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nsibility RAW novel - Chapter 13
03. 흔하지 않은 것들
배 속의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는 만큼 이제 확연하게 배가 불렀다.
움직이는 것도 예전 같지 않아 자동적으로 걸음이 느려졌지만 그래도 아직 한참 멀었다는 의사의 말이 그녀를 두렵게 했다. 더 배가 불러 정말 꼼짝없이 집에 갇히기 전에 연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움직이려 몸을 부지런히 놀렸다.
약속 시간보다 훨씬 일찍 맞춰 나온다고 나왔는데도 시간이 빠듯했다. 연은 아랫배를 감싸 쥐고서 집 근처 카페 안으로 들어섰다. 향긋한 커피 향기와 달콤한 파이 냄새에 기분이 좋아질 새도 없이 카페 안을 두리번거리는데 의자에 앉아 있던 은송이 일어나 손을 흔들었다.
느려진 걸음으로 다가가 앉자 부푼 배를 물끄러미 보던 은송이 조금 웃었다.
“왜?”
“우리 학교 다닐 때만 해도 이러고 만날 줄은 상상도 못 했는데.”
“애는 네가 먼저 낳았거든. 널 보는 내 마음이 어땠겠어.”
“그래. 그래서 웃었어. 나 볼 때도 네가 이런 마음이었겠구나 싶어서. 좀 괜찮아?”
“모르겠어. 요즘 입맛도 다 잃었어.”
“…선배는 잘 지내지?”
혹여 다른 의미로 들릴까 은송은 신중하게 말을 골랐다. 이제 그녀에게도 영원히 함께하자 약속한 상대가 있는데도 은송은 조심스러워 그 말을 하면서도 몇 번을 침을 삼켰다.
아주 오래도록 좋아했었다. 은송에겐 첫사랑이자 가슴 아픈 상처를 남긴 남자이기도 했다. 연은 그런 남자의 첫사랑이자 짝사랑 상대였다. 어쩌면 두 사람은 아주 불편한 사이였지만 그만큼이나 서로를 가장 잘 아는 친구 사이기도 했다.
“응, 그럼.”
한참을 소원한 채 지내다 먼저 연락을 해 온 것도 은송이었다. 외면할 이유도 없었다. 이젠 누구를 미워하고 싶지 않았다. 그때처럼 어리기만 하지는 않아 은송의 마음도 어느 정도 헤아릴 수 있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철없던 시절을 보낸 건 은송뿐만이 아니었다. 저 역시도 그땐 어렸었다. 서로에게 있었던 철없던 시간을 굳이 파헤쳐 들춰내고 싶지 않았다.
“…그래. 참, 이거. 아기 옷이랑 간단하게 산 거야.”
은송은 포장이 된 상자를 내밀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고마워. 아현인 잘 지내지?”
“우리 애야 너무 잘 지내서 탈이지. 오늘 시댁에서 애 봐준다길래 냉큼 맡기고 나왔어. 나 오랜만에 자유야. 이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구태여 날씨 따위의 관심 없는 주제를 꺼내지 않아도, 아무 말 없이 마주 보고만 있어도 어색하지 않았던 사이였는데, 두 사람은 무슨 말을 꺼내야 할까 고민하고 있었다. 애꿎은 잔 아래만 쥐고서 따뜻한 온기에 어색함을 감추고 있었다.
“그럼 애 낳고 복귀하는 거야?”
“응. 출산 휴가에 육아 휴직까지 있으니까 아직은 시간 있어. 너도 알잖아. 나 이 일 포기 못 하는 거.”
“그래. 너 학교 다닐 때부터 그랬지. 어머니 반대에도 아버지 뜻 따르고 싶다 그랬잖아.”
“응.”
“그래. 넌 나처럼 애 낳고 경력 단절되지 말고 하고 싶은 일 해. 선배도 네 뜻대로 하라 하지?”
자연스럽게 이환의 이름이 거론되고 연은 아무렇지 않게 대화를 이어 나가려는 은송을 따라 고개를 끄덕였다.
“선배는 그럴 줄 알았어. 그러고 보면 선배도 참 대단해. 학교 다닐 때부터 너만 좋아하더니 결국…. 너 알잖아. 나 선배한테 두 손 두 발 든 거. 너도 알다시피 나도 한 고집 하는 앤데 바늘 하나 들어갈 틈도 안 줬잖아. 매정했어. 내가 너한테 얘기했던 거보다 더 매정했다 야.”
“그랬어? 그랬구나.”
“나는 연아, 진심으로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미안해.”
오늘은 그런 말을 듣자고 나온 게 아니었다.
연은 누구 하나 손대지 않은 쇼트케이크에 먼저 포크를 가져갔다.
“맛있겠다. 어서 먹자. 나 요즘 단 거 당겨.”
“더 시킬래? 여기 케이크랑 파이가 맛있어.”
두 사람은 기다렸다는 듯이 먹는 것에 집중하며 대화의 주제를 결혼 생활로 옮겨 갔다.
잘 먹지도 않는 디저트를 평소보다 많이 먹어야 했다. 그래도 싫지 않았다. 꼭 아주 오래전의 일상으로 돌아온 기분이었다.
은송과 함께 카페를 나와 집 쪽으로 향하는데 아까 집에서부터 조금씩 뭉치기 시작했던 배 언저리가 딱딱하게 뭉쳐 걷기가 힘들었다. 설상가상 살살 아파 오기 시작하는 느낌에 가슴이 철렁했다.
이렇게까지 아픈 적은 없었는데. 며칠 전 비슷한 증상으로 조산했다는 친구의 전화가 떠올랐다. 아직은 안 되는데. 심한 경우엔 유산의 가능성도 있을 수 있다고 질겁한 목소리로 떠들던 친구의 수다가 이제야 제 이야기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몰려왔다.
연은 아이를 붙잡기라도 하듯 두 손으로 아랫배를 받쳐 안았다.
길을 가다 말고 멈추니 이상함을 느낀 은송이 앞서가다 말고 다시 되돌아온다.
“연아, 너 왜 그래. 괜찮아? 배 아파?”
“조금. 심한 건 아닌데 조금.”
“병원 가 봐야 하는 거 아냐, 너?”
“괜찮아. 괜찮을 거야.”
“어머, 얘, 너 식은땀 나.”
한꺼번에 몰려오는 불안한 생각들과 긴장에 그렇지 않아도 위태한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은송은 절박하게 서 있는 연의 어깨를 감싸 안고 다가오는 택시를 서둘러 잡았다. 카디건 안에 넣어 둔 핸드폰이 진동하며 울었지만 받을 정신을 챙기기엔 이미 전신에 스며든 공포가 연을 붙들고 놓아주지 않았다.
이미 목구멍을 타고 넘어간 달콤한 파이가 역류할 것만 같았다. 속이 좋지 않았다.
연은 아직 풀리지 않은 긴장을 잠재우려 눈을 감는 데 집중했다.
병원 침대는 사람을 위축시켰다. 무슨 일이 생겨도 의연했던 자신인데 아이가 생긴 이후 마음은 꼭 자신의 것이 아닌 양 쉽사리 불안에 휩싸이곤 했다.
자신이 아니라 아이의 마음일 거라 생각하며 불안을 다독이는 데 집중했다. 걱정하지 말란 은송의 배려에 담담하게 대답했지만 감추지 못한 걱정에 손은 여전히 차가웠다.
“괜찮아. 나 괜찮아, 은송아. 나 때문에 너까지 번거로워진 거 아닌가 모르겠어.”
“무슨.”
다행히 검사상으론 태동도 괜찮고 자궁 수축이 염려할 정도가 아니니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했지만 극도로 놀란 마음이 쉬이 진정되지 않아 한참을 버석한 손으로 시트만 움켜쥐고 있었다.
링거 주사가 꽂혀 있는 팔만 바라보고 있는데 내내 곁에 자리를 지키고 있던 은송이 굳은 얼굴로 주춤거리며 일어났다.
일하는데 괜히 신경 쓸까 일부러 전화도 하지 않았는데 은송에게 연락을 받고 온 건지 생각지도 않게 눈앞에 나타난 이환을 본 연은 자신도 모르게 상체를 일으켜 손을 뻗었다.
성큼성큼 다가와 뒤통수를 감싸 쥐고 확 당겨 안는 그에게 진한 향수 냄새가 났다. 차이환의 향기. 그의 셔츠에 몸을 딱 붙이고 두 손으로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더 솔직할 걸 그랬다. 와 달라고 할걸. 강건한 그의 몸을 끌어안는데 세상 어떤 것도 이겨 낼 수 있을 것만 같은 용기가 솟았다. 우리 아이를 지켜 낼 수 있을 것 같은 굳센 용기가. 연락을 받자마자 왔는지 업무를 보느라 올려 접어놓은 소매가 그대로였다.
“어디가 어떻게 얼마나 아픈 건데. 너 지금….”
제대로 말도 잇지 못하고 으스러져라 껴안는 그가 스스로를 자책했다. 그마저도 그녀가 아파할까 안고 있던 가슴에 힘을 푸는 그가 차마 다 놓지 못한 손으로 연의 목덜미를 끌어안아 보듬었다.
오랫동안 그에게 매달려 안겨 있던 연은 멀찌감치 서서 지켜보던 은송과 눈이 마주쳤다. 어떻게 해야 하나, 그 잠깐 사이 고민을 하는데 조금 희미하게 웃는 그녀가 뒤돌아서 나갔다.
의사에게 상황을 전해 듣고 돌아오던 이환은 또각또각 다가와 마주 서는 은송을 내려다보았다. 단발머리에 고집 있어 보이는 눈으로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선배, 저 기억 안 나세요? 왜, 같은 동아리에 있던….”
“생각이 나야 하는 건가?”
“아뇨, 그건 아니고…. 저 연이 친군데 놀라셨을까 봐요. 저랑 있었거든요.”
정연에게 전화를 했는데 낯선 여자가 전화를 받았다. 친구라고 하더니 이 여자였나.
선배라 호칭하며 동아리를 언급하는 그녀는 낯익은 얼굴이었으나 스쳐 지나갔을 여자를 구태여 떠올리면서까지 알은체를 하고 싶진 않았다. 대꾸를 않으니 여자가 머쓱하게 웃음을 띠고 고개를 숙였다.
“연이 괜찮을 거예요.”
“그래요. 병원까지 데려와 준 건 고맙고.”
고맙다는 말에 벼락이라도 맞은 사람처럼 가다 말고 멈춰 선 여자는 오묘한 표정을 했다. 저 표정을 보니 기억이 난다. 정연의 대학 친구. 자신에게 좋아한다 어쩐다 비슷한 이야길 했던 여자. 연이 병원에 있다는 연락을 받고 정신이 없어 미처 생각지 못했다.
어쨌든 호의에 감사는 해야 하니 사례라도 하려 말을 걸려는데 여자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치다시피 병원을 나갔다.
“선배.”
링거를 다 맞았는지 가방을 들고 선 연이 느린 걸음으로 걸어왔다.
“은송이 못 봤어? 갔나 보네. 정신이 없어서 제대로 고맙단 인사도 못 했는데.”
“내가 했으니까 됐어. 근데 너 전화 왜 안 했어.”
꼭 그가 잘못을 추궁할 때면 눈썹이 가라앉고 눈망울이 축 처진다. 강한 척하지만 실은 감정적이고 사랑에 여린 여자. 상처받고 싶지 않아 꽁꽁 숨은 그녀를 밖으로 꺼내니 하루에도 갖가지 새로운 그녀를 알게 되는 기분이었다.
이렇게 다정하게 사랑을 표현할 줄 아는 그녀에게 상처만 가져다 나른 두 새끼를 갈아 마셔도 시원찮았다. 그런 그에게 자신은 괜찮다고 전하기라도 하듯 연이 계속해서 눈 맞춤을 시도해 온다.
이환은 그게 또 귀여워 확 안아 주고 싶었지만 연락을 안 한 그녀에게 거짓 없는 답을 듣기 위해 사나운 기세로 이유를 물었다.
“혹시 걱정할까 봐서. 일하는 데 방해 안 되고 싶었어.”
“이게 어떻게 방해야. 너나 애만큼 중요한 일이 어디 있다고. 너 내가 전화받고 얼마나….”
무슨 일 있으면 자신에게 먼저 연락부터 하라 그렇게 당부를 했건만 그녀는 또 그에게 걱정을 끼칠까 혼자서 끙끙 앓았던 거다.
타인에게 누를 끼치면 안 된다는 강박이라도 있는 건지, 아니면 이것도 일종의 직업병인 건지 그녀는 무거운 짐은 나눠 지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물론, 그를 위해서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환은 그 모든 모습까지도 자신에게 기대어 주었으면 했다. 그런 책임감까지도 모두 그에게 떠넘기고 완전히 기대 주었으면. 자신은 그녀의 모든 것을 감내할 자신이 있었다.
“미안. 그래도 우리 토실이 건강하대. 이상 없대.”
토실이. 토실토실하게 잘 자라라고 붙여 준 아이의 태명이었다. 아이의 태명대로 토실토실 자라고 있는지 요새 들어 확연히 배가 부른 연을 보자니 아침에 그녀를 두고 출근할 때마다 여간 눈에 밟히는 것이 아니었다.
당분간 저도 휴직을 하든가 해야지, 이래선 불안해서 어디 출근이라도 하겠나.
꼬물꼬물, 다가온 손으로 그의 허리춤 셔츠를 만지작거리는 그녀가 평소답지 않게 애교를 부려 온다. 나름대로 그의 화를 풀어 주는 방법 중 하나였다.
더 화도 내지 못하게 좆을 빨아 오거나 제 치부를 훤히 보여 주며 엉덩이를 흔드는 요사스러운 방법은 침대에서 주로 쓰는 것이었고, 밖에선 이리 살살 손을 잡아 오는 등 그가 약해지는 부분을 너무나도 잘 공략해 왔다. 그러니 더 화낼 수 있을 리가.
확실히 그에게 선을 긋고 벽을 세우고 경계했던 지난날의 그녀와 자신의 아내가 된 그녀는 달랐다. 그의 아이를 갖고 따뜻하게 손을 잡아 오는 지금이 환상인가 의심이 들 정도로 그녀는 그에게 차디찼던 사람이었다.
그 벽을 허물기까지 얼마나 갖은 인내를 하며 공을 들였는지 모른다. 거기다 임신을 하고 나서부턴 유독 표현이 잦아졌다.
사실은 지금도 하루에도 수십 번은 꿈이면 깰까 두려우면서도 자꾸만 욕심이 생기고 그녀에게 바라는 것이 늘어난다. 그녀의 숨 한 자락마저도 공유하고 싶고 그 눈빛 한 번이 더 갖고 싶다.
쪽팔려도 어쩔 수 없다. 모양 빠지게도 그녀를 마음에 담은 순간부터 자신의 자존심은 다 허물어진 것이나 매한가지였다.
“하여튼 집에 가서 봐.”
조금 더 안겨 오길 바라며 일부러 가늘게 눈꼬리를 늘어뜨리자, 아니나 다를까 바짝 다가와 몸을 붙이며 그를 살핀다. 귀여워. 씨발. 귀여워서 돌아 버리겠다.
“잠깐 나 은송이한테 고맙다고 전화 먼저….”
“걔 바쁘다고 갔어. 뭘 또 전화까지 하고 그래. 바빠서 전화 같은 거 할 시간 없단다. 핸드폰 버린대.”
그 잠깐의 순간에도 그녀가 관심을 보이는 타인을 상대로 질투했다. 내던져진 자존심을 챙기기엔 눈앞의 이 여자가 사랑스러워 견딜 수 없었다. 단 한 순간도 자신이 아닌 다른 곳에 시선이 머물지 말았으면 했다. 언제 어디서든 뿌리만큼은 자신에게 박힌 그녀였으면.
이환은 핸드폰을 꺼내려 엉거주춤 서 있는 연의 손을 낚아채 잡고 병원을 나왔다.
“순 질투.”
“싫으면 딴 새끼한테 곁눈질하지 말고 나만 봐. 넌 딴 새끼 볼 여유가 있어?”
“은송이가 어떻게 딴 새끼야.”
“나 아니면 다 딴 새끼지, 그럼.”
“무슨 말도 안 되는, 아… 천, 천히.”
“왜, 아파? 어디 봐. 입원해야 하는 거 아니냐, 너?”
“괜찮아. 애가 움직여서 그래. 나 어떻게 안 돼.”
연이 배를 붙잡고 크게 숨을 고르자 이환은 당장 들쳐 안고 도로 응급실로 찾아갈 태세로 그녀의 동그란 배를 감싸 안았다. 그러자 착 감겨 오는 그녀가 그의 팔을 붙잡더니 예고 없이 안겨 온다.
난데없이 그녀를 품게 된 이환은 새삼 밀려오는 감격에 움직일 수가 없었다.
저도 참 미친 새끼다. 이 길바닥에 그녀를 눕혀 놓고 아이가 나올 구멍에 입을 처박고 개처럼 빨고 싶은 욕구가 치밀어 올랐다.
그의 혀가 지나가는 자리마다 살이 튀다 못해 물이 흐를 테고, 음란한 교성을 터트리면서도 기분 좋다며 좆도 넣어 달라 울겠지.
이젠 선연히 그려지는 그림에 죽어 있던 것이 발기됐지만 모른 척 그녀를 안아 주었다.
“이젠 정말 무슨 일 생기면 곧바로 부를게. 난 정말 선배가 없으면….”
품 안에서 바르작거리던 그녀가 힐끔 고개를 든다. 여전히 턱은 그의 가슴팍에 묻은 상태였다. 새까만 두 눈이 깜빡거리며 그를 살폈다.
“섰어?”
그녀가 소곤소곤 속삭이는데, 반쯤 올라와 멈춰 있던 것이 기어이 완벽한 흥분에 이르렀다. 그럴 타이밍이 아니란 건 알지만 언제부터 정연 앞에서 몸이 뇌의 명령을 따랐다고.
“차 어디 있어? 집에 가는 동안 만져 줄까?”
지금의 상황이 어이가 없다가도 눈앞의 그녀를 보는 순간 모든 것이 납득이 돼 헛웃음이 흘렀다.
“왜, 아주 빨아도 보지.”
“그건 이따 드라마 할 시간에.”
하여튼 말이라도 못 하면. 사람 혼을 쏙 빼는 재주를 가졌다.
헛웃음을 치며 툭, 이마를 건드리자 다시 얼굴을 가슴에 묻어 온다.
“드라마 하는 내내 빨아 줄래.”
“또 응급실 오자고?”
그녀가 어깨를 으쓱하는데 그대로 연의 턱을 치켜들고 입을 맞췄다.
너 없이 내가 살 수나 있을까. 이젠 감히 상상도 되지 않는 불안한 생각들을 떨쳐 버리고 더욱 깊이 사랑하자고 작은 입 안 가득 음욕으로 점철된 혀를 그득 파묻어 넣었다.