 필요한 돈 중에 당신 문중에서 보태준 건 3분의 1도 안 돼요. 나머지는 다 내가 보충했고 아직도 시집, 장가보내야 할 아이들이 밑에 줄줄이 있어요. 당신 가문에서 주는 돈으로 이게 다 충당이 된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능력이 있으면 내 혼수에서 쓰게 하지 말고 당신 집에서 돈을 가져오든지요!”
“당신하고 이런 얘기를 하려 한 내 잘못이지!”
임 삼노야는 점점 밀리기 시작했다.
“법률상으로는 부인의 혼수와 시집올 때 가져온 재물은 다 남편이 관리한다고 되어있소. 삼종사덕(三从四德)에 시집을 온 다음에는 남편을 따르라 했는데 당신 나한테 물어본 적이나 있소? 누가 봐도 이건 당신이 잘못한 거요!”
“법률? 하!”
도씨가 퉤 하고 침을 뱉더니 말했다.
“감히 그런 말을 하다니 정말 부끄럽지도 않아요? 당신이 능력 있는 사람이면 왜 내 혼수를 탐내요? 평주 사람들한테 정말 배 터지게 욕먹고 싶은가 보네요! 여기 좀 보세요, 임씨 가문의 어떤 대단한 남자는 부인의 혼수를 빼앗으려 한답니다! 당신 정말 이런 방면으로는 능력 있는 사람이었네요!”
확실히 법률상에 그렇게 규정이 되어 있긴 했지만 관습적으로 부인이 가져온 재산은 부인에게 귀속된다는 명분이 있어 보통 본인이 지배권을 가지고 있었다. 민간에서도 이러했으니 법정에서도 부인의 편을 들어줬다. 임 삼노야는 뭐라 반박할 말이 없어 쉰 목소리로 목청껏 소리를 질렀다.
“도채령, 이 몰상식한 년아! 누가 네 혼수를 뺏었다고 그래? 네 오라비가 너한테 선물을 보냈는데, 답례 안 할 거야? 그게 다 내 돈에서 나가는 거잖아! 너 같은 여자는 정말 구제불능이야. 어디 하늘 높은 줄도 모르고!”
“네 돈은 네 방에 있는 그 썩은 종이 쪼가리랑 돌덩어리에 다 쓴 거 아니었어? 답례? 우리 친정에서 명절이라고 그 많은 선물을 보냈는데 잘난 임씨 가문에서 거기에 얼마나 답례를 했는지 알긴 해?!”
도씨는 한 발자국도 양보하지 않았다.
“임여공, 때려죽일 용기가 있으면 날 때려죽이고 못 그럴 것 같으면 얌전히 목이나 씻고 죽을 날이나 기다려!”
“그건 그놈이 우리 딸이랑 혼인을 하려면 당연히 보내야 하는 선물 아니야? 아, 맞다. 그때 우리 집에서 당신 집에 보낸 선물도 적지 않은데, 그것도 납채 목록에 포함해야겠구먼!”
“아이고, 계산도 참 확실하게 하시네, 아주 훌륭하십니다!”
또 한바탕 와장창하고 소란스럽게 깨지는 소리가 났다. 누가 깨뜨렸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임근음은 자신의 혼수가 부서지는 소리를 듣고 마음이 몹시 괴로웠다. 또 부모님이 결혼할 당시 누가 납채를 얼마를 보냈니 혼수가 많니 적니 하며 옛날 일까지 들추며 싸우는 소리를 듣고 너무 창피해서 더는 듣고 있을 수 없었다. 그녀가 다 제쳐 두고 문을 두드리려던 찰나, 온몸이 흠뻑 젖은 임근용이 달려와 바로 문을 발로 찼다.
“문 열어요! 문 열라고요! 문은 왜 잠갔어요? 밖에 이렇게 큰비가 내리는데도 사람들이 와서 싸우는 소리를 엿들으며 비웃고 있어요! 이럴 바엔 차라리 문 열어 놓고 다 보는 데서 싸우시는 게 낫지 않겠어요!”
방 안이 갑자기 조용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